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 훈 화백 Huh Hoon e-mail :htwoher@hanmail.net 중앙대학교 예술대 회화학과 졸업 중앙대학교 대학원 서양화학과 졸업 개인전 2007 제5회 개인전 (분당중앙문화정보센터) 2007 제4회 개인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서울) 2006 제3회 개인전 (인사갤러리, 서울-소나무갤러리, 안성) 2002 제2회 개인전 (인사갤러리, 서울) 1996 제1회 개인전 (도올, 서울) 단체전 2008 성남의 얼굴(공간의생산전)-성남아트센터, 정예작가소품초대전-(분당 율갤러리), 신춘중견작가9인초대전(외환은행 분당중앙WMC갤러리), 한국현대미술의 조망전(살아있는미술관,잠실), 안성미술협회기획전(안성시민회관) 2007 스위스취리히아트페어(스위스취리히), 한국,터어키 미술교류전(터어키), 분당미술제(성남아트센터,분당), 분당작가협회전(조형갤러리,성남아트센터), 한·중·일 우수작가초대전(평택호예술관,평택), 한국 정예작가초대전(안산단원미술관,안산), 안성미협기획전(안성시민회관) 2006 SIAC(Open Art Fair, 서울 코엑스, 조선화랑초대), 평택 국제아트페어(평택호예술관 초대, 평택), 분당작가협회전(성남아트센터, 분당), 안성 아트페어(안성시민회관, 안성), 자유표현전(성남아트센터, 분당), 2005 예우전(중앙대병원, 서울), 성남아트센터 개관기념전(성남아트센터, 분당) 2004~1992 추상회화 동상이몽전(수원미술 전시관, 수원), 서울방법전(세종문화회관, 서울), 서울 현대미술제 초대작가전(문예진흥원미술관, 서울), 대한민국 미술대전(국립현대미술관, 과천), 동아미술제(국립현대미술관, 과천), 미술세계대상전(서울시립미술관, 서울), 그 외 단체전 현재 한국미술협회, 자유표현전, 분당작가협회회원, 분당미술제운영위원, 중앙대학교 ,한서대학교 강사,신세계문화센터 강사
허훈의 그림은 수평선과 수직선이 규칙적이고 반복적으로 교직돼 있는데, 이는 마치 직조된 직물의 표면질감과 그 구조를 떠올리게 한다. 작가의 그림은 말하자면 사물과 세계와 대상의 감각적 모사를 겨냥한 재현의지의 소산이기보다는, 회화가 가능한 최소한의 조건에 천착한 추상과 관념의 산물인 것이다. 그 이면에는 장르적 특수성과 매체적 특수성에 기울여진 모더니즘의 회화 관념이 놓여 있으며, 예술이 존재하는 이유를 예술의 내적 조건에서 찾은 예술의 자율성과 회화의 내재율에 대한 공감이 놓여 있다. 이는 점, 선, 면, 색채, 구조 등의 자족적인 성질을 인정하는 것에서 회화가 가능한 조건을 찾는 환원주의의 관념으로 나타나며(이것은 회화적 요소 자체를 재현의지에 종속된 개념으로 보는 태도와 비교된다), 이 회화의 계기들이 어우러져 만들어낸 형상화를 겨냥한 형식주의의 태도로서 나타난다. 수평선과 수직선이 교직된 구조는 말하자면 회화가 가능한 최소한의 조건에 대한 사유의 결과물인 것이며, 그 자체 회화의 자족적인 구조와 성질을 반영한 것이다. 이는 평면적이고 기하학적인 화면구성으로서 나타나는데, 여기서 회화의 자율성에 대한 공감과 함께 일종의 인위적인 질서를 부여함으로써 감각세계를 재편하려는 자의식이 읽혀진다.
특히, 좌우대칭과 중심성이 강한 구도는 그 자체 물질적이고 감각적인 세계인식이기보다는 관념적 세계인식의 한 표상이다. 화면 자체에 한정된 자족적이고 독립적인 이상세계를 구축하려는 의지의 표명인 것이다. 참고로, 니체는 구조화를 지향하는 질서의식과 혼돈을 지향하는 해체충동이 예술가의 잠재의식 속에서 충돌하고 있다고 보았는데, 허훈의 작업은 그 성향이 상대적으로 질서의식에 기울여져 있으며, 화면은 이러한 질서의식이 투사된 일종의 의미론적인 메타포로 보인다, 작가의 그림은 선과 선이 교직돼서 사각형태의 격자구조를 드러내 보이며, 그 격자로 둘러싸인 무수한 점들을 열거해 보인다. 격자(그리드)나 점(모나드) 등에서 세계의 기원론이나 발생론에 대한 공감의 흔적이 느껴진다. 그러니까, 격자나 점 등이 지금의 세계가 유래하게 된 최초의 씨앗에 해당하는 것이다. 즉, 세계는 이러한 최소한의 원소 또는 단자들의 무분별하고 우연한 집합의 소산인 것이다. 그런가 하면, 그림에 나타난 격자 자체는 일종의 집에 대한 메타포로도 읽힌다. 그 자체 정체성의 집인 것이다. 그 집의 틀 속에 갇힌 무수한 점들 하나하나가 인연의 계기들을 떠올리게 한다(마치 김환기의 점화에서처럼).
이처럼 선과 격자, 그리고 점 등이 어우러진 작가의 그림은 회화가 가능한 최소한의 조건과 그 자족적인 원리에 대한 사유의 결과물이며, 환원주의와 형식주의로 나타난 추상과 관념의 소산이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해, 순수한 추상에 대한 모더니즘의 기획은 논리적으론 가능할지 모르나 실제로는 불가능하다. 한낱 점조차도 얼룩이나 우주를 떠올리게 하며, 화면을 가로지르는 수평선은 바다와 대지 혹은 하늘과 대지가 맞닿은 선을 떠올려 주기 때문이다. 회화를 이루는 요소들은 말하자면 그 자체 순수한 형식을 위한 계기이면서, 이와 동시에 의미론적인 계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두 계기는 필연적으로 관객의 의식 속에서 상호 내포적이고 상호 관계적으로 동화되기 마련인 것이다. 이러한 연유로 해서, 작가의 그림에 나타난 격자는 일종의 정체성의 집으로, 그리고 점들은 인연의 계기로 읽혀질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허훈의 그림에 나타난 격자구조 혹은 망 구조는 회화가 가능한 최소한의 조건에 대한 모더니즘 관념의 소산이면서, 동시에 그 자체 삶의 실제를 떠올려 주는 의미론적 대상을 상당 정도 함의하고 있기도 하다. 특히, 크고 작은 사각형들이 반복적으로 중첩돼 있는데(큰 사각형 속에 작은 사각형이 유기적으로 연속돼 있는), 이는 마치 우주의 관념적인 형상을 도해한 만다라를 떠올리게 한다. 사각형은 말하자면, 그 자체 한정적이고 완결된 형상의 우주를 표상하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중첩된 격자구조는 그 자체로서 마치 문틀이나 창문틀처럼 보이는데, 이는 경계에 대한 인식을 떠올리게 한다. 작가의 그림에서는 말하자면, 원근법적인 일루전이 적용되지 않았을 뿐이지, 사실상 문과 문들이, 틀과 틀들이 중첩되면서 일종의 유사 원근법적인 효과를 드러내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문과 틀을 암시하는 작가의 그림은 실제로도 작가가 근작에 부친 ‘가상의 문을 통한 현실과 이상 사이’라는 주제의식과도 통한다. 그 문은 말하자면 실재하면서 동시에 부재하는 문이다. 그 문은 현실과 이상 사이에 난 문, 현실과 이상을 이어 주는 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엄밀하게 말해, 그 문은 감각적인 실재의 형태로서 존재하는 즉물적이고 질료적인 문이기보다는,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문, 사유의 메타포로서의 문이다. 이는 현실로부터 이상세계로 건너가게 해주고, 경계의 이편과 저편을 허물게 해주고, 이분법으로 나타난 구분과 차이를 봉합하게 해준다. 그 이면에는 통과의례와 성인식, 정화의식과 세례식(하나같이 이편으로부터 저편으로 건너가는 의식의 전이현상과 관련된)으로 나타난 거듭난 삶에의 인식이 놓여 있고, 이를 표상하는 상징체계에 대한 공감이 놓여 있다. 그리고 수직선과 수평선의 교직이 일종의 길에 대한 메타포, 삶에 대한 메타포로도 읽힌다(예컨대, 교차로와 미로를 암시하는). 그런가 하면, 교직된 선들이 마치 하늘에서 내려다본 도심의 가로를 연상시키며, 그 선들 사이로 드러난 점들이 도심의 야경을 수놓은 명멸하는 불빛들을 연상시킨다. 일면적으론 직조된 직물을 연상시키는 양식화되고 패턴화된 구조로 인해 마치 화면이 움직이고 있는 것 같은 옵아트적인 측면이 엿보이기도 한다. 격자구조로 나타난 기하학적 환원주의(선과 선이 교직되는)와, 삶의 실제를 환기하는 의미론적 형상화(문과 틀과 경계에 대한 인식을 떠올려 주는)에서 나아가, 일종의 광학적인 일루전 효과에까지 그 표현의 범주를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허훈의 그림에서 문과 틀과 경계에 대한 인식은 엄밀하게 말해 실재하는 것이기보다는, 다만 선과 선이 교직되는 격자구조(그 자체는 추상적 형식인)로부터 유추해 낸 암시적인 것일 뿐이다. 이런 암시적인 정도에 머물렀던 일루전이 근작에서는 구체적인 형상을 도입함으로써 적극적인 양상을 띠고 나타난다. 즉, 격자구조로 나타난 한낱 추상적인 형상과 암시적인 형상이 세계를 보는 창, 세계를 향해 뚫린 창이라는 구체적인 실제성을 획득하게 된 것이다. 이로부터는 회화란 마치 창문을 통해 본 풍경처럼 일루전적 환경을 인위적으로 조성하는 일(기술)이라는 전통적인 재현논리에 대한 자기 반성적인 사유가 느껴진다. 그리고 그 창문에다가 작가는 대지와 하늘이 맞닿는 지평선을 그려 넣고, 노랗고 빨갛게 물든 저녁노을을 그려 넣는다.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화면이 모더니즘의 환원주의와 함께 금욕적인 느낌을 불러일으킨다면, 이러한 패턴화된 화면의 한가운데 난 창과 이를 통해 보이는 풍경은 낭만적인 정조마저 불러일으킨다. 지평선 너머로 사라지기 직전에 세상을 더 붉게 물들이는 낙조가 재현회화와 그 이후 회화의 운명에 대한 논평처럼 읽힌다. 이러한 관조적인 풍경이 있는가 하면, 각종 꽃을 소재로 한 상대적으로 더 구체적인 대상을 그려 넣은 창도 있다. 이때의 꽃은 그 자체가 목적이기보다는 낙조와 함께 재현회화를 논평하기 위한 한 계기로 보인다. 이로써 화면은 기하학적인 형상과 자연 이미지 고유의 유기적인 형상이 대비되며, 추상의지와 재현의지가 대비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로부터는 존재의 이중성과 양면성에 대한 인식과 함께, 그 차이와 다름을 봉합하려는 의지가 읽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