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5호 김대희⁄ 2008.05.06 15:37:31
전 세계적으로 종이 소비량은 급속히 증가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2006년 기준 865만 톤의 종이가 소비됐다. 이는 전년 대비 3.5% 증가한 수치다. 하지만 최근 종이문서를 기반으로 진행되는 각종 업무에서 종이 문서를 원천적으로 발생시키지 않도록 업무를 개선하기 위한 시도가 진행되고 있다. 종이 없는 문서 환경을 의미하는 ‘페이퍼리스(Paperless·전자화)’ 시대가 다가오면서 제3자가 법적 효력이 있는 전자문서를 관리하는 ‘공인전자문서보관소(공전소)’ 시장이 새로운 시장으로 떠올랐다. 각종 계약서, 보증서, 신청서, 운송장, 등기나 호적 등의 민원서류 등의 문서를 스캐닝해 전자화한 후 제3의 기관에 위탁 보관해 법적 효력을 인정받도록 하는 이 제도는 향후 수조 원대의 종이 유통 비용을 절감할 예정이다. 한편, 공전소 시장은 올해 본격적인 성장기에 접어들어 연평균 25%씩 성장해 2012년이면 3,000억 원 규모에 이를 전망이다. ■ 행정부 페이퍼리스화 추진 사법부, 관세청도 가세 관계기관과 업계에 따르면, 행정부에 이어 보수성이 강한 사법부도 최근 민원 업무의 온라인화·페이퍼리스화에 나서고 있어, 공공업무의 전자화가 급진전될 전망이다. 정부는 특히 앞으로 안방에서 모든 민원을 처리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할 계획이다. 이에 따라 행정 문서의 페이퍼리스화는 각종 절차의 간소화로 이어져 정부가 강조하는 국민 편익 증진과 투명성을 크게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공정거래위원회는 각종 사건의 증빙문서와 서류들을 모두 디지털·온라인화하는 ‘디지털 심판정’ 사업을 올해 시행을 목표로 추진하고 있다. 이 계획은 각종 사건의 심의 때 공정거래위원들이 심사보고서 등의 문서를 온라인으로 열람해 심의할 수 있도록 하고, 심판정에도 대형 모니터를 설치해 종이를 없애고자 한다. 디지털 심판정이 구축되면 연간 5억 원 이상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으리라고 공정위는 기대했다. 법무부는 정보화시대에 발맞춰 전자서명이 담긴 전자(화)문서의 효력을 인정하는 ‘전자공증제도’를 추진하고 있다. 전자공증제도가 시행되면 법무부 장관의 지정을 받은 공증인이 전자서명이 되어 있는 전자문서에 대해서도 전자적 방식으로 공증을 부여할 수 있다. 공증인은 공증된 전자문서를 장기간 보존해 주고, 보존문서와 의뢰인이 소지한 전자문서의 동일성을 증명하며, 전자문서에 대한 확정일자를 부여하는 역할을 한다. 기획재정부가 추진하는 온라인 법인설립 시스템 구축도 행정절차의 간소화와 페이퍼리스화를 앞당기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디지털 심판정·전자공증제도·온라인 법인설립 시스템 모두 공전소 활성화의 기폭제로 기대된다. 행정부와 분리돼 있어 전자정부법·전자서명법·전자거래기본법 등 행정 부문의 법안이 적용되지 않는 사법부도 국민 편의를 위해 온라인 시스템을 활용하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대법원은 법인등기의 인터넷 신청 및 발급 사업을 4월 1일부터 경기도 성남지원과 부천지원 등기과에서 시범 운영하고 있다. 오는 7월 7일부터는 이를 서울과 수도권 전체로 확대하고, 10월 13일부터는 전국을 대상으로 시행할 예정이다. 대법원은 또 특송우편 등으로 사건 당사자에게 보내주던 소송 관련 서류를 전자소송 포털에 올린 뒤 이메일 등으로 통지하는 시스템을 도입, 소송 서류의 온라인 제출을 허용할 계획이다. 전자소송제도에 대한 법제도가 정비되면, 소송인들은 문서 제출을 위해 법원을 방문하거나 송달료를 부담할 필요 없이 더욱 쉽고 빠르게 업무를 처리할 수 있게 된다. 평균 넉 달 가량 걸리던 음주·무면허 운전사건 처리를 온라인화해 10일 내로 간소화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검찰·법원의 서면 기소와 재판 대신 온라인에 의한 전자재판으로 모든 절차를 바꾼다는 것. 현재 이 같은 내용의 ‘약식 절차에서의 전자문서 이용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 입법 예고된 상태다. 관세청 또한 서류 없는 완전 무서류 전자통관체계를 실현시키기 위해 민간이나 기업이 제출하는 서류(선하증권)까지 전자화하는 방안과 무선 인터넷을 이용해 세관직원이 직접 현장에서 통관 업무를 종료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다.
■ 금융권, BPR 확산작업 속속 진행 중 전자화 문서의 가장 대표적인 곳은 금융권이다. 대부분의 국내 은행들은 BPR 프로젝트를 통해 ‘전자화 문서’를 도입했다. ‘전자화 문서’는 종이 문서를 디지털 스캔을 통해 디지털 데이터로 저장한 것을 의미한다. 이런 전자화 문서 도입으로 은행들은 필요한 문서를 정확하고 신속하게 검색할 수 있어 업무의 효율성 제고라는 결과를 얻었다. 은행에서 말하는 BPR(Business Process Reengineering)이란 과거 대부분의 금융 업무 절차가 영업점 창구에서 행해지는데서 발생하는 비효율을 개선하기 위한 프로세스 혁신을 말한다. 은행의 초기 BPR은 종이 서류의 검색 및 보관 등의 불편을 없애기 위해 이를 전자화하는 이미지 시스템 구축으로부터 시작됐으나, 점차 전사적인 영역으로 확대돼 왔다. 예를 들어, 대출 업무를 진행할 때 서류, 고객의 신용, 담보 등의 심사까지 창구직원이 맡았기 때문에 고객의 대기 시간도 길어지고, 한 직원이 하루에 상담할 수 있는 고객의 수가 적을 수밖에 없었다. BPR을 도입함으로써, 창구 직원은 상담만 하면 되고, 고객 신용 및 담보 등의 조회 및 심사 등의 후선 업무는 BPR 센터에서 전산화된 프로세스로 빠르게 처리할 수 있다. 영업점 직원들은 영업과 마케팅에 핵심 역량을 집중할 수 있어 은행 수익을 높이는데 기여하고, 늘어난 업무를 많은 인력을 충원하지 않아도 감당할 수 있게 된다. 대출 등을 위해 은행을 찾는 고객들도 준비해야 할 서류가 크게 줄어들고, 처리도 빨라져 편의성이 높아진다. 은행들은 대체로 2000년대 중반부터 BPR 프로젝트를 빅뱅 방식 또는 단계별 추진 방식으로 한 차례, 혹은 수 차례에 걸쳐 마친 바 있다. 신한은행은 얼마 전에 2차 프로젝트를 마치고 안정화 단계에 들어갔으며, 농협은 작년 7월에 프로젝트를 마치고 전국 지점으로 확대 적용해 나가는 단계다. 기업은행은 2차 프로젝트를 한창 진행 중에 있으며, 하나은행은 BPR 통합 운영을 추진 중이다. 국민은행도 적용 업무 확대를 고려하고 있으며, 우리은행은 BPR 유지보수를 지속하고 있다. 은행마다 다르지만, 보통 BPR은 종이서류 전자화 등의 업무지원 차원의 작은 업무부터 시작해서, 여수신(대출 및 예금) 업무 및 외환업무 같은 핵심 업무로 확산되는 과정을 밟는다. 여신 업무도 개인고객 대상 업무에 먼저 BPR을 적용한 다음 기업여신으로 가는 게 일반적인 순서다. 구축비용은 한 은행당 많게는 400억~500억 원 규모이며, 적게는 200~300억 원 규모이다. 지방은행의 경우 100억 원 이하로 보면 된다. ■ ‘전자화 문서’ 한계 극복이 최우선 과제 지금까지 진행된, 또 앞으로 당분간 진행될 BPR 업무들은 모두 영업점 직원이 핵심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후선업무인데, 향후에는 은행들이 영업점 자체의 프로세스도 개선하는 ‘프론트 BPR’도 검토하게 될 전망이다. 하지만 ‘전자화 문서’는 종이 문서를 전제로 구축된 시스템이기 때문에 종이문서를 관리해야 하는 부담은 여전하다. ‘종이 없는 업무환경’이라는 공통된 목표 아래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해 온 전자문서 업계 관계자들은 불만을 쏟아놓는다. 다소 차이는 있으나 이들이 한목소리로 요구하는 것은 부처별로 해석이 다른 ‘전자문서의 종이문서 효력 대체’다. 만에 하나 발생할 수 있는 사태를 위해 종이문서까지 함께 보관해야 한다면, 페이퍼리스화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항변이다. 막상 전자문서화와 업무처리 디지털화로 종이를 없애버리는 혁신을 시도하려 해도, ‘종이문서 보존 의무’라는 복병이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보관해야 하는 종이문서가 연간 5,000만 장에 이르고, 현대자동차는 문서보관 창고 면적만 약 3,300평방미터(약 1,000평)이며, 삼성화재는 수도권 종이문서 창고 운영비로만 매년 30억 원을 지출하고 있다. 은행권에 따르면, 신규 거래시 들어가는 종이 비용이 1장에 1200원 정도가 발생한다고 한다. 발생되는 신규 거래 규모를 보면 결코 적지 않은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고 있다. 더욱이 전자화 문서를 보관해야 할 스토리지 역시 계속 확충해야 하기 때문에 이중 부담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최근 몇몇 은행들은 BPR를 넘어 PPR(Paperless & Process Reconstruction)를 준비하면서 전자화 문서의 한계를 극복한 ‘전자문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전자문서는 종이문서 없이 전자적으로 문서 서식을 만들고 작성할 수 있는 문서를 의미한다. 즉, 서식을 작성하는 저작 툴을 사용해 전자적으로 문서 서식을 만들고 이 문서 서식을 액정 태블릿 모니터나 태블릿 노트북에서 필기로 작성, 유효한 전자 문서를 만드는 시스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