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와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가 5월 23일 전격적으로 원내 교섭단체 구성에 합의했다. 이로써 한나라당과 민주당에 이어 제3의 원내 교섭단체가 탄생을 앞두고 있지만, 두 당의 연대는 여러 면에서 의문점을 갖게 만든다. 두 당은 대운하 저지, 검역주권과 국민의 건강권 확보가 전제된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 중소기업 활성화에 뜻이 맞아 원내 교섭단체 구성에 합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양당은 이 3가지 분야에 대해 제한적으로 공동보조를 취하는 ‘3포인트’ 교섭단체를 구성키로 했다.
하지만, 두 당이 추구하는 이념과 가치가 워낙 다르다. 합의를 본 세 가지를 제외하고는 모두 다르다고 할 정도로 양당 사이의 거리는 멀다. 이 때문에 ‘야합’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등 비판 여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특히, 창조한국당 내에서 반발이 크다. 이미 100명의 당원들이 선진당과의 연대 교섭단체 등록 소식을 듣고 탈당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그나마 남아 있던 지지자들도 모두 떠나갈 가능성이 높아졌다. 문국현 대표는 당시 라디오에 출연해 “본회의장에 가는 버스에 20명 단위로 태우니까 우리가 합석한 것일 뿐”이라며 “본회의장에 가면 각자 자기 당 정책을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지지층 이탈을 말렸다. 국회 원내 교섭단체를 구성하려면 원내 20석의 의석수가 기본전제이다. 현행 국회법 33조는 교섭단체 구성 요건을 ‘국회의원 20인 이상’으로 규정하고 있다. 20인 이상의 소속의원을 가진 정당은 당연히 교섭단체가 되며, 여러 정당 소속 의원들이 하나의 교섭단체를 구성하는 연대도 가능하다. 한 정당에서 복수의 교섭단체가 구성될 수도 있다. 18대 국회에서 18석의 의석을 얻은 선진당은 교섭단체를 구성하는데 필요한 두 석을 확보하기 위해 여러 모로 영입작업을 벌였지만 성과를 내지 못했다. 창조한국당도 총선에서 3석을 확보했지만, 이한정 비례대표 당선자가 구속된 상황에서 두 명의 의원으로서는 다수당 위주로 운영되는 국회에서 목소리를 내기 힘들었다. 결국, 가치관이 서로 다른 두 당의 연대는 소수 세력의 한계를 벗어나야 한다는 양당의 이해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처럼 의석수를 채워 교섭단체를 구성하기 위한 군소정당들의 이합집산은 이번 선진당과 창조당의 사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의정사를 볼 때, 지난 64년 자유민주당 의원 9명과 ‘국민의 당’ 2명, 민주당 13명이 합해 ‘삼민회’라는 교섭단체를 등록하여 민주당으로 통합 발전한 사례에다, 68년 대중당 2명과 무소속 12명이 결합해 ‘정우회’를 구성한 사례에서도 볼수 있는 구태이다. 또한, 국민의 정부 당시 공동여당인 새천년민주당이 수세에 몰려 김종필 총재와 연대를 시도한 이른바 ‘DJP 연합’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자민련과 서로 의원을 교환해 교섭단체를 구성하여 ‘의원 꿔주기’ 논란이 일기도 했다. ■왜 교섭단체 구성에 합의했나 우리나라 정치에서 이념과 정책방향이 다른 정당들의 이합집산이 일어나는 가장 큰 이유는 우리 국회가 기본적으로 원내 교섭단체를 중심으로 운영되는데 있다. 원내 교섭단체가 구성되면 국회의 공간 배정에서 우선권을 부여받으며, 각종 국회 의사일정 협의에 직접 참여하게 된다. 정기국회나 임시국회가 열릴 때마다 40분 간의 대표연설에도 참여할 수 있다. 교섭단체가 되면 원 구성 국회 상임위의 상임위원장과 위원을 배분하는 과정에서 협상권을 갖는다. 또한, 상임위별로 간사를 선임할 수 있게 된다. 아울러, 입법활동을 보좌하는 1~4급 정책연구위원 10여 명도 교섭단체에만 배정된다. 이렇게 되면 당직자들을 정책연구위원으로 흡수할 수 있어 인건비 등 당 재정에 직접적인 혜택을 받게 된다. 이념적 지향이 다른 자유선진당과 창조한국당이 교섭단체 구성에 합의한 것은 이 같은 현실적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선진당 박선영, 창조한국당 김석수 대변인도 브리핑을 통해 “비교섭단체가 겪는 피해가 막심하다”며 “원내 활동을 위해 교섭단체를 구성하려는 것”이라고 밝히면서도, 상임위원장 배분과 상임위 배정 과정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최대한 보장받겠다는 의도도 크게 작용했음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핵심은 정당에 대한 국고 보조금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정당 보조금은 280억 원 규모인데, 이 중 50%는 교섭단체의 의석수대로 배분하고, 나머지는 교섭단체와 비교섭단체를 통틀어 의석수대로 배분한다. 자유선진당의 경우에는 비교섭단체일 경우 분기별로 4~5억 원을 받지만 교섭단체가 되면 3배로 배당 보조금이 뛴다. 만약, 선진당과 창조한국당이 합당을 하면 3·4분기 국고보조금은 각각 5억3,700만 원, 1억9,100만 원의 합보다 3배 정도 많은 15억4,000만원이 된다. ■군소정당, 교섭단체 제도 완화 노력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은 국회 운영과정에서 이 같은 혜택을 받지만, 의원수가 모자라 교섭단체를 구성하지 못한 정당은 전반적인 국회 운영에서 철저히 소외된다. 이 때문에 기준 완화에 대한 요구가 적지 않다. 교섭단체 정족수를 줄이기 위한 군소 정당들의 노력은 계속 이루어져 왔다. 지난 2006년에 민노당은 민주당과 국민중심당 등과 함께 현행 원내 20석 이상 보유 정당을 기준으로 한 교섭단체 구성 요건을 ‘국회의원 5명 이상 또는 직전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전체 유효투표 총수의 100분의3 이상을 득표한 정당’으로 완화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제출한 바 있다. 개정안은 또 국회 정보위원회의 경우, 기존 교섭단체 소속 의원 중에서만 위원을 선임하도록 돼 있는 규정을 삭제하도록 했다. 또한, 3당은 군소 정당에 정당 보조금 지급을 확대하는 내용의 정치자금법 개정안도 함께 발의했다. 개정안은 정당 보조금의 25%를 ‘총선에서 정당득표율 3% 이상 또는 보조금 지급시 의석수 5석 이상을 가진 정당’에게 균등 배분하고, 40%는 정당득표율에 따라 지급하며, 나머지 35%는 의석수 비율에 따라 배분하도록 했다. 2004년에는 당시 의석을 각각 10석, 9석씩 보유한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이 교섭단체제도 개혁법안을 마련, 9월 정기국회 때 제출하기도 했다. 당시 민주노동당은 국회 교섭단체의 기준을 전체 의석의 5%로 줄이려고 노력했다. 지난 2000년 7월에는 당시 집권당 측에서 교섭단체 요건을 20석에서 10석으로 완화하는 국회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으나, 헌법재판소에서 국회의 법률심의권과 표결권을 침해한다 하여 ‘무효’결정을 내린 바 있다. ■“교섭단체들, 과도한 전횡과 특권 일삼아” 민주노동당 등 일부 정당과 사회단체에서는 교섭단체제도가 비교섭단체를 철저히 배제하고 다수당에 대한 편파적 국고지원 등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주장한다. 민주당 손봉숙 의원은 국내 교섭단체제도에 대해 “정쟁에 따른 원 구성 지연, 밀실 협상식 의장단 및 상임위원장 선출 등 과도한 전횡과 특권을 행사하고 있다”며 교섭단체 폐지를 주장했다. ‘함께하는 시민행동’ 정선애 정책실장도 “현행 교섭단체 구성요건은 유신체제 아래 소수파의 목소리를 봉쇄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항이라 구성요건 완화는 근본 대책이 될 수 없다”며 폐지론에 가세했다.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은 폐지보다는 구성요건 완화와 권한 축소, 국회운영위원회 기능 강화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심 의원은 “현행 교섭단체제도는 정당 정치와 국회 운영의 효율성이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긴 하지만, 그 구성요건이 의원 20명, 의원정수 대비 6.7%로 외국과 비교해도 지나치게 높다”고 지적했다. 참여연대 손혁재 운영위원장은 “교섭단체가 없어지면 의회의 자율성 상승, 의원 독자성과 당내 민주주의 향상 등 장점이 있지만, 의회 파행 운영, 의회 내 갈등 조정의 어려움, 의결정족수를 확보한 정당의 독주 등 단점도 생길 수 있다”고 전했다. ■외국, 정원의 3~5%면 교섭단체 구성 외국의 경우를 보면, 대부분 의원 정수의 3~5% 수준을 교섭단체 구성요건으로 제한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의원정수 299명의 6.7% 수준인 20석으로 제한하고 있는 기준에 비하면 굉장히 낮은 수치이다. 주요 나라를 살펴보면, 미국·영국 등 양당제의 뿌리가 깊은 나라에는 아예 교섭단체 제도가 없다. 호주의 경우에도 그러하다. 네덜란드·노르웨이·덴마크·스웨덴 등의 유럽 국가에서는 대부분 의원 1명만 있어도 교섭단체가 된다. 사회민주주의의 전통이 강한 북유럽 국가들은 소수자 배려 차원에서 1석이면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게 하고 있다. 그 외에, 30석으로 가장 높은 구성요건을 규정하고 있는 독일의 경우에도 의원 정수와 비교하면 5% 수준밖에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