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소장파 의원들의 ‘정치 일선퇴진론’을 비롯한 ‘만사형통(萬事兄通)’ 논란에 밀려 그 동안 소리없는 행보를 보여 왔던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전 국회 부의장이 최근 각종 현안에 ‘해결사’ 역할을 자임하면서 정치적 행동반경을 넓히고 있어 주목된다. 이 전 부의장의 정치 행보가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한 것은 지난달 10일 한나라당 최고위원-중진 연석회의가 부활되고서 이 회의 참석을 계기로 이 전 부의장이 제 목소리를 내면서 각종 현안을 직접 챙기는 등 해결사 역할까지 자임하면서부터였다. 지난 13일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 6층 회의실에서 세 번째로 열린 최고위원 중진-연석회의에서 이 전 부의장은 이례적으로 일찌감치 나와 회의가 시작되기까지 한참을 기다리며 참석자들과 담소를 나누는 등 비교적 친숙한 모습을 보였다. 반면, 박근혜 전 대표는 다른 일정을 이유로 이날 회의에 불참했으며, 또한 공교롭게 측근인 김무성 의원도 이날 회의에는 참석하지 않았고, 측근인 홍사덕 의원은 처음으로 회의에 모습을 보였지만 한마디도 입을 열지 않았다. 최대한 공식행사 참석을 자제하고 있는 박 전 대표는 특별한 일이 없는데 굳이 회의에 꼬박꼬박 나갈 필요가 있느냐는 입장인 반면, 이 전 부의장은 특별한 일이 없으면 회의에 참석한다는 방침이다. ■ 이상득 “오해 없도록 처신하겠다” 이 전 부의장의 이러한 정치적 행보는 지난 6월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의 공신 중 한 명인 정두언 의원의 문제제기로 촉발된 ‘권력 사유화’ 논란과 함께 이명박 정부 초기 인사실패의 장본인이 이 전 부의장이라며 ‘이상득 퇴진론’으로까지 확전된 상황에 비하면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게 한다. 당시 정 의원를 비롯한 당내 소장파들은 ‘인사실패’의 장본인인 이 전 부의장이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며 이 전 부의장의 이름을 직접 거명하는 정면 승부수를 택했고, 이 전 부의장 또한 “잘못한 것이 없다”며 전혀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아 양측이 일촉즉발의 긴장 국면을 맞기도 했다. 사태가 확전일로로 치닫자, 고승덕·강석호·이철우 의원 등 초선 의원 20여 명은 모임을 열고 사태 수습 방안을 논의한 뒤 정두언 의원을 정면 비판하면서 “쇠고기 파동과 고유가 파동으로 국정이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권력 투쟁을 벌이는 모습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당 지도부가 특단의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으며, 이에 당 지도부가 양측 모두에게 “좌시하지 않겠다”며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등 사태 수습에 나섰다. 이 일이 있은 후 이 전 부의장은 일단 일본으로 출국하고, 정 의원을 비롯한 소장파 의원들은 한걸음 물러서는 자세를 보였다. 2박3일 간 일본을 방문하고 귀국한 이 전 부의장은 자신에게 대두되는 인사개입설 및 진퇴 논란과 관련해 “내 위치가 대통령과 형제이기 때문에 관심이 쏠려서 그런 것 같은데, 내가 오해가 없도록 처신을 잘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전 부의장은 “필요하다면 정 의원을 언제든지 만나 오해를 풀도록 하겠다”며 낮은 자세를 보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17대 국회를 끝으로 정계 은퇴를 선언한 ‘원조보수’ 한나라당 김용갑 상임고문은 “이유가 어쨌든 간에 이상득 전 부의장이 국회에 들어가 있는 한 정치개입이라는 말을 듣게 돼 있다. 국회에 안 들어가도 들을 수 있는데, 국회 안에 들어가 있으니까 얼마나 그런 소리를 듣겠느냐”며 “이 전 부의장은 없는 듯이, 숨어 있는 듯이 처신하는 방법 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말해 사실상 이 전 부의장의 2선 후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 정두언 의원과 ‘화해의 손’ 잡아 그러나 7월 16일, ‘MB 대통령 만들기’의 일등공신인 이상득·정두언 두 사람은 주변의 주선으로 만찬을 함께 하면서 불편했던 감정을 털어내는 등 화해의 손을 잡기에 이른다. 이 자리에서 이 전 부의장은 “내가 인사에 개입을 안 했는데 개입한 것처럼 오해가 있었다”고 말했으며, 이에 정 의원도 “이 전 부의장을 겨냥한 발언이 아닌데 진의가 와전됐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이날 만찬 회동은 2시간 가량 진행됐으며, 반주를 곁들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국민을 위해 이 대통령이 성공해야 한다”는 합의가 있었고, 앞으로도 이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적극 협조하기로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부의장은 이후 한동안 ‘소리없는 행보’를 보이며 조심스럽게 행동했으나,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 독도 문제 등 각종 현안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정치적 위기에 처하자 ‘MB 구하기’에 뛰어들면서 자연스럽게 ‘정치보폭’을 넓혀가는 모양새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 전 부의장은 지난 6월 독도 문제와 금강산 관광객 피격 사건 등으로 ‘정권 위기설’이 불거져 나오자, “지금의 상황은 위기가 아니고 어려움”이라며 “우리에게는 국가적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가 있다”고 일축하고 나섰다. 이 전 부의장은 독도 문제와 아세안안보포럼(ARF) 의장 성명 논란 등 외교·안보 라인의 총체적 난맥상에 대한 지적과 관련해, “그런 위기는 항상 있었다”며 “그것을 가지고 위기라고 할 수 있겠느냐”고 반박하면서 이같이 주장했다. ‘권력 사유화’ 논란 이후 공개 석상에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던 이 전 부의장은 당시 기자들과 만나 “조그만 회사를 운영해도 그 정도의 위기는 항상 있는 것이다. 우리가 너무 상황을 과장해서 국민들을 놀라게 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며 거듭 강조했다. ■ 불심 달래기 동분서주 특히, 이 전 부의장은 불교계에서 이명박 정부의 종교 편향 문제를 제기하며 반발하자, 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중진 연석회의에 참석해 “확인은 못 했지만 서울시내 모 구청장이 인턴 사원을 모집하는데 특정 종교의 학생들만 모집했다는 충격적인 얘기를 들었다”며 “공직자들이 직무 수행에서 종교 편향적인 행동을 못 하도록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해 이명박 대통령을 위해 ‘불심 달래기’의 전면에 나선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게 했다. 이어, 이 전 부의장은 이날 “공직자 종교 편향은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며 “당 정책위가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 달라”고 거듭 요청했다. 이에 대해 홍준표 원내대표는 “공직자 윤리법 개정안에 종교 편향 행위를 금지하는 조항을 준비하고 있다”며 “일본의 경우 처벌조항이 있는데, 불교계에서 법에 넣어 달라고 해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는 등 이 전 부의장의 정치적 행보에 화답하기도 했다. 이 같은 언급은 이날 국무총리실이 조계종 총무원장에게 ‘공직자의 종교 편향 행위를 막기 위한 조치를 준비 중’이라는 회신을 보낸 것과 맞물려 이 전 부의장의 영향력이 배경이 된 게 아니냐는 추측을 낳기도 했다. 이 전 부의장의 ‘불심 달래기’는 이에 그치지 않고, 지난달 31일 인천 흥륜사를 방문한 데 이어, 부산 범어사 주지 정여 스님과 법연원 주지 조연 스님, 경북 은해사 주지 법타 스님 등과 연이어 직·간접 접촉을 갖는 등 몸소 사찰을 순회하며 불교계를 설득하기까지 했다. 또한, 지난 8일에는 조계종 제5교구 본사인 속리산 법주사 주지 노현 스님을 방문해 “종교 편향이 없도록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다할 것”이라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현 스님은 이 전 부의장의 이 같은 얘기를 듣고 현 정부의 종교 편향 정책을 질타하면서 불교계를 편안하게 해줄 것을 당부했으며, 이에 대해 이 전 부의장은 자신이 할 일이 있고 대통령이 할 일이 따로 있지만 현 정부의 종교 편향에 대해서는 이 같은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다할 것이라고 답변하기도 했다. 이 전 부의장의 노현 스님 예방은, 당초 스님이 종교 편향 범불교도 대회를 앞두고 만날 이유가 없다는 강경한 입장을 밝혔으나, 이 전 부의장의 거듭된 요청에 따라 이뤄진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충청권 민심잡기 발 벗고 나서 또한, 이 전 부의장은 지난 5일 박희태 대표 등 당 지도부가 민생탐방의 일환으로 대전·충남을 방문해 현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이완구 충남지사와 박순자 최고위원이 ‘충청 홀대론’을 놓고 가시 돋친 공방을 벌이는 등 충청권 민심에 이상기류가 흐르는 것을 확인하고, 직접 충북 청주에 내려가 정우택 충북지사 등을 만나 ‘충청권 달래기’에 뛰어들었다. 이 전 부의장은 지난 8일 청주시내의 한 음식점에서 당협 운영위원장 등 한나라당 충북도당 당직자들과 가진 오찬간담회에서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지 5, 6개월 돼 간다. 사실 그 동안 한 것도 없고, 할 수도 없었고, 지금까지는 노무현 정부 때 짜 놓은 예산을 집행했을 뿐”이라며 “이제 이명박 정부는 일할 때가 됐고, 어려워도 확신을 갖고 틀림없이 일을 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전 부의장은 “아직 인사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있지 않느냐”며 “대통령이 불공정한 인사를 한다고 국민방송이 대통령을 욕하고 있는데, 그 분이 신기하다고 생각한다”고 정연주 당시 KBS 사장을 겨냥해 직격탄을 날렸다. 이어 이 전 부의장은 “그 분이 대표적으로 낙하산으로 내려온 인사이고, 상식에서 벗어난 방법으로 연임도 했다”며 “대통령이라고 자기 마음대로 인사를 하는 것은 아니고, 법과 원칙·질서를 지키며 진행하는 것”이라고 정 사장을 거듭 비난했다. 또한, 이 전 부의장은 “우리가 탄생시킨 이 정권을 밀어주고 함께 해서 반드시 성공시키자”며 간담회에 참석한 송광호 최고위원 등을 가리키면서 “함께 노력하면 충북 발전과 나라 발전이 이루어진다”고 역설하며 ‘충심’(충청도 민심) 얻기에 애를 썼다. 대선 이후 충북을 처음 방문했다는 이 전 부의장은 앞서 정우택 지사와 오찬을 같이 하면서 충청권 현안에 대한 얘기를 듣고 지원 약속을 하는 등 충청권 민심 달래기에 주력했다. ■ “상왕정치 나서나” 비판의 목소리도 이 전 부의장은 향후 원 구성이 끝나는 대로 한일의원연맹을 이끌면서 독도 문제 등 한일 외교 현안에도 적극 나설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당내에서는 이 전 부의장의 행보에 대해 당의 공식 계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직접 나서 ‘상왕정치’를 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이 전 부의장이 당직자도 아닌데 현안에 직접 나서는 것은 또다시 논란을 부를 수 있다”면서 “가뜩이나 친인척 비리로 시끄러운데 좀 더 자중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이 전 부의장 측 관계자는 “이 전 부의장의 행보는 이명박 정권을 성공시키기 위한 충정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앞으로도 각종 현안 해결을 위해 소속 의원으로서 적극 조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이 전 부의장의 ‘동생 구하기’ 정치 행보가 어떻게 전개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