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조용하던 은행의 편법 영업이 또 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시중은행들이 대부분 여·수신 자금을 증권사 CMA에 빼앗기면서 고객을 끌어들이기 위한 일환으로 보인다. ‘꺾기’와 카드 가입 강요, 그리고 미끼 마케팅이 대표적인 예. 꺾기의 정확한 사전적 의미는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해 줄 때 대출금의 일부를 다시 예금으로 받아들이는 일”을 말한다. 즉, 고객이 대출을 받을 때 은행 신용 카드 및 예금상품에 가입해야만 원하는 금액을 대출받는 행태를 뜻한다. 이에 따라 해당 금융 고객은 대출을 받기 위해 원하지 않는 예금에 가입해야 한다. 또, 신혼집 마련을 위해 국민주택기금에서 지원하는 근로자 전세자금 대출을 받는데도 카드 가입을 강요하고 있어 이에 대한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한동안 잠잠하던 은행들의 편법 영업, 그 현장을 찾아가 봤다. # 회사원 장모(33) 씨는 얼마 전에 우리은행에서 신혼집을 마련하기 위해 국민주택기금에서 지원하는 근로자 전세자금 대출받기 상담을 받았다. 은행 직원이 장 씨의 대출 자격에 아무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뒤, 곧바로 ‘우리V카드’ 가입을 요청했다. 이 직원은 “국민주택기금을 받으려면 신용 카드 가입은 필수”라며 가입할 것을 종용했고, 장 씨는 이미 여러 장의 카드가 있지만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대출에 불이익이 있을 것을 우려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또 다시 만들었다. # 회사원 강모(35) 씨는 얼마 전에 황당한 일을 겪었다. 몇 달 전에 카드 업계에 근무하는 지인의 부탁으로 신용 카드를 발급 받았는데, 은행 직원이 “실적이 전혀 없다”며 매달 10만 원이라도 사용해 줄 것을 부탁했기 때문이다. 이미 여러 장의 카드를 가지고 있는 장 씨는 “새 카드를 발급하자마자 곧바로 폐기했다”며 사정을 설명했다. 은행 직원은 “은행 전산 프로그램을 이용해 고객님의 신용 카드 계좌로 10만 원짜리 은행 기프트 카드를 구입한 즉시 신용 카드 대금을 결제하겠다”며 “이렇게 하면 카드 실적은 생기지만 고객의 카드 대금은 따로 결제할 필요 없다”고 양해를 구했다. 장 씨는 “그렇게까지 실적을 올려야 하는지 의아스럽다”며 “고객의 입장은 전혀 신경 안 쓰고 직원의 실적에만 급급한 것 같다”며 씁쓸해했다. ■ 나랏돈으로 장사하면서… 소비자들 분통 이처럼 고객의 입장은 안중에 없이 실적 올리기에만 급급한 은행들의 막무가내식 영업이 최근 들어 활개를 치고 있다. 특히, 장 씨처럼 근로자 전세자금 대출 관련 정보를 주고받는 인터넷 사이트에도 비슷한 일을 당했다는 의견이 줄을 잇고 있다. 모 은행에서 대출 상담을 했다는 한 네티즌은 “단지 국민주택기금 수탁기관일 뿐인 은행이 나랏돈으로 대출을 하면서 고객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것을 보고 어이가 없었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회사 내 실적 부담이 크다 보니까 영업점에서 꺾기를 하지 않는 직원은 아마 없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강 씨와 같이 카드 때문에 씁쓸한 경험을 하는 소비자들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은행들은 올 들어 카드 영업을 강화하기 위해 영업점 평가 항목에 카드 회원 모집과 카드 사용 실적에 대한 배점을 대폭 높였으며, 이에 부담을 느낀 직원들이 이러한 편법을 동원해서라도 실적을 채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강 씨처럼 카드를 해지하지 않고 소유하고 있는 고객들은 카드를 사용할 때까지 거의 매번 카드 강요 전화를 받고 있다. 최근 카드사들마다 카드 모집인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신용 카드 대란이 예고되는 가운데, 이미 카드를 가입한 고객들도 은행 직원의 권유로 과소비에 노출돼 있는 셈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최근 고유가에 민감한 운전자들을 겨냥해 소비를 부추기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대부분의 카드가 리터당 80원을 적립해 주는 데 반해, 국민 카드는 매월 7일, 17일, 27일 등 ‘세븐 데이’에는 업계 최고 수준인 100원까지 적립해준다고 홍보하면서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운전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상품을 내놓은 지 4일 만에 2500여 명이 카드 가입서에 서명을 했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리터당 100원 적립은 오는 8월까지만 진행되는 한시적인 이벤트였다. 국민카드 관계자는 “은행 홈페이지에는 혜택 기간을 공지했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은행 간에 치열한 영업 경쟁을 펼치다 보니 갖은 편법이 나오는 것 같다”며 “당장은 소폭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결국은 ‘제살 깎기’ 경쟁이 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