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든 국가든 경영의 본질은 같은 것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20대의 원점으로 복귀했다. 한때 기업성장의 불을 밝히기 위해 뛰었던 내가 이제는 우리 모두의 성장을 위해 더 열심히 뛰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이는 지난 1995년 1월 이명박 대통령이 펴낸 자전적 에세이집 ‘신화는 없다’의 에필로그에 실려 있는 글이다. 이 글을 보면 이 대통령이 마치 13년 뒤 대권을 거머쥘 모습을 이미 예견했다는 듯 최고실력자가가 아닌 최고경영자(CEO)의 꿈을 키우며 ‘샐러리맨의 신화’에 이은 ‘청계천 신화’ ‘대권신화’를 일찌감치 준비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하지만 이 대통령이 걸어온 길에 항상 따라다닌 ‘신화’라는 수식어가 말해주듯 그의 일대기는 보통 사람들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고난과 경험하기 힘든 기적들로 채워졌다. 특히 이 대통령은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일에 매달렸던 젊은 시절의 스타일이 몸에 배어, 서울시장 재임시에는 4년 간 청계천 복원, 대중교통체계 개편, 서울숲과 서울광장 조성 등 역대 어느 시장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대형 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불도저’라는 별명에는 “강한 추진력을 보였다”는 찬사와 함께 “개발주의식 행정을 했다”는 비판도 함께 따랐다. 이처럼 CEO로서, 또는 정치인으로서 일궈낸 ‘이명박의 신화’ 뒷면에는 그의 길지 않은 정치 이력과 함께 영욕이 함께 했던 게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당 사상 최악의 과열경선을 거쳐 대권을 거머 쥔 이 대통령이 취임 100일도 안돼 곳곳에서 국정난맥상을 보이는 등 적지 않은 문제점을 낳고 있어 앞으로 남은 장애물이 지나온 파도만큼이나 높아 보인다는 지적도 나온다. ■불도저식 국정은 독재와 다름없어 이와 관련, 한나라당 김용갑 의원은 지난 8일 CNB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지난 현대건설 CEO 시절을 나쁘게 평가하는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성실과 ‘불도저식’ 경영으로 열사의 땅에서 달러를 벌어들였고 그것이 오늘날 한국경제의 근간을 이뤘기 때문”이라고 전제하고 “그러나 이 대통령이 지금까지 실패를 모르고 정상을 향해 끝없이 뛰어 왔다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무엇이든 자신이 직접 결정하고 자신과 뜻이 맞는 사람들로 대열을 정비해 저돌적으로 추진했던 소위 ‘불도저식’ 경영방식은 한 나라를 운영하는 대통령의 자질과는 거리가 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은 기업 CEO의 생각처럼 일사분란하게 밀어붙여 단기에 이윤을 창출해내는 것이 아닌 만큼, 조금 더디게 가더라도 국민의 뜻을 받들어서 가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사실 이 대통령의 파격적인 행보나 언행때문에 당황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라는 게 공직자들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물론 대통령이 성실하게 곳곳을 살피면서 챙기는 게 잘못됐다는 뜻이 아니라, 대통령의 말 한마디면 일개 기업체의 CEO와는 달리 나라 전체에 파급 효과가 적지 않다는 점을 감안할 때 심사숙고해서 행동하고 말을 해야 된다는 의미이다. 예를 들어, 지난 1월 18일 대통령직 인수위 간사단 회의에서 이 대통령의 ‘전봇대 발언’이있었다. 이 회의에서 이 대통령은 “선거 때 목포 대불공단에 갔더니 공단 옆 교량에서 대형 트럭이 커브를 틀더라. 그런데 폴(전봇대)이 서 있어 잘 안 됐다. 산자부 국장이 나와 있길래 물어봤더니 ‘도(道)도 권한이 없고 목포시도 안 되고 산자부도 안 되고 서로 그러다 보니까 폴 하나 옮기는 것도 안 된다’고 하더라”며 부처 간에 서로 미루는 바람에 몇 년째 처리가 안되고 있다고 지적하자 ‘콕’ 집어서 지적당한 산자부는 문제의 전봇대를 찾는다고 난리가 났고, 결국 전봇대를 찾아 이틀 만에 뽑았던 것이다. 이에 탄력을 받은 이 대통령은 곳곳에서 발언 수위를 높이는 것은 물론, 사사건건 지적하는 행보를 보이는 바람에 주위 사람들을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공직사회의 ‘별 보고 달 보고’식의 조기출근 추진과 ‘철밥통’ 인식 질타였다. 이 대통령은 3월 10일 기획재정부 업무보고에서 “국민들이 힘들어도 여러분의 봉급은 나간다. 감원이 되나, 봉급이 안 나올 염려가 있나. 출퇴근하면 된다. 모든 신분이 보장돼 있어 위기나 위기가 아닐 때나 같은 자세”라며 공부원의 ‘철밥통’인식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새 정부 출범 이후 국무회의를 1시간 당겨 하위직 공무원들까지 조기출근이 불가피해진 것과 관련해 “주인인 국민보다 앞서 일어나는 게 머슴의 할 일”이라며 쐐기를 박았다. 사실 이 대통령이 서울시장 당선 직후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출범 직후 제일 먼저 착수한 것은 ‘공무원 정신개조’였다. 2002년 6월 서울신문과가진 서울시장 당선기념 인터뷰에서 “내가 불도저같이 밀어붙이는 스타일이라 ‘새벽부터 저녁까지 일해 가족도 돌보지 못할지 모른다’고 벌써부터 걱정하는 공무원들이 있는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면 장래가 없는 사람이다”라고 꼬집었다. 이는 현대건설 CEO 당시 각종 규제로 업무 추진에 차질이 빚어졌다는 인식이 뇌리에 박혀 지금도 ‘규제’라면 진저리를 친다는 후문이 떠돌만큼 뿌리 내린 공직사회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일조한 것 아니냐는 시각이다 ■이 대통령, CEO 거품 벗고 체질 개선해야 또한 ‘현장행정’을 중요하게 여기는 스타일로 인해 한승수 총리 등 국무위원들의 일정에 차질을 가져오고 있어 이들을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한 총리는 지난 3월 31일 초등학생 납치미수 사건과 관련해 일산경찰서를 방문하고 대책을 지시하려 했지만 이 대통령의 현장 방문으로 취소됐으며, 4월 8일에도 조류독감 발생지인 정읍을 방문하기 위해 풀 기자까지 구성했으나 역시 이 대통령이 갔다는 보고를 받고 급히 취소하는 해프닝을 벌였다. 뿐만 아니라, 한 총리는 3월 12일 이용훈 대법원장을 만난 후 곧바로 이강국 헌법재판소장을 예방하려 했으나, 경기도 용인에서 국방부 업무보고를 받고 청와대로 돌아가던 이명박 대통령의 수행차량으로 인해 교통신호가 차단돼 본의 아니게 10분 이상 지각을 해야 했다. 이렇듯 이 대통령과 한 총리의 현장행정이 계속 겹치게 되자 총리 비서실에서는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으며, 특히 대통령과 총리 차량이 지나갈 때는 경호 등의 이유로 교통신호를 차단하는 일이 많아 대통령과 총리 수행 차량으로 인해 교통이 너무 정체된다는 불평도 적지 않게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처럼 이 대통령의 업무 스타일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휘모리 장단’으로 요약되고 있다. 급하고 분주한 대목이나 절정을 묘사할 때 쓰이는 휘모리 장단은 ‘더 빠르게, 더 구체적으로’를 외치며 거침없이 몰아치는 이 대통령의 스타일을 빼다 박았다는 것이다. 필요하면 수석비서관을 거치지 않고 비서관에게 직접 전화를 걸겠다고 한 점도 실용성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이 대통령의 업무관을 단적으로 드러낸 사례라 할 수 있다. 보고 체계도 중요하지만 효율적인 업무를 위해서라면 분야를 망라한 ‘핫라인’ 개설쯤이야 당연한 것 아니냐는 대통령 앞에서 비서관들은 자칫 방심하다가는 대통령의 전화를 놓칠 수 있다는 강박관념에 전화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라고 전하고 있다. 이 외에도, 이 대통령이 직접 비서실의 칸막이 높이라든가 전기요금까지 일일이 따지는 것은 대통령으로서 ‘월권’이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김용갑 의원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현직에 있을 때는 지지율 10%대까지 주저앉을 정도로 역대 최악의 대통령 중 한 명이었다. 그런데도 노 전 대통령의 고향인 봉화마을에 방문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인터넷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그의 동정이 실리는 등 큰 인기를 얻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이런 유례없는 인기는 대단한 업적을 세웠다기보다는 퇴임 후 고향마을로 내려간 최초의 대통령이라는 사실만으로 국민들을 환호시킨 것이다”라며 “그러고 보면 우리 국민들은 대통령에게 그리 큰 것을 원하지 않는다. 그저 감동을 주는, 원칙이 살아 있는 대통령을 원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권 출범 불과 3개월 만에 국민들은 많은 피로감을 느낀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러한 점을 직시하여 뭐가 문제인지 반성하고 체질적으로 변해서 성공하는 대통령이 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