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에 사는 친구 하나가 얼마 전에 전화를 걸어와서 CNN에 자주 비치는 걸 보니 서울시 청사가 이젠 머지않아 대한민국의 ‘랜드마크’로 자리 잡을 것 같다는 농담을 하던데, 이거 웃어야 할 일인가요, 어떤 건가요? (웃음)”
“정치 얘기는 가급적 안 해도 되는 자리인 줄 알았는데, 역시 시절이 시절이니만큼 선공을 맞은 느낌입니다.(웃음) 그런데 분명한 건, 그 분께 당당히 말씀하실 만한 얘기가 하나 있지 않습니까? 맞다! 앞으로 3년 뒤면 세계에 드러내놓고 자랑할 만한 서울의 ‘랜드마크’로 다시 태어날 명소가 바로 이 시청사 건물이다, 이렇게 당당하게 말씀하셨을 줄 알았는데…(다시 웃음)”
연일 계속되는 시청 앞 광장 촛불집회로 서울시 청사 건물은 이제 세계적으로도 제법 유명세(?)를 타게 됐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두 번째인 셈.
서울 ‘동대문구정보화도서관’의 이우정 관장과 최근 서울시 의회 한나라당 당 대표 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허준혁 서울시 의원(서울 서초구)이 2일 오전 이곳 서울시 청사 앞에서 나란히 마주했다.
대담기획은 역시 맞불을 놔야 제 맛이 나는 법. 하지만 책벌레 고수들의 화법에는 피해가는 지략 역시 반전이 있어 재밌다. 최근의 미국산 쇠고기 사태 화제가 3년 뒤 서울의 ‘랜드마크’ 논리로 버전업될 수 있었던 이유는, 여러 우여곡절 끝에 지난 5월 20일 서울시청 신청사가 마침내 착공됐고, 2011년 신청사가 완공되면 ‘구청사’는 서울의 대표도서관으로 완전 탈바꿈되기 때문이다.
이우정 관장(이하 이우정) : 도서관인의 한 사람으로서 서울시와 서울시 의회에 크게 감사드리지 않을 수 없는 대목입니다. 건물 자체를 없앨지도 모른다, 오페라하우스를 유치하겠다, 시사박물관이 들어서게 된다, 등등 여러 논란 끝에 대한민국 중심부의 상징적 건물인 이 시 청사 건물을 공공도서관화하겠다는 최종 발표를 듣고는 그날 밤 몇몇 출판인들과 도서관 사서들이 만나 기분 좋게 취할 수 있었습니다. 그 뒤 저 역시 계속해서 지금까지, 공공 도서관 시설이 들어서면 이 건물이야말로 서울의 ‘랜드마크’고, 대한민국의 ‘랜드마크’다, 그런 생각을 해왔는데, 허 의원께서도 역시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군요.
허준혁 서울시 의원(이하 허준혁) : 2006년 시의원이 되고 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지역구인 서초구 관내의 한 초등학교에 작은 도서관을 만들어 준 일이었는데요. 꼬마들로부터 받은 100여 통의 감사 편지,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하도 많이 듣는 경구라 조금 식상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책 속에 미래가 있다’고 한 말, 100번, 1000번을 들어도 틀리지 않는 얘깁니다. 대한민국의 미래, 서울의 미래를 전 세계에 상징성 있게 강조하는 데 이만큼 좋은 효과도 없겠다는 생각이며, 실제로도 접근성이 용이해서 서울의 대표도서관으로 기능하는데 아주 적절했다는 판단이 이 시청사 건물의 공공도서관화 결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이우정 : 맞는 말씀입니다. 왜, 이런 말도 있지 않습니까? 한 나라의 과거를 보려면 박물관에 가야 하고, 한 나라의 현재를 보려면 시장엘 가봐야 될 것이며, 한나라의 미래를 보려면 도서관에 가야 한다는 말들을 하는데요. 어떤 면에서 이번 결정은 하나의 의미 있는 사건입니다. 아시다시피, 서울시 청사야 말로 일제의 대표적 잔재물 가운데 하나 아닙니까? 1926년에 건립돼 82년쯤 된 걸로 알고 있는데, 건국 60주년을 맞아 극일은 물론, 한층 더 또렷하게 업그레이드되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보여 주는 것 같아 2011년이 하루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 간절합니다.
허준혁 : 같은 생각입니다. 김덕룡 의원을 모시고 국회에서 15년 넘는 보좌관 생활을 하면서 하나 분명하게 느낀 것은 ‘책 속에 모든 길이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국회도서관을 찾아 책 많이 읽는 의원들이 역시 국민을 위해 반듯한 의정활동을 하시고 있다는 걸 느낀 건데, 그런 영향을 받아서 그런지 저 또한 가급적이면 손에서 책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 중입니다. 그런 점에서 시의회 가까이에 서울시 대표도서관이 세워진다 하니, 저 역시 벌써부터 2011년이 무척 기다려지는 중이고요. 책벌레 동료 시의원들 역시 똑같은 생각을 하는 만큼 초기 단계부터 상징성 이상의 효과를 얻는 공공도서관으로 정착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이우정 : 허 의원께서 매주 직접 써서 홈페이지에 올려놓고 있는 ‘허준혁의 아침편지’, 잘 읽고 있습니다. ‘문화청년 허준혁’이란 이미지에 걸맞은 글들이 무척 따뜻하게 다가오던데, 그런 것들 모두가 허 의원께서 책과 가까이 하며 살아 온 평소의 습관 때문이었지 않았겠나, 새삼 느껴봅니다. 보도를 통해 보니까 이번에 큰 일 하나를 시작하셨던데요…?
허준혁 : 네. 40대 초선의원으로서는 조금 험준하다 싶은 산 하나를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요즘 서울시 의회 한나라당 대표직에 도전 중인데요, 서울시 행정 하면…, 일반 시민들이 언제부터 왜 그렇게 됐는지는 몰라도, 60대쯤 되시는 분들이 이끌어 가야 되는 것처럼 고정관념화 돼 있어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오세훈 서울시장도 40대 아닙니까? 세계적으로도 열 손가락 안에 꼽힐 만큼 역동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국제도시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곳 서울입니다. 40대 서울시장에 40대 여당 당 대표 체제를 통해 지금보다도 훨씬 더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서울특별시를 만들어 보고자 출사표를 던진 건데, 많은 분들이 적극 성원해 주고 있어 초선이란 한계를 잘 극복하는 중입니다.
이우정 : 좋은 결과 있기를 기대합니다. 그러나 당 대표가 되고 나면 워낙 바빠져서 공공도서관 정책 같은 것은 뒷전으로 밀리는 거 아닙니까?(웃음)
허준혁 : 아마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이 관장께서 도서관 정책과 관련해 여러 모로 한 수 가르쳐 주실 것이고, 그런 뒤 도서관계를 대표해서 저에 대한 정책 감사까지 나서 주실 테니, 그러고 싶어도 어디 그럴 수 있겠습니까?(웃음) 지금 사실은요, 서울 한복판에서 조류독감이 터졌는데도 시의회 차원에서는 아무 이야기가 없습니다. 미국산 쇠고기 파동 문제 또한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나는 당대표가 되고 나면 의원총회를 자주 열어 서울시민들이 지금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수시로 공론화 할 생각입니다. 공공도서관 정책 또한 당연히 마찬가지입니다. 기회가 되면, 관장님 같은 전문가들을 초청해서 동료의원들과 함께 서울시민들의 삶의 질 향상과 절대적으로 연관돼 있는 공공도서관 문제며 공연, 전시 등의 각종 문화 정책들에 대해서도 적극 공부해 나가겠다는 것이 40대 초선의 당 대표직 출사표 이유 중 하나입니다.
이우정 : ‘문화청년’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의정활동을 하시는 분인 만큼, 말씀하신대로 잘 해 나갈 거라 믿습니다. 공공도서관 문제는 지방자치단체와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습니다. 대학에서 문헌정보학을 전공한 뒤 지금까지 20년 넘게 도서관과 함께 살아왔는데요, 대학도서관에 몸담고 있을 때만 해도 자세히 몰랐던 문제들을 공공도서관으로 옮기면서부터 하나하나 체득하게 됐지요. 가장 큰 문제는, 오늘 이 만남을 주선한
허준혁 : 아주 중요한 말씀인 거 같습니다. 2011년 서울시 청사가 서울시 대표도서관으로 개관하게 될 때도 크게 참고할 만한 사안이란 생각이고요. 얼마 전 한 모임에서 도서관 정책 관계자로부터 들은 얘깁니다만, 지자체들이 공공도서관의 관장 자리에까지 깊이 개입해서 이른바 자기 사람을 심는 낙하산 인사를 하고 있다면서요? 말하자면 초등학교 교장선생님 자리에 교직 경험이 전무한 사람을 앉히는 꼴인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는지 의아했습니다. 그 점은 사실 제가 아는 한 현행 ‘도서관법’을 위반하고 있는 것이기도 하지요?
이우정 : (웃음)허 의원께서 그렇게까지 깊이 있게 말씀해 주시니, 부디 당 대표에 당선되시기를 바라마지 않을 수 없게 됐습니다. 공공도서관 문제를 아는 정치인들이 많이 나와서 우리들의 현안 문제를 속 시원히 풀어 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기 때문인데요. 현행 ‘도서관법’ 30조 1항에 나와 있는 ‘공립 공공도서관의 관장은 사서직으로 임명한다’는 자구 내용 그대로라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지요. 하지만 일전에
정치인 저술물 중 선거를 앞두고 급조한 기획도서는 가급적 공공도서관에서 구입을 자제한다는 이우정 관장의 단호함에 ‘그건 에세이집’이라고 응수하며 작품성으로 도전하겠다는 허준혁 서울시 의원. 두 사람은 서울시 청사의 대표 도서관화를 앞두고 한국 공공도서관의 현주소를 깊이 있게 살펴보는 좋은 계기였다. 특히 ‘윤봉길의사기념사업회’ 이사이자 ‘매헌공원 명칭변경 추진위원장’으로서 윤 의사의 탄신 100주년을 기념하는 동시에 서울에서 유일하게 공공도서관이 없는 서초구민을 위해 ‘매헌도서관’을 추진하겠다는 얘기는 이 날 만남을 통해 처음 발표하는 것이라고 허 의원이 말하자 이 관장이 박수로 화답하던 분위기가 사뭇 인상적인 자리였다. 먼 뒷날 언젠가 이들은 한 사람은 서울시청 신청사에서, 다른 한 사람은 그 곁의 도서관에서 함께 어울리며 서울의 미래를 만들어 갈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었다. 그러나 꼭 그것이 아니어도 괜찮겠다. 책을 통해 자신들의 미래를 생각하며 다른 이들의 미래까지도 챙길 줄 아는 두 사람의 대화가 계속되는 한, 서울 하늘은 늘 푸르를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