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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재값 대란, 비상구를 찾아라

기업들 초비상…납품가 못 올리는 中企, 대기업까지 피해 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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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58호 김대희⁄ 2008.03.17 16:32:06

연일 치솟고 있는 원자재값 상승으로 요즘 국내 기업들의 고충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특히, 중소기업은 원가 상승분을 납품 단가에 반영하기도 어려워 피해가 더욱 크다. 이에 중소 제조업체들은 절벽으로 내몰리는 상황이다. 원자재 가격은 매일 가파른 곡선을 그리며 오르고 납품 단가는 예전 수준에 묶여 ‘생산=손해’가 현실화되고 있다. 주물업체를 시작으로 최근 이어지고 있는 중소기업들의 납품 중단 움직임도 이 같은 위기감을 반영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이번 사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납품가격 ‘깎기’의 오래된 하도급 관행이 원자재 가격 파동을 계기로 다시 불거졌다고 볼 수 있다. 주택경기 침체에 시달리고 있는 건설업계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또 하나의 힘겨운 전쟁을 치르고 있다. 철근 확보 전쟁이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오르기 시작한 철근값은 겨울 비수기로 접어들면서 상승세가 주춤했다가 올 연초 3개월 연속 오르는 폭등세를 연출하고 있다. 그나마 물량 확보도 쉽지 않아 공사 중단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 이에 정부는 3월 11일부터 고철과 철근 사재기에 대해 전국적으로 집중 단속을 실시했다. 최근의 철근가격 급등과 수급불안에는 철근 유통업체와 건설업체 등의 사재기 영향도 있다는 판단에서다. 단속기준을 보면 ▲고철을 수집·가공·운반하는 자는 직전 15일 간의 사업장 내 고철 평균 재고량이 전년도 동일기간 재고량의 1.1배를 초과할 경우 ▲철근을 생산·판매하는 자는 직전 30일 간의 철근 재고량이 전년도 동일기간의 사업장 내 철근 재고량의 1.1배를 초과할 경우 ▲철근을 사용하는 자는 사업장 내 철근 평균 재고량이 직전 18일 간 철근 총사용량을 초과할 경우다. 국제적인 원자재난으로 연초부터 철광석·유연탄·구리 등 각종 원자재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으면서 건설·유화업종 등도 직격탄을 맞고 있고, 자동차·조선·기계 등 수출 주력업종도 가격 경쟁력 약화와 수익성 악화를 걱정하고 있다. 곡물 가격 폭등으로 생필품 가격이 잇따라 인상되는 것도 부담이다. 생필품 가격 인상은 곧바로 임금인상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정부는 앞으로 밀가루 등 생필품에 대해서도 철저한 모니터링을 통해 사재기 우려가 있을 경우 사전실태조사를 통해 고시 지정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할 예정이다. 이병욱 전경련 상무는 “단기적으로 관세를 인하해 ‘원자재 쇼크’를 완충하는 방안이 가능하겠지만, 결국 기업이 원가 절감을 통해 원자재값 상승분을 떠안을 수밖에 없다”며 “우리 경제의 체력이 급격히 약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 원자재값 폭등 직격탄 맞은 건설·유화·식음료 업계 건설업계는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대형 건설사들마저 철근 대란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철근 가격은 올 들어 매달 오르면서 3개월 만에 26%나 뛰었다. 지난해 초에 비하면 50% 이상 올랐다. 건설업계의 연간 철근 사용량이 1,160만t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올 들어서만 벌써 2조 원 가까운 원가 상승 요인이 발생한 셈이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예전에는 긴급 물량도 쉽게 구할 수 있었는데, 요즘은 25t을 구하는데도 힘들 정도다”라며 “1군 건설업체도 어려운데 중소형 건설사는 더 심각할 것”이라고 말해 현실의 어려움을 실감케 했다. 시멘트 가격 역시 중국·호주의 자연재해로 원료인 유연탄 수출이 중단되면서 가격이 11.3%(5만3,000원→5만9,000원)나 뛰었다. 더불어 러시아의 유연탄 부족, 캐나다의 폭설, 인도네시아의 폭우 등 수급상의 악재가 터져 나오고 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미분양인 상태에서 오른 원자재 가격을 분양가에 반영할 수도 없는 일”이라며 “건설 성수기로 접어드는 4월에는 업계에 원자재 확보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유화업계의 상황도 악화일로다. 각종 석유화학 제품의 원료가 되는 나프타 가격이 최근 t당 880달러를 넘어서면서 지난해 초 대비 70%나 올랐다. 나프타에서 분해돼 나오는 에틸렌 등 다른 원료 가격도 동반 상승하고 있다. GS칼텍스와 SK에너지 등 유화 업계는 수익성이 악화돼 제품생산을 멈추거나 줄이고 있는 실정이다. 플라스틱 업계와 제관업계도 위기감에 휩싸여 있다. 플라스틱 업계는 납품가격이 현재보다 30~40%는 올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를 위해 가격인상에 대한 긴급 대책회의를 열었으며, 의견 관철을 위해 극단적인 행동도 불사할 예정이다. 최근 국제 곡물가 급등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식음료 업계는 더 힘들다. 밀·콩·옥수수 등 주요 곡물가격이 상승하면서 1~2개월 주기로 국제입찰에 참여해 물량을 확보해온 기업들은 남은 재고가 떨어지면 가격을 떠나 다시 구할 수 있을지조차 불투명하다. 특히 식음료 제품의 경우 서민들의 생계비와 직결돼 가격을 올리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이중 부담이다. 한편, 주물업계에 이어 레미콘 업계도 납품가 인상을 요구하며, 요구조건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공급을 중단하겠다는 방침을 선언하고 나섰다. 하지만 건설업계는 7월까지는 납품가를 올려 줄 수 없다고 맞서고 있어 레미콘 파동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 수출 주력업종 경쟁력 약화…현대차 주물 원재료비 자진 인상 조선·자동차·기계 등 수출 주력업종도 원자재 쇼크의 영향권 안으로 들어서고 있다. 철광석 가격이 올해 65%나 오르면서 자동차용 강판·후판 등 주원료의 가격이 들썩이고 있기 때문이다. 자동차용으로 쓰이는 냉연강판 가격은 연초 t당 59만5,000원에서 66만 원으로 6만5,000원 올랐다. 철광석 가격 인상분이 본격 반영되는 오는 4월에도 또 한 차례 인상이 예고되고 있다. 조선용 후판 가격도 급등세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지금은 선가(船價)가 상승세여서 원자재 값 상승분을 전가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서도 “상승세가 계속 이어지면 수출 경쟁력 약화가 불가피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최근 현대·기아차가 1차 협력업체로부터 공급받는 주물 제품의 원재료비를 평균 20% 인상해 주기로 결정했다. 현대·기아차의 원재료비 인상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는 원자재 값으로 인해 “생산할수록 손해를 본다”는 주물 제품 중소기업들의 앓는 소리에 대한 적극적인 대응으로도 풀이된다. 무엇보다 현대·기아차가 한국 산업계의 ‘대표 기업’가운데 하나라는 점에서 그 파급효과는 적지 않을 전망이다. 또한, 단순히 납품가격을 인상해 준다는 차원을 떠나 이번의 원자재 파동이 향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모델’의 계기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한 관심과 함께 다른 대기업들의 대응에 귀추가 주목된다. 한편, 이와 관련해 주물업계는 현대차에서 발표한 인상금액으로는 주물업계의 납품단가 현실화에 미치지 못한다며, 재협상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주물업계는 “납품단가 현실화 재협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2차 납품중단을 실행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 中企 이어 대기업까지 흔들…상호 접점 찾아야 중소기업은 이중고를 겪고 있다. 원자재 가격이 올라도 이를 납품업체에 전가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자동차 부품을 생산하는 경북의 A회사는 지난해 연말부터 한 달에 1,000만 원 가량 적자가 쌓이고 있다. 고철 값이 올라 주력제품인 브레이크 디스크의 가격을 ㎏당 250원 정도 인상해야 하지만, 지난해 원청업체가 올려 준 납품가는 60원에 그쳤다. 선박용 엔진 부품 생산업체인 경남 창원의 D회사도 납품업체의 원가절감 요구에 원자재 값 상승에 따른 납품가 인상 얘기는 아예 꺼내지도 못했다고 한다. 한국주물공업협동조합 관계자는 “원자재 값 상승을 제품가격에 제대로 반영하지 않으면, 올 연말부터 문을 닫는 중소업체가 속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원가 상승에 따른 부담을 느끼기는 대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최근 대기업들은 주요 경영 과제 가운데 하나로 ‘원가절감’을 내걸 정도로 치솟는 원자재 값 상승에 더욱 허리띠를 졸라 매고 있다. 포스코는 지난해 공정개선으로 원가를 8,300억 원 줄인데 이어 올해도 비슷한 수준으로 원가절감 목표를 세웠다. 현대차는 지난해 45만2,000건에 걸쳐 임직원들의 제안이 채택돼 958억 원의 원가를 줄였다. 무엇보다 문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원자재 값 상승에 따른 부담을 서로 최소화하는 접점을 어느 지점에서 찾느냐이다. 일단 먼저 현대·기아차가 주물 제품 원재료비를 평균 20% 인상하는 접점을 제시했다. 삼성전자는 올 초 주물 제품의 가격을 ㎏당 77원 올린데 이어 추가 인상을 준비 중이고, 두산인프라코어도 ‘인상’ 방침 아래 인상 시점과 인상 폭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아직 많은 대기업들은 중소기업들의 애로를 이해는 하면서도 선뜻 원재료비 인상 결정을 못하고 있다. 중소업계 한 관계자는 “대기업으로서는 수익경영을 할 수밖에 없지만, 원재료 값 상승에 따른 중소기업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는 대기업이 먼저 움직여 줘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원자재 값 급등은 고용시장까지 뒤흔든다. 우리나라 전체 고용의 88%를 담당하고 있는 중소기업이 무너진다면 우리나라 전체 고용시장도 흔들릴 수밖에 없다. 아울러, 중소기업이 살아야 대기업도 존재할 수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 조달청 방출 확대…원자재 거래가격 조사기간 단축 최근 조달청에 따르면, 국제 원자재 가격이 급등함에 따라 중소기업의 수급 균형을 위해 일부 원자재 품목의 방출량을 늘리기로 했다. 특히, 알루미늄과 구리 등 원자재 대표품목에 대해서는 3월부터 300~1,000t 정도 더 늘려 공급하기로 했다. 알루미늄의 경우 주간 방출량은 기존 2,000t에서 3,000t으로 1,000t이 늘어났다. 알루미늄의 런던금속거래소(LMEX) 가격은 작년 말 t당 약 2,400달러에서 올 들어 지난 3월 7일 현재 약 3,200달러로 불과 두 달여 만에 33% 이상 급등했다. 구리도 주간 방출량이 기존 700t에서 1,000t으로 300t이 늘어나 공급된다. 구리의 LMEX 가격 역시 작년 말의 t당 6,675달러에서 지난 7일 현재 8,545달러로 28% 급등했다. 니켈은 이번주부터 주간 방출량이 70t에서 130t으로 늘어나 공급된다. 니켈 역시 LMEX 가격은 작년 말 t당 2만6,300달러에서 지난 7일 현재 3만3,350달러로 27% 정도 올랐다. 조달청이 공급하는 원자재는 국내시장 전체 소비량의 약 7~8%를 차지하고 있다. 아울러, 조달청은 철근·레미콘·아스콘 등 연간 계약으로 구매하는 원자재의 최근 거래가격을 반영해 구매할 수 있도록 가격 조사기간을 1개월 이상 단축하기로 했다. 조달청 관계자는 “원자재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상황에서 가격조사를 1개월만에 끝내고 이를 구매가격에 반영하게 됨에 따라 계약금액의 조정이 보다 신속하게 이루어져 기업의 채산성이 향상되고 정부의 원자재 구매가 보다 안정적으로 이루어지는 효과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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