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지난 18일 장장 3개월 간의 진통 끝에 여야 합의로 총규모 4조5685억원의 2008년도 추가경정예산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 처리했다. 이로써 일단 고유가·고물가 등으로 힘겨운 민생에 다소나마 단비와 같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최근 갑자기 불어닥친 이른바 미국발 금융 위기가 가뜩이나 어려운 우리 경제를 더욱 무겁게 짓누르고 있어, 내수경기 회복 등에는 별 큰 보탬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진단이 우세한 실정이다. 이번 추경예산을 들여다보면, 무엇보다도 고유가 극복을 위한 민생 도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저소득층 유류비 부담 완화와 농어민과 중소상인 등 유가급등에 취약한 계층 지원, 빈곤 학생들의 학자금 지원, 대중교통 이용 확대를 위한 철도·도로 확충 등이 주된 골자로 짜여져 있다. 당초 정부가 지난 6월 말 국회에 제출한 추경예산액은 총 4조8654억 원 규모였지만, 고유가 민생대책으로 편성된 추경예산 4조2677억 원은 ‘공기업 퍼주기와 경기부양책’이라는 야당의 반발에 막혀 공기업 및 사회간접자본(SOC) 관련 부문을 줄이고 저소득층과 농어민 지원 예산은 늘리기로 여야가 합의를 이룬 것이다. 따라서, 당초 1조2550억 원을 지원키로 했던 한국전력과 가스공사에 대한 손실보조금 지급액이 2510억 원 삭감됐다. 또한, 석유공사 등 에너지 관련 공기업에 들어갈 예정이던 에너지 관련 예산액도 4350억 원 깎여버린 것이다. 반면에, 기존 예산안에서 증액된 부문도 적지 않다. 화물차 고속도로 통행료 지원에 600억 원, 화물차 감차보상 지원에 300억 원, 화학비료 가격 및 수급 안정에 100억 원, 저소득층 에너지 보조금 지원에 47억 원, 지역아동센터 운영 지원에 21억 원이 배정됐다. 이처럼 오랜 진통 끝에 추경예산이 국회에서 통과됨에 따라, 정부는 재원을 지난해 15조3000억원에 달했던 세계잉여금에서 조달, 최근 밀어닥친 미국발 금융위기 대처 등을 감안하여 조기 집행에 최선을 다할 방침이다. 따라서, 추경예산이 조기 집행되면 서민층의 민생에 적잖은 도움이 되는 것은 물론, 좀처럼 침체의 늪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채 허우적거리고 있는 내수와, 나아가서는 미국발 금융위기 대처에도 다소나마 도움이 될 것이라는 진단까지도 곁들여지고 있을 정도다. 특히, 오는 11~12월에는 추경예산금에다 근로자와 자영업자·일용근로자 등 1764만 명을 대상으로 한 유가환급금 3조4900억 원도 지급되면서, 자그마치 8조 원이 넘는 돈이 풀리게 됨으로써, 얼어붙은 소비를 진작시키는 일종의 ‘매가톤급’ 동력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아주 희망적인 전망까지 나오고 있기도 하다. 이런 가운데많은 국민들은 이번 추경안 처리를 성사시킨 여야 원내 대표진들의 합의 도출 노력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과연 이번 협상으로 국회의 구실을 제대로 했는지를 새삼 따지고 묻고 싶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실정이다. 그 핵심은 바로 행정부에 대한 ‘국정운영 감시기능을 제대로 작동했느냐’라는 것이다. 이는 이번 여야 합의가 진정 ‘국리민복’ 을 위해 국회의 고유기능 중 하나인 감시 기능과 아울러 국민 혈세가 허실하게 세어나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장치 등을 마련하고서 이뤄낸 것인지, 아니면 비록 농담이라는 전제는 붙여졌지만, 상대 협상 주역의 당내 어려운 입지를 도와주기 위해 이뤄진 것인지를 분간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사실 이번 추경예산은 겉으로는 민생경제용이지만, 속으로는 한전 등 공기업들의 방만 경영과 비리로 허실된 엄청난 국민혈세를 쓰게 하는 길을 터 주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