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시행예정인 자금시장통합법(자통법)을 앞두고 국내 금융시장이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고 있다. 우선, 은행과 증권·보험 등 금융업권 간 각종 장벽이 무너지는 등 금융 겸업화가 진행될 예정이다. 여기에 정부가 인터넷 전문은행 설립 방안을 추진하고 있어 향후 고객은 좀 더 다양하고 높은 금리를 제공받을 수 있는 금융 상품을 선택할 수 있는가 하면, 금융사들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다면, 이같은 경쟁이 치열해지는 궁극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상, 굳이 자통법 시행을 안 하더라도 국내 금융시장은 꾸준한 성장세를 보여 왔다. 예컨대, 파이는 이미 정해져 있는데 금융사 간의 나눠먹기식 전략은, 전문가들마다 이견의 차이는 보였지만, 나름대로 체제를 구축해 오며 무난한 매출신장세를 기록해 왔다. 더욱이, 자통법과 인터넷 전문은행이 본격화되면, 사실상 YS 정권에서 시행한 금융실명제법이 사라질 수 있어, 흔히 상위 1% 내에 있는 대기업 임원들과 정부 고위층들의 비자금 여파가 또 다시 고개를 들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을 보면, 서민들로서는 굳이 반길 수만은 없는 법안인 셈이다. 하지만, 국내 금융사가 아닌 세계 금융사들이 대거 몰려온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물론 전문가들마다 주장은 다르겠지만, 소위 우물 안에서 놀던 현 시점과는 차원이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는 시나리오다. 말 그대로, 국내는 세계로 세계는 국내로 몰리는 이른바 세계 금융 겸업화가 본격화되는 셈이다. 국내에 진출하려는 외국계 대형 은행들은 보다 쉽게 진출하기 위해 M&A(인수합병) 전쟁에 나서게 되고, 여기에 자극을 받은 국내 은행들은 고객을 빼앗기지 않기 위한 다양한 마케팅이 전개될 것이라는 시나리오다. 물론, 현재 국내 시중은행들은 우리·산업은행·농협·수출입은행 등 몇 개의 은행만 제외하고는 대부분 외국계 은행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외국계 은행들이 대거 한국에 진출해 나름대로 활발한 영업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국민들은 아직까지 외국계 은행이라는 인식보다는 한국계 은행이라는 인식이 더 강하다. 강정원 국민은행장, 신상훈 신한은행장, 김정태 하나은행장 등 업계 CEO 등이 대부분 한국인들이고, 실질적인 주주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운용하는 전략을 펼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은행권의 한 전문가는 “한국인들의 정서를 반영해 외국인 대주주들이 정면에 나서지 않은 것 같다”며 “국내 은행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한 일종의 마케팅인 것 같다”고 진단했다. ■ 외국계 은행 한국진출 11년…성적표는? 그렇다면, 외국계 은행들이 국내에 본격적으로 상륙한 시기는 언제였을까? 11년 전 국제통화기금(IMF) 시기를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우리나라는 심각한 외환위기를 겪어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집안에 숨겨둔 금 모으기 운동을 펼쳤으며, 정부는 하나·한미·조흥·외환은행 등 굵직굵직한 은행들의 지분을 대거 외국 펀드 투자자에게 팔아 넘겼다. 결국, 미국·유럽 등 주요 금융선진 국가들은 위기를 겪고 있는 국내 금융시장에 진출할 절호의 기회를 맞은 셈이다. 당시만 해도, 국내 금융시장에서는 해외 선진국가의 금융기관이 들어오면 국내 금융시장이 선진화되는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견해의 차이는 있지만, 결론적으로 기대만큼 큰 부응을 못했다는 게 대다수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우선, 외국계 은행 계열사를 살펴보면, 제일은행이 미국계 펀드 뉴브리지캐피탈에 넘어갔고, 한미·외환은행이 씨티그룹·론스타펀드에 잇따라 인수됐다. 하지만 은행업계가 4대 국내(국민·우리·신한·하나) 은행과 3대 외국계(외환·씨티·SC제일) 은행 구도로 재편된 후 양자 간 대결에서 외국계 은행들은 밀리는 형세를 보여 왔다. 한때 20%(2004년 말 기준)를 웃돌던 3대 외국계 은행의 시장점유율은 2005년 이후 계속 떨어져 10%대 초반으로 축소됐다. SC제일은행은 2005년 4.78%에서 2007년 6월 말 3.73%로, 외환은행은 5.32%→4.73%, 씨티은행은 3.78%→3.37%로 각각 떨어졌다.
■ 국내 은행들에 자극제…영업실적은 ‘아직’ 수익성을 살펴보자면 국내파인 우리은행과 외국계인 한국씨티·SC제일은행을 비교할 때 외국계가 크게 잘한다고 말하기 힘들다. 올 1분기(1~3월)의 직원 1인당 순이익은 씨티은행이 6400만 원, 우리은행이 5800만 원을 기록했다. 이 수치만 보면 직원 생산성은 씨티 쪽이 나은 것 같지만, 수익구조를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우선, 예금·대출금리 차이(예대마진)가 우리은행은 2.39%포인트지만, 씨티은행은 3.08%포인트에 달했다. 고부가가치 서비스보다는 금리 떼어 이익을 내는 ‘금리장사’를 많이 했다는 얘기다. 신용등급 고객에 대한 신용대출(무보증 1년 대출 기준) 금리도 우리은행은 연 8.08%이나, 씨티은행은 13.0%에 달한다. 부실대출 비중을 보여주는 고정 이하 여신비율은 우리은행(0.63%)보다 씨티은행(0.68%)이 약간 높다. 사회공헌 역시 외국계가 상대적으로 인색한 편이었다. 씨티와 SC제일은행이 지난해 지출한 기부금은 이익금 대비 각각 0.64%, 0.38%에 그쳤다. 국내 시중은행들의 평균 기부금 비율(1.2%)보다 훨씬 낮다. 하지만, 국내 은행들이 수익성 중시 경영으로 전환하고, 선진화된 대출승인 시스템을 갖추게 된 것 등은 외국계와의 경쟁 구조가 큰 자극제가 됐다고 말하는 전문가도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김현욱 박사는 “외국계와의 경쟁에 대응하기 위해 국내 은행들은 대형화 전략을 통한 몸집 키우기에 나섰고, 외국의 선진 금융기법을 벤치마킹해 실력을 키웠다”고 말했다. 금융연구원의 또 다른 연구원은 “외국계가 낯선 시장에 적응하느라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을 자제했지만, 전략적 차별화를 통해 차근차근 미래를 준비하는 면에선 국내 은행보다 분명히 낫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