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지방자치단체에서 대규모 구조조정을 통한 개혁의 바람이 불고 있다. ‘최소한의 공권력’ ‘작은 정부’를 연신 강조하는 정부의 방침에 따라 전국의 각 지자체는 공무원 수를 감축하려는 노력을 시작했다. 현재 전라남도와 산하 시·군에서는 전부 합쳐 840명에 이르는 공무원을 퇴출시키겠다고 밝혔다. 전라북도는 정원 1726명 중 103명의 인원을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제주특별자치도도 올해 초 61명의 공무원 인력을 감축한데 이어 추가로 154명의 인원을 연내에 감축하기로 했다. 인천은 광역시 중 가장 칼바람이 매섭게 부는 곳이다. 시는 10개 구와 군의 공무원 415명을 줄이기로 결정했다. 강원도에서는 공무원 시험 합격자에 대한 신규 임용을 늦추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조직 개편에 따른 인원감축보다는 정년퇴직에 따른 자연스러운 감소와 신규채용을 하지 않는 선에서 총 인원의 5% 이상을 줄여 가겠다는 방침이다. 충청북도도 감축인원이 많은 자치단체의 경우 강제적인 정리보다는 정년 퇴직자를 위주로 인원 감축을 유도하고 있다. 인구감소 등으로 40여 명의 공무원을 줄여야 하는 괴산군은 공무원연금 혜택까지 축소할 방침이라고 한다. 부산지역의 16개 구·군은 5.4%를 감축키로 1일 열린 전국 기획실장회의에서 통보했다는 것. 부산시의 경우 정원 1만4000여 명에서 총액인건비 기준으로 할 때 시 본청은 97명, 16개 구·군은 449명 등 모두 546명 가량의 인원감축을 권고받았다. 경남도도 도청과 시·군을 포함해서 모두 733명에 대한 인원감축 권고를 받았다. 이 같은 몸집 줄이기 노력은 전국으로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크고 작은 규모의 지역단위 통폐합을 통한 몸집 줄이기도 아울러 이루어지고 있다. 강원도는 인구 2만 명과 면적 3㎢ 미만의 소규모 동(洞)의 통폐합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강원도는 춘천시와 원주, 강릉, 속초, 삼척시 등에서 27곳을 선정해 통폐합을 추진해 나갈 예정이다. ■재교육 통한 타 지역 전출도 정부에서 얘기하던 지방공무원 감축이 현실화되고 있다. 각 지자체에서 자리를 오랫동안 차지하고 있던 고참 공무원들은 은근한 명예퇴직 압력을 받기도 한다. 충청북도 괴산군은 이미 올 하반기에 공로연수에 들어가거나 정년이 1, 2년 남은 4, 5급 간부 공무원 가운데 5,6명이 올 상반기에 명퇴를 신청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공무원 감축 폭이 큰 보은군과 옥천군 등 다른 자치단체들은 하위직이나 계약직 공무원만을 줄일 수 없어 정년을 3,4년 남겨둔 간부 공무원까지 명퇴 신청을 놓고 고심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치 IMF 이후 대기업의 구조조정 과정에서 나타난 대규모 퇴직 사태를 방불케 한다. 재교육을 통해 타 지역 또는 부서로 전출을 보내는 노력도 병행되고 있다. 서울시는 부실 공무원을 솎아 내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업무 부진 공무원 88명을 선별해 재교육을 실시할 계획이다. 이들은 6개월 동안 국토종단 도보 순례, 산업체 근로 체험 등의 프로그램을 거쳐 업무에 복귀하거나 완전 배제된다. 행정안전부는 아직 보직을 받지 못한 5급 이하 공무원 400여 명에 대해 재교육을 실시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 동안 보직을 받는 날까지 편하게 지내던 공무원 합격자들은 이제 공무원 합격 후에도 바쁘고 때로 고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실로 정부의 강력한 공무원 개혁 의지가 매서운 칼바람이 되어 휘날리고 있다. 이는 행정안전부의 조직개편안과 함께 이루어졌다. 행정안전부는 부서 산하 43개의 국(局)과 164개 과(課) 가운데 '3개 국·40개 과'를 없애는 조직개편안을 마련했다. 이명박 정부가 조직개편 기준으로 보다 큰 국(局)과 큰 과(課)를 개설할 원칙을 밝힌 데 따른 행안부의 후속조치이다. 정부의 조직개편을 총괄해 주도하는 행안부는 20% 수준의 조직을 없애기로 결정했고, 이는 다른 정부부처의 조직개편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아울러, 행정안전부가 1일 지방자치단체에 일반직 공무원 1만 명을 연내에 감축하고 인건비를 최대 10%까지 줄일 것을 권고했다. 행안부에 따르면, 전국의 지자체에 총액 인건비 기준으로 정원의 2.3%~7%를 줄일 것을 통보했다. 특히 인구 규모나 감소 정도에 따라 공무원 구조 조정 폭을 차등적용하기로 했다. ■일선 공무원 초긴장 이같은 정부의 구조조정 노력에 대해 공무원들은 정원감축 방법과 규모에 관심을 갖고, 인위적인 퇴출까지 단행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방조직의 군살빼기에 대해서는 대체로 수긍하는 분위기다. 중복되거나 비슷한 조직을 통폐합시켜 예산 낭비적 요소를 없앤다는 측면에서 환영하고 있다. 전라남도 도청의 한 공무원은 “갈수록 새로운 일이 생기고 사람도 늘어 부서가 비대해진 게 사실”이라며 “너무 커져버린 조직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지방자치단체라는 조직의 특성상 인원이 비대해진 것은 어쩔 수 없다는 의견도 있다. 새로운 일이 생기면서 업무가 계속 늘기만 하기 때문에 인력보다는 업무의 군살을 뺄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외부의 압력이나 강제적인 조정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정부의 공무원 개편에 반발하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정부가 너무 성급하게 밀어붙이려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일률적인 인력감축은 숫자놀음이고 전시행정의 표본이라는 비판도 서슴없이 나오고 있다. 지자체에 근무하는 한 공무원은 “모든 문제는 스스로 찾아서 치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면서 “강제에 의한 조정은 또 다른 문제를 낳고, 또 다른 강제를 불러올 뿐”이라며 정부 개편안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그는 또 “지자체에 자율권을 준다며 총액인건비제를 시행해 놓고 지금 와서 중앙정부가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면서 “협박”이라고 규정했다. 공무원 이모 씨는 “공무원 사회의 인력 감축은 공무원의 생존권과 밀접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행정 서비스의 질을 떨어뜨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씨는 “공무원 조직은 행정 서비스 제공을 목적으로 하고 있는데 이번 조직개편 권고안은 이 서비스의 질을 전혀 고려치 않은 것 같다”면서 “숫자놀음일 뿐”이라고 꼬집었다. 충청북도 공무원노동조합은 성명을 통해 “행정 서비스가 필요한 곳에 따라 적재적소에 공무원을 배치해 국민들의 불편을 최소화하는 것이 행정”이라며 “아무리 적은 주민들이 살고 있는 시골마을이라도 행정수요가 있다면 당연히 기본적인 공무원은 있어야 하는 것”이라며 인원감축을 통한 서비스 부실 우려를 나타냈다. 노조는 “지방행정의 실정을 무시한 획일적인 지방공무원 감축은 행정 서비스의 질을 추락시키고 정부에 대한 신뢰를 실추시킬 뿐”이라며 “또 다른 실업자를 양산하는 것은 아닌지 신중 또 신중한 검토를 거친 후 결정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남도청 공무원노조의 한 관계자는 “행정은 시스템”이라면서 “국민의 필요에 따라 적재적소에 공무원을 배치해 국민의 불편을 최소화하는 게 행정”이라고 했다. 10명이 살고 있는 소외된 시골 마을에도 행정수요가 있다면 효율성을 따지기 이전에 행정 서비스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고위 공직자에게 관대한 정부 이 같은 잡음과 반발 속에서도 지방공무원 감축과 구조조정 등 일선 공무원에 대한 정부의 개혁작업은 계속될 전망이다. 하지만 정부가 유독 고위 공직자들에게는 관대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아닌지 새 정부 출범 초부터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출범 초기에 이춘호 여성부 장관 내정자, 박은경 환경부 장관 내정자, 남주홍 통일부 장관 내정자에 이은 최근의 박미석 사회정책 수석의 사퇴는 청와대의 인사·검증체계에 내재한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여기에서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어도 일만 잘하면 되지 않느냐”는 왜곡된 실용주의가 깔려 있다는 지적이 불거져 나오고 있다. 현재 공직에 있는 곽승준 국정기획수석과 김병국 외교안보수석, 이동관 대변인 등의 청와대 비서진과 이봉화 보건복지부 차관은 불법 혹은 탈법 의혹을 받고 있는 인사들이며, 정부조직 개편 과정에서도 불법 의혹을 받은 인사들이 대거 임용돼 정부 초기부터 잡음이 많았다. 윗물이 맑지 않은 상태에서 아랫물을 정화하려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셈이다. 이번의 공무원 개혁이 조직을 효율적으로 정비하는 기회가 돼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조직의 슬림화가 소수 힘없는 공무원들에게만 집중될까 걱정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공무원 정모 씨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남고, 일하지 않는 사람은 조정이 돼야 한다”며 원칙론을 강조했다. 안모씨는 “공무원들의 생존전쟁이 시작됐다”면서 “피를 뽑아내는 과정에서 건강한 모까지 뽑히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라고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공무원 사회의 비정규직들은 더 심한 불안감 속에 근무하고 있다. 비정규직인 김모 씨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솔직히 신경이 쓰이지 않을 수 없다”면서 “조직의 슬림화가 소수 힘없는 인력들에 집중될까 걱정된다”고 했다. 조직의 현황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낭비요인이 있다면 바로잡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능력과 소양, 사명감에 관계없이 숫자에만 맞춰 감원의 칼날을 휘두르다 보면 부작용이 생길 수밖에 없다. 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