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의 종교편향성 논란이 날로 거세지면서 어청수 경찰청장의 경질에 대해 불교계는 물론 여야 정치권에서까지 압박을 가하고 있으나, 이명박 대통령은 이에 꿈쩍도 않고 ‘경질 불가’ 입장을 보이고 있어 그 ‘진짜 이유’에 대해 국민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불교계는 지난 8월 27일 범불교도 대회 이후 범불교도대회 봉행위원회가 “정부가 종교편향에 대한 해결책을 내놓지 않아 한국불교종단의회 소속 27개 종단 산하 모든 사찰에서 초하루 법회를 ‘헌법파괴 종교차별 이명박 정부 전국 사찰 동시 법회’로 열었다”고 밝힌 것과 같이 8월 31일 전국의 1만여 사찰에서 규탄법회를 여는 등 반정부 기류가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이러한 불교계 분위기는 이명박 대통령이 종교편향 사과 요구와 어 청장의 해임을 받아들이지 않는 등 정부의 태도에 아무런 변화가 없자 다시 들끓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 대통령이 범불교도대회 다음날인 28일 뉴라이트 전국연합 상임의장인 김진홍 목사와 만찬을 가진 것을 비판하며 불교계 중진인 삼보 스님이 자해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긴장감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 추석 직후 범불교도대회 후폭풍
청와대 측은 일단 유감을 표명하면서 불교계가 요구하는 ‘이 대통령의 사과와 어청수 경찰청장의 사퇴’ 요구는 발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면서도, 사태 해결을 위한 마땅한 해법 모색이 쉽지 않아 곤혹스러워 하는 입장이어서, 정부와 불교계 간의 갈등이 극한으로 치달을 것으로 보인다.
불교계는 이명박 정부의 태도 변화가 없을 경우, 추석 직후 대구·경북을 시작으로 각 지역별 범불교도대회를 열 계획이며, 특히 오는 10월경에 전국 승려대회를 개최할 예정인데다, 원불교·천도교·천주교 등 7개 종교단체와 연대해 공동대응을 모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정부와의 갈등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새 정부의 종교편향 논란이 불거진 8월 중순 한나라당 내에서는 미국산 수입 쇠고기 파동으로 야기된 ‘춧불집회’의 재판을 우려해 어 청장의 ‘경질 카드’가 고개를 든 바 있다. 박희태 대표는 8월 25일 “어 청장이 특정 종교에 편향적 자세가 있는 것 아니냐”며 “수습하려면 어 청장에 대한 책임있는 조처가 있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지적하고, 당내 일부 의원들도 이에 동조하는 분위기였지만, 청와대가 어 청장 해임 불가 입장을 견지하자 ‘경질 카드’ 목소리는 쏙 들어갔던 것이다.
그러나, 불교계의 반정부 기류가 날이 갈수록 높아지자, 당내에서는 어 청장의 해임보다 용퇴 쪽에 무게추가 옮겨지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는 최근 “일부 공직자들이 불교계의 마음을 상하게 한 것을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어 청장에 대한 책임 있는 조처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해, 어 청장의 거취에 대해 은근히 ‘용퇴’ 쪽으로 압박을 가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도 9월 3일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대통령은 불교계에 사과하고, 경찰청장은 사퇴하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지금 종교편향 문제를 지적하는 불교계의 분노를 마주하는 대통령과 정부의 모습에서, 촛불시위 때와 마찬가지로 안이하고 무사안일한 자세가 읽힌다”며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도 막지 못해 또다시 국정에 심각한 위기를 자초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안겨주고 있다”면서 “본인들의 진심과는 상관없이, 그간 대통령이나 일부 공무원, 특정 종교인들이 보인 발언과 행동은 불교계의 오해와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고 지적하고 “따라서 대통령의 사과는 빠를수록 좋다. 그래야 특정종교를 믿는 공직자는 물론이고 대통령에게 과잉충성하려는 일부 몰지각한 인사들이 종교를 앞세워 대통령에게 아첨하려는 언동을 방지할 수 있다”고 쓴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 주성영 “대통령 사과하고 어 청장 사퇴하라”
주 의원은 “경찰청장의 부적절한 처신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어 청장은 당장 사퇴하는 것이 옳다”고 전제하고 “단순히 7월 29일의 조계종 총무원장 차량 검문 문제로 사퇴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고, 정작 더 큰 문제는 6월 24일 ‘제4회 전국경찰복음화 금식대성회’ 광고지에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와 나란히 상단에 자리한 모습의 사진이 실린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주 의원은 “어 청장은 촛불시위 사태가 온 나라를 뒤흔들 때 어떻게 처신했느냐. 대통령이 두 번이나 직접 사과를 할 때까지 대통령의 뒤에 숨어 있다가, 올해 말 정년퇴임을 앞둔 한진희 서울경찰청장을 대리문책 해임시켰다”고 지적하면서 “촛불집회에 법과 원칙에 따라 대응하지 않은 것이 서울경찰청장이 책임졌어야 할 문제였느냐”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주 의원은 “따라서 대통령은 사과하고, 경찰청장은 즉각 사퇴하는 것이 옳다”며 “국정현안이 태산처럼 산적한 상황에서 이런 일로 국정운영에 어려움을 겪어서야 되겠는가. 하루속히 결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야당은 물론 여당인 한나라당 중진 의원까지 나서서 어 청장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인사권을 가진 이 대통령은 오히려 “어 청장이 무슨 큰 잘못을 했기에 물러나야 하느냐”는 반응을 보이면서 꿈쩍도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의 입장이 이처럼 강경하자, 당내는 물론 여의도 정가에서는 “어 청장이 이명박 대통령과 보통 친분이 아니다더라” “촛불집회 사태의 ‘공신’ 배려 차원”이라는 등등의 분석까지 나오는 등 해석이 분분하다.
물론, 지난 촛불집회 당시 직접 진두지휘하며 강경책을 써서 결국 춧불집회를 진압한 데 대한 ‘공로’를 ‘보상’ 받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복수의 당 관계자들의 전언에 의하면, 실제로 최근 열린 당 지도부 비공개 회의에서 홍준표 원내대표는 “책임 있는 자리에 있는 이들 중 촛불집회 때 도망가지 않고 끝까지 지킨 이는 어 청장밖에 없다”고 치켜세운 것으로 알려져 이와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홍 원내대표의 이러한 시각은 청와대 측의 주장과 별로 다르지 않아 보인다. 청와대 측도 여당의 어 청장 경질 요구에 대해 “당에서 어 청장의 용퇴 주장이 나오지만 적절치 않은 것 같다는 것이 청와대 내의 주된 분위기”라고 전하면서, 또한 불교계의 반발이 확산되고 있는 것과 관련해 “종교편향이 사회적 이슈로 논란이 되는 상황을 모두가 걱정하고 유감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이 문제가 특정한 이슈로 증폭되고 확대재생산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밝히고 있다.
이와 관련, 한나라당의 한 핵심 당직자도 9월 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