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거주하는 직장인 강원래 씨는 8월 9일부터 17일까지 9일 간 휴가를 맞아 부산 해운대로 가족들과 여행을 다녀왔다. 강 씨는 며칠 푹 쉴 수 있다는 생각에 7월 초에 비수기보다 거의 2배가 넘는 비용을 들여 24평형 펜션을 예약했다. 오랜만에 가족들과 좋은 추억을 만들기 위해 외식도 할 겸 횟집에 갔는데, 자릿세로 4만5000원을 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아이들이 졸라서 육개장 컵라면을 샀는데 1개에 3000원, 비스킷 만한 비누가 1000원, 여기에 파라솔 대여료도 2만 원이나 됐다. 따지고 보면 숙박비용이 수십만 원대로 가장 큰 부담이 될 법하지만, 강 씨는 컵라면·파라솔 요금에 대해서만 조금 억울해할 뿐 숙박료는 “성수기 시즌이니까”라며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강 씨뿐만이 아니다. 피서지를 이용하는 대부분의 시민들이 평소보다 몇 배나 오른 바가지 요금을 내면서도 오히려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돈을 들고서도 방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는 피서객들도 부지기수다. 직장인 나영희 씨는 8월 15일 1박2일로 친구들과 해수욕장에 가기 위해 인터넷으로 숙소 예약을 알아봤지만, 쉽지가 않다. 숙박업소마다 비수기에 비해 몇 배는 비싸면서도 이미 성수기 예약이 끝났기 때문. 할 수 없이 불편을 감소하고 인근 모텔을 이용할 생각이다. 결국, 바가지 요금에다 서비스도 제대로 받을 수 없는 숙박을 선택한 셈이다. ■ 바가지 상술 올해도 여전 매년 성수기만 되면 나타나는 바가지 상술이 또다시 기승을 부리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바가지 요금에도 이용자들은 계속 증가한다는 것. 실제로 통계청과 한국은행이 최근 발표한 자료를 보면, 7월 숙박료가 전달에 비해 14.3%나 치솟았다. 전체 도시의 숙박료 상승률은 1.5%이고, 서울 0%, 경기도 0.3%, 제주도 0%, 경상남도 1.2% 등이다. 지난달 전 도시의 찜질방 이용료는 평균 1.4% 상승했지만, 부산은 8.9%나 올랐고, 충남 4.5%, 강원도 3.3%, 인천 3.2% 등이었다. 노래방 이용료는 서울·부산·대구 등 대부분 지역의 상승률이 0%였으나, 강원도만 1.8% 올랐다. 김밥의 경우 전체 도시 평균 상승률이 1.7%임에도 불구하고 부산은 11.8% 상승했다. 강원도 지역은 특이하게도 김밥 값이 전달보다 3.9% 내렸다. 렌터카 이용료 역시 6월 0%에서 7월 5.3%로 뛰었다. 특히, 국내 항공 여객료는 전달보다 31.8%나 치솟았다. 휴가철에 일부 서비스 품목을 중심으로 한 물가 급등 현상은 8월에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은이 최근 발표한 ‘7월 생산자물가 동향’을 보면, 여관 숙박료 상승률은 5~6월 0%였으나, 7월에는 5%를 나타냈다. 부산 해운대에 위치한 한 숙박업계 관계자는 “비수기 때는 이용객들이 거의 없는데, 7월부터 방이 100% 차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하지만, 기껏해야 8월 말이면 또 비는 방이 속출할 것”이라고 토로했다. 그렇다면 음식은 어떨까? 숙소를 펜션이나 민박으로 정했다면, 음식을 직접 해먹을 수 있지만, 숙소를 정하지 못하고 여행을 온 경우라면 대부분 사 먹어야 한다. 인근 횟집의 경우 같은 메뉴라도 싸게는 6만 원부터 10만 원까지 식당마다 가격이 차이 난다. 서울 지역이 평균 3~4만 원대라면 2~3배는 훌쩍 넘는 셈이다. 그런데, 상황이 이러한데도 이용자들은 더욱 늘어나고 있다. 특히, 최근 고유가와 경기 침체로 해외여행을 계획한 이용자들이 대부분 국내 여행으로 발길을 돌린 영향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일반적으로 공급은 부족한데 수요가 늘면 가격은 급등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경제학이 피서철에 그대로 반영되는 셈이다.
■ 지자체, 협정요금 마련… 바가지 요금과 전면전 물론, 최근 들어서는 지자체를 중심으로 바가지 요금 퇴치에 나서 지역 이미지를 높이는데 앞장서고 있다. 강원도 강릉의 경우 ‘숙박 협정요금제’를 마련하고, ‘관광 강릉’의 이미지를 높이는데 노력하고 있다. 이 제도는 지난해 경포와 정동진의 126개 숙박업소에서 처음 운영됐고, 올해 시의 모텔급 이상 306개 숙박업소로 확대 운영되고 있다. 관광객은 숙박업소 입구에 표시된 협정요금제 가격을 확인하고 방을 얻을 수 있다. 관광객은 업소 측의 바가지 요금도 없고 시비도 생기지 않아 좋다. 시는 올 여름 성수기를 앞두고 일반호텔·모텔 등 304개 업소를 대상으로 위생 서비스를 평가해, 10%인 30개 업소를 최우수업소로 지정하고, 30%인 91개 업소를 우수 업소로 지정했다. 경남 통영시도 피서철을 맞아 민박업소의 바가지 요금과 불친절에 대한 특별지도에 나서고 있다. 이번 점검은 통영지역 내 360여 개의 민박업소를 대상으로 불법 바가지 요금을 사전에 에방하고 통영 관광 이미지 보호를 홍보할 방침이다. 앞서 점검에서는 불친절 부당요금 2건과 인터넷 관광불편 신고 3건, 기타 청소상태 불량 등 12건을 적발해 현장에서 시정조치하기도 했다. ■ 나에게 맞는 피서법을 찾아라 반면, 성수기 시즌인데도 ‘자린고비’ 피서객 때문에 울상을 짓는 상인들도 늘어나고 있다. 연일 30도를 웃도는 찜통더위로 피서철이 본격화된 지난달 31일, 청정 계곡인 지리산 뱀사골에서 상가를 운영하는 김모 씨는 연방 부채질을 해대며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최근 심각한 경제난의 여파가 피서지까지 미치고 있다. 뱀사골은 본격적인 피서철이 아니라도 주말이면 자연 속에서 휴식을 취하려는 가족단위 행락객이 넘치고, 예년 이맘때면 발디딜 틈이 없을 만큼 각광을 받는 곳이다. 그러나 본격 피서철인데도 지나는 차량도 드물고, 인근 가게들은 이따금씩 찾아 드는 손님을 기다리며 파리만 날리고 있다. 더구나, 경제난의 여파로 피서객들도 지갑을 열지 않는 자린고비 피서를 해 상인들은 이래저래 울상이다. 대부분의 피서객들이 먹을 것과 피서에 필요한 도구를 모두 가져오는 바람에 상가를 찾지 않고 있다. 지난달 31일 전남 해남군 송지면 송호리 해수욕장. 백사장에는 해수욕을 즐기려는 가족단위 피서객들이 곳곳에 돗자리를 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데도, 인근 상인들은 경기가 최악이라며 한숨만 내쉬었다. 이곳에 설치된 유료 샤워장 4곳과 10여 곳의 식당을 비롯한 수많은 노점상들이 한철 장사를 기다리고 있지만, 피서객들은 도무지 지갑을 열지 않고 있다. 파라솔이나 텐트·돗자리를 빌려주는 상점도 미리 준비해 온 피서객들 때문에 발만 동동 구르기는 마찬가지다. 이 같은 현상은 대부분의 피서지에서도 비슷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최근 경제난의 심각성을 반영하고 있다. 송호리 해수욕장 관계자는 “당일 피서객이 많은데다 먹거리를 준비하는 등 알뜰 피서가 확산돼 식당의 하루 매출액이 지난해 같은 기간의 3분의 1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한 경제 전문가는 “숙박업소의 경우 손님이 있건 없건 방은 20~30개 계속 유지해야 하는데, 손님이 없으면 그냥 비어 있게 된다”며 “이런 재화일수록 수요가 많아지면 가격은 많이 오르고 수요가 떨어지면 내려가게 마련”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비용구조와 수요 공급의 특성에 따라 성수기와 비수기의 요금이 결정된다는 뜻이다. 선택은 소비자의 몫이다. 금싸라기 같은 휴가. 남들이 다 가는 시기에 남들이 다 가는 곳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방법을 찾는다면 더욱 즐거워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