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공직자 비리 등의 대형사건 수사를 위해 여러 관계 부처 인력을 통합 운영하는 ‘합동수사 태스크포스(TF)’ 설치를 추진하면서 현 사정(司正)정국과 맞물려 그 기능과 권한에 관심이 증폭되고 있는 가운데, 그러한 일련의 움직임이 최근 온라인을 통해 정치 재개 움직을 보이고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행보와 무관치 않다는 설이 돌고 있어 정치권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지난 2월 25일 퇴임 이후 가급적 정치현안에 대한 발언을 자제해온 노 전 대통령은 지난 9월 18일 정치토론 사이트인 '민주주의2.0'을 개설한 이후 '노공이산'이라는 필명으로 민감한 내용들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등 본격적으로 정치 관련 발언을 내놓기 시작했다. 9월 23일에는 “호남의 단결로는 영원히 집권당이나 다수당이 될 수가 없다”며 “호남에도 정당 간 경쟁이 있어야 호남이 포위에서 풀려날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은 호남지역 정치인을 겨냥해 “안방정치, 땅 짚고 헤엄치기를 바라는 호남의 선량들이 민주당을 망치고 있다”며 “호남표로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수도권의 정치인들이 민주당을 망치고 있다”고 거침없이 비난했다. 이에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한 라디오 프로와의 인터뷰에서 “노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에도 유독 호남 사람들의 자존심을 상하는 말을 많이 했다”면서 “배은망덕한 말”이라며 불쾌해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 전 대통령의 행보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친노진영의 정치 재개 움직임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대선 참패 이후 친노진영의 일부는 탈당 후 정치은퇴를 선언하거나 총선에 도전했으나, '참여정부 책임론'으로 민주당 내 위상은 크게 악화됐었다. 하지만, 총선 이후 비롯된 인사정책 실패, 미국산 수입 쇠고기 문제로 파장된 촛불집회 등 이명박 정부의 실정으로 참여정부에 대한 책임론이 누그러지면서 친노진영의 재기 움직임도 가시화됐다. 또,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안희정 최고위원이 7.6 전당대회에서 당 지도부에 입성,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친노진영 정치재개 움직임 활발 여기에, 최근 이해찬 전 총리의 재단법인 ‘광장’이 여의도에 사무실을 마련한데 이어, 안 최고위원도 ‘더 좋은 민주주의 연구소’라는 정치연구소를 잇따라 개설하여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있고, 당 내외에서 정치권 진입을 모색하는 참여정부 출신 인사들의 모임인 ‘청정회’에 50여 명이 참여하는 등 친노진영의 정치 재개 움직임은 더욱 속도를 낼 전망이어서,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의 핵으로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여기에다, 온라인을 통한 노 전 대통령의 ‘훈수정치’ 시도나 정치 재개 움직임은 반대세력 쪽에서 볼 때 눈엣 가시가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검찰의 전 정권 비리에 대한 대대적인 사정 움직임, 특히 노 전 대통령의 측근들에 대한 다발적이고 집중적인 조사는 노 전 대통령의 ‘자금줄’을 사전에 자르겠다는 의도가 아니냐는 반발을 사고 있다. 물론, 정부와 검찰 당국은 어느 특정인이나 세력을 겨냥한 수사가 아니라 국가 기강을 흔드는 중대 범죄에 대하여 범정부적 차원에서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검찰과 경찰 국세청 등 관계기관의 협력 체제를 강화하는 수순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시민단체 일각에서는 정부가 무소불위(無所不爲)의 수사 권력을 휘두르는 '거대 공룡 기관'을 만들려 한다는 우려가 나오는 데다 정부가 ‘합동수사 TF’를 추진하는 시점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사정정국과 맞물려 미묘한 뒷맛을 남기고 있다. 현재 대검 중수부는 강원랜드의 비자금 조성 의혹에 대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고, 서울중앙지검은 KTF 비자금 의혹 사건과 태광실업의 휴켐스 특혜인수 의혹 사건을, 서울서부지검은 프라임그룹 비자금 조성 의혹 사건 등 노 전 대통령의 이전 정권과 연관된 비리를 수사하며 대대적인 사정 드라이브를 걸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국세청도 노 전 대통령의 후견인 역할을 한 태광실업 박연차 회장과 노 전 대통령의 허리 수술을 집도한 의사가 이사장으로 있는 우리들병원 등에 대해 대대적인 세무조사를 벌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범정부적인 사정기관이 설립되면 더욱 강력한 사정태풍이 부는 것은 물론 노 전 대통령의 재정적 수족을 묶는 효과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 노무현 자금줄 박연차, 동시다발 집중조사 특히,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오랫동안 경제적 후견인 역할을 해온 박연차 회장에 대한 대검중수부(부장 박용석 검사장)의 전면수사는 노 전 대통령이 오랫동안 구상했던 정치적 행보에 결정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는 칼날이라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박 회장은 노 전 대통령과는 경남 김해의 같은 마을 출신으로, 1988년에 인연을 맺은 후 지금까지 후견인 역할을 자임해 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살고 있는 봉하마을 부지도 박 회장의 측근이 노 전 대통령의 친형인 노건평 씨에게 판 것으로 돼 있으나, 실제로는 박 회장이 거의 무상에 가깝게 제공했다는 얘기도 들리고 있다. 중앙일보의 25일자 보도에 따르면, 검찰 고위 관계자는 24일 “어제 대검 중수부에서 박 회장에 대한 수사 자료 검토에 들어갔다”고 밝히면서 “검찰 내의 다른 곳에서 하던 관련 수사 자료를 모두 취합하고 새로운 수사 단서에 대한 확인 작업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농협이 박 회장 측에 자회사인 휴켐스를 싼값에 매각했다는 의혹 등에 대하여 지난 9월 중순부터 수사를 해온 것으로 알려진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극히 이례적으로 수사 자료를 모두 중수부에 넘겨준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중앙지검 특수부 사건이 수사 도중 대검 중수부로 이첩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주로 정치인 및 고위 공무원과 관련된 대형 비리 사건을 수사하는 중수부는 주요 수사 내용을 검찰총장에게 수시로 직보한다는 점에서, 중수부가 박 회장 사건을 맡게 된 것이 검찰 수뇌부의 결정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낳고 있다. 이 보도에 따르면, 박 회장에 대한 사건은 중수부 첨단범죄수사과(과장 이동열)에 배당됐다. 과거에 중수3과로 불렸던 이 부서는 수사 지원 역할을 맡고 있으나, 최근 강원랜드 비리 수사를 직접 담당 부서로서, 검찰은 수사 경과에 따라 중수과 수사 인력도 이 사건에 투입할 계획을 가진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일단 박 회장의 탈세 혐의에 대한 확인 작업을 벌이고 있는데 박 회장이 대표로 있는 태광실업과 정산개발(정산컨트리클럽을 운영하는 회사)이 7월 말부터 세무조사를 받은 결과 서울지방국세청은 최근 탈세 사실이 일부 확인됐다며 박 회장을 출국금지시키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한나라당 김태환 의원이 “박 회장이 2002년 김해시 외동의 7만4470㎡(약 2만2500평)의 땅을 차명으로 매입해 수백억 원의 이득을 얻었다”며 “회사 돈을 횡령해 땅 매입 대금을 치렀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한 데 대하여 박 회장의 김해 부동산 매입과 관련한 의혹도 조사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 우연의 일치라기에는 ‘타이밍’ 절묘해 검찰은 특히, 박 회장이 2003년 노 전 대통령 측에 불법 선거자금을 제공한 혐의로 벌금 3000만원형을 선고받은 바 있어, 박 회장이 회사 돈으로 비자금을 만들었는지도 확인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져, 이 부분에 대한 수사에 ‘진전’이 있을 경우 사건은 정치자금 수사로 연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물론, 박 회장 측은 김해 땅 문제와 관련해 “회사 돈이 아닌 박 회장 개인 자금으로 산 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 임채진 검찰총장은 25일 초도(初度)방문한 창원지검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박 회장의 수사와 관련해 “박 회장에 대한 수사가 서울지검에서 사건 분야별로 나눠져 있는데, 대검 중수부에서 이를 통합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논의하는 과정에서 잘못 전해진 것으로 알고 있다”며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에서 직접 수사를 한다는 보고를 받은 바 없다”고 밝혔다. 임 총장의 강력한 부인에도 불구하고, 전 정권에 대한 대대적인 사정 바람과 더불어 설치되는 ‘합동수사 TF' 등이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에는 정도로 너무도 아귀가 잘 맞아떨어진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마디로, 치밀하게 기획하고 조율해서 사정을 개시하는 시나리오라는 시각이다. 그러나, 새 정부 출범 이후 지금까지 검찰이 대형 특수 수사를 시작할 때마다 과거 정권 실세들의 이름이 거론됐음에도 수사 결과 이들이 무혐의 처분되거나 아예 입건조차 못한 경우가 수두룩했다는 측면에서, 소문만 무성한 정권의 권력형 비리 의혹을 규명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관측도 적지 않아 관심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