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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썩는 ‘풀뿌리 민주주의’

폭행·성추문·도박·뇌물·의정비 자가인상…끝 모르고 추락하는 지방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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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80호 박성훈⁄ 2008.08.19 16:47:19

올해 2월 초, 서울 강북구 의회는 의원 한 명을 제명하려다 시민들의 항의로 무산된 바 있다. 이 일의 전말은 이렇다. 진보신당 최선 의원은 지난해 의정비를 인하하고 전년도 인상분을 반납하자는 운동을 펼쳤다. 최 의원은 의정비 인하를 위해 ‘강북 주민발의 서명운동’을 펼쳐 7000여 명의 서명을 받았다. 이 같은 모습이 구의회 동료들의 눈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평소 최 의원의 소신 있는 행동을 눈엣가시로 여긴 의원들은 최 의원이 조례를 발의해도 ‘최선이라서 싫다’는 식으로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기도 했다. 일부 의원들은 ‘악수 안 하기’ ‘밥 같이 안 먹기’ 등 유치한 행동으로 최 의원을 따돌리기도 했다. 결국 동료 의원들은, 의정비 인상에 반대하고, 인상된 의정비를 반납하고, 또 의정비 인상의 부당성을 시민과 언론에 알렸다는 이유로 강북구의 회에 징계결의안을 상정하고 본회의를 열기로 했다. 구의원의 2/3 이상이 찬성하면 제명도 가능했지만, 지역주민들이 의회 앞에서 거세게 항의해 무산됐다. 이처럼 유치하기까지 한 지방의원들의 작태에 국민들이 한숨을 쉬고 있다. 우리나라가 세워진 자유당 시절부터 존재해 온 지방의회는 61년 5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군사혁명으로 국회와 함께 해산됐다. 이후 30년이 흘러 노태우 전 대통령의 6.29선언에 따라 부활한 지방의회 제도는 국민 승리의 상징으로 평가된다. 1991년 의욕적으로 출발한 지방의회제도는 출범 17년 만에 위기에 봉착했다. 그간 정계와 학계·시민들의 노력으로 여러 구조적 문제에 대한 정비가 이루어져 왔으나, 지방의회를 채우고 있는 지방 의원들의 개인적인 자질문제가 위기를 초래한 것이다. 김귀환 서울시 의회 의장의 금품공여 사건으로 수면 위로 떠 오른 지방의원의 저급한 자질문제는 ‘지방의회 무용론’으로까지 전개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 “의원의 낮은 자질과 국민 무관심이 현 상황 초래” 민선 4기 지방의회에서 돈봉투 추문·성추행·비리·도박·폭행사건 등 지방의원의 자질을 의심하게 만드는 불상사가 잇따라 터져 나오고 있다. 광주시 의회에서는 후반기 상임위원회 배정을 둘러싸고 의원들이 서로를 폭행하는 추태가 빚어졌다. 서울 도봉구에서도 지난해 의정비 인상에 대한 인터넷 설문조사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구의원이 구청 간부를 폭행하는 일이 발생했다. 청주시 의회 의원들도 올해 2월 북한 개성공단 의원연수 도중 의원들끼리 막말을 주고받다 몸싸움을 벌였다. 돈봉투 추문의 주인공인 김귀환 서울시 의회 의장도 2006년 12월 서울시의 새해 예산을 심사할 예결위원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후배 시의원을 때려 물의를 빚었다. 지방 의원들의 추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광주시 의회의 모 의원은 복지법인 인허가 로비 의혹 혐의로 구속되었다. 다른 모 의원은 성폭력 의혹으로 시민단체로부터 상임위원장과 의원직 사퇴 압력을 받고 있다. 광주시 서구 의회 모 의원은 무면허 뺑소니 혐의로 최근 2심에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6개월을 선고받았다. 같은 의회의 모 의원은 뇌물수수 알선혐의로 재판에 계류 중이다. 동두천시 의회 모 의원은 ‘부동산 투기’로, 경기도 의회 모 의원은 자신의 밭을 야구장으로 불법 용도변경했다가 경찰에 입건됐다. 지난해 1월 전라북도 의회 모 의원은 전주의 한 사무실에서 수배자와 함께 화투를 치다 출동한 경찰에 붙잡혀 도박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다른 의원은 공사 수주를 대가로 건설업자로부터 3억 원을 받아 챙겨 경찰에 붙잡혔다. 지방의회발전연구원 임경호 원장은 이 같은 의원들의 각종 추문에 대해 “의원들의 기본적인 자질이 문제”라며 “인품과 자격을 갖춘 사람이 의원으로 선출돼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경기 경실련의 한 관계자는 “현재의 모습은 지방의원의 낮은 수준과 주민들의 관심 부족 등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곪을 대로 곪은 지방의회가 어떻게 도의 예산 과 정책을 감시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그러나 더 기막힌 점은, 이 같이 비리를 저지른 지방의회 의원들이 구속되거나 입건된 상태에서도 의정비는 꼬박꼬박 지급된다는 점이다. ■ 구속돼도 ‘월급’은 꼬박꼬박 예컨대, 서울시 의회에 따르면, 의장선거 운동 과정에서 금품을 주고받은 김귀환 의장과 시의원 30여 명에게 의정비 567만 원씩이 모두 지급됐으며, 구속된 김 의장에게는 업무추진비 560만 원까지 보태서 지급됐다고 한다. 이는 ‘지방의회 의원신분을 유지하는 한 보수를 지급한다’는 지방자치법의 맹점에 의한 실책이다. 이들은 ‘의원직 상실형’에 준하는 대법원 확정판결이 있더라도 의회에 판결이 통고되기 직전까지는 계속 보수를 받게 될 전망이다. 이 같은 사실이 알려지자, 관련법을 바꿔서라도 비리 의원에 대해서는 의정비를 지급하지 말아야 하며, 비리 의원들을 제명하고 정치권에서 퇴출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공천 때부터 ‘돈·인맥 공천’ 잡음 일각에서는 지방의회의 이 같은 총체적 난맥상은 이미 정당 공천 때부터 예견된 일이라고 지적한다. 지난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도 ‘돈공천’, ‘인맥공천’ 의혹이 전국 각지에서 불거져 나왔기 때문이다. 공천 당시 의혹을 받았던 한나라당 서울시 의원의 일부는 이번 돈봉투 사건에서 김귀환 의장으로부터 금품수수 의혹을 같이 받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5.31 지방선거 출마자 공천이 한창이던 2006년 3월 15일 한나라당 시의원들은 의원총회를 열어 “최근 한나라당 서울시당 공천심사위원회의 공천이 ‘사천(私薦)’으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당시 이들이 밝힌 공천 실태는 지역위원장들의 금품수수 의혹에서부터 친분관계에 의한 공천까지 다양했다. 현역 국회의원의 보좌관이나 중진 의원의 딸은 물론 위원장 친구의 형까지 공천을 따내자, 해당 지역구 시의원은 물론 당직자와 당원들이 합세해 반발한 경우도 있었다. 대구 경북 지역은 정치색이 뚜렷한 지역이라, 능력에 의한 경쟁이 아닌, 인맥이 공천의 관건이었다는 비판도 나온다. 의원들은 당의 공천만 잘 받으면 당선이 100% 보장된다는 인식에 젖어 있어 주민들의 의견을 무시하는 등 민의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 정당공천제 폐해 심각 지방의회의 폐단은 중앙정치가 지방의회를 장악하고 통제하는 ‘칼자루’인 정당공천제 때문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지난 2005년 8월 개정된 현행 공직선거법은 중앙정당이 지방의회 후보자를 공천하도록 하는 이른바 ‘정당공천제도’를 규정해, 정당이 지방의회의 후보자를 선출하는데 적극 개입함으로써 지방의회의 자율성과 독립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지방의회 의원들은 소속 정당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태생적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어 지역을 위해 소신있는 정책을 펴기가 사실상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임경호 원장은 “지방의원들은 당의 공천을 받아 당선되기 때문에 다음 선거에서 또다시 공천을 받으려면 당의 거수기 역할을 할 수밖에 없다”며 정당공천제의 한계를 지적했다. 지방의회 공천권을 거머쥔 현역 국회의원 역시 정당공천제의 폐단을 잘 알면서도 이를 적극적으로 시정하기보다는 자신들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악용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임 원장은 “어차피 공천권을 손에 쥔 사람들이 국회의원이기 때문에, 자신의 측근이나 지지자들에게 공천을 주게 되며, 결국 민의와 거리가 먼 인사들이 공천을 받게 된다”며 “국회의원 입장에서는 이들을 총선에서 선거운동원으로 이용할 수 있게 된다”고 정당공천제의 맹점을 짚었다. 실제로, 지난 18대 총선에서 일부 지방의회 의원들이 해당 지역 국회의원의 무급 선거운동원으로 선거현장에서 뛰었으며, 일부 의원들은 공직선거법을 위반하기도 했다. ■ 중앙정당 공천 독점, 내부 암투 극심 이 같은 문제점은 전국 시·도 의회의 다수석을 한나라당이, 호남 지역을 민주당이 장악하고 있는 상황에서 잘 드러난다. 민선 4기 지방의회는 전국의 16개 시·도 광역의회 중 전남·북과 광주를 제외한 13개 시·도 의회를 한나라당이 싹쓸이했다. 서울시 의회는 106명의 시의원 중 100명이 한나라당 소속이며, 대구시 의회와 경북도 의회도 한나라당 소속 의원이 전체의석 84석 중 75석을 차지하고 있다. 제주도 의회 역시 41명 중 21명이 한나라당이다. 부산시 의회는 47명의 의원 중 41명이 한나라당이고, 대전시 의회는 19명 중 16명이 한나라당이다. 충북도 의회도 64명 중 61명이, 경기도 의회도 118명 중 104명이 한나라당이다. 이 때문에 의장단·상임위원장단 선거를 앞두고 진행되는 한나라당의 내부 경선은 사실상 본선이나 다름없어, 당내에서도 치열한 암투가 벌어지기 일쑤다. 이에 따라, 지방자치단체를 견제하고 지역주민들의 이익을 보호해야 할 지방의회 의원들이 사실상 당내 역학관계에만 몰두하여 소속 정당의 이익을 앞세우고, 대통령 선거·국회의원 선거·지방선거 때마다 당 지지율을 높이거나 당 후보들의 당선을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난 17대 국회에서 기초의원 정당공천제를 폐지하자는 법안도 여러 건 발의됐으나, 막강한 지방의회 권력을 손아귀에 쥔 중앙정당들의 반발과 무관심으로 모두 시한에 걸려 만료 폐기됐다. ■ 지방의원들의 외유성 출장 지방의원들의 잦은 외유성 출장도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부산 사상구 의회 구의원과 공무원 등 13명은 2200만 원의 예산을 들여 5월 15일부터 21일까지 중국 연수를 다녀왔다. 글로벌 경쟁력 향상을 위한 해외연수 명목이지만, 항저우 자치부 의회 방문 등을 제외하곤 대부분 상하이 등지의 관광명소 방문 위주여서 ‘관광성 외유’라는 지적을 받았다. 특히, 연수 당시는 쓰촨성 대지진으로 중국이 참사를 당했던 시기라 주변의 빈축을 샀다. 경기도 광주시 의회 의원과 공무원 11명은 5월 13일부터 18일까지 중국 쓰촨성 일대 연수를 다녀왔다. 연수는 ‘문화재 발굴 및 보존관리 시스템 비교 분석’이 목적이었으나, 일정은 황제들의 온천휴양지 방문 등 대부분 관광일정으로 채워졌다. 경기도 의회 2개 상임위는 올해 4월 일본과 인도네시아로 연수를 다녀온데 이어, 경제투자위원회가 5월 23일부터 8박 9일 간 오스트리아 등 동유럽으로 관광성 연수를 다녀온 바 있다. 이에 따라, 지역 시민단체들은 주민감사를 통해 이 같은 국민혈세의 낭비를 줄이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울산시민연대와 중구주민회 등 지역 시민단체는 지방의회의 해외연수가 외유성 연수로 변질되고 예산을 낭비했다며 울산시에 주민감사를 청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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