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신문의 날’인 4월 7일을 맞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념축하연에서 “신문이 방송·통신과 조화롭게 협력해 매체로서의 기능을 더욱 활발히 할 수 있도록 함께 지혜를 모아 나가자”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신문법 등 언론관련법에 대해 “올해 안에 재정비하도록 돕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언급한 ‘조화로운 협력’은 신문·방송 겸업 허용, 방송·통신 융합 등의 추진을 의미한다. 이어,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미국 뉴욕에서 특파원들과 간담회를 갖고 신문·방송 겸업 허용과 관련해 “주요 신문사가 방송까지 하는 겸업을 반대하는 문제를 최소화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해 관련법 개정의 추진을 시사했다. 유 장관은 신문·방송 겸업 허용 법안이 올해 정기국회 때 상정될 수도 있느냐는 질문에는 그럴 수도 있다고 답했다. 한나라당이 18대 국회에서 과반 이상의 의석을 확보하게 되면서, 가장 먼저 수술대 위에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법안은 신문사가 방송사를 함께 운영할 수 있도록 한 신문법·방송법 등의 언론관계법이다. 신문·방송 겸영 허용은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임과 동시에 한나라당이 총선에서 중앙당 차원에서 내세운 정책공약이기도 하다. 한나라당은 케이블 방송의 보도전문 채널과 종합편성 채널에 이어 지상파 방송까지 소유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영방송의 민영화 작업도 점차 가속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한나라당에서는 현행 한국방송공사법 대신에 지난 2006년에 정병국 의원에 의해 국가기간방송법이 발의되기도 했다. 정 의원이 발의한 국가기간방송법은 KBS를 민영화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할 뿐 아니라, 국회가 KBS의 사장 임명과 예산 편성·승인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정치권력의 언론장악이 자행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 신문법 폐지, ‘조중동’ 방송 독식 우려 현행 신문법과 방송법은 일간신문과 뉴스 통신사가 서로 겸영하는 것을 금지하고 있으며, 종합편성 또는 뉴스 채널을 전문으로 하는 방송사업을 겸영할 수 없게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신문·방송 겸영 규제가 완화되면 소위 ‘조중동’ 등 신문업계에서 지배적인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사업자들이 방송으로 진출해 언론을 독식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부연하자면, 이들 신문사가 보도전문 채널 또는 종합편성 케이블 방송에 진출하는 가능성이 부여되는 것이다. 이렇게 될 경우, ‘조중동’ 일변도의 신문시장에서 나타난 여론 독과점 문제가 방송 영역으로까지 확대될 우려가 있다. 비록 현행 신문법의 취지가 언론계에 자리잡은 것은 아니지만, 언론산업의 특수성과 공공성을 보장한 나름의 제도적 장치였다. 전국언론노동조합은 4월 8일 성명을 내고 “우리나라 신문시장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몇몇 족벌신문의 독과점 구조다. 거대신문들은 불법·탈법 경품과 무가지, 사실상의 구독료 담합, 권력 지향적인 논조 등을 앞세워 신문시장을 장악했다”며 “이명박 대통령은 신문법 폐지 운운하지 말고 족벌신문부터 해체하라”고 촉구했다. 범야권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거세다. 민주당은 “신문·방송 겸영을 허용할 경우 거대 미디어 그룹이 탄생해 여론을 독점할 우려가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신문시장의 독과점 세력인 족벌언론이 방송까지 아우르면서 전체 여론시장을 장악하게 될 것”이라고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자유선진당도 “독과점을 막는 장치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교차 소유를 허용하는 것은 공정한 언론 발전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며 조건부 반대 입장을 나타냈다. 2006년에 헌법재판소에서도 일간신문과 지상파 방송은 가장 대표적이고 강력한 미디어 수단이므로 이 두 수단의 융합은 언론의 다양성 보장을 저해할 위험성이 항상 존재한다고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에서는 기존 광고시장의 규모가 늘지 않은 상태에서 겸영이 허용될 경우 방송사를 갖지 못한 신문사는 광고수주 경쟁에서 신문과 방송을 겸영하는 언론사에 밀려 도태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신문·방송 겸영 쟁점을 두고 한서대 이용성 교수(신문방송학)는 “신문지원 제도는 축소하면서 겸영 허용만이 신문사가 살 길이라는 주장은 모순된다”며 겸영 허용 문제의 신중한 검토를 주장했다.
■ 오바마, 겸업 허용에 “언론의 다양성 버린 처사” 미국 내 신문과 방송 관련 정책을 총괄하는 미국 연방통신위원회(FCC)는 전국의 주요 도시 20곳에 방송사와 신문사의 교차 소유를 허용하는 규정을 승인한 바 있다. 민주당 대선주자인 버락 오바마 의원은 연방통신위원회의 결정이 난 뒤 “오늘 연방통신위는 언론의 다양성 추구라는 목표를 버리고, 기업들의 이익을 국민의 이익에 우선하는 선택을 했다”고 강력히 성토했다. 교차 소유에 관한 논의는 애초에 조지 부시 대통령이 교차 소유 허용을 강력하게 지지하는 발언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연방통신위원회는 당시 표결에서 찬성 3, 반대 2로 케빈 마틴 위원장이 제안한 언론사의 신문사와 방송사 겸업을 허용했다. 이에 따라 미국의 주요 도시 20곳에서 신문사가 방송사를 함께 소유할 수 있게 돼, 거대 언론 재벌의 장악력이 높아질 전망이다. 이에 따라 미 의회의 민주당과 공화당의 일부 의원들은 이에 강력히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위원회의 표결에서도 마틴 위원장과 2명의 공화당 소속 위원이 교차 소유 허용에 찬성표를 던진 반면, 민주당 소속 위원 2명이 반대표를 던졌다고 전한다. 미국의 상·하원 의원들을 비롯한 소비자 단체들은 ‘언론의 다양성을 해칠 것’이라는 이유로 규정 완화에 반대했다. 당시 민주·공화당의 상원의원 25명은 표결을 앞두고 “법안을 신설해서라도 교차 소유 허용을 저지하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마틴 위원장에게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위원회는 결국 표결을 강행했고 교차 소유를 허용했다. 연방통신위원회는 언론의 다양성과 공정한 경쟁을 보장한다는 명분으로 1975년부터 대도시 20곳에서 언론사들의 신문-방송 교차 소유를 금지해 왔다. ■ 유럽의 ‘여론 독과점’ 방지 정책 유럽 등지의 선진국에서는 언론에 대해 여건에 맞는 법과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특정 미디어 그룹의 여론 독점을 막고 여론의 다양성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는 미디어 재벌인 루퍼트 머독이 신문과 위성방송에 이어 지상파 진출까지 노리면서 ‘여론 독과점’ 우려가 나타났었다. 머독은 ‘더 타임스’와 ‘선데이 타임스’ 등의 매체를 소유하면서 신문시장의 32%를 지배했다. 이에 영국은 2003년 커뮤니케이션법을 만들어 신문 시장의 20%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신문사나 소유주는 지방 및 전국 지상파 방송 면허를 가질 수 없도록 규제에 나섰다. 따라서 이 규제에는 ‘머독 조항’이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독일에서는 시청자 점유율 30%가 넘는 민영방송 사업자는 다른 방송사를 소유할 수 없도록 하는 규제를 시행하고 있다. 독일의 방송분야집중조사위원회는 미디어 그룹이 인수·합병을 통해 여론을 독점할 우려가 있다고 판단될 때 이에 대한 규제를 하는 장치이다. 이 위원회는 독일 최대의 미디어 그룹인 ‘악셀 슈프링거’가 독일 민영방송사 ‘프로지벤자트아인스’를 인수하려는 계획을 무산시켰다. 프랑스에서는 인구와 시장점유율 등에 따라 여러 조건을 달고 여기에 일정 항목 이상 해당되면 신문과 방송의 교차 소유가 불가능하다. 노르웨이에서도 미디어 소유 관련법으로 신문·방송 소유 집중을 막고 있다. ■ 불균형 언론질서부터 바로 잡아야 신문과 방송의 겸영 허용이 주요 신문사의 여론 독과점을 더욱 심화시킬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한 사안이다. 신문법은 언론의 다양성과 공공성을 보장하고 신문사의 경영을 더욱 투명하게 하자는 데 그 취지가 있다. 신문·방송 겸영 금지는 헌법재판소도 합헌으로 판정한 사안이다. 다매체 시대가 되면서 언론의 공공적 측면과 더불어 미디어 업계의 경제적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다. 하지만, 시장 기능 강화란 명목으로 언론의 공익적 기능을 약화시키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특히, 우리나라 신문업계는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 구축된 독과점 구조가 그대로 온존돼 여론을 크게 왜곡하고 있다. 신문법 폐지에 앞서 불균형하게 키워진 언론의 질서를 바로잡을 대책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