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기업이 그 비중이나 역할 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기업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성장·소멸의 과정을 거친다. 기업이 파산하면 일반적으로 해산 및 청산의 절차를 거치게 되지만, 경제주체로서 기업은 소속 근로자, 채권자, 채무자, 조세징수권자 등 수많은 이해관계인과 서로 연관을 맺고 있어 개인의 파산처럼 쉽게 치부될 수 없다. 그래서 파산 기업 중 장래에 회생 가능성이 있는 기업에게 갱생의 기회를 주고자 여러 가지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돼 있다. 그 제도로는 회사정리 절차와 화의 절차로 크게 나눌 수 있다. 경영진의 계속적인 경영 관여의 정도 등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이 두 제도는 근본적으로 갱생 가능한 기업에게 다시 살아날 기회를 주기 위하여 마련되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지난 1997년 IMF 외환위기를 맞이하면서 수많은 기업들이 도산했고, 아직도 그 상흔은 여기저기 남아 있다. 자의건 타의건 회사정리 절차나 화의 절차에 들어간 기업도 안타깝지만, 그 기업들에게 물품공급을 해온 중소기업들은 함께 파산의 늪에 빠지게 되는 불안한 처지에 놓여 있다. ■올 초부터 기업파산 신청 줄 이어… 4월까지 26곳 신청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면서 법원에 파산을 신청하는 기업이 급증하고 있다. ‘국가적 위기’로 불렸던 1997~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때보다도 법원 파산부를 찾는 기업이 많아질 전망이다. 특히, 중소기업과 건설업체의 파산 신청이 줄을 잇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파산부에 따르면, 올해 들어 지난 4월 15일까지 파산 신청을 한 기업은 모두 26곳으로 집계됐다. 이는 각각 22건, 29건에 불과했던 2006년, 2007년의 연간 파산 신청을 뛰어넘는 수치다. 서울중앙지법 파산부 관계자는 “이런 추세가 계속된다면 연말에는 파산 건수가 100여 건에 달할 것”이라며 “1999년에 파산사건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파산부가 법원에 설립된 후 계류됐던 최다 파산 기업 81곳보다 많은 사상 최대치”라고 밝혔다. 특히, 최근에는 건설과 정보기술(IT) 업종을 중심으로 중소기업 파산 신청이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IMF 후 자산 규모 수조 원대가 넘는 대기업 파산 신청이 대부분이었다면, 지난 몇 년 새 중소기업들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달 서울중앙지법 파산부가 자산 규모 5조 원대인 대한통운 회사정리 절차를 마무리하면서 파산 목록에서 자산 1조원 이상 기업은 자취를 감췄다. 반면, 경제 여건 변화에 취약한 중소기업들은 장기 불황에다 원자재 가격 급등, 원화값 상승 등 악재가 겹치면서 잇달아 파산 신청을 하고 있다. 자금줄이 꽁꽁 막힌 가운데, 금융사들이 채무변제를 위해 강제적으로 파산을 집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 제조업인 건설업에서 시공능력 150위 이내에 드는 1군 업체 3곳이 파산 신청을 했을 정도다. 이용운 서울중앙지법 제4파산부 판사는 “IMF 때와 같은 대기업 도산사태는 사라졌지만, 경기 침체 등의 여파로 중소기업 파산이 갈수록 늘어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한, 법조계에서는 2006년 4월의 ‘통합도산법(채무자 회생·파산에 관한 법률)’ 시행도 파산 신청 증가에 큰 몫을 한 요인으로 분석하고 있다. 법정관리를 신청한 기업의 기존 경영자를 법정관리인으로 임명하는 ‘기존 관리인 유지제도’가 도입되면서 경영권 박탈 염려를 던 기업들이 법정관리를 찾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한편, 법원이 처음으로 외국 기업 파산절차를 결정하게 됐다. 네덜란드 법인 ‘LG필립스디스플레이홀딩스BV’ 채권자인 ABN암로는 최근 서울중앙지법 파산부에 ‘LPD홀딩스 파산 절차를 진행해 달라’고 신청했다. LPD홀딩스는 필립스전자와 LG전자가 합작한 회사로, 한국에도 약 2억 유로(약 3,200억 원) 이상의 재산이 있다. 법원이 이번 신청을 받아들이면 이 회사 국내 재산에 대한 파산절차가 진행된다. 법원은 조만간 LPD홀딩스 관계자를 불러 의견을 들을 계획이다. 서울중앙지법 파산부 관계자는 “2006년 4월 국제파산제도 도입 이후 매년 1건꼴로 사건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외국에서 결정된 파산을 승인해 달라는 신청이 받아들여진 것은 이번 LPD홀딩스 사례가 처음이다.
■美 기업 파산 급증…일본도 예외 없어 미국 경제 둔화가 장기화되면서 기업들의 파산신청이 급격히 증가하고 미국 소매체인들까지 신용경색 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과 뉴욕타임즈(NYT)가 보도했다. 최근 부실 회사채 비율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메릴린치 집계에 따르면, 부실 회사채 규모는 지난해 3월 44억 달러에서 지난달 11일 2060억 달러로 급증했다.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도 액면가치의 80% 이하에서 거래되는 부실 레버리지 론(차입매수용 채권) 규모가 전체의 16%로 지난 1997년 이래 가장 높은 것으로 추산했다. 캘리포니아 주립대학교의 린 로퍼키 교수는 부실 회사채 비율이 늘어나는 현상은 그만큼 부도 위기에 처한 기업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올 들어 항공사 세 개와 요식업체 등이 부도를 낸데 이어, 지난달 11일에도 프론티어에어라인홀딩스라는 항공사가 추가로 파산을 신청하는 등 기업 파산이 급증하고 있다. 올해 초 주택 경기 냉각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는 주택 관련 업체에 집중됐던 파산 신청 역시 다른 부문으로 확산되고 있다. 소비 위축과 신용경색으로 문을 닫는 소매업체도 증가하는 추세다. 대출받은 돈으로 물품을 구비하고 이를 판매한 대금으로 대출금을 갚는 방식으로 운영하는 소매업체들이 소비가 줄면서 대출금을 갚을 여력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 소매업체들은 상호 의존적이기 때문에 소매업체 파산 증가는 업계 전반에 부담을 주고 있다. 지난해 가을 이후 가구 전문점인 ‘레비츠’나 전기용품 판매점인 ‘샤퍼이미지’ 등 중간규모 소매체인 8개가 파산보호 신청을 한 상태다. 이같은 파산 위험은 미국 전역에 500개 이상의 점포를 보유한 ‘린넨앤띵스’ 같은 대형업체도 피해 갈 수 없는 분위기다. 파산을 피한다 해도 점포수를 줄여 유동성을 확보하려는 소매 체인이 넘쳐나고 있다. 이는 경기후퇴와 신용경색이 소비심리를 옥죄고 있는 가운데 생필품 가격마저 치솟으면서 미국 소비자들이 지갑을 닫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파산 보호를 신청한 샤퍼이미지의 경우, 택배회사인 UPS에 6,600만 달러의 채무를 진 것으로 나타났고, 레비츠는 침대 제조업체인 실리에 140만 달러의 빚을 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라 앞으로 소매업체의 파산신청 증가 여부와 상관없이 미국 전체 산업에 타격을 입힐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일본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본의 지난 3월 기업도산 건수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본의 테이코쿠 데이터뱅크에 따르면, 3월의 기업도산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23.0% 증가한 1,127건으로 집계돼 지난 2005년 4월 조사를 실시한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3월 파산한 기업은 45개로 작년 동기의 11개보다 크게 늘었으며, 가장 큰 이유는 고유가의 타격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도산한 건설업체들도 307곳으로 작년 동기의 241곳보다 늘었다. 도산한 기업들이 진 총 채무액은 전년 동기보다 3.6% 감소한 4,560억 엔을 나타내 3개월 만에 처음 줄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