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통상 약 500년 동안 존재했지만, 인류문명사의 측면에서 보면 순간 정도밖에는 되지 않는다. 기업은 그 동안 물질적 부의 생산자로서 대단한 성공을 누려 왔으며, 재화와 서비스의 공급을 통해 폭발하는 세계 인구를 부양함으로써 문명화된 삶을 가능케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업들이 그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고 아직도 진화의 초기단계에 머무르고 있어 잠재력의 극히 일부분만을 발현하고 있다. 이는 기업의 높은 사망률이 증명해주고 있는데, 왜 그렇게 많은 기업들이 일찍 사라지는 것일까? 반면, 장수하는 기업은 어떻게 수명을 이어 나갈 수 있는 것일까? 장수기업이란 문자 그대로 장기적으로 존속하는 기업을 가리키며, 적어도 2대(代)이상 지속되고 있는 기업을 지칭하나, 통상은 100년 이상 지속되고 있는 기업으로 정의하고 있다. ■ 글로벌 장수기업 1위 일본… 100년 이상 5만개, 1000년 이상도 7개나 한국은행의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창업 200년 이상의 장수기업은 총 41개국에 5,586개가 존재하고 있으며, 대부분이 아시아(57.5%, 3,214개)와 유럽(42.0%, 2,345개)에 분포하고 있다. 국별로는 일본이 3,146개(56.3%)로 단연 으뜸이며, 독일 837개(15.0%), 네덜란드 222개(4.0%), 프랑스 196개(3.5%)의 순이다. 일본에는 창업 이후 1,000년 이상 지속하고 있는 장수기업이 7개나 되며, 500년 이상은 32개, 200년 이상은 3,146개, 100년 이상은 약 5만 개나 된다. 한편, 세계 최고(最古)의 장수기업은 서기 578년에 설립된 일본의 곤고구미로 1,430년 간 지속하고 있다. 기업의 경영이 곧 세계에서 생존의 전쟁이 된지 오래다. 같은 시기에 출발해 30년이 지나면 80%의 기업이 사라진다는 통계가 나와 있다. 미국의 경제 주간지 ‘포천’은 “기업 평균수명이 40~50년에 불과하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요즘처럼 환경이 급변하는 글로벌 경쟁 시대에서는 기업의 수명을 늘리기는커녕 살아남는 일조차 어려운 일인 듯하다. 오랜 시간을 버티며 장수기업이 되기 위해서는 이런 빠른 환경을 인지하고 앞으로 다가올 미래를 정확히 예견해 미리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삼성경제연구소의 분석에 따르면, 국내의 대표 성공기업들은 ▲강력한 리더십 ▲스피드 경영 ▲합리적인 의사결정 구조 ▲글로벌화 ▲양보다 질로 승부 ▲성과중심의 인재투자 등의 공통점이 있다. ■ 한국형 장수기업 경영 모델 본격 추진 창업한 지 60년 이상 된 우리 기업의 장수비결을 분석, 100년 장수기업으로 지속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한국형 경영 모델 개발이 추진된다. 지식경제부는 기업가정신 제고 방안의 하나로 이 같은 프로젝트를 추진키로 하고, 올해 말까지 경영 모델을 개발키로 했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우선 국내 기업 중 창업 60년 이상 된 기업 40개를 추린 뒤 이들 기업의 장수요인을 분석, 가업승계 문제로 폐업이나 종업을 고민하고 있는 기업들에게 경영 모델을 제시할 방침이다. 60년 이상 된 기업의 경우 이미 1세대를 지나 2, 3세대까지 경영이 지속되고 있는 만큼, 1세대 30년에서 사라지는 기업들에게 벤치마킹 대상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정부는 또 1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기업들이 즐비한 일본에서 장수비결을 찾아, 우리나라 기업이 100년 장수기업이 되기 위해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지 우리만의 모델도 도출할 계획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일본 기업의 경우 역사가 1,000년을 넘는 기업이 7개, 200년 이상은 3,146개에 달하고 있으며, 100년 이상 된 기업은 무려 약 5만 개에 달하고 있다. 이들 장수기업은 오랜 기간 축적된 최첨단 소재·부품의 경쟁력을 앞세워 1980년대의 엔진 파고와 1990년대 ‘잃어버린 10년’의 장기불황을 극복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반면, 우리나라에는 200년 된 기업은 없으며, 100년의 역사를 지닌 기업도 두산과 동화약품공업 등 2곳 정도에 불과한 실정이다. 578년 설립돼 세계 최고(最古) 기업으로 알려진 일본의 건축회사 곤고구미가 그 옛날 백제인이 세웠다는 사실 자체가 민망할 정도이다. 장수기업들은 국가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독보적인 기술을 바탕으로 세계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지식경제부 관계자는 “장수기업들은 중소기업임에도 불구하고 기술력을 갖고 있으면서 경제 혁신 주체로 거듭나고 있고, 오랜 기간 고용을 유지해주는 경제 안전판 역할을 해주고 있다”며 “우리 기업도 일본처럼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질 수 있도록 경영 모델을 개발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60년 이상 된 우리 기업들은 그 동안 사회 변화에 견뎌 온 역량만으로도 높게 평가받을 자격이 있다”며 “이들 장수기업들은 최근 가업승계 문제로 폐업이나 종업을 고민하고 있는 기업들에게 벤치마킹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100년 장수기업 만들기 프로젝트와 함께 오는 11월 초에 창업 활성화 등을 위해 기업가정신 주간행사를 개최하고 기업가정신이 사회에 뿌리 내릴 수 있도록 경제교육도 추진해 나기로 했다. 한편, 중소기업계는 최근 정부가 발표한 ‘세제개편안’을 두고 그 동안 중소기업인이 가업을 승계할 때 가장 큰 애로사항으로 지적했던 상속·증여세율을 국제 수준으로 완화한 것을 매우 고무적인 일로 평가했다. 또한, 가업상속 요건 완화, 가업상속 공제 확대 등의 개선 조치로 중소기업이 원활한 가업승계를 통해 글로벌 장수기업으로 발전해 나가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했다. 중소기업연구원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설립 후 5년 이상 지속하는 중소기업은 20%에 불과했으며, 그나마 30년 이상 지속하고 있는 곳은 전체의 1.5% 정도였다. 작지만 내실 있는 ‘강소(强小)기업’은 사실상 몇 되지 않는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기업이 장수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 국내외 장수기업들의 공통비결 환갑이 넘은 나이까지 하나의 기업이 장수할 수 있는 비결이 따로 있을까. 건국 60주년인 올해 한국의 1,000대 기업 가운데 창립 60주년이 넘은 기업은 50개 사에 불과하다. 하지만, 기업 범위를 더 넓혀 한국신용평가정보의 기업정보 허브 KISLINE에 포함된 130만 개 기업을 조사한 결과, 총 145개사(금융·언론·개인사업체 제외)로 나타났다. 이들 기업은 1, 2차 오일 쇼크에 이어 외환위기라는 고비 속에서도 무너지지 않고 살아남는데 성공한 기업들이다. 이들의 생존비결을 분석하면, 외부 환경이라는 변수는 2차적인 것일 뿐이다. 무리한 사업 확장을 지양하는 내실경영을 추구하면서도 변화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지속적인 혁신과 변화의 노력 없이는 기업의 존속이 불가능함을 알 수 있다. 삼성경제연구소가 지난해 7월 발표한 ‘장수기업의 조건’이라는 보고서를 보면, 장수기업들은 ‘사람’을 중시하는 풍토가 유별나며, 이는 노사관계에서 잘 나타난다. 보고서에서 삼양사·유한양행·아모레퍼시픽·동국제강 등을 분석한 결과 ▲강한 일체감 ▲고용안정과 직원에 대한 투자 ▲개인 고충 해결 노력 ▲노사 동반자 문화 등이 특징으로 꼽혔다. 기업 분위기가 ‘인간적이고 가족적’이라는 결과이다. 반면, 글로벌 장수기업들은 보다 안정적이고 견고한 노사관계를 보이고 있다. 보고서는 듀폰·P&G·코닝·도요타·HP의 사례를 통해 다섯 가지의 특징을 꼽았다. ▲직원 존중의 핵심 가치화 ▲경쟁력 우선의 노사관계 ▲현장 완결형 조직 관리 ▲노사문제 사전 예방 시스템 ▲글로벌화에 부합하는 다양성 존중 등이다. 한국의 장수기업들이 마음이나 정서 관리에 치중한다면, 글로벌 장수기업들은 보다 탄탄한 노사관계 관련 제도를 통해 안정성과 지속성을 이어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30년 간 세계 100대 기업의 생존율은 38%이며, 미국과 일본의 경우 20% 초반으로 하락한다. 고도성장을 하면서 산업구조가 빠르게 변화한 한국에서는 100대 기업 생존율은 10%대 중반으로 낮아진다. 1,000대 기업으로 확대해도 생존율은 70%대에 그친다. 1990년대 후반의 외환위기 이후 글로벌 경쟁이 가속화되면서 기업들의 흥망성쇠는 더 빨라지고 있다. 시대 흐름 맞춘 지속적인 혁신 = 장수기업들은 멀리 보는 시각을 기본으로, 급변하는 환경에 적절하게 대응하며 지속적인 혁신을 취한다. 언제든 바뀔 수 있는 준비가 장수기업의 경쟁력 중 하나다. 한국기네스협회가 인정한 국내 최고령 기업인 두산(창립 122년째)은 외환위기가 닥치기 전에 한 발 먼저 구조조정 및 사업재편에 나서 고성장을 누리고 있다. 잡화상점으로 출발한 두산은 100년가량 한국 소비재산업의 대표 주자였지만, 1990년대 들어 식음료 사업을 매각하고 인수·합병 등을 통해 중공업과 기계로 사업 포트폴리오를 전환하여 큰 성공을 거둔 사례다. 구조조정을 시작한 1996년에 3조9,000억 원이었던 두산그룹의 총매출은 지난해 18조6,000억 원으로 4배가량 증가했다. 차입을 최소화하고 무리한 사업 확장을 지양하는 삼양사도 1990년대에 신성장동력으로 의료사업에 투자해, 현재 다국적 회사가 90%를 장악하고 있는 수술용 봉합사 시장에서 3위를 차지하는 등 꾸준한 사업다각화를 추진하고 있다. LG그룹의 지주사인 LG는 소비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고객 인사이트’ 경영으로 올해 주력 계열사 3사가 분기 사상 최대 이익을 내며 순조로운 성장을 하고 있다. 한길만을 간다 = 장수기업들은 오랫동안 한길만 걸었다는 공통점도 있다. 대림산업은 현대건설과 함께 지난 40년 간 10대 건설사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단 2곳뿐인 업체 중 하나다. 현대건설의 경우 채권단의 관리를 받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질적인 장수기업은 대림산업이 유일하다고 볼 수 있다. 건설업계에서는 대림산업의 장수비결을 균형 잡힌 사업 포트폴리오와 건설업에 집중하는 ‘한길 걷기’ 등 두 가지로 꼽는다. 한진도 물류업 본연의 사업에 집중한 전략이 장수의 비결로 꼽힌다. 유한양행·중외제약·일동제약·종근당 등의 제약회사들은 사람을 살리는 업종에 대한 창업자들의 자부심 아래 새로운 제품 개발에 끊임없이 노력하는 한길 걷기를 통해 환갑이 넘은 나이까지 생존할 수 있었다. 이들 제약사의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 투자비율은 5%가 넘는다. 노사 간 상생과 협력 = 많은 경영전략 가운데 ‘인재중시 경영’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하지만, 실제로 인재를 중시하는 기업은 흔치 않다. 특히, 한국 기업들은 외환위기 등을 거치며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익숙해져 있다. 평생직장이 사라진 만큼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기업도 찾기 힘들어진 게 현실이다. 반면, 장수기업들은 이를 실천하고 있다. 외국의 대표적 장수기업인 GE·엑손모빌·존슨앤존슨 등은 인적자원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노사 상생의 문화를 갖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국내 장수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최고경영자(CEO)가 수시로 현장을 방문하고 직원의 의견을 청취하며, 회사에는 노사 간에 가족적 분위기가 조성돼 있다. 직원과 직원의 가족을 한식구로 여긴다는 ‘가사불이’문화를 자랑하는 한국타이어는 지난 1993년부터 사무직과 생산직 사원 중심으로 사원의 만족도를 측정해 경영에 반영하고 있다. 유한양행은 사장을 포함한 경영진과 노조위원장, 대의원이 정기적으로 연수회를 갖는다. 삼양사 울산공장 노조의 경우 1987년 노동자 대투쟁 당시 울산지역의 다른 노조들이 파업 동참을 종용하자 설비점검 기간에 파업을 해 회사에 피해를 입히지 않았다. 세계적인 컨설팅 업체인 액센추어의 빌 그린 회장은 지난해 한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세계적 장수기업들은 인재를 중시하는 조직문화를 갖고 있다”며 “인재관리가 곧 기업 경쟁력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속적인 생존을 못하고 무너진 회사들은 왜일까? 이유는 크게 ▲독단경영 ▲과도한 부채 ▲미래예측 실패 ▲무리한 다각화 등으로 분석됐다. 무너진 기업들은 또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없는 사업구조를 갖고 있었다. 삼성경제연구소의 임태윤 수석연구원은 “쉘사의 장수기업 연구를 바탕으로 출간된 ‘살아 있는 기업’에서 가장 강조한 점은 보수적인 자금운용”이라며 “보수적인 자금운용은 기업의 성장과 진화를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