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5월 22일 ‘미국산 수입 쇠고기 파동’과 관련해 사과의 뜻을 담은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면서 ‘이명박 정부’ 출범 불과 87일 만에 국민한테 고개를 숙였으나, 성난 민심을 돌리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2월 25일 취임 이후 줄곧 자신감 넘치던 이 대통령이 왜 국민 앞에 머리를 조아렸을까? 한마디로, 한결 같이 ‘재협상’을 외치는 여론을 외면하고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논란이 일어나 국정 신뢰도가 크게 추락했기 때문이다. 취임 초기 60%대까지 올라가던 지지율이 취임 100일도 안 돼서 20%대로 급락하고, 인터넷을 중심으로 탄핵 운동이 전개되는가 하면,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에 분노한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오자, 국민 정서를 무마하기 위해 담화문을 발표한 것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10시 30분부터 8분 간에 걸쳐 발표한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글’이라는 대국민 담화문에서 “지금 많은 국민들이 새 정부를 걱정하고 있는데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데 소홀했다는 지적을 겸허히 받아들이겠다”며 “정부가 국민들에게 충분한 이해를 구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노력이 부족했던 점은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쇠고기 수입으로 어려움을 겪을 축산농가 지원 대책 마련에 열중하던 정부로서는 소위 ‘광우병 괴담’이 확산된 것에 대해 솔직히 당혹스러웠다”며 “무엇보다 내가 심혈을 기울여 복원한 청계광장에 어린 학생들까지 나와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것을 보고 참으로 가슴이 아팠다. 부모님께서도 걱정이 많으셨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초기 부족한 점은 모두 제 탓” 이어 이 대통령은 “‘국민 건강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다’는 정부 방침은 확고하다”며 “정부는 미국과 추가로 협의를 거쳐 수입 쇠고기의 안전성이 국제 기준에 부합하는 것은 물론 미국인 식탁에 오르는 쇠고기와 똑같다는 점을 문서로 보장받았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 대통령은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바로 수입을 중단하는 주권적 조치도 명문화했다”며 “차제에 식품 안전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도록 모든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다짐하면서 거듭 국민들의 ‘뿔난 민심’을 되돌리기에 노력했다. 특히 이 대통령은 이날 8분 간의 담화 중 절반이 넘는 시간을 할애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 비준과 관련해 “지금 세계 경제는 70년대 오일 쇼크 이후 최대 위기를 맞고 있으나 이럴 때일수록 우리 경제의 체질을 강화하고 철저히 준비해 빠른 시일 내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야 한다”면서 “대한민국은 경제의 70% 이상을 대외에 의존하고 통상교역을 통해 먹고 사는 나라이다. 한미 FTA는 우리 경제의 새로운 활로가 될 것이다. 수출과 외국인 투자가 늘고 국민소득이 올라간다. 무엇보다 30만 개가 넘는 일자리가 새로 생겨날 수 있다. 우리 젊은이들이 그토록 애타게 찾는 일자리 창출의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이제 회기도, 임기도 며칠 남지 않았지만, 여야를 떠나 민생과 국익을 위해 용단을 내려줄 것을 간곡히 부탁 드린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지금까지 국정 초기의 부족한 점은 모두 제 탓”이라며 “정부와 함께 이번 일을 계기로 심기일전해서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만드는데 더욱 매진하겠다. 앞으로 정부는 더 낮은 자세로 더 가까이 국민에게 다가가겠다”고 약속했다. 이 대통령은 마지막으로 “이제 모두 마음을 합쳐서 앞으로 나아가자”며 “우리가 힘을 모으면 이 어려움을 어느 나라보다 먼저 극복할 수 있다”고 독려했다. 이 대통령의 이 담화는 쇠고기 파동 초기에만 해도 “(쇠고기 수입 비판론자들은) 한미 FTA 비준을 반대하는 사람 아니냐”며 정치적 저의를 의심했던 자세에서 몸을 낮춰 자성하는 모습을 보여 국면을 돌파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인적 쇄신 전혀 안 비쳐, 반발 심해 그러면서 이 대통령은 “수입 쇠고기가 미국인 식탁에 오르는 쇠고기와 똑같다는 점을 문서로 보장받았다”, “ 지난 20일 발표한 한-미 쇠고기 추가협상 결과로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이 보장됐다”, “국민 건강을 위협하는 상황이 발생하면 바로 수입을 중단하는 주권적 조치도 명문화했다” 등등을 강조했는데, 소통 부재에 대해서는 사과할 터이니, 이쯤에서 쇠고기 논쟁은 끝내자는 얘기로 들렸다. 야권에서는 한마디로 아무런 알맹이도 없는 ‘고개 숙임’이라는 지적이다. 따라서 이 대통령의 이날 담화로 성난 민심이 가라앉기를 기대하기는 다소 무리인 듯하다. 담화에서 고개 숙인, 국민에 대한 사과에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며 야당이 반발하고 있고, 인적 쇄신 등 가시적인 후속조처도 빠져 있으며, 특히 다음주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 위생조건을 고시하고 나면 여론이 더 악화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5월 19일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가 이 대통령에게 제시한 국정쇄신안의 일환으로 청와대와 내각의 인적 쇄신에 대한 얘기가 일언반구도 없다는 점을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관련,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이 대통령의 담화 발표 직후 가진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국정 초기의 부족한 점은 모두 제 탓’이라는 대통령 발언은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인적 쇄신을 하지 않겠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인가”라는 기자들의 질문에 “모두 잘 알고 있듯이 새 정부가 공식 출범한 지 3개월 겨우 지났다. 곧 100일을 앞두고 있다. 정부조직을 개편하고 새로운 정부의 틀을 만들었지만, 실제로는 시간이 그리 많이 지나지 않았다. 하부 인사도 마무리되지 않았고, 주요 산하기관장 인사도 마무리되지 않았다. 청문회 등 일정 때문에 일할 수 있는 시간이 매우 짧았다. 시기적으로 지금 책임을 묻는 건 적절치 않다. 앞으로 적절한 시기에, 평가가 객관적으로 가능한 시기가 오면 (인적 쇄신이) 가능할 것이다. 현재로서 이 대통령의 발언은 ‘비판과 지적을 수용해서 더욱 더 열심히 국민의 뜻을 받들고 일하는데 매진하는 게 필요하다’는 의지의 표현이다”라고 설명했다. 사실 이 대통령이 취임한 지 불과 87일 만에 담화문을 발표하면서 고개를 세 번이나 숙인데 대해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는 등 뒤숭숭한 분위기가 역력했다. 특히 이날 류우익 대통령실장을 비롯하여 김인종 경호처장 및 각 수석비서관들과, 유명환 외교통상, 강만수 기획재정, 유인촌 문화체육관광, 정운천 농림수산식품, 이윤호 지식경제, 이영희 노동부 장관, 또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 이봉화 보건복지가족부 차관 등 배석한 국무위원들은 침통한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들지 못했다. 미국산 수입 쇠고기 파동이 “그릇된 정보와 이를 교묘히 악용한 일부 불순세력에 의해 확산된 측면이 없지 않다는 게 청와대와 여권의 판단이지만, 이유야 어찌 됐든 자신들이 보필하는 국정의 최고 책임자를 이 상황까지 오게 한데 대한 일종의 죄책감이 따랐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참담하고 부끄러운 심정이다. 이 대통령이 모든 게 ‘제 탓’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선 정말로 얼굴을 들 수 없었다”고 말하는 한 비서관의 말에서 익히 알 수 있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상황이 이쯤 됐으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니냐”며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물론 이 책임론 속에는 각료뿐 아니라 청와대 참모들도 당연히 포함된다. 특히 그 동안 쇠고기 문제를 포함해 주요 정책 현안을 둘러싼 당정청 간 엇박자가 국민의 불신을 키워 온 책임에 대해 청와대와 내각은 모든 책임을 대통령에게만 떠넘길 뿐 대통령을 대신해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다는 비판에서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실제로 청계광장의 촛불시위 등 ‘광우병 괴담’이 확산되고 있는 와중에도 쇠고기 협상과 직, 간접 관련이 있는 경제수석실과 외교안보수석실에서는 국민과의 소통 창구인 언론에조차 한미 쇠고기 협상의 전말과 문제점 등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다가, 언론의 비판에 못 이겨 5월 8일 마지못해 한 차례 비공개 브리핑을 한 것이 전부 일 정도로 ‘몸 사리기’하고 있다는 지적이며, 이런 상황에서 아무리 애를 싸도 국민과의 올바른 ‘의사소통’을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 경청하러 왔습니다” 이 대통령은 국민과의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오는 6월 3일 취임 100일을 맞아 ‘국민과의 대화’를 가져 허심탄회한 속마음을 털어 놓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와 관련, 청와대의 한 고위 관계자는 22일 CNB 저널과의 통화에서 “이 대통령이 최근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 논란과 더불어 경기가 하강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데 대해 국민들과 허심탄회한 얘기를 나눌 기회가 필요하다는 지적에 따라 ‘국민과의 대화’를 추진 중”이라고 말하면서 “TV로 생중계할 예정인데 현재 방송사와 날짜 및 장소를 협의 중”이라고 전했다. 시기는 5월 27일부터 3박 4일 간 중국을 다녀온 뒤 취임 100일째인 6월 3일 전후가 될 것으로 알려졌으나, 6월 4일 재보선이 있어 생중계를 할 경우 자칫 오해의 소지가 있기 때문에 3일은 피한다는 원칙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이 대통령은 최근 말 수가 훨씬 줄어드는 등 달라진 면모를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22일 오전 청와대에서 건국60년기념사업위원회 첫 회의를 주재하면서, 평소처럼 회의 직전 티 타임 또는 모두 발언을 통해 다량의 ‘말’을 쏟아내는 것을 자제하고 국민과의 소통과 화합을 도모하겠다는 제스처를 쓰는 등 ‘경청 모드’로 돌입했음을 강조했다. 특히 회의에 참석하면서 “경청하러 왔다”고 말했는데, 이 발언은 “정부 출범 초기의 모든 잘못은 제 탓”이라는 담화를 발표하면서 한껏 몸을 낮춘 직후 나온 것이라 더욱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나라당 김용갑 의원은 이 대통령을 향해 “CEO 대통령의 한계를 보는 것 같다”고 지적하면서 “당선 후 이명박 정부의 정치 행보를 보면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고사성어가 불현듯 떠올랐다. 정권 출범 전부터 동분서주하며 민심 행보를 시작한 것은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의욕만 앞설 뿐 민심과 따로 간다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하루에 네 시간밖에 안 잔다’고 자랑하듯 말하지만, 그건 어떻게 보면 이명박 대통령이 갖는 근본적인 모순을 드러내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5년 정치, 그것도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기업 CEO와 달라서 하루아침에 뭘 뚝딱 해치우겠다는 발상은 지극히 위험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김 의원은 “아마 국민들 중 과거 현대건설 사장 시절의 이 대통령을 나쁘다고 평가하지는 않을 것이다. 열사의 나라에서 불도저같이 밀어붙여 달러를 벌어들였고 그것이 오늘날 한국 경제성장의 근간을 이뤘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지금까지 실패를 모르고 정상을 향해 끝없이 뛰어왔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으며, 특히 무엇이든 자신이 결정하고 자신과 뜻이 맞는 사람들만으로 대열을 정비해 저돌적으로 추진했다는 사실이 대통령의 자질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즉, 기업의 미덕이라는 것은 CEO의 생각대로 일사분란하게 밀어붙여 단기에 이윤을 창출하는 것인 반면,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좀 더디 가더라도 전 국민의 뜻을 받들어 가야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김 의원은 “사실 외국의 예를 보더라도, 거대한 기업을 성공시킨 CEO 출신 대통령이 국가를 이끄는 일국의 대통령으로서는 실패한 사례가 많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 대통령도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혹독한 체질 개선이 전제되어야 한다”며 “그런데 정권 출범 3개월이 지난 시점에서 보면, 인사가 만사라는데 인사 조각부터 난맥상의 극치를 보이는 등 우려했던 바가 현실로 나타나는 것 같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정권 출범도 하기 전에 3명의 장관 내정자가 낙마한 게 역대 정권에서는 없었던 일이다”라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이 이러한 지적들을 무난히 극복하고 정국을 풀어 나갈 쇄신책이나 해법을 찾아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