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업(계약서)은 기본이에요. 당연히 업을 쓰셔야죠. 최소 2,000만~3,000만 원 높여서 계약서를 써둬야 나중에 양도세 부담을 줄일 수 있어요.” 회사원 박투자 씨(38)는 최근 인천 가정오거리 근처의 낡은 집 1채를 1억3,000만 원에 샀다. 그러나 중개업자의 권유에 따라 계약서상 매입가격은 1억5,000만 원으로 높여 적었다. 단기차익을 노리고 투자에 나선 박 씨는 ‘업계약서’ 작성으로 취득ㆍ등록세 부담이 조금 늘긴 하지만 조만간 되팔 때 양도세를 줄일 수 있다는 말에 귀가 솔깃했다. # 회사원 정단타 씨(35)는 지난해 서울 화곡동에 있는 빌라(지하 1층) 1채를 9,000만 원에 매입했다. 당시 중개업자의 권유대로 ‘업계약서’를 쓰면서 매입가격은 1억2,000만 원으로 높여 적었다. 정 씨는 올 초 이 빌라를 1억6,000만 원에 팔았다. 1년도 안 돼 7,000만 원을 남겼지만, 업계약서 덕에 양도차익을 4,000만 원으로 줄여 세금을 덜 낼 수 있었다. # 경기 이천시에 있는 임야 1만6,066㎡를 1억4,500만 원에 매매해 놓고 2억1,700만 원에 거래했다고 신고한 매도·매수자가 적발돼 각각 87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받았다. 나중에 임야를 되팔 때 양도세를 줄이기 위해 매수자가 ‘업계약서’ 작성을 요구한 사례다. 부동산 매매를 하면서 실거래가격보다 낮추어서 신고하거나 높여서 신고하는 소위 ‘다운(down)계약서’나 ‘업(up)계약서’를 작성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지난해부터 실거래가 신고제도가 의무화되다 보니, 매매 관련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 쓰는 편법이다. 업계약서는 실제 계약금액보다 가격을 높여 시·군·구청에 신고하기 위해 작성하는 이중계약서다. 이를 이용하면 매도인이 양도소득세 비과세 대상인 1가구 1주택자 등인 경우 양도세 부담을 안지 않으면서, 매수인이 나중에 전매할 때 양도소득세를 줄일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최근 서울 화곡동·목동, 인천 등 재개발 지분이 거래되는 곳에서 업계약서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전에는 부동산 시장에서 매도자가 양도세 부담을 덜기 위해 다운계약서를 요구하는 사례가 많았다. 하지만, 재개발 지분 가운데는 원주민이 수년 간 보유한 6억 원 이하의 양도세 면제 매물이 많아, 매수자 요청에 따라 업계약서를 쓰는 사례가 늘고 있다. 매도자 입장에서는 계약금액을 실제 거래금액보다 다소 높여줘도 양도세 부담이 없기 때문에 별다른 거부감 없이 업계약서 작성에 동의한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화곡동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업계약서를 쓰면 매입 직후 다시 팔 때 아예 양도세 부담이 없는 경우도 많아 단타매매를 해본 투자자들이 업계약서를 요구하고 있다”며 “매도자에게도 업계약서 조건을 달아 사겠다는 사람이 있다고 귀띔하면 대부분 업계약서를 써준다”고 말했다. ■ 업계약서로 인해 가격 거품 악순환 문제는 업계약서가 재개발 지분 가격 상승을 부추긴다는 점이다. 업계약서가 몇 차례 돌면 업계약서 가격이 실제 가격으로 굳어져 나중에 찾아오는 투자자들은 부풀려진 가격에 지분을 매입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실제로 업계약서를 먼저 쓴 사람은 이득을 보지만, 그 피해는 이보다 늦게 투자한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간다. 화곡동의 한 중개업자는 “중개업소들은 기존에 거래한 업계약서를 영업수단으로 활용하기 때문에 일반 수요자들은 그대로 믿을 수밖에 없다”며 “업계약서가 돌기 시작하면 가격이 2배로 뛰는 건 시간문제”라고 털어놨다. 인천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도 “어떤 집이 얼마에 팔렸다는 소문이 돌면 주변 시세가 들썩이기 때문에 업계약서가 지분값 상승의 요인이 된다”며 “업계약서로 인해 가격이 금세 2배로 뛰어 오르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재개발 지분뿐 아니라, 6억 원 미만의 일반 아파트 거래에서도 업계약서를 요구하는 투자자들이 적지 않다. 서울의 노원·도봉 등 올 들어 집값이 많이 오른 강북 일대에서 주로 나타난 현상이다. 매도자가 6억 원 이하 1가구 1주택자인 경우 양도세가 면제되므로 가격을 좀 높여 계약서를 작성하더라도 별다른 불이익이 없다는 점 때문에 매수자들이 이를 공공연히 요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재개발 지분 거래에 비해 아파트 거래에서 업계약서가 작성되는 사례는 적다. 노원구 상계동 주공6단지의 한 중개업소 관계자는 “투자목적으로 소형 아파트를 사려는 투자자들이 주로 업계약서를 요구하지만, 매도자들이 꺼리기 때문에 업계약서 작성이 드물게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관할 구청 단속 어려워… 정부 차원 단속 강화해야 이런 실태임에도 업계약서의 단속을 맡고 있는 관할 구청에서는 사실상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구청 지적과의 한 관계자는 “각 거래 당사자가 증빙서류를 가지고 와서 신고하지 않는 한 구청이 적발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게다가 업계약서는 그 성격상 다운계약서와는 달리 차후에 밝혀지기도 힘들어 단속 자체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이와 관련, 정부는 지난 4월 노원구·도봉구 등 조직적인 아파트 시세 담합 의혹이 일고 있는 지역에 대해 집값 담합, 호가 조작, 다운 및 업계약서 작성 등에 대한 단속을 실시한 바 있다. 아울러, 국토부는 작년 1~3월 신고된 부동산 실거래가에 대한 단속을 벌여 허위 신고 36건, 허위 신고자 60명을 적발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국토부와 협의해서 현장에 편법·불법 중개업소 단속 인력을 투입해 단속했다”며 “지자체가 단독으로 거래 내역을 확인하는데 한계가 있어, 지자체와 정부·국세청 등이 공동으로 활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하루 빨리 구축돼야 한다”고 말했다. 현행 ‘공인중개사의 업무 및 부동산 거래 신고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실거래가격으로 신고하지 않거나 허위 신고할 경우 매도자와 매수자·중개업자는 취득세의 3배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받게 된다. 또한, 거래 당사자가 중개업자에게 신고를 하지 못하게 하거나 허위 내용을 신고하도록 요구했을 경우에는 500만 원 이하의 과태료 처분을 받게 된다. 그러나 업계약서가 광범위하게 만연한 상황에서 실제 거래가격 등을 일일이 점검해 단속하기는 쉽지 않은 현실이어서, 실거래가를 검증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 등의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