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와병설이 불거지면서, 국내에 향후의 남북관계와 주변국 정세에 대한 각종 불확실성이 난무하고 있다. 2008년 9월 9일 북한 정권수립 60주년 기념행사에 김정일이 불참하면서 국내외 관심이 온통 그의 건강이상설과 북한 사태의 전개와 전망에 쏠리게 된 것이다. 북한의 장래를 한마디로 예측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다양한 시나리오를 상정해 놓고 갖가지 경우에 대비한 대응책을 모색하는 편이 더 현명하다. 대비책을 마련하려면 북한의 전개 전망 유형에 대한 시나리오를 상정해 보고 그로부터 파생될 안보위협의 형태를 가늠해 보는 것이 선결과제일 것이다. 이 같은 우발상황에 대비해야 한다는 지적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는 가운데, 국회 위기관리포럼(대표: 한나라당 공성진 의원)은 9월 22일 ‘한반도 위기인가, 기회인가’라는 세미나를 열어, 남북의 향후 정세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기 위한 논의를 펼쳤다. ■ 북한 급변사태 시나리오 국방대 허남성 명예교수는 “북한의 급변사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유고나 쿠데타로 촉발될 수 있고, 국가 붕괴까지 진행돼 대한민국에 의한 흡수통일로 이어질 수 있다”면서 “그날은 벼락처럼 올 수 있기 때문에 바로 준비를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향후 북한의 급변사태 시나리오를 크게 적대적 공존(시나리오 A), 타협적 공존(시나리오 B), 내폭(시나리오 C), 외파(시나리오 D), 점진적 통일(시나리오 E) 등 5가지 유형으로 분류한다. 여기서 시나리오 A와 시나리오 B는 남한과 북한이 상호 ‘공존’하는 상황을, 나머지는 붕괴 혹은 통합을 의미하며, 공존하는 상황에서 붕괴 통합 과정으로 진행되는 양상으로 설정됐다. 시나리오 A-적대적 공존 적대적 공존은 북한이 현재의 남북 대화를 기피한 채 지속적으로 개혁·개방을 거부하는 상황이다. 경제난을 외부 지원으로 해결하고, 강경파 리더십이 지속되는 조건이 포함된다. 이 같은 상황에서는 남북 대립이 심해질 수 있기 때문에, 심하면 북한과의 전쟁(시나리오 D)으로도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시나리오 B-타협적 공존 타협적 공존은 시나리오 A와 반대로 개혁파 리더십이 등장해 변화하려는 태도를 갖고 우리나라 및 서방 국가와 타협을 시도하는 상황이다. 이 상황에서 공존이 지속될 경우에는, 북한이 중국과 같이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합쳐진 혼합경제체제로 이행할 가능성이 있다. 한국의 1960년대처럼 ‘개발독재’를 통한 경제성장을 이룩할 수도 있다.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결국 체제 붕괴를 거쳐 통일이 이루어지거나(시나리오 C로의 전환), 점진적 평화통일로 이행될 가능성이 있다. 시나리오 C-내폭 북한이 자멸하는 시나리오 C는 내부상황의 모순으로 체제가 무너지는 상황이다. 이는 소련·루마니아·동독·폴란드 등 다른 동구권 공산주의 국가들의 붕괴과정을 통해 예측해 볼 수 있다. 소련은 개혁·개방 정책을 시도했다가 통제를 못한 채 반체제적 변혁을 초래했다. 이에 따라, 보수 강경파가 쿠데타를 기도해 체제가 붕괴됐다. 루마니아의 체제전복은 먼저 인접 공산국가들의 붕괴와 함께 국민들의 경제적 불만이 커지면서 시작됐다. 이에 따라, 군중이 먼저 봉기하고 여기에 군부가 가담하면서 독재자가 몰락하는 과정을 거쳤다. 동독은 세계적인 공산권의 몰락 속에 난민이 속출하면서 시작됐다. 이에 정부가 봉쇄를 시도했으나 민중시위와 국제적 고립 상황에 빠지면서 자연스럽게 체제 붕괴 및 통일을 맞았다. 폴란드는 80년대 야루젤스키 정부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독립적 노동조합이 결성되고, 개혁 요구가 지속되자 정부가 다당제 선거 및 노조의 정부 협력이 약속되면서 체제가 바뀌기 시작했다. 결국 폴란드는 총선을 통한 공산당 패배로 평화적 붕괴를 맞았다. 허 교수는 “4가지 유형 가운데 소련형 붕괴 모델이 가장 유력하다”고 추정했다. 시나리오 D-외파 북한의 전쟁도발에 따른 통일(시나리오 D)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여기에는 한미 연합군에 의한 북한군 패퇴로 한반도가 남한에 의해 흡수 통일되거나, 북한의 남침 성공으로 무력 적화통일이 이루어지는 두 가지 상황을 상정할 수 있다. 시나리오E-점진적 평화통일 마지막으로. ‘점진적 평화통일’(시나리오 E)은 남한의 ‘화해협력→남북연합→통일국가’의 3단계 통일안을 통한 이상적 시나리오이다. 이는 타협적 공존상태에서 발전된 형태로 남북 간의 상호신뢰하에 군비 통제와 무력 충돌 가능성을 배제한 상태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다. 화해와 협력 단계에서는 한국의 기술 및 자본과 북한의 노동력이 조화를 이루는 남북경협이 이루어진다. 이어 남북 연합에서는 느슨한 통일이, 통일국가 단계에서는 완전한 통일이 실현된다. 이 중 시나리오 C와 D는 북한의 급변사태로 꼽을 수 있다. 허 교수는 이 같은 북한의 급변사태에 대비해 참여정부의 ‘국방개혁 2020’병력감축 계획을 재검토하고, 북한 내폭시 중국의 단독개입 차단, 주변국과의 외교 강화, 북한난민 수용지 마련, 통일비용 확보를 위한 ‘통일세’ 신설 등을 제안했다. ■ “김정남, 가장 유력한 후계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사망 이후에 북한 체제의 권력구도가 어떻게 변화할지도 관심대상이다.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후임 구도는 부자권력 세습에 의해 권력구조가 재편되는 안과, 부자세습 없이 군부 집단지도체제가 형성되는 안이다. 통일연구원 정영태 선임연구위원은 사견임을 전제로 “김정일 체제의 핵심은 나라의 모든 정치·군사·경제적 역량을 통솔·지휘할 수 있게 국방위원회의 지위와 권능을 크게 강화시킨 국방위원장 체제”라면서 “향후 권력세습이 이뤄질 경우 국방위원회를 중심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정 위원은 “과거 김일성에서 김정일로 권력이 승계될 당시엔 김일성 유일지배체제의 공고화와 안정적인 유지기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권력승계가 순조로이 이뤄질 수 있었지만, 김정일 정권은 동구 사회주의 체제 붕괴, 구소련 및 중국의 개혁개방 추세 격화, 대내적 경제난 심화 등으로 인해 불안정한 상황이어서 권력승계 작업이 공개적으로 추진될 수 없었을 것”이라며 “북한의 3대 권력세습은 비공개적 차원에서 매우 단계적으로 추진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현재로선 김정일의 삼남 중 누가 후계자가 될지를 추정하긴 매우 어렵지만, 차기 북한 지도자는 IT 산업기술, 국제적 금융 흐름, 자본주의 시장경제 메커니즘 및 개방된 대외관계에 대한 경험과 전문지식을 다양하게 겸비해야 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김정남이 가장 유력한 후보자로 꼽힌다”고 밝혔다. ■ “김정일, 죽는 순간까지 권력 유지하려 할 것” 정영태 선임연구원은 아울러 김 위원장에게 권력을 나눠 갖지 않으려는 습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연구원은 “권력유지의 패턴을 보면 2인자를 키우지 않는 속성을 지니고 있어 김정일은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 권력을 유지하려고 할 것”이라며 “그 과정에서 아들 세습을 위해 훈련시킬 가능성은 크다”고 예측했다. 아울러 그는 북한의 3대 권력세습은 비공개적 차원에서 매우 단계적으로 추진될 것으로 내다봤다. 정 연구원은 “북한의 다양한 권력조직 중에서도 차기 후계자가 우선적으로 진입해야 할 조직은 바로 국방위원회가 될 것”이라며 “따라서 김정일의 삼남 중 하나가 이미 국방위원회의 위원으로 내정돼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런가 하면, 안보전략연구소 홍관희 소장은 중국의 개입 가능성과 관련해 10여 년 전의 북한의 체제위기 때와 비교하여 그 가능성이 커졌다는 점을 주시했다. 홍 소장은 “95~97년 경에도 홍수 등 자연재해와 외부지원 감소로 아사자가 2천3백만에 달하는 등 북한이 체제위기에 처했지만, DJ 정권이 들어서면서 대북 지원정책을 통해 북한이 회생했다”며 “당시 중국의 대한반도정책은 한국 위주의 ‘친한’일변도 한반도정책을 수행했고 북한과는 거리가 멀어졌다”고 회상했다. 그러나 DJ-盧 정부의 승계는 중국으로 하여금 대한민국 내에 친북좌경 세력이 무시할 수 없을 정도라는 인식을 갖게 했고, 이에 따라 종전의 북·중 관계 강화, 한반도 분단 지속, 남북 등거리 정책을 취하는 계기가 됐다는 것. 무엇보다 “10년이 지난 지금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은 확대됐고 ‘한반도 관리’에 자신감을 갖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우리 정부의 대중정책 역시 신중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 “북한 붕괴 대비, 탈북자 활용해야” 북한 체제가 갑자기 무너질 경우, 탈김 북한을 통치할 세력은 간부 출신 밖에 없겠지만 이들이 북한 주민들로부터 지지와 신뢰를 얻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불거졌다. 북한의 회복을 지도할 대안을 새로운 엘리트에서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민대 안드레이 란코프 교수는 “동유럽에서는 이러한 사람들이 주로 ‘제2사회’(지하 시민사회)에서 나타났다”며 “이 용어를 만든 체코 작가 바츨라프 하벨(전 체코 대통령)은 독재에 노골적으로 항쟁하지 못하는 조건하에서 ‘제2사회’의 등장이 해방과 민주화를 조용히 준비하고 있다고 기대했다”고 설명했다. 란코프 교수는 “탈김 북한 사회를 회복하려면 김 부자(父子) 정권과 협력한 적도 없고, 북한과 현대세계를 모두 잘 아는 사람이 필요할 것이다. 북한에는 ‘제2사회’가 없지만 1만4000명에 달하는 탈북자 사회에서 적절한 인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면서 이를 위해 “남한 정부는 탈북자들의 교육과 취업 등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탈북자에 대한 미래대비가 중요하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반코프 교수는 “북 체제가 무너진 후 북한 문제의 지도적 역할을 할 사람들을 이제부터 교육시켜야 한다”며 “탈북자들은 올해는 3500명 정도로 이들 대부분은 교육받기 어려운 사람들이지만, 그들 중 능력 있고 재능 많은 젊은이가 있다. 그들을 교육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