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대선이 역대 대선 중 최저 투표율을 기록한데 이어, 약 4개월 후 치러진 18대 총선 투표율은 46%로 역대 최저 투표율을 기록했다. 투표율이 낮으면 보수진영이 유리하다는 통설은 이번 총선에서도 적중했다. 보수성향의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된데 이어 한나라당이 153석을 얻어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전 한나라당 총재인 이회창의 자유선진당은 창당한 지 두 달여 만에 18석을 얻는 선전을 했으며, 한나라당 공천경쟁에서 패배한 친박 계파의 모임 친박연대는 박근혜 열풍을 타고 원내 14석을 차지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한나라당에 뿌리를 둔 친박 무소속 의원들도 다수 원내 진입에 성공했다. 바야흐로 보수정치의 시대가 도래했다. 이에 따라 행정권력과 지방권력에 이어 의회권력까지 획득한 여권은 안정적 국회 의석을 토대로 이명박 정부의 한반도 대운하 공약 등 새로운 정책에 대한 강공 드라이브를 펼칠 것으로 보인다. 야권의 보수진영 또한 각 정당의 이해관계에 따라 협조·반발할 것으로 예상되나, 정책이 보수 일변도로 흐를 것이라는데 이견을 갖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 각 정당은 메니페스토 실천서약을 통해 공약으로 승부하겠다고 맹세했으나, 이전 총선과 다를 바 없이 정치적인 선전과 계파 논쟁만 난무했다. 따라서, 정책에 관한 글이 신문 지면에서 사라졌으며, 정책토론이 부족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는 총선도 끝나고, 한숨 돌릴 여유가 생겼다. 이 시점에서 정치적 논쟁은 배제하고 주요 정책 쟁점에 대한 정치·사회 세력 간의 이해관계를 살펴 MB 정부의 정책향배를 가늠해 볼 필요가 있다.
■ 한반도 대운하 - 탄력받나, 무산되나? 총선 이후 정계를 가장 뜨겁게 달굴 사안은 뭐니뭐니 해도 ‘한반도 대운하’이다. 총선 이전부터 대운하 건설로 한국 경제를 일으키겠다던 한나라당은 ‘18대 총선 공약집’에서 대운하를 누락시켰다. 한나라당에서는 대운하에 대한 국민의 여론을 수렴하여 추진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주장했으며, 야권에서는 보수와 진보 진영을 막론하고 이를 ‘속임수 정치’로 규정하며 대운하 반대에 나섰다.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는 “학계와 시민사회, 종교단체 등 경부운하에 반대하는 정당, 단체와 함께하겠다”며 범야권의 연대를 제안했다.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와 심상정 진보신당 공동대표, 불출마를 선언한 고진화 한나라당 의원은 이날 ‘경부운하 저지를 위한 초당적 실천연대’를 결성했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운하 여론수렴론’은 일단 총선에 승리하기 위해 불리한 쟁점을 배제하는 과정에서 난 결정이라는 게 중론이다. 한나라당이 과반 의석을 얻은 이상 관련 법안과 예산 편성 등 ‘대운하 사업’이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라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이미 현대건설과 SK건설 컨소시엄 등 민간 컨소시엄은 설계 등 막바지 보완작업을 거쳐 내달 중에 대운하 사업을 제안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민간 사업계획은 당초 인수위에서 마련한 안과 흡사해, 정부에서 틀을 제공하고 민간이 이를 그대로 받아 추진한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하지만, 여당 일각에서는 대운하 추진이 사실상 어렵다는 의견도 나온다. 대운하 건설을 추진하려면 ‘한반도 대운하 특별법’ 등 관련법 제·개정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대운하에 반대하는 박근혜 전 대표와 친박계 당선자가 한나라당 내에만 30여 명에 이르고, 친박연대와 무소속 당선자 대다수가 대운하 반대를 총선 공약으로 내걸어 한나라당 단독으로 법안을 처리하기 어렵다. 한나라당 이한구 정책위 의장은 “18대 국회 의석 분포상 대운하를 추진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 경제정책 - 출총제·기업규제 완화 탄력 ‘경제 살리기’가 이명박 정부와 4·9 총선의 핵심 키워드였던 점을 상기할 때, 출자총액제한제도와 금융산업법의 금산분리 원칙 등 경제 현안에 대한 논의도 급물살을 탈 것으로 보인다. 재계는 이번 총선 결과에 따라 향후 경제 활성화를 위한 제도적 환경 조성과 기업규제 완화 등의 골격이 결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한나라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해 명실상부한 여대야소 정국이 형성되면서 재계는 경제 활성화 및 기업규제 개선을 위한 입법이 올 상반기 국회에서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대기업 정책의 경우 규제를 큰 폭으로 푸는 방향으로 범여권에 공감대가 형성돼 있고, 금융·산업자본의 분리완화 정책도 이견 없이 그대로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새 정부의 정책기조가 규제완화와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춘 규제정비인데, 총선 결과 여당에 힘이 실리면 아무래도 이런 정책이 탄력을 받을 것”이라며 기대감을 표시했다. 한나라당은 출자총액제한제도 등 기업 활동의 발목을 잡는 규제들을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자유선진당도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규제 완화에 찬성하고 있는 분위기다. 민주당과 민노당 등은 신성장동력 육성, 중소·중견기업 육성, 일자리 창출을 내세워 경제에 활력을 줘야 한다며 반대하고 있다. 금산분리 완화에 대해서도 한나라당과 친박연대는 금융감독 기능 강화를 전제로 단계적인 완화를 주장하고 있으나, 민주당과 선진당·민노당·창조한국당은 산업자본이 은행을 점유하면 경제상황이 오히려 악화될 우려가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세제(稅制) 부문에서 한나라당은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 중 하나인 법인세 인하와 관련, 경제 성장과 투자 활성화를 위해 법인세율을 선진국 수준으로 인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2013년까지 높은 세율은 현행 25%에서 20%로 내리고, 낮은 세율은 13%에서 10%로 낮추겠다는 복안이다. 자유선진당과 친박연대도 현행 법인세율은 국내 기업의 투자와 해외자본 유치에 애로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어 인하해야 한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 한나라당은 재산세·종합부동산세 등의 부동산 보유세 부담이 지나치게 빨리 증가하고 있다며, 종부세 근간은 유지하되 과세 대상을 줄이고 장기보유, 1가구 1주택에 대한 부담 완화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복지정책 - 민간복지의 확대 복지정책에 대해 보수 정당들은 민간복지를 확대하여 시장 역할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반해, 진보정당은 정부 역할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주요 정책 의제인 국민연금과 기초노령연금의 통합과 관련해 각 당의 의견이 엇갈려 논란이 예상된다. 한나라당은 국민연금과 기초노령연금을 통합해 모든 노인들에게 최소한의 기초연금을 지급하고, 그 대신 국민연금은 낸 만큼만 돌려받자는 입장이다. 한나라당은 국민연금을 기초연금과 소득비례연금으로 분리하고, 기초연금은 부과방식으로, 소득비례연금은 적립방식으로 운영하겠다는 입장이다. 친박연대는 기초노령연금을 기초연금화하고, 수급대상을 확대하는 대안이 필요하다며 찬성의 목소리를 냈다. 그러나 통합민주당 등 주요 4개 정당은 국민연금은 그대로 두되, 기초노령연금 대상을 확대하고 지급액을 높이겠다며 다른 방침을 가지고 있다. 민주당은 국민연금과 기초노령연금을 통합해 기초노령연금이 조세방식으로 자리잡을 경우 막대한 재원 소요로 나중에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창조한국당은 노후 빈곤 예방이라는 연금제도의 본래 기능마저 약화시킬 위험성을 안고 있다며 연금 통합을 반대하고 있다. ■ 교육정책 - 교육의 형평성 vs 효율성 한나라당은 영어몰입교육에 대한 여론이 악화되자 총선 공약에서 ‘영어수업 확대’를 빼고 “농어촌 지역 등에 원어민 교사를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넣었다. 자유선진당과 창조한국당은 영어 능통 교사와 원어민 대폭 확충, 영어수업 시수 증가, 학교를 영어 공용 기관으로 만드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통합민주당도 총선에서 실력 있는 영어교사를 양성하기 위한 정책을 주장해 영어교육 정책은 힘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자율형 사립고의 설립은 정당별로 뚜렷한 의견차를 보여 갈등이 점쳐진다. 한나라당은 자율형 사립고가 획일화된 평준화 교육을 지양하고 자율성을 보장하는 열린 교육의 장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통합민주당을 비롯한 나머지 정당은 “특목고와 더불어 고교 서열화를 초래하고 사교육비 확대 등 입시경쟁을 부추긴다”며 반대하고 있다. 여기에는 ‘기회균등 보장’의 논리와 ‘수월성 중시’의 논리가 대립하는 양상이다. 자율성 확대와 경쟁력 강화라는 한나라당의 교육공약 기조와, 공교육 강화와 교육기회 확대라는 나머지 정당의 기조가 맞부딪치는 셈이다. ■ 환경정책 - 그린벨트, 보수 ‘해제’vs 진보 ‘유지’ 이번 총선에서 환경 공약은 다른 공약에 비해 비중이 적었으나, 그린벨트의 해제 여부도 눈여겨볼 만한 부분이다. 그린벨트 해제에 대해 한나라당과 자유선진당은 조건부 찬성을 하고 있는 상태이다. 하지만 통합민주당은 조건부 반대를, 민주노동당과 창조한국당은 반대 입장을 각각 보여 보수와 진보 진영의 입장차를 확실히 드러냈다. 한나라당은 그린벨트가 더 이상 녹지로서 가치가 없다고 판단, 전반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지역에 따라 보호가치를 따져 지역 주민의 재산권을 보호하고 국토의 이용가치를 생산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유선진당도 그린벨트 지역 주민의 재산권 침해 피해를 최소화해야 한다면서 찬성 입장을 보였다. 반면, 통합민주당은 “그린벨트 해제는 점진적으로 추진할 사항”이라며 지역별 해제 총량과 조정가능 지역의 확정 등 점진적이고 제한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민주노동당은 “그린벨트 해제는 도시팽창 확산을 유발하고, 개발 압력을 가해 결국은 부작용을 가져올 것”이라며 적극 반대하고 있고, 창조한국당도 반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