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여야를 막론하고 각종 비리 의혹을 저지른 정치인들에 대해 강도 높은 수사를 이어가면서 여의도 정가가 검찰의 손아귀에서 벌벌 떠는 이른바 ‘사정정국’이 도래하면서 바짝 긴장하고 있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선거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수사 대상에 오른 정치인은 17대 국회에 비해 대폭 줄었지만, 비리 수사에 대한 검찰과 법원의 기류가 워낙 강경하기 때문에 여야를 막론하고 각종 비리 의혹이 터지면서 검찰의 수사망이 여의도로 조여들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한나라당 소속 김귀환 서울시 의회 의장이 구속된 의장 선거 뇌물수수 사건을 시발로, 이명박 대통령 부인 김윤옥 여사의 사촌언니 김옥희 씨의 공천 관련 금품수수 의혹, 한나라당 유한열 상임고문의 국방부 군납비리 의혹이 줄줄이 수사대상에 오르면서 ‘부패정당’, ‘차떼기 정당’의 과거 오명이 되살아날까 전전긍긍하는 시간을 보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사정정국’ 초반에는 한나라당의 일방적 수세였다. 그러나 민주당 등 야권에서 ‘언니 게이트’라는 별칭까지 붙여 가면서 대대적인 공세를 벌였던 김옥희 씨 공천관련 금품 수수 사건의 경우, 수사 결과 청와대나 한나라당 인사에게 청탁한 사실이 드러나지 않자 일단은 안도하는 분위기도 감지되고 있다. ■ 문국현 체포동의안 통과될까 그러나 아직 나머지 사건들에 대한 수사가 끝나지 않았고 여전히 거물 정치인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는 점 때문에 아직 안심하기 이르다는 신중론과 함께 경계심을 늦춰서는 안된다는 우려감도 적지 않다는 게 당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야당 의원을 둘러싼 의혹이 제기되고 야권에 불리한 법원의 판결이 잇따라 나오고 있기 때문에, 여권을 부패정당으로 기세좋게 몰아붙였던 야권이 오히려 긴장하는 형국으로 바뀌고 있다. 김옥희 사건을 ‘언니 게이트’로 명명하고 기세 좋게 청와대와 한나라당과 연결 지으려 했던 민주당만 해도, 당장 제주도 병원 인허가 로비와 관련해 3억 원을 받은 혐의로 검찰의 소환 통보를 받은 김재윤 의원 사건이 발등의 불이다. 김 의원은 지난해 6월경 지역구인 제주에 외국법의 적용을 받는 병원을 설립해주겠다면서 항암치료제 개발업체인 코스닥 상장회사 N사로부터 3억여 원을 전달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지만, 김 의원은 빌린 돈이라 주장하고 있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부장 박용석)는 김 의원에게 8월 20일 출석하라는 마지막 통보를 하고 “출석하지 않으면 헌법적·법률적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히자, 김 의원 측은 변호인을 통해 “20일은 국회 일정 때문에 출석할 수 없고 29일경 검찰에 출석해 조사를 받겠다”는 사유서를 제출하였고, 검찰은 29일 출석하라고 다시 통보했다. 뿐만 아니라, 검찰이 20일 역시 비례대표 공천 과정의 공천 헌금 의혹과 관련해 수 차례 소환 통보에 불응한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에 대해 체포영장을 청구함에 따라, 정치권은 현역 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가결될 것인지, 후속 타자가 또 나올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에 대해 민주당 김유정 대변인은 구두논평을 통해 “국회의 원구성 협상이 끝나자마자 검찰이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가 없는 야당 의원들에 대해 체포영장과 체포동의서를 운운하면서 압박하는 것은 다분히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동시다발적으로 야당을 탄압하는 인상”이라고 강력하게 반발했다. 또한, 당 핵심 관계자도 “대통령 사촌처형 비리의혹과 한나라당 공천비리 의혹, 한나라당 유한열 상임고문 사건에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는 한나라당 의원들에 대한 수사에는 별다른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서, 조사도 충분히 안 된 야당 의원들에 대해 체포 운운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창조한국당 김석수 대변인도 논평을 통해 “한반도 대운하와 이재오 살리기를 위해 문 대표를 낙마시키려는 정부의 시나리오에 따라 검찰이 충실히 움직이는 것 같다”면서 “사정정국이 본격적으로 도래한 상황으로, 정치 검사들의 문국현 죽이기는 국민에 의해 저지당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이어 김 대변인은 “정당이 비례후보 지원자로부터 당비나 당채 매입비를 받는 것은 정당행위로, 공직선거법에 규정된 공직선거 후보자 관련 금품수수 금지 대상에 정당을 포함시키는 것은 죄형법정주의에 위반한다”면서 위헌법률심사를 제기할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문 대표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검찰이 사실에 입각하지 않고, 사실상 소설을 쓰고 있다는 것을 많은 분들이 알고 있다”며 “계좌추적을 해서 단 한 건의 이상 자금 거래도 못 발견하지 않았느냐”고 주장하면서 죄가 없음을 강조했다. 문제는 국회법에 따라 회기 중에 국회의원에 대한 체포영장이나 구속영장이 청구되면 법원은 영장 발부 전에 국회 동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올 연말까지는 임시국회 및 정기국회가 계속 이어질 예정이어서 국회의 동의 절차에 따라 ‘문국현 체포동의안’이 통과될지 여부에 있다. 민주당과 창조한국당은 연이어 성명을 내며 검찰 수사에 강력 반발하고 있지만, 원내 과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한나라당은 체포동의안을 통과시킬 분위기이며, 특히 자유선진당 역시 법과 원칙에 따른 처리를 강조하고 있어 ‘회기 중 현역 의원 체포’가 현실화될 가능성도 배제 할 수 없다는 게 정치권의 관측이어서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 올림픽 환호 속 여의도 정가 얼어붙어 이와 관련, 한나라당 차명진 대변인은 “문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제출될 경우 당 지도부는 통과시켜야 한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고 말해, 정치권 일각에서는 문 대표가 친(親)이명박계의 핵심인 이재오 전 의원을 누르고 당선됐다는 점을 들어 이 전 의원의 정계 복귀를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체포동의안은 국회 본회의 보고 후 24시간 이후 72시간 내에 표결해야 하는 만큼, 8월 26일 예정된 본회에서 보고가 이뤄진 뒤 본회의에 상정돼 표결에 들어가는 것이 수순이지만, 체포동의안을 본회의에 상정하기 위해서는 여야 협의가 필수적이라 이 과정에서 체포동의안 상정 자체가 무산될 수 있는 가능성도 나오고 있다. 역대 국회에서 국회의원 체포동의안이 통과된 사례는 제헌국회 이후 8건에 불과할 정도로 극히 드물다는 측면에서 실낱 같은 기대를 걸고 있는 것이다. 14대 국회 때인 1995년 10월 16일 옛 민주당 박은태 의원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이후 13년 간 제출된 28건의 현역의원 체포동의안 중 가결 처리된 것은 없었다. 친박연대 상황은 더 심각하다. 18대 총선에서 친박연대로 출마했다가 출당당한 무소속 김일윤 의원 역시 선거법 위반으로 징역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에 있으며, 공천헌금을 주고받은 혐의로 기소된 서청원 공동대표와 양정례, 김노식 의원이 모두 확정판결시 금배지를 떼야 하는 징역형을 선고받아 항소중에 있다. 올림픽 환호 속에, 문 대표에 대한 체포영장뿐 아니라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 전체가 검찰의 비리 수사 태풍지대에 들어간 것은 이 대통령의 의지에 의한 결과라는 관측이다. 이 대통령은 8월 20일 한나라당 당직자들과 가진 만찬석상에서 “비리사건 관련자의 경우 지위고하와 소속 여부를 막론하고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고 언급한데 이어, 8·15 경축사에서도 “임기 동안 일어나는 비리와 부정에 대해선 관용을 베풀지 않겠다”고 발언한 것이 결국 야권을 향한 사정정국의 신호탄이 아니냐는 강한 의구심을 낳고 있는 것이다. 특히, 검찰이 여당인 한나라당을 먼저 손본 것이 과거처럼 ‘야당탄압’ 등을 앞세워 검찰수사를 거부하는 것을 사전에 방지 하기 위한 것이라고 판단하고 야당을 더욱 긴장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정치권이 현역의원에 대한 체포 사안이기 때문에 술렁이는 분위기를 보이고 있는 가운데, 국회의원에 대한 체포동의안 처리 문제를 당론으로 정하지 않는 것이 국회 관행이어서 각 당은 당론을 내놓고 있지 않으나 미묘한 온도차를 보이고 있는 등, 여야 정치권은 때아닌 검찰의 날선 사정설로 인해 진땀을 흘리면서 긴장감 속에 막바지 여름을 보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