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3호 성승제⁄ 2008.04.14 18:07:44
“달랑 1000원 송금하는데 수수료가 3000원이라니…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거 아닙니까?” “내가 맡긴 돈 1만 원을 찾는데 수수료가 2000원이라구요? 정말 너무하는 거 아닙니까?” “은행 VIP 고객은 수수료도 없다던데… 정작 돈 많은 사람은 수수료도 안 받고, 없는 사람만 쥐어짜다니… 은행들 해도 너무하는군요.” “기껏해야 몇천 원, 몇 만원 송금하는데 은행들이 떼어가는 수수료가 너무 높다”는 서민들의 하소연이다. 인터넷 뱅킹을 이용하면 조금 낮아지긴 하지만, 인터넷을 못하는 사람들은 그저 은행이 달라는 대로 줄 수밖에 없다. 자동화 기기(CD/ATM)를 사용할 때 내는 수수료도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서민들은 내가 맡긴 돈 내가 찾는데도 수수료가 몇천 원이라고 억울해한다. 그러나 은행 VIP들에게는 수수료를 삭감해 주고, 또 정부 청사에는 수수료가 없는 자동화 기기까지 존재한다는 말을 듣는 이들은 “없는 것도 서러운데 상대적 박탈감까지 느끼게 된다”고 토로했다. 하지만, 이것은 원가상승에 환율하락까지 겹쳐 수출해 봐야 남는 것 하나 없다고 하소연하는 수출입 중소기업체들에 비한다면 아무 것도 아니다. 서민들이 느끼는 부담과 상대적 박탈감도 충분히 공감하지만, 잠시 뒤에 재론하기로 하고, 우선 먹고 살기에 급급한 중소기업 이야기부터 시작해 보자. 그러면 서민들의 부담으로 돌아간다는 점을 은행들이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는 걸 이해할 수 있다. 왜일까? 은행들이 수수료를 좋아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높으신(?) 분들이 높은 수수료를 원하는데 낮은(?) 서민들이 어찌 거부를 할 수 있을까? 그저 은행과 거래를 끊겠다는 극단적인 방법이 아니라면 말이다. 결국, 소액금융을 이용하는 서민들은 언제나 ‘을(乙)’일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인 셈이다. 만약, 죽도록 억울하면 은행권 VIP 고객이 되거나 수수료를 받지 않는 자동화 기기가 있는 정부 청사에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그게 불가능하다면 달리 방법이 있을까? 돈 많은 사람이 이기는 세상인데, 그냥 조용히 살 수 밖에…. 은행 VIP가 되는 길은 너무나 멀고도 험난하니 말이다.
■ 8개 은행 수수료 담합… 수출입 업체들도 죽을 맛 얼마 전에 공전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가 원가분석을 통해 적정 수수료를 분석한 결과, 타행 송금과 무통장 입금 수수료 등에서 은행들이 원가와 적정이윤을 초과해 과도하게 이익을 취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과도하게 취한 이익은 무려 2000억 원에 달한다. 이 같은 천문학적인 금액을 어떻게 취했을까? 바로 고객들의 눈을 속이고 담합을 했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시정명령과 함께 96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그러나 이번의 과징금은 부과하나마나한 과징금이며 솜방방이 처벌이라는 논란이 일고 있다. 여기에서 담합을 통해 수출입 `업체로부터 부당한 수수료를 챙겨 온 은행들의 행태를 살펴보자. 국민은행과 신한은행·우리은행·하나은행·외환은행·SC제일은행·중소기업은행·산업은행 등은 국내의 시중은행을 대표하는 8대 은행이다. 이 가운데 국민과 신한·하나·외환·중소기업은행 등 5개 은행은 2002년 4월부터 수출업체에게 수출환어음 매입 수수료를 건당 2만 원씩 부과했다. 이들 5개 은행은 수익을 늘리기 위해 2001년 11월에 서로 담합을 한 다음, 2002년 4월부터 과거에는 없던 수수료를 부과한 것이다. 또, 이들 5개 은행과 함께 우리·SC제일·산업은행 등 3개 은행도 담합에 가담해 수입상에게 뱅커스 유산스 인수 수수료를 신용장의 0.4%씩 부과하기로 한 다음, 2002년 11월부터 수입업체로부터 수수료를 챙겨 왔다. 뱅커스 유산스 인수 수수료는 신용장을 개설하지 않은 제3은행이 무역대금 지급보증서인 신용장을 인수했을 때 받는 수수료로, 이들 은행들은 실제로는 아무런 서비스도 하지 않고 수수료를 뜯어 온 것이다. 은행들의 담합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난주 공정위는 국민·신한·우리·하나·외환·SC제일·씨티은행 그리고 농협·수협중앙회 등 17개 은행이 지로 수수료 인상을 담합한 사실을 또 적발하고 과징금 43억5000여만 원을 추징했다. 공정위에 따르면, 이들 은행은 2005년 5월 지로 수수료를 그해 8월부터 건당 30∼40원씩 올리기로 담합하고 이를 실행했다고 밝혔다. 공정위는 2005년 8월부터 현재까지 이들 은행이 거둔 지로수수료 매출액이 1200여억 원이며, 지로 수수료 인상으로 240억 원 가량 매출액 규모가 늘어났을 것으로 추정했다. 공정위는 아울러, 시중 은행들이 현금인출기(CD) 공동망 수수료도 담합해 인상했다는 혐의를 적발해 전원회의에 상정했으나, 증거 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리됐다. 공정위 관계자는 “은행들이 서로 정보를 교환한 정황은 있는데 물증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수출입 업체의 한 대표이사는 “가뜩이나 환율하락과 세계경제 불안으로 팔아도 남는 게 없는데 그 동안 믿고 자금을 맡겨온 은행들이 이같은 짓(?)을 하다니 억울할 따름이다”라고 한숨을 쉬었다. ■ 은행권, “수수료 담합 억울” 이번의 외환 수수료 담합 과징금 추징에 대해 은행들도 나름대로 할 말은 있는 것 같다. 전국은행연합회를 중심으로 은행들이 공정거래위원회의 외환 수수료 담합 과징금 부과를 수용할 수 없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은행연합회는 “외환 수수료는 금융감독원의 지도사항에 따른 손실보전 차원에서 은행이 자율적으로 신설한 수수료”라고 밝혔다. 은행들은 수출기업의 수출환어음을 매입하면서 받는 이자 성격의 환가료 계산 기준을 당국이 양편 넣기(신용공여 개시일과 채무 상환일 양일을 이자기간에 포함시키는 것)에서 한편 넣기(신용공여 개시일이나 채무 상환일 중 하루만 포함시키는 것)로 바꾸면서 손실이 발생해 수출환어음 매입 수수료를 신설할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은행연합회의 한 관계자는 “금융상품의 경우 다른 업종에 비해 동질성이 훨씬 큰데다 은행 수수료는 금리결정 행태와 같이 주로 선도은행의 주도 아래 결정되기 때문에 모든 은행이 똑같이 따라갈 수밖에 없다”며 “은행들로서는 담합 판정을 수용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미 은행들이 비싼 수수료를 받는다는 여론 압박이 강했기 때문일까. 실질적으로 국민들에게 큰 동정은 받지 못하고 있다. ■ 靑, 은행권에 수수료 인하 압력… 관치 논란도 다시 서민들의 수수료 논란으로 돌아가 보자. 지금까지 은행 창구를 이용하는 고객 대부분이 인터넷이나 자동화 기기(ATM·CD) 이용이 익숙하지 않은 노인층이거나 미성년자들이어서 그 동안 창구 수수료 인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았다. 은행들은 창구 직원 인건비와 다른 은행으로 송금할 때의 전산비용 등을 계산하면 현재의 수수료가 비싸지 않다고 주장하지만, 은행 창구 이용객들은 끊임없이 불만을 제기해 왔다. 그렇다면 은행 수수료 인하 논란은 언제부터 생겼을까? 노무현 정권인 참여정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2005년 9월 당시 금융감독원이 서울대 연구팀에 용역을 의뢰해 수수료 관련 원가산정 표준안을 마련했다. 정부가 수수료의 적정성을 따져 보기 위한 첫 작업이었다. 그러나 원가분석을 통해 수수료 인하를 유도하려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송금에 따른 원가가 평균적으로 자행환의 경우엔 건당 2943원, 타행환에서는 3483원으로 분석돼, 원가를 고려하면 수수료가 오히려 높지 않다는 은행들의 주장에 힘이 실리게 됐다. 참여정부가 못한 수수료 인하 실행은 이제 이명박 정부로 넘어갔다. 청와대는 4월 2일 전국은행연합회에 시중은행의 송금 수수료를 내리도록 협조공문을 보냈다. 청와대는 공문에서 “직원들의 복리후생비로는 상당한 금액을 지출하면서 창구 수수료를 내리지 않는 것은 국민들이 기업윤리상 납득하기 곤란하다. 기업의 경영 핵심은 고객 창조에 있음에도 수수료와 관련된 은행 입장은 고객 창조와는 거리가 있다”며 “은행을 설득해 자율적으로 인하를 유도”하도록 은행연합회에 요청했다. 공문에는 “은행연합회와 은행 간 회의시 자율 논의해 은행 스스로 판단할 사안임을 명백히 하라”, “금융감독원 당국자 참석 등 일체의 오해 소지는 사전 차단하라”는 등 청와대 ‘개입’ 사실이 드러나지 않도록 입단속까지 했다. 하지만 은행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닌, 청와대의 압력이 들어갔다는 점에서 관치금융이라는 논란이 나오고 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문제가 있으면 제도 개선이나 은행의 과점 체제 해소 등으로 풀어 나가야 한다”며 “이런 식으로 창구 지도를 벌이면 나중에 대출압력 등 더 큰 관치로 흐르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