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시바우 대사의 발언은 우리 국민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폭거이자 국제 정치적 도발.” 광우병 국민대책회의는 5월 22일 미국 대사관 앞에서 퍼포먼스 및 기자회견을 통해 통합민주당 손학규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쇠고기 수입금지와 관련해 실망스럽다고 한 버시바우 주한 미국대사의 발언에 대해 항의했다. 단체 회원들은 버시바우 대사 얼굴 모형의 입술에 빨래집게를 물리고 스태플러를 그린 피켓을 들어 대사의 경솔한 행동을 규탄했다. 단체는 버시바우의 이 같은 발언이 한국에 대한 압력을 행사한 것이라며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여러 진보단체에서도 버시바우 대사의 행동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다. 이규제 조국통일범민족연합 남측본부 의장은 “버시바우 대사가 야당 대표에게 ‘협박’한 것은 예의 문제를 제쳐두고서도 우리나라 국민에게 모욕적인 처사”라며 “국민이 어떻게 이에 답해야 하겠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상임대표는 “일개 외국 대사가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의 토론이 자신의 뜻에 맞지 않는다고 ‘사적 대화’를 빌미로 전화해 훈계할 수 있겠냐”며 “제1야당 대표를 장기의 졸(卒)로 봤어도 할 수 없는 언행”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제 대한민국에서 미국의 권력이 얼마나 큰지, 우리가 정부를 잘못 선택하면 정부가 대한민국 국민을 위해 복무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과 초국적 자본을 위해 복무한다는 사실도 잘 알게 됐을 것”이라며 “국민들이 이를 고쳐나가야 한다”면서 반미 선동적 발언도 불사했다. ■MB-손학규 간 영수회담에 대한 미국측 불만 표출 버시바우 미 대사의 발언이 다시 물의를 빚고 있다. 그는 쇠고기 논란에 대해 야당에 불쾌한 감정을 여과없이 드러내 본격적으로 쇠고기 문제와 관련, 한국 정부와 국회에 압력을 행사하려 하고 있다. 이는 이명박 대통령이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 20일 가진 영수회동에서 “30개월 이상 쇠고기는 수입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오간 것으로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을 통해 알려지면서 시작됐다. 미국 무역대표부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에 대해 공개적으로 우려를 표시했다. 로이터 통신에 의하면, 미 무역대표부 대변인은 “청와대 대변인이 30개월 미만 쇠고기만 수입하게 될 것임을 시사한데 대해 한국의 고위관리에게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고 말했다. 인터뷰에서 미 무역대표부는 한국이 소의 월령에 관계없이 쇠고기를 수입하도록 돼 있는 한미 협정문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을 강조했다. 버시바우 주한 미국 대사도 쇠고기 문제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는 지난 20일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를 미 대사관저로 불러 쇠고기 수입 협정문의 제 5조를 개정하는 부분에 대한 것을 논의한 바 있다. 이 자리에서 이회창 총재는 쇠고기 파동의 쟁점은 검역주권의 포기라는 점을 지적하고, 협정문 제5조의 개정 또는 미국이 우리의 수입중단조치를 위장된 무역장벽으로 삼아 문제 삼지 않겠다는 발언을 명문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했으나, 버시바우 미 대사가 현재로서 협정문을 개정하는 것은 어렵다고 말해 의견 차이를 보였다. ■버시바우-손 대표 간 설왕설래 이에 이어 통합민주당 손학규 대표에게는 전화상으로 외교적 결례를 한 것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제1야당 대표인 손 대표에게 비공식 루트로 “과학적 근거 없이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을 과장했다”고 항의했다고 전해진다. 정황은 다음과 같다. 민주당에 따르면, 21일 오전 10시 20분 경 최고위원회 회의 도중 버시바우 미 대사로부터 손학규 대표에게 전화가 왔다고 한다. 그러나 회의 중이라 통화를 못하고, 11시40분 쯤에야 대사관 측에서 다시 전화가 왔다. 버시바우 대사는 손 대표에게 전화상으로 “어제 이명박 대통령과의 회동에서 30개월 이상의 쇠고기 수입 금지와 관련해 발언한 것에 대해 실망스럽다”고 전했다고 한다. ‘우려(anxiety)’와 ‘실망(disappointed)’이라는 단어도 함께 사용하면서 말이다. 또한 “과학적 근거도 없이 국민들에게 불안을 야기한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에 대해 손학규 대표는 “지금 얘기하려고 하는 목적이 무엇인가”라고 물었고, “나는 쇠고기 협상이 이런 상황에 처한 것에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하고, 한미 FTA가 이 난국에 처한 것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그런데 미국 대사가 야당 대표에게 이런 식으로 전화를 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대사로서 나에게 찾아오든지 면담을 하든지 편지를 보내든지 해야 할 것이다”라고 지적했다고 한다. 그는 “형식과 내용이 모두 부적절한 것이었다”고 유감을 표하며 미국 대사관에 적절한 해명을 요구했다. 그러나 미국 대사관 측은 “민주당 측이 사적인 대화를 공개한 것에 대해 조금 놀랐다”며 오히려 불쾌한 감정을 드러냈다. 버시바우 대사는 “그것은 사적인 대화였다”며 “나는 한국 정치인과 사적 대화를 가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했다고 한다.
■“쇠고기 문제가 사적 대화 주제인가” 버시바우 미 대사의 예기치 않은 입장 표명에 대해 민주당은 강한 유감을 표명하고 있다. 민주당 차영 대변인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이며, 절차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부적절했다”고 버시바우 대사의 경솔한 행동을 비판했다. 차 대변인은 버시바우의 “사적인 대화였다”는 발언에 대해서도 “손학규 대표와 버시바우 대사는 사적으로 대화하는 사이가 아닐 뿐더러, 국민의 불안감이 팽배해 있고, 한미 간 중대 현안이 된 쇠고기 문제에 대해 미국 대사가 항의하고 문제를 제기한 것이 어떻게 사적인 대화가 될 수 있는가”라고 되물었다. 김창준 전 미 하원의원은 CBS와의 인터뷰에서 “버시바우 대사가 원칙적으로는 외교통상으로 이렇게 할 수가 없고, 미리 전화해서 대면을 요청하는 등 절차를 취했어야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버시바우 대사와 손 대표가 얼마나 막역한 사이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주재국의 야당 대표에게 불쑥 전화를 걸어 당론이 실망스럽다고 말한 것은 버시바우 미 대사가 한국을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는지를 의심하게끔 만든다. 미국이 우리 나라와 어떤 관계의 국가건 간에 일국의 대사가 주재국의 야당 대표에게 전할 말이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사전 면담 요청이나 서한을 보내는 것이 옳다. 미 대사의 자격에서 FTA나 쇠고기 문제에 대해 공식 입장이나 협조를 요청할 수는 있지만, 국내문제에 대해 야당 대표에게 전화를 걸어 야당의 정책적인 입장에 대해서 “실망했다”며 감정적인 사견을 드러내는 것은 외교적 도의에 어긋난다. 더욱이, 한국에서 가장 민감한 쇠고기 문제가 전화를 통해 사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주제인지도 생각해 봤어야 했다. ■버시바우 대사, 보다 신중한 태도 유지해야 김창준 전 미국 하원의원은 버시바우 대사의 행동이 미국 정부에서 시킨 것이 아닌 즉흥적인 판단에 의해 이루어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측했다. 주재국의 주요 정치현안에 대해 현지 정치인과 논의하기 위해서는 사안을 숙고한 상태에서 대화를 요청해야 옳다. 그럼에도 순간적인 판단에 의해 이 같은 외교적 결례를 저지른 것이라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지금까지 쇠고기 협상에 대한 국민여론은 반미 감정까지는 발전하지 않고 정부의 졸속·굴욕 외교에 대한 비난으로 국한돼 있었다. 연일 벌어지는 촛불집회도 미군 장갑차에 의한 여중생 사망 사건 때처럼 반미 감정으로는 이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그러나 버시바우 대사의 이번 행동은 쇠고기 파동의 불똥이 정부에 대한 비판에서 반미 감정으로 옮겨 붙을 수 있는 단초를 제공했다는 점에서 우려스럽다. 버시바우 대사가 2005년 10월 부임 이후 즉흥적이고 개인적인 발언으로 입방아에 오른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는 지난 1월 대사관 웹사이트에 쓴 글에서 “한국인은 북한 정권을 우려해야 한다”고 했다. 대사가 주재국 국민에게 이래라저래라 하는 내정간섭 행태다. 그는 이전에도 ‘북한은 범죄정권’, ‘남북 경제협력의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 ‘개성공단 등 북한 지역에 있는 한국인이 인질이 될 가능성이 있다’는 등의 강경하고 오만한 발언을 공개적으로 해 한국인들의 반발을 샀다. 미국의 공관으로서 보다 신중히 처신해 보다 발전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한미관계 구축에 기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