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1호 김현석⁄ 2008.08.26 16:26:12
“근래 법령이 해이해져 부녀자가 절에 올라가는 것이 길에 끊이지 않으니 공공연히 음행(淫行)을 저지르고 절개를 잃는 것이 이러한 까닭에서 비롯되는데 이것은 시정의 아름다운 풍속을 해치는 것입니다. 부모를 추모하는 법회(法會)를 막론하고 부녀자들이 절에 올라가는 것을 일절 모두 금단하여 풍속을 바루도록 하소서.”-<태종실록> 이는 이 씨 조선의 태종이 한 말로, 최근 이명박 정부 들어 이같은 사례가 나타나 제 2의 십자군 전쟁으로 번질 위기에 처해 있다. 특히, 불교계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전두환 정권 때의 불교탄압인 제2법란까지 거론하고 있다. 불교계는 8월 27일 범불교대회를 열어 정부의 종교차별을 규탄키로 했다. 대한불교조계종이 ‘산문폐쇄’를 거론했다. 산문폐쇄란 전국 모든 사찰의 출입문을 걸어 잠근다는 뜻이다.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는 조치다. 1986년 해인사 등 몇몇 대형 사찰이 불교관련 악법 철폐를 요구하며 한 달 정도 산문을 폐쇄한 바 있다. 불교계가 산문폐쇄를 언급한 것은 20여년 만이다. 이번에는 조계종 산하 3000여 절이 동참할 뜻을 밝혔다. 산문이 폐쇄되면 사찰이 관리하고 있는 국립공원에도 출입할 수 없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27일 50만 명이 모일 것으로 추산되는 ‘범불교대회’를 앞두고 불교계의 반(反)정부 기류가 확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측면에서 촉각을 세우고 있다.
■ 산문폐쇄 강공 드라이브 8월 27일 서울시청 앞에서 열리는 ‘헌법파괴 종교차별 이명박 정부 규탄 범불교도 대회’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불교 27개 종단이 참여하는 이번 범불교대회는 정부의 종교편향을 강하게 질타할 것이란 전망이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의구심이 든다. 그런데 속내를 들여다보니 그럴 만도 했다. 당초 경찰이 조계종 총무원장인 지관 스님이 탄 차량을 조계사 정문에서 과잉 검문검색한 조치는 불교계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이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국토해양부 대중교통이용 서비스 ‘알고가’ 시스템의 사찰명 누락과 경찰복음화금식대성회 포스터에 어청수 청장 사진이 게재된 일 등 일련의 사건으로 불교계의 반(反)정부 분위기는 갈수록 무르익었다. 급기야 조계종 중앙종회 의원 스님들은 8월 20일 긴급회의를 열고, 이명박 정부의 종교차별 행위를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감사원에 종교차별과 관련한 국민감사 청구와 함께 정부자료 공개도 요청했다. 이런 상황임에도 개신교 목사들의 불교계를 향한 태클은 끊이질 않고 있다. 종교간 마찰로까지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스런 분위기다. 개그맨 못지 않게 웃기는 목사로 알려진 대전의 중문침례교회 장경동 목사는 8~11일 뉴욕순복음교회에서 열린 집회 마지막 설교에서 “내가 경동교(장경동교)를 만들면 안 되듯이 석가모니도 불교를 만들면 안 되는 것이었다”며 “원불교나 통일교도 만들면 안 되는 것이었다”고 밝혔다. 특히 “스님들은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빨리 예수를 믿어야 한다”며 “불교가 들어간 나라는 다 못 산다”고 비하하는 발언을 했다. 기독교사회책임운동 서경석 목사의 발언도 파장이 예상된다. 서 목사는 21일 평화방송 라디오 시사 프로 ‘열린 세상 오늘, 이석우입니다’에 출연해 “이명박 정부가 정책이나 의도적으로 기독교 편향적인 것은 전혀 아니다”고 말했다. 서 목사는 특히 불교계의 범불교대회 규탄과 관련해 “불교계가 한번쯤 자기들 불만을 집단적으로 표출하는 것은 지금의 여러 상황에서 불가피한 점도 있고 도움이 되는 점도 있겠지만, 그날 하는 여러 가지 내용을 보니까 저희가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불교계가 좀 더 성숙한 자세로 일을 하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8월 27일 범불교도 대회, 또다른 변수 이 대통령의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한다’ ‘청계천은 하나님의 역사다’ 등의 발언에 대한 불교계의 지적에 대해서는 “그런 부분들이 무슨 종교 편향성이라기보다는, 공인으로서 개인의 신앙적 입장은 표출하지 않는 게 옳은데, 그 부분이 민감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앞서 한국교회언론회도 8월 14일 불교계의 범불교도 대회와 관련한 논평에서 “현 정부 들어 연이은 종교편향에 대한 불만과 단체행동 예고는 우리 사회를 불편하게 한다”며 “현 정부를 기독교 정부로 규정하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이어 최근 기독교는 특정 종교로부터 특별히 불만을 살 만한 일을 한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기독교가 종교편향과 관련된 빌미를 제공하지 않았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지난 7월 국회조찬기도회 소속 의원 120명은 이스라엘 12지파처럼 12개 소모임을 만들기로 결정, 정치권에부터 타 종교의 반발을 사는 빌미를 제공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었다. 이들은 조찬기도 회원 가운데 장로 직분을 가진 의원들이 꼭 12명이라는데 착안해 이들을 연장자 순으로 르우벤부터 베냐민까지 이스라엘 12지파의 족장으로 삼고, 그 밑에 8~9명의 의원들을 부족민들로 배치하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렇지 않아도 정부의 종교편향 논란에 심기가 불편한 불교계에 이런 개신교의 언행은 ‘기름을 붓는 격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최근 조계사에서는 대웅전 불전함에서 모 대형교회 헌금봉투 다섯 개가 발견되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봉투 안에 든 한 지폐에는 ‘예수님 믿으면 천국 불신자는 지옥, 아멘’이란 도장이 새겨져 있었다. 불교계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우선 청와대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조계종은 지관 총무원장 차량에 대한 경찰의 과잉 검문과 수도권 대중교통정보 시스템의 사찰 정보 누락 등 현 정부의 종교편향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어청수 경찰청장 사퇴, 대통령의 재발방지 약속과 사과 등을 요구하고 있지만, 청와대는 이 같은 요구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져지고 있다. 또한, 대(對)불교계 창구를 문화체육관광부로 단일화한 만큼 직접적인 대응은 하지 않고 있는 바람에 불교계 인사들과 접촉하더라도 통일된 목소리를 취합할 수 없다는 점에서 청와대를 더욱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 ‘기독교 정부’규정 사실과 다르다 그 동안 청와대 내 불자들의 모임인 청불회 회장인 강윤구 사회정책수석과 박재완 국정기획수석, 박형준 홍보기획관을 비롯해 수석과 비서관들이 불교계 인사들을 집중적으로 만나 온 것으로 알려졌으나, 불교계 인사들이 각자 갖고 온 요구에 일관성이 없어 대책 마련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는 후문도 들리고 있다. 강 수석은 태고종 등 불교계 7대 종단 지도자들과는 이미 개별 회동한 바 있으며, 이번 주말에는 부산 범어사와 통도사 등을 방문하는데 이어 강원도·충청권 소재 본사들도 찾는 등 조만간 조계종 산하 25개 본사를 모두 둘러볼 예정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청와대는 이명박 대통령이 불교계 지도자들과 오찬을 갖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으나 실효성을 확신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며, 이번 불교계 사태가 일단락되면 사찰에 대한 규제 완화 등을 검토하고 있는 등, 시간을 두고 차분히 불심을 돌릴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청와대 일각에서는 불교계의 강경론을 주도하고 있는 세력이 ‘불교계 386’이라는 의구심을 가지고 있지만 속수무책이라는 게 청와대 한 핵심 관계자의 설명이다. 이명박 정부 들어 불교계에 대한 홀대를 보면서 ‘종교적 편향’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불교계는 ‘장로 출신 대통령’인 이 대통령에 대해 그 동안 서울시장 재직 시절 ‘서울시 봉헌 발언’ 파문 등을 지켜봐 오다가 최근 국토해양부가 만든 수도권 대중교통 이용정보 시스템 ‘알고가’에서 사찰 정보가 모두 빠져버리고 대신 교회의 정보는 모두 포함된 것에 대해 불만을 표출했다. 여기에 최근 조계종 총무원장의 승용차를 경찰이 검문검색하는 일이 벌어지면서 이명박 정부와 불교계 간의 사이가 더욱 벌어졌다.
■ 청와대 참모진, 불교 달래기 나섰다 한나라당도 ‘불심동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조계종 등 주요 종단과 교계 시민사회단체 대표 200여 명은 8월 27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헌법파괴 불교차별 이명박 정부 규탄 범불교도 대회’를 열고 이명박 정부의 ‘불교 홀대’를 집중 성토할 예정이다. 서울시 교육감 선거 승리와 베이징 올림픽 등 잇단 호재를 등에 업고 여론 반등을 노리고 있는 여권으로서는 불교계의 이 같은 움직임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불교계의 집단 반발이 혹여 정국에 악영향을 미쳐 모처럼만에 잡은 국정 주도권을 되찾기 위한 기회를 날려 버리지 않을까 여권이 긴장하고 있는 것. 특히, 불교계가 촛불집회가 열리는 장소인 서울시청 광장을 규탄대회 장소로 잡은 점도 한나라당으로서는 고민거리다. 불교계가 촛불집회 인원과 합류할 경우 여론에 미칠 파장이 만만치 않아 보이기 때문이다. 이상득 국회 부의장의 최근 잇단 행보도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이 얼마나 불심 달래기에 노심초사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이 부의장은 최근 부산 범어사와 인천 흥륜사, 충북 보은 법주사 등 사찰을 잇달아 방문해 주지 스님 등 불교계 인사와 자주 접촉하면서 불심 잡기에 나서고 있다. 그는 또 최근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서울시내 어떤 구청장이 인턴사원을 모집할 때 한쪽 종교 사람들만 모집해서 썼다고 하는데, 직접 확인은 못했지만 사실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공직자들이 직무를 수행하는데 종교 편향적인 것을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근본적인 대책을 정책위원회에서 세워 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한나라당은 불교계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최대한 규탄대회의 영향이 확산되지 않도록 하는데 주력한다는 계획이다. 한나라당의 한 핵심 관계자는 한 언론사와의 통화에서 “사실 여부를 떠나서 특정종교에 편향돼 있다는 평을 받고 있는 것만은 사실인 만큼, 정부 부처 전반에 걸쳐 문제 해결을 위한 조치 마련이 필요하다고 박희태 대표가 말씀하셨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