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 카드 사용량이 또 다시 급증하고 있다. 하지만 카드사 간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수익창출 능력은 오히려 떨어졌다. IMF 환란 이후 불어 닥친 신용 카드 대란으로 위기를 겪은 카드 업계에 순이익 급증은 충분히 환영할 일이지만, 일부 카드사들이 신규회원 유치를 위해 모집인을 대거 확대하거나 연회비를 돌려주는 편법을 자행하는 등 경쟁이 심화되고 있어 또 다시 제2의 카드 대란이 오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흘러나오고 있다. 잘 쓰면 편리하고 실속 있는 금융상품이지만, 잘못 쓰면 빚더미에 올라앉는 ‘신용불량자’를 양산할 수 있는 신용 카드. 그 ‘수상한’ 현상과 전망 그리고 소비자들의 대응책을 분석해 본다. 지난주 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4분기 신용 카드를 통한 판매 신용은 2조6024억 원 증가했다. 이 가운데 5개 전업 카드사(옛 신한카드 포함)의 당기순이익 역시 2조4780억원으로 전년대비 14.5% 증가했다. 지난 2001년 68조 원이었던 신용 카드 시장규모는 2002년 125조 원으로 치솟았다가, 2003년 ‘카드 대란’ 이후 80조 원으로 추락한 바 있다. 이후 지난 2003년 카드 업계는 이러한 후유증을 딛고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거치며 급기야 카드 대란 6년 만인 지난해에 사상 최대 순이익을 거둘 정도로 성장하고 있는 추세다. 이 때문에 이번의 순이익 급증은 과거의 고난을 극복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어 카드사들에게는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카드사 간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수익창출 능력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 실제로 이번 순이익과 관련, 신한·현대 카드의 법인세 감소효과 5616억 원과 삼성 카드의 상장 관련 특별이익 1770억 원, 신한·롯데 카드의 비자주식 수증이익 1431억 원 등 비경상적 요인의 영향이 컸다. 특히, 핵심 영업활동으로 인한 수익성을 나타내는 ‘충당금 적립 전 영업이익’은 전년에 비해 오히려 1098억 원 감소한 2조4466억 원을 기록했다. 결국, 카드사들 간의 경쟁이 심화됐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업계 전문가들은 ‘제2의 카드 대란’이 재현되는 게 아니냐며 기대보다는 우려를 표시하고 있다.
■카드사 순익 급증, 기대보다 우려 크다 소비자가 신규 카드를 발급받기 위해서는 매달 꾸준한 수입이 있어야 하고, 신용등급도 어느 정도 높아야 한다. 과거에 카드를 무분별하게 발급하다가 큰코를 다친 카드사들이 아픔 속에 터득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부 부실 회원은 나름대로 걸러질 만큼 걸러졌지만, 지난해부터 은행을 중심으로 또 다시 카드 과열경쟁이 불고 있다. 이를 입증하듯 카드사들은 앞 다퉈 모집인을 대거 확대하고 있고, 연회비 면제, 신규가입시 선물 제공 등으로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다. 카드 업계에 의하면, 국내 카드 모집인의 전체 규모는 5만 명에 육박해 카드 대란이 불거지기 전의 절반을 넘어섰다. 특히, 지난 한 해 동안 2만 명 가까이 증가했으며, 더욱이 카드사들은 올해도 영업력을 확충하기 위해 카드 모집인을 대거 늘릴 예정이다. 특히, 엘지카드 사장을 역임한 박해춘 우리은행장은 카드 모집인을 2006년 말의 4700여 명에서 지난해 말 1만1000여 명으로 늘렸다. 1년 만에 87%나 급증한 셈이다. 또 ‘우리V카드’를 출시해 2006년 5.9%였던 시장점유율을 지난해에는 7.4%까지 끌어올렸으며, 카드 모집인을 2000여 명 신규 채용해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였다. 더욱이 우리은행은 올해 말까지 모집인·카드 설계사 조직을 현 32개에서 50개로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우리은행은 현재 신설된 영업 조직만 18개로 국내 겸영 카드사 가운데 가장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하나카드 역시 카드 설계사 영업부 조직을 올해 말까지 50개로 확대 구축할 방침이다. 상대적으로 모집인·카드 설계사가 가장 적은 국민은행도 올 상반기까지 설계사 영업부를 10곳까지 늘리고 2월 말까지 3곳을 개설할 계획이다. 하지만, 카드 모집인이 많아지면 카드사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모집인 수당이 늘어나는 등 비용 상승으로 이어져 소비자에게 부담이 전가될 수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또, 카드사들의 경영 건전성이 악화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실질적으로 카드 모집인은 2002년 말 8만7733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2003년 카드 대란 여파로 1만 명대로 떨어졌으나, 최근 3년 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또, 일부 모집인은 신용등급이 낮은 고객을 신용이 높은 것처럼 거짓으로 서류를 꾸며 신규 카드를 발급하는 편법을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직장에 다니지 않는 고객을 직장에 다니는 것처럼 계약서에 기재한다든지 연봉을 올리는 방식이다. 또, 연회비 면제 및 선물 등을 내세워 카드를 발급 받도록 설득해 서민들의 소비를 부추기고 있다. 금융연구원 서병호 연구위원은 “은행들이 수익 다각화를 위해 카드 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며 “모집인이 늘어나는 것은 결국 마케팅 비용 증가로 이어져 경영 건전성을 해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카드사들의 순익이 급증한 이유는 또 있다. 카드 해지 신청을 막기 위해, 이미 고객이 지불한 연회비를 고객 통장으로 다시 돌려준다거나 포인트를 추가 적립해 주는 방식이다. 즉, 카드사들의 고유 권한인 포인트 혜택과 매년 지불되는 연회비가 고객탈퇴 방지용으로 사용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대해 카드 업계의 한 관계자는 “신규 회원을 모집하는 일이 옛날처럼 쉽지 않아졌다”며 “대부분의 카드사들은 신규 회원 마케팅도 강화하지만 기존 회원 관리에 더 주력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관계자는 또 “사용하는 만큼 적립해 주는 포인트 혜택과 아울러 연회비가 고객 탈퇴 방지용으로 사용되는 방법은 카드사에 비일비재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지혜로운 카드 사용, 결국 소비자의 몫 이처럼 카드 소비가 급증한 이유는 카드사 간의 경쟁이 심화됐기 때문이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2000년대 초반의 카드 대란은 카드사들에게도 씻을 수 없는 타격을 입혔지만, 국민들에게는 더 큰 상처로 남았다. 당시 카드 빚을 갚기 위한 범죄 사건이 심심찮게 언론의 사회면을 장식했으며, 심지어 가족들간의 불화·살인 사건으로 확산되기까지 했다. 그 대란의 후유증으로 신용불량의 늪은 여전히 서민들의 발목을 잡고 있다. 이 때문에, 카드 경쟁이 뜨거워진다 해도 결국 선택은 소비자들의 몫이어서 현명한 판단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카드를 배척할 필요는 없다. 물품을 사거나 여행을 할 때 현금을 가지고 갈 필요가 없어 편리하고, 또 마일리지 및 다양한 할부 서비스 혜택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카드를 만들 예정이거나 이미 사용하고 있는 소비자라면, 카드를 긁을 때 ‘내 돈’이 아닌 ‘빚’이라는 생각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에 대해 여신금융협회는 소비자 보호대책 마련 차원에서 명심해야 할 몇 가지 유의사항을 마련했다. 먼저, 국내외에서 타인이 위조 신용 카드로 결제할 것에 대비해 신용 카드 사용내역 문자 서비스(SMS)를 신청해 두면 부정사용을 방지할 수 있다. 물론, 비밀번호, 카드 번호 등은 절대 타인에게 알려주면 안된다. 신용 카드 수령 즉시 뒷면에 서명을 하는 것은 기본이다. 서명하지 않은 신용 카드를 분실해 부정사용되면 보상받기 어렵기 때문이다. 신뢰성 있는 인터넷 사이트가 아니면 가급적 회원가입을 자제하고, 가입을 하더라도 비밀번호 관리에 신경을 쓴다. 마지막으로, 유흥업소와 주유소 등에서 결제할 때 종업원에게 카드를 맡기지 말고 직접 결제과정을 확인한다. 신용 카드 지혜롭게 쓰는 법 신용 카드 유의 사항을 제대로 숙지했다면, 다음으로 지혜롭게 쓰는 방법도 알아보자. 카드 업계 관계자들은 가장 활용도가 높은 카드를 선택해 하나만 사용하는 습관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첫째, 가족 카드를 만들어 이용하라. 남편이나 아내의 신용으로 카드를 발급받고 결제는 본인 계좌를 활용하기 때문에 사실상 하나의 카드로 가족들이 함께 사용할 수 있다. 둘째, 카드를 여러 장 소유할 경우 매년 들어가는 연회비 역시 만만치 않으므로 불필요한 카드는 최대한 줄이되 사용하지 않을 카드는 반드시 카드사에 연락해야 한다. 셋째, 신용 카드 현금 서비스는 수수료율이 높고 신용등급에 영향이 있기 때문에 가급적 받지 않는 게 좋다. 다만, 현금 서비스를 사용하고 갚을 경우, 중도 상환하는 게 유리하다. 보통, 현금 서비스를 받은 사용자는 결제일 이전에 갚을 돈이 생겨도 미루다가 결제일에 맞춰 갚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현금 서비스를 중도상환하면 그만큼 수수료 부담을 줄일 수 있다. 넷째, 카드사가 정기적으로 발송하는 우편물을 꼼꼼히 살펴보는 것도 지혜로운 카드 사용법이다. 할부·할인 또는 무료 쿠폰 혜택이 많기 때문에 가맹점을 알아두면 지출을 크게 줄일 수 있다. 다섯째, 카드 혜택에서만 주는 포인트 이용도 추천할 만하다. 하나의 카드만 이용해 사용도를 높이면 포인트 적립이 높아지게 마련이다. 또, 야구·축구·영화 관람과 놀이동산 이용을 거의 공짜로 할 수 있는 카드도 있으며, 기름값 할인 서비스도 보편적으로 제공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