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텁지근한 날씨에 이른바 은행피서도 하고 세금도 낼 겸 시중은행을 찾은 김대용(34) 씨는 실망감만 가득 안은 채 은행 문을 나와야 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빵빵한 에어컨’ 덕에 은행 갈 때마다 피서 기분을 느낄 수 있었지만, 올해는 기대보다 썩 시원한 기분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넥타이를 맨 깔끔한 정장과 유니폼을 입고 일하던 은행 직원들이 간편한 티셔츠 차림으로 일하는 모습을 보고 어색한 느낌마저 들었다고 한다. 김 씨는 “고유가라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이처럼 피부로 직접 느끼기는 처음인 것 같다”며 “은행들이 비용절감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니 나도 좀 더 아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은행 직원들이 반팔 티셔츠를 입고 일하는 모습에 대해 “처음에는 다소 어색했지만 시원하고 편해 보여 보기 좋았다”고 덧붙였다. ■은행들, 고유가 극복 에너지 절감 운동 시중은행들은 이처럼 고유가 시대를 극복하기 위해 은행장이 앞장서 전 직원이 에너지 절감 운동을 펼치고 있다. 은행 실내 온도가 예년보다 높아 일부 고객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지만, 에너지 절감 명분에다 편한 티셔츠 차림으로 고객을 반겨주는 모습에 대해서는 대체로 긍정적이라는 평가다. 올해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티셔츠 입기 운동을 가장 먼저 시작한 곳은 신한은행. 신한은행은 6월 17일부터 은행장을 비롯한 전 직원이 똑같은 티셔츠를 맞춰 입었다. 또 본점은 물론 전국 지점에서 실내 온도를 26℃에 맞춰 시행하고 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실내 온도 유지는 은행연합회를 중심으로 국내 시중은행들이 대부분 시행하고 있다”고 전하고 “티셔츠 복장은 에너지 절약에 동참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간편하게 착용할 수 있고 세탁이나 다림질이 줄어드는 장점도 있다”고 말했다. 신한은행의 티셔츠 복장은 작년에 이어 올해로 두 번째다. 작년에는 대부분 외면했던 국민·우리·하나은행 역시 올 7월부터 실내온도 26~28℃ 유지하기와 넥타이를 매지 않는 일명 노타이와 티셔츠 입기 운동에 동참할 예정이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작년에도 에너지관리공단에서 협조문을 보내와 은행 내 적정온도 지키기 운동에 동참했지만 올해는 더 엄격하게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국민은행이 노타이·반팔 티셔츠 입기 운동에 동참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고유가 시대를 맞아 에너지 절감 운동에 돌입한 은행들. 그렇다면 그 속내는 어떨까? 물론 매우 엄격하다. 단순히 보이기 위한 운동에 그치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우리은행은 직원들을 대상으로 자동차 5부제와 3층 이하 계단 이용하기를 이미 시행하고 있으며, 점심시간과 밤 10시 이후에 모든 사무실의 형광등을 일괄 소등하고 있다. 국민은행도 점심시간에는 형광등을 소등하고, 간판 소등 시간을 2시간 단축했다. 또 1회용 종이컵 대신 개인컵을 사용하도록 하고, 이면지 사용을 시행 중이다. 신한은행 역시 복도 전등 끄기, 간판 소등시간 단축, 업무용 차량 1회 대중교통 이용하기 등의 방법으로 에너지 절감에 동참하고 있다. 하나은행도 △승강기 운행횟수 감축 △실내온도 25도 유지, △직원 개인 냉난방기 사용 자제, △주간 창가 및 점심시간 소등, △야근 때 필요 공간 외 전등 소등, △공용 공간 절전, △간판 점등 시간 단축 등 다양한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기업은행은 절전 시스템을 설치해 코드를 뽑지 않아도 전원 코드를 뽑은 것과 같은 효과가 나도록 했다. 대외 프리젠테이션을 제외하고는 은행 내부에서 파워포인트 작성도 금지했다. 컴퓨터 작성시간 및 출력량을 절감하자는 차원이다. 엘리베이터 3대 가운데 1대는 점심시간과 출퇴근 시간만 운행한다. ■외국계 은행들, 에너지 절약 캠폐인 나서 일부 외국계 은행들도 에너지 절약 캠페인에 나서고 있다. 우선, 한국씨티은행은 지난해부터 ‘1시간 전등 끄기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주요 본부건물의 사무실 전등과 간판 조명 등을 전 세계적으로 1시간 동안 동시 소등해 에너지 절약에 대한 분위기를 환기시킨다는 목적이다. HSBC은행은 ‘CO2 다이어트 캠페인’으로 직장은 물론 직원들이 각 가정에서 실천할 수 있는 팁들을 유형별로 제시하고 있다. HSBC 관계자는 “HSBC은행은 2005년에 전 세계 1만여 개 HSBC 사무실에서 대기 중으로 내뿜는 이산화탄소의 양을 0으로 만든다는 ‘탄소중립은행’ 개념을 선포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저축은행들도 에너지 절감 차원에서 각종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저축은행중앙회 관계자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노타이 복장을 적극 추진 중에 있고, 가급적이면 자가용보다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도록 격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직까지 노타이·반팔 티셔츠 입기 운동에 동참한 저축은행은 없지만, 대부분의 저축은행들은 고객들의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에너지를 절감할 방안을 찾기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저축은행의 한 관계자는 “오후 5시 이후 에어컨 끄기 및 대중교통 이용하기 운동을 시행하고 있지만, 고객을 상대로 에너지 절약 운동을 하기는 쉽지 않다”며 “이는 시중은행보다 지점이 적어 고객들이 불편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객 피해 없이 에너지도 절감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