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경제불황이 장기화되면서 세계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 위기에 빠졌다. 덩달아 국내 경제시장도 최근 달러화 약세 지속, 국제 원자재가 급등으로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신호가 켜졌다. 이에 따라 정부는 물가가 급속히 상승하는 인플레이션을 막고 서민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생필품 52개 품목을 집중 단속하겠다고 나섰다. 그러나 기대보다는 우려가 더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정부가 난관 극복의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경제연구소의 한 관계자는 현 정부정책에 대해 “언제 어느 정책을 써야 할지 전전긍긍하고 있다는 게 정확한 표현 같다”며 “이는 어느 정책을 선택해도 나라 밖에서 닥쳐온 경기와 물가 불안을 피해갈 수 없고, 어느 정책이든 부작용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인플레이션 선행지표인 원재료 물가가 2개월 연속 45% 이상 폭등했다. 국제 원유가격이 고공행진을 하고 있는데다 곡물가격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원재료 물가 급등은 시차를 두고 소비재에 반영돼 소비자물가를 끌어올릴 것이 확실해 보인다.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물가가 통제 범위를 벗어나는 저성장-고물가가 현실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는 셈이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최근 ‘글로벌 금융불안과 세계경제’라는 보고서에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인해 현재 미국 경제가 침체국면에 진입했고 세계 경제도 그 동안의 고(高)성장세에서 벗어나 조정국면으로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생산물가 고공행진… 중국ㆍ인도 수요가 원인 그렇다면, 스태그플레이션이란 무엇일까? 쉽게 말해서 경기침체와 물가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면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 되는 현상을 뜻한다. 미국은 지난 1973년 10월 중동전쟁에 따른 1차 오일 쇼크로 이 사태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체감한 바 있다. 당시 오일 쇼크로 국제 원유 값이 급등하고 석유를 사용하는 각종 상품과 서비스 가격도 급등했다. 또 석유 값 급등으로 채산성이 나빠진 기업이 도산하자 실업자도 급격히 늘어났다. 현 경제상황도 70년대와 비슷하다는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지난 1년 새 국제 원유가격은 두 배 이상으로 올랐고, 원유뿐 아니라 철·구리·아연과 같은 원자재, 밀·콩 등 곡물가격까지 급등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모든 물가가 오른 이유는 중국·인도 등 신흥 경제대국들의 수요가 많아지면서 공급이 원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즉, 수요가 공급을 따라가지 못하는 현상이 초래된 셈이다. 게다가, 가격이 오를 것으로 예상한 투기자본까지 가세해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고, 설상가상으로 물가상승의 버팀목 역할을 했던 중국산 제품도 최근 몇 년 새 가격이 급등했다. 위기를 느낀 미국은 경기침체를 우려해 2000년대 초부터 금리를 계속 낮췄다. 금리가 낮아지면 시중에 돈이 많이 풀려 기업은 투자를, 개인은 소비를 늘리게 된다.
■한국 스태그플레이션 오나 한국 경제는 아직까지 스태그플레이션이 시작된 것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의 견해다. 국내외적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의 우려가 고조되고 있지만, 지표상으로 아직 우리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졌다고 보기에는 시기상조라는 분석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또, 경제지표가 어떤 수준을 기록하면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졌다고 선언하는 공식적인 정의는 없다. 하지만 통상 미국 경제의 경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2분기 연속 전분기 대비 마이너스 성장을 하고 물가 상승률이 2분기 이상 연방은행의 목표치를 넘어서는 3∼5%를 기록할 때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졌다고 본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높은 성장세를 유지하는 국가의 경우 GDP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는 경우가 2차 오일 쇼크나 외환위기 같은 특수한 상황을 제외하고는 없기 때문에 성장률이 잠재성장률(4.5%) 이하 내지 3%대를 기록하면 경기침체 국면으로 간주한다. LG경제연구원 송태정 연구위원은 “1분기 우리 경제 성장률은 5%가 넘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졌다고 하기에는 아직 이르다”면서 “하지만 하반기에 미국 경제와 세계 경제가 더 어려워져 수출이 둔화되고 내수도 회복기조가 꺾일 경우 우리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美 금리인하, 석유ㆍ원자재 값 상승 가능성 한국 내수회생 서둘러야 그렇다면 해법은 없는가? 경제 전문가들은 정부가 성장과 물가안정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내수를 회생하는데 주력해야 스태그플레이션을 막을 수 있다고 진단했다. 여기에다 민간 경제연구소들은 잇따라 세계 경제와 이에 연동된 우리 경제의 스태그플레이션 가능성을 우려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또, 우리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성장과 물가안정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내수회생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송태정 연구위원은 “새 정부는 6% 성장을 목표로 내세웠는데, 성장에 집착하기보다는 성장과 물가안정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면서 “최근 정부가 원화 약세를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침에 따라 원· 달러 환율이 단기간에 900원대 후반으로 뛰었는데, 이는 물가를 안정시키기보다는 성장을 우선하겠다는 정책의 일환으로 비쳐진다”고 우려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임경묵 연구위원은 “물가가 계속 오를 것이라는 기대심리가 퍼지는 것을 막는 게 중요하다”며 “정부가 물가안정에 대한 의지가 없는 것으로 비치면 통화정책이 무력화되고 생산비용이 올라가 물가가 더 오르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물가가 상승하는 원인은 외생변수 때문이므로 물가를 포기하고 경기 살리기에 주력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현대경제연구원도 ‘미국 추가 금리 인하의 영향과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에서 고물가 속의 성장 침체로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할 가능성에 대비해 내수회생을 서둘러야 한다고 충고했다. 주 원 연구위원은 “미국이 금리를 추가 인하해 유동성이 높아지겠지만, 이 유동성은 결국 석유나 원자재 시장으로 흘러들어 고물가를 부채질할 것”이라며 “세계 경제가 침체국면에 들어선 가운데 인플레이션이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우려된다”고 말했다. 주 연구위원은 이어 “물가가 오르는 이유는 원자재 가격이 오르기 때문인데, 이는 우리가 막을 수 있는 게 아니다”라며 “차라리 경기를 활성화해 내수를 회생하는 편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