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국회 첫 정기국회를 개원하면서 많은 정치권 인사들 중에서도 가장 감격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이 바로 김형오 국회의장이라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없을 것 같다. 국회가 지난 8월 26일 오후 본회의를 열어 여야 합의로 예고됐던 18명의 상임위원장 및 상설특별위 위원장을 선출하면서 18대 국회가 임기 89일 만에 비로소 원 구성을 완료하자, 제일 감격스런 표정을 지었던 사람이 김 의장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국회의장 직무를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섣부른 평가를 내리는 것이 다소 성급할지는 모르겠으나, 김 의장이 그 동안 다섯 번의 국회의원 생활을 해오면서 오직 국민을 위한 정치적 결단이나 원칙을 내세우는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그런 평가가 가능 하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지적이다. 김 의장은 이러한 원칙을 가지고, 지난 6월 1일 18대 국회 임기가 시작됐음에도 불구하고 미국산 수입 쇠고기 파동으로 인한 촛불집회 등으로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가운데서도, 의장 직권으로 임시국회를 소집해달라는 여당의 요구를 묵살하고, 끈질기게 야당을 설득하고 또 설득하는 집념을 보여 여야 합의를 도출해냈다. ■ ‘아름다운 국회’ ‘상시국회’ 시사 김 의장은 이날 18대 국회 첫 정기국회 개회사에서 “민생경제를 챙기는 ‘일하는 국회상’을 확립해야 한다”며 “여당은 수로 밀어붙이는 ‘힘의 정치’를, 야당은 수의 부족을 풀기 위한 ‘사생결단 정치’를 삼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의장은 “여야 모두 ‘수의 정치’의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여당은 수로 밀어붙이는 힘의 정치를 삼가고, 야당은 수의 부족을 사생결단식 정치로 풀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김 의장은 “서민경제를 살리기 위한 법안들을 서둘러 처리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문제도 여야의 합의를 통해 조속히 마무리되기를 기대한다”며 “예산안 심의도 충분한 검토와 토론을 거쳐 18대 국회에서만은 법정 기일을 넘기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 의장은 또 “‘국회다운 국회’를 만들기 위해 국회운영과 제도의 틀을 과감히 뜯어 고쳐야 한다”며 “무엇보다 국회의 문을 1년 내내 열어 놓아야 한다”고 ‘상시국회’를 시사했다. 이어 김 의장은 “‘미래를 준비하는 국회’가 돼야 한다”며 “최근 정부가 ‘저탄소 녹색성장’을 새로운 비전으로 제시하고 여기에 총력을 기울이기로 한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우리 국회도 식량, 에너지, 기후변화, 환경과 생태 등 미래를 설계하고 준비하는 일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18대 국회는 국민의 큰 기대 속에 출발했지만 3개월 가까이 파행과 공전을 거듭하면서 국민들께 적지 않은 실망과 걱정을 끼쳐 참으로 부끄럽고 송구스럽기 그지없다”고 지적하면서 “서로에 대한 이해와 존중 위에서 이견과 갈등을 민주주의의 위대한 엔진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 의장의 이러한 개회사 내용은 여느 정치인들처럼 입술로만 하는 ‘립 서비스’가 아니라 ‘실천하는 원로 정치인’의 당부였다는 게 당 안팎의 지적이다. 뿐만 아니라 김 의장은 9월 4일 국회에서 열린 국회연합기도회 환영사에서도 정부와 불교 간의 종교갈등 문제와 관련 “최근에 빚어지고 있는 불교와 행정부 간의 갈등, 여야 정당 간의 이견 다툼 등도 평화와 사랑, 관용과 자비의 정신으로 보면 금방 해소될 수 있을 것”이라며 “종교는 어떤 종교든지 자비와 사랑, 평화와 관용이 아니겠는가. 서로 한 발짝씩만 물러나서 보면 다 보이고 금방 쉽게 타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당부했다. 김 의장은 “나라가 참 어지럽지만 돌이켜보면 어지럽지 않았던 때는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종교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한다”며 “자비와 사랑이 가득한 사회를 위해 애쓰시는 종교 지도자들의 정신을 이어받아 우리 정치계도 내 정당, 우리 정당 할 것 없이 자비와 사랑이 가득하도록 애써 달라”고 당부하면서 각자가 평화와 관용 등 각 종교의 가르침에 충실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체포동의안 반대, 여야 반응 엇갈려 또한 김 의장은 9월 3일 국회 선진화 방안과 관련해 “이제 국회는 국민 중심의 국회로 돌아가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국회의 현재 제도와 운영의 개선점, 반성할 점, 앞으로 나아가야 할 점들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며 국회 운영제도개선 자문위원회 위원을 위촉했다. 김 의장은 위촉식에서 “18대 국회를 맞이하는 국회의원들은 국민을 위한 정치를 행할 각오가 돼 있지만 그러한 환경이 조성돼 있지 못해 안타깝다”며 “이번 국회 운영제도개선위는 21세기 대한민국 국회가 선진국회로 나아가기 위한 시작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한편,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9월 5일 김형오 국회의장이 김재윤·문국현 의원에 대한 체포·구속동의안 본회의 상정 문제를 놓고 불체포 원칙을 밝히며 반대의견을 낸 것과 관련,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김 의장은 9월 4일 창조한국당 문국현 대표와 민주당 김재윤 의원에 대한 체포·구속동의안 처리 문제와 관련해 “불구속 기소가 원칙”이라고 밝혀 정치권을 당황스럽게 만들기도 했다. 이날 김 의장은 기자들과 만나 “물론 죄가 있으면 벌을 받아야 된다는 것이 원칙적 입장”이라고 전제하고 “국회의원이 아니더라도 증거인멸, 도주, 재범 가능성 또는 주변에 피해를 끼칠 가능성이 없다면 불구속 기소가 원칙이다. 즉, 인권보호 측면이나 기본권 보호 측면에서도 인신 구속은 신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는 “김형오 의장의 불구속 수사 원칙은 형사사법의 일반 원칙을 의장이 천명한 것에 불과할 뿐 중죄의 경우 구속수사 원칙이 국민의 법 감정에 맞고 그것이 사법관례”라며 “사법적 판단은 검찰과 법무부에서 이미 했고, 국회의 사법적 판단 권한은 없다”고 김 의장의 결정에 불만을 드러냈다. 반면, 민주당의 조정식 대변인은 “국회의장이 체포·구속동의안 처리 반대입장을 밝혔고 증거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체포·구속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한 것은 명백한 야당탄압이자 국회를 무시한 것”이라며 “‘불구속 기소’ 원칙을 표명한 것은 국회의장으로서 적절한 발언이었다. 정말 국회 수장답다”고 치켜세웠다. 9월 정기국회는 국정 운영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서라도 치열한 기싸움이 본격화 됐기 때문에 여야로서는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게 여야 원내 전략팀의 주장이다. 그 동안 ‘언니게이트’에 이어 유한열 당 상임고문의 ‘금품 로비사건’ 등 각종 비리가 연이어 터지면서도 여당의 지지율이 꿈쩍도 하지 않았던 것은 중국 베이징에서 들려온 금빛 낭보 때문이었으나, 더 이상 ‘올림픽 특수’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이제는 정기국회가 열리면서 국민 여론에 그대로 노출될 수밖에 없다. 야당도 마찬가지로 정기국회 초반에 밀리면 추석 이후 시작될 국정감사에서도 탄력을 받지 못해 결국 연말까지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한 채 지리멸렬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휩싸여 승부는 이제부터라는 심정으로 사생결단으로 덤벼들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제로섬 게임’ 같은 살얼음판 정치를 어떻게 ‘상생의 정치’로 승화시켜 나갈 지는 지금부터 김 의장의 또 하나의 원칙과 결단에 따른 몫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