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9 총선은 이명박 대통령을 탄생시키는 데 일등공신 노릇을 한 핵심측근들한테는 차라리 청천벽력 같은 ‘벼락’이었다. 18대 국회에서 이 대통령의 수족 역할을 하며 국정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여겼던 핵심 측근 20여 명 중 절반이 낙마한 것이다. 지난해 대선후보 경선 때부터 친이명박계의 좌장 역할을 했고 대선 직후 여권의 최대 실세로 부상했던 이재오 의원과 신(新)실세로 등장한 이방호 사무총장이 서울 은평을과 경남 사천에서 낙선한 사실은 충격 이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재오 의원은 이 대통령의 가장 큰 대선공약 중 하나인 ‘한반도 대운하’에 대한 저지를 선언하고 필마단창으로 덤벼든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에게 패했고, 이 사무총장은 친박 인사들의 낙천에 반발한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회원들의 낙선운동에 힘입은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에게 182표 차로 분루를 삼켜 이번 총선의 최대 이변으로 기록됐다. 뿐만 아니라, 대선 기간 중 상대후보로부터 나오는 각종 네거티브 전략을 방어하는 첨병역할을 담당했던 정종복 의원은 경북 경주에서 친박연대에서 제명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김일윤 당선자에게 고배를 마셔 이변을 낳았다. 특히 이들 핵심실세들은 한나라당 18대 총선 후보자 공천과정에서 ‘공천 3인방’으로 불리우며 막강한 힘을 등에 업고 공천파동에 깊이 간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기갑, 문국현, 김일윤 … “정치보복” 강력반발 그런데 이들 ‘공천 3인방’을 낙마시킨 주인공 모두가 경찰과 검찰의 수사대상에 올라, 정치권에서는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쉽지 않다는 시각과 함께 야권에서는 “공천 3인방을 살리기 위한 표적 수사”라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경남 사천경찰서는 “지난 8일 총선 공식 선거운동기간 이전인 3월 20일 한나라당 후보인 이방호 사무총장을 비방하는 내용의 유인물이 팩스로 전송됐다는 고발장이 접수돼 수사를 벌이고 있다”며 “사천시청 총무과 등 27개소에 전송된 팩스에는 ‘이방호 의원이 있으면 한나라당 개혁이 안된다’는 등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고 밝혔다. 특히 이 총장 측은 고발장에서 당시 팩스로 전송된 것과 비슷한 내용을 담은 민주노동당 당원용 책자 수십 권이 지역구내에 배포된 점으로 미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한 강 의원 측에서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고 주장했다. 사실 경찰은 이 의원 측에서 강 의원 측을 고발하기 훨씬 전부터 지역구에 나돌던 이 의원의 비방 유인물을 발견해 내사를 벌이고 있었으며, 고발에 따라 본격 수사에 착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강 의원의 사천시 사무실과 서울 여의도 의원화관 내 사무실까지 압수수색하기 위해 검찰에 압수수색 영장을 두 차례나 신청했으나, 모두 기각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민노당에서는 “이 대통령의 측근인 이방호 의원 살리기와 최근 불거지고 있는 쇠고기 수입 파동 문제와 무관치 않게 정치적 의도에서 표적수사하는 것”이라고 반발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압수수색영장 신청은 통신회사에 대한 것이며, 검찰에서 2차례 보강지시를 받았을 뿐 강 의원의 의원회관이나 사천 사무소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은 아예 신청하지 않았는데 표적수사라는 지적은 잘못된 것”이라고 반박하면서 “3월 20일 사천시청을 비롯한 사천지역 기관과 사무실 103곳에 한나라당 이방호 후보를 비방하는 내용의 유인물이 팩스로 전송됐다는 고발장이 접수돼 팩스가 전송된 LG데이콤 서버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아 발송자에 대한 IP 기록을 확인 중”이라고 해명했다. 이와 관련, 민노당 박승흡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명백한 과잉수사이자 민주노동당에 대한 비열한 정치공작성 협박”이라고 규정하고 “쇠고기 정국의 핵으로 부상한 강기갑 의원에 대한 야비하고도 어설픈 정치보복이 아닌가 한다”고 주장하면서 전방위 대응에 나설 뜻임을 강력하게 시사했다. 한편, 17대 국회 내내 당내 정치보다는 국회 상임위에 주력하며 ‘나홀로’ 활동을 펼쳐 왔던 강 의원은 지난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한 이후로는 당의 전면에 서는 일이 잦아졌다. 민노당이 권영길 의원의 대선 참패, 심상정, 노회찬 전 의원의 탈당에 따른 ‘인물 공백’을 강 의원을 통해 메우려 하고 있는 데다, 때마침 쇠고기 협상 문제가 불거지면서 농민의 대변자 역할을 했던 그의 역할이 더욱 절실해지는 등 원내대표설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재오, 이방호, 정종복 ‘공천 파동 주역’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의 일등공신인 이재오 의원을 꺾은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도 허위학력과 범죄전과 기록조회서 조작혐의로 구속된 창조한국당 비례대표 2번 이한정 당선자 공천헌금 의혹과 관련한 검찰의 소환통보에 일체 불응한다는 원칙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창조한국당은 7일 성명을 통해 “창조한국당에 대한 무차별 압수수색과 소환조사에도 불구하고 털어도 먼지가 나지 않자 문국현 대표를 소환하려 한다”며 “검찰의 문국현 옭아매기 수사와 언론 플레이를 통항 ‘문국현 죽이기’시도에 적극 대응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이어 창조한국당은 이 당선자의 지인이 당 채권과 당채 지급보증확약서를 써 줬다는 의혹에 대해 “당채 문제는 발행날짜가 핵심이지 당이 예치하고 있던 당채를 인도한 시점이 아니다”면서 “이 당선자가 검찰 대질신문에서 ‘2번을 확신했다’고 한 진술을 문국현 대표로부터 ‘2번을 약속받았다’로 둔갑시켜 언론 플레이를 했다”고 주장했다. 창조한국당은 또 “수사 실무진 사이에서는 특별한 문제가 없는 것으로 결론내고 있지만, 누군가 이 사건을 문국현 대표의 공천헌금 수수로 조작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는 의혹을 나타내면서 “검찰의 무리한 먼지털기식 수사가 정치권력의 편의에 따라 이뤄지고 있다”며 끝까지 책임추궁을 해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검찰은 문 대표에 대해 앞으로 한두 차례 더 출석을 요구한 뒤 불응할 경우 체포영장 등을 통해 강제구인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4·9 총선 전인 지난 3월 30일 경주시 산내면에서 자신의 사조직 운동원들이 금품을 돌린 혐의로 구속된 김일윤 당선자는 지금까지도 자신의 혐의를 전면 부인하면서 옥중 단식농성을 하다가, 9일 오전 건강에 이상이 있어 병원으로 긴급 이송된 것으로 전해졌다. 김 당선자는 18대 총선기간에 핵심 측근 등을 통해 사조직 조직원들에게 불법선거운동 활동비 명목으로 수천만 원을 뿌린 혐의로 지난 4월 22일 구속됐으며, 수사에 불만을 품고 지난 2일부터 교도소에서 제공한 음식을 모두 거절하며 단식을 벌여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경주교도소 관계자는 “김 당선자의 건강에 특별한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며, 단식 기간이 오래 돼 건강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병원으로 옮겼다”면서 김 당선자에 대해 건강검진 등을 실시한 뒤 의사의 소견을 들어 입원치료 여부를 결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 당선자는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전 심경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자신은 돈을 준적도 없으며 받은 사람도 없다”며 “이번 일은 전부 조작된 것”이라고 강한 불만의 소리를 냈다. 한편, 경주지역 일부 인사들로 구성된 ‘경주현안비상대책위원회’는 9일 오전 경주시청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김 당선자가 자유로운 상태에서 진실을 밝히고 하루빨리 건강을 회복해 현안 문제를 돌볼 수 있도록 불구속 상태에서 재판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검찰과 경찰의 수사가 정상적으로 절차도 진행되는 과정에서 생긴 오비이락(烏飛梨落)인지 아니면 야당의 주장대로 ‘공천 3인방 살리기’의 표적수사인지, 정치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만큼, 국민들은 하루빨리 속시원하게 답을 내놓기를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