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10~20년 전만 해도 금융권의 잘못으로 금융 소비자들이 피해를 당했거나 문제가 발생할 경우 대부분 그냥 참거나 경찰에 고소· 고발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제2의 피해를 막거나 피해를 당한 보상을 받기 위한 방법이 법에 의존하는 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 기업에 부당한 피해를 당할 경우 웬만한 큰 피해가 아니면 이같은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 예가 많다. 언론에 알리거나 인터넷에 피해 사례를 공개해 여론을 증폭시키는 방법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과거 입소문에만 의존했던 일들이 이제는 인터넷에서 좀 더 구체적이고 설득력이 높은 ‘호소문’으로 사용되는 셈이다. 만약 고객의 불만이 인터넷 등을 통해 순식간에 퍼지기 시작하면, 고객 민원이 많을 경우 은행의 이미지가 실추될 뿐 아니라 영업 실적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그래서일까? 은행들이 사소한 민원을 줄이기 위해 고객 서비스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간혹 고객이 억지 같은 주장으로 은행 직원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하지만, 자칫 잘못 건들였다간 더 큰 화가 미칠 수 있어 소비자 입장에서 대응해주는 편이다. 실제로 얼마 전에 시중은행의 한 지점장은 단돈 1원 때문에 가슴을 쓸어내리는 일을 겪었다. 한 소비자가 은행 창구에서 통장 잔액 1원까지 내줄 것을 요구하자, 해당 직원은 “요즘 1원짜리도 쓸 데가 있느냐”며 무시하는 듯이 대답했다. 심기가 불편해진 고객은 은행 인터넷 홈페이지에 민원을 제기했고, 이를 알게 된 지점장은 이 고객을 직접 찾아가 머리를 조아리면서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은행마다 민원 없애려고 ‘고객 받들기’ 서비스 금융권에서 가장 크게 변한 곳은 단연 국민은행이다. 이 은행은 국내 은행권을 선도하는 리딩 뱅크라는 명예어와 ‘민원이 가장 많은 은행’이라는 오명을 모두 갖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국내 시중은행 중 고객만족도가 가장 높은 은행으로 탈바꿈하는데 성공했다. 비결은 2004년 11월 강정원 행장이 취임하면서 시작된 ‘고객만족 개선활동’ 때문이다. 또, 2005년에 고객만족헌장을 제정·선포한 데 이어, 서비스 갭(GAP) 모형 분석을 통해 은행 직원과 고객 사이의 시각차를 꾸준히 조정해 나갔다. 국민은행의 한 관계자는 “고객이 일선 지점에서 번호표를 뽑는 순간부터 용무를 마치고 로비 매니저에게 인사를 받고 문을 나서기까지 전 과정에 걸쳐 각 직원의 서비스 행동 지침을 마련해 놓고 있다”며 “이런 노력 덕택에 2006년과 2007년 2년 연속으로 한국생산성본부의 ‘국가고객만족도’(NCSI) 조사에서 1위를 차지하는 결실을 거뒀다”고 말했다. 우리은행은 고객가치경영을 ‘그레이트(GREAT) 서비스’로 구체화했다. 영업점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다섯 가지 핵심 테마를 선정해, 우리은행을 이용해 본 고객이라면 다른 은행과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도록 한다는 게 목표다. 다섯 가지 핵심 테마는 ‘밝은 웃음(Good smile)’, ‘관심 표현(Relationship)’, ‘고객 눈맞춤(Eye contact)’, ‘고객 이름 부르기(Address by name)’, ‘감사의 마음(Thank you)’ 등이다. 이 밖에도 지점별로 자발적으로 ‘고객만족 리더’를 선정하고, 이들의 모임인 ‘고객만족 리더 스쿨’을 통해 고객들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는 고민을 꾸준히 하고 있다. 그 결과, 국내 최초로 창구에서 고객 불편이 발생했을 때 현장에서 창구 직원 전결로 즉시 현금보상을 하는 ‘고객 케어 24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하나은행은 암행 감찰로 유명하다. 모니터 요원이 고객을 가장해 영업점을 방문해 직원들의 친절도를 평가한다. 모니터 요원은 때로는 영업시간이 끝난 뒤에 영업점을 찾아 동전 교환이나 입출금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 은행의 한 과장은 “우리 직원들은 오래 전부터 고객을 만족시키는 서비스의 중요성을 교육받아 왔기 때문에 서비스 정신으로 무장돼 있다”고 강조한다. 이 밖에도 이 은행은 고객감동을 실천한 우수직원을 발굴해 포상하는 한편, 시중은행 중 유일하게 ‘고객만족’ 부문에서만 외국 연수의 기회를 주고 있다. 이런 노력으로 하나은행은 올해 3월 현재 최근 6개월 간 금융감독원에 접수된 고객불만이 전년 같은 기간(148건)보다 20% 이상 감소한 41건에 그치고 있다. ■“고객만족도 높이고 또 높여라” 신한은행은 2005년에 ‘고객만족 종합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 시스템은 신한은행 홈페이지나 080 전화, 엽서 등으로 접수되는 고객의 불만족 사항을 축적하고, 이를 바탕으로 고객 만족도를 더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만들 수 있도록 설계됐다. 고객만족 전담부서인 고객만족센터는 이 시스템을 통해 은행 전 직원에게 고객 불만족 사례를 공개하고, 같은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외환은행은 이달 초부터 은행권에선 유일하게 ‘가계대출 서비스 품질보장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이 제도는 대출 심사 신청 후 4시간 안에 대출 여부를 결정해주고, 이를 지키지 못했을 땐 6개월 간 대출 금리를 최대 0.5% 감면해주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다. 나아가, 4시간 경과 뒤 대출 불승인 결정이 나면 고객에게 5만 원 상당의 기프트 카드를 준다. 이와 함께 고객이 원하는 날짜와 시간에 대출금을 입금해주는 ‘대출시간 보장 서비스’도 운용하고 있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고객들의 민원은 은행의 평판 리스크와 직결되기 때문에 민원 방지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면서 “그러나 이해하기 힘든 민원도 많아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고 말했다. 은행을 수십여 년 간 이용했다는 유경진(여·54) 씨는 “은행들의 서비스가 10~20년 전에 비해 많이 좋아진 것 같다”며 “빠르고 다양한 서비스는 물론 은행 직원들도 보기 좋을 정도로 깍듯하고 친철해졌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