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국회 초반부터 추가경정 예산안 처리를 놓고 충돌했던 여야가 오는 10월 6일부터 20일 간 진행될 국정감사를 앞두고 전의를 가다듬고 있다. 10년 만에 정권을 되찾은 한나라당은 민생을 우선하는 집권여당의 면모를 보여주겠다는 각오를 보이고 있으며, 민주당은 대정부 견제기능에 충실함으로써 야성(野性)을 확인하겠다는 의지를 다지는 등, 한 치의 양보도 없는 팽팽한 줄다리기를 예고하고 있어 관심을 끌고 있다. 또한, 한나라당은 이번 국감의 초점을 ‘참여정부의 마지막 1년’에 맞춰 지난 10년 간 ‘좌편향’된 사회를 바로잡는 인식 전환의 계기로 삼아 ‘잃어버린 10년’을 되찾는 전환점을 마련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는 반면,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의 취임 6개월’ 실정(失政)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계획이어서, 여야 간에 첨예한 격돌이 예상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민주당은 이명박 대통령의 사위인 조현범 한국타이어 부사장을 주가조작 연루 의혹의 증인 신청자 명단에 올리는 것을 비롯해, 이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의 사촌언니 김옥희 씨, 정연주 전 KBS 사장 등을 증인으로 불러내겠다는 입장이지만, 한나라당은 이를 정치공세로 치부하면서 강력히 저지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고 있어, 극심한 힘겨루기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처럼 각 당에서 세우고 있는 국감전략은 그 성사 여부에 따라 향후 정국운영에서 이니셔티브를 쥘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와 맞물려 있기 때문에 벌써부터 치열한 불꽃을 튀기고 있는 것이다. ■ 한나라당, “盧 정권 잘못 바로잡고 현 정부 공과 따지겠다” 한나라당은 비록 집권 여당이기는 하지만, 18대 첫 국감이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1년 및 이명박 정부의 지난 6개월’에 대한 평가의 장(場)인 만큼, 철저한 감사를 수행할 계획이다. 한나라당은 특히 이번 국감에서 노무현 정부의 좌편향 정책을 바로잡음으로써 이명박 정부의 MB 노믹스와 개혁입법 추진의 발판으로 삼아 ‘경제 살리기’, ‘민생우선’ 정당의 면모를 집중적으로 부각시켜 나가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은 이를 위해 이번 정기국회의 주요 법률안 492건 중 국정과제 이행 관련 법안 74건과 민생 관련 법안 45건, 규제개혁 관련 법안 44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관련 부수 법안 19건 등 모두 201건의 법안을 반드시 처리한다는 방침을 세우고 있다. 이와 함께, 한나라당은 이번 국감에서 공기업 선진화, 유한열 상임고문의 국방부 로비 사건, 대통령 부인의 사촌언니 김옥희 씨 공천비리 사건, KBS 사장 임명 문제 등에 대한 민주당의 정치적 공세에 대해서는 일체 응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동시에, 언론·방송 문제, 공기업 선진화 문제, 법·원칙 확보의 문제 등의 주요 이슈에 대한 민주당의 파상 공세가 예상되는 만큼 ‘국민의 방송’, ‘국민의 직장’ 등의 명분으로 이를 적극 차단할 계획이다. 한나라당은 또 이명박 정부의 지난 6개월 간 공과를 철저히 점검해 ‘봐주기 감사’라는 논란을 사전에 차단하여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동시에, ‘이명박 개혁’의 정당성과 함께 국감 이후 본격화될 개혁입법 추진의 동력을 확보하는 토대로 활용할 방침이다. 이와 관련, 홍준표 원내대표는 9월 23일 기자들과 만나 18대 국회의 첫 국감을 ‘이명박 정부가 앞으로 남은 4년 6개월 간 제대로 일할 수 있는 토대를 만드는 기회’라고 규정하고 “국민과 민생에 대한 문제만큼은 민주당에서 제시하는 합리적인 요구에 대해서는 전폭적으로 수용할 수 있으나, ‘떼쓰기’는 일체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어 홍 원내대표는 “이번 국정감사는 노무현 정부의 지난 1년과 이명박 정부의 6개월을 총체적으로 감사하는 것”이라며 “노무현 정부의 잘못된 정책을 바로잡아야 하고, 이명박 정부 출범 후에 있었던 정책 과오도 바로잡아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홍 원내대표는 “노무현 정부 시대의 이념 과잉을 접고, 실용주의 시대에 걸맞게 국익 중심으로 나가야 한다”며 “좌편향 정책을 바로잡는 것이 선진국으로 가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경률 사무총장은 “국민은 또 한바탕 쇼를 하려는 게 아니냐는 걱정을 많이 하고 있다”면서 “국정감사 증인채택과 관련해 민주당이 지난해에 저지른 국회 정무위 불법 날치기 미수 사건의 고질병이 올해 또다시 도지는 것 같아 심히 유감”이라고 민주당을 비난했다. 안 총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싸우는 국감, 흠집 내기 국감, 정쟁 국감으로 이끌어가려는 민주당의 기도는 국민이 절대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한나라당은 지난해 노무현 정부의 잘못된 방향이나 혈세 낭비 사례를 엄정하게 따지고, 입법이 필요한 부분은 법과 제도로 예산에 반영하는 태도를 견지해 국감에 임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한나라당 사무처 당직자 170여 명은 이번 국정감사에 대비, 정신력을 강화하고 결속력을 다지기 위해 지난 9월 19일 1박 2일 일정으로 경기 안산시에 있는 모 해병대 캠프에 입소해 극기훈련을 받기도 했다. ■ 민주당, 국감 3대원칙·5대기준 마련, 여당과 일전불사 민주당은 10년 만의 제1야당으로서 사실상 데뷔 무대인 이번 국감에서 이명박 정권의 실정을 바로잡는 ‘책임국감’, 중산층·서민을 위한 ‘민생국감’, 국민과 함께 하는 ‘현장국감’ 등을 국감기관 및 증인채택에 대한 3대 원칙으로 설정해 견제야당의 면모를 확실히 보여주겠다고 벼르고 있다. 또한, ▲경제정책 실패의 책임자 ▲권력형 친인척 비리사건의 연루자 ▲방송장악 및 인터넷 통제 책임자 ▲공기업 민영화 관계자 ▲형님인사(낙하산 인사) 대상자 전원을 국감 증인으로 채택하는 5대 기준도 마련하고 여당과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결의를 다지고 있다. 민주당은 특히 세부적으로 경제실책과 관련해서는 강만수 재정경제부 장관 대신 ‘대리경질’ 논란을 빚은 최중경 전 기획재정부 차관과 김중수 전 청와대 경제수석 등을, 권력형 비리와 관련해서는 이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 여사의 사촌언니 김옥희 씨와 김종원 서울시버스운송사업조합 이사장(‘언니게이트’), 이명박 대통령 사위인 조현범 한국타이어 부사장(‘사위게이트’), 김귀환 서울시의회 의장(‘뇌물게이트’), 유한열 전 한나라당 고문(‘군납게이트’) 등을 증인으로 채택, 법제사법위원회와 국방위원회 등 해당 상임위에서 파상공세를 펼쳐 쟁점화시킬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또한, 민주당은 언론장악과 관련해 정연주 전 KBS 사장과 구본홍 YTN 사장 등을, 인천공항 지분매각 특혜 의혹과 관련해서는 이 대통령의 조카이자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의 아들인 이지형 골드만삭스 자산운용사 대표, 이채욱 인천공항 신임사장 등을 증인으로 채택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어, 한나라당과 치열한 힘겨루기가 예상되고 있다. 이를 위해 민주당은 서갑원 원내수석 부대표를 팀장으로 하는 국감 TF를 발족해 당을 국감체제로 본격 전환했으며, 22일부터는 사이버 국민제보센터도 가동했다. 특히, 수의 열세를 극복하기 위해 상임위별 팀플레이도 강화키로 했다. 이와 관련, 원혜영 원내대표는 23일 기자들과 만나 “한나라당의 절반 수준인 의석수를 극복하는 길은 국민의 뜻을 살펴 국민의 눈높이에 맞게 대응하는 일”이라며 “타협할 것은 타협하되,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사안은 강한 투쟁에 나서겠다”고 강조했다. 원 원내대표는 “이명박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의 국정운영 기조에 대해 국민이 상당히 많은 우려를 갖고 있다. (한나라당이) 절대다수 의석을 가진 여당으로서 정부를 견제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데 과감히 나서야 한다”며 “눈치만 보면 안 되는데, 최근 들어 한나라당 내에서 국회의 역할에 대한 책임을 다하기보다는 대통령과 정부를 무조건 감싸려는 흐름이 급속도로 강화되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고 우려했다. 서갑원 부대표도 24일 원내대책회의에서 “한나라당은 이번 국감을 이념국감으로 전락시키려 하고 있다”며 “미국발(發) 금융위기에 어떻게 대응할지 지혜를 모으고 국민을 통합시키기 위해 밤을 새워도 모자랄 판에, 고작 낡은 이념에 칼춤이나 추겠다는 것인지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고 강력히 비난했다. 이어, 서 부대표는 “한나라당의 이념국감 시도는 지난 6개월 간의 국정실패 논쟁을 이념논쟁으로 몰아가려는 진흙탕 전략일 뿐”이라며 “지금 중요한 것은 이념 갈등이 아니라 한국 경제를 어떻게 살릴 것인지, 고통받고 있는 중산층과 서민의 삶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지에 대해서 해법을 내놓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 자유선진 “캐스팅보트 역할” 민노 “4대 국감의제 선정” 자유선진당은 친(親)서민·기업·지방 전략을 기본원칙으로 내세워 제3교섭단체로서 거대 양 정당 간의 극한대결을 막는 중간자 역할을 자임하면서 대안세력으로 평가받는 한편, ‘캐스팅보트’로서 몸값을 높이겠다는 복안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권선택 원내대표는 “각종 ‘게이트’가 출몰할 것이다. 권력비리 문제는 이명박 정권의 남은 4년을 위해서라도 지금 바로잡아야 한다”면서 이명박 정부의 각종 권력형 비리 논란에 대한 진상규명 의지를 밝혔다. 또한, 이회창 총재는 22일 국정감사 대비회의를 주재하는 자리에서 “앞으로 외교통일 정책에서 새로운 방향을 국민 앞에 제시할지, 아니면 참여정부의 정책을 유지할지 제시가 있어야 하는데, 이것이 없다”며 “아직 새 정권의 기본 철학과 원칙이 서 있지 않은 것 같다. 특히 외교통상통일 정책은 전 정권이 계속 가는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이 총재는 “자유선진당의 국감 기본방향은 국가 정체성의 확립”이라며 “좌파정권 10년 간의 국정운영 내용을 들여다보고, 이 정부가 헌법이 정한 정체성과 이념을 합당하게 구현하는 방식으로 가는지를 확인하고 독려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민주노동당은 소수 의석의 비교섭단체 한계를 극복하고 실력 있는 진보정당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한 4대 목표와 공동의제를 선정 발표했으며, 사안별로 제1야당인 민주당과 공조도 추진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민노당은 24일 의원단 회의를 통해 ▲실력 있는 진보정당, 정책국감 ▲소통하는 국감 ▲사안별 전문가 배출, 세대계층 밀착형 국감 ▲당 역량 극대화 등을 목표로 정기국감에 임하기로 했다. 민노당은 또 ▲경제위기 탈출 국감 ▲사회 공공성 확보 국감 ▲공공부문 비정규직 실태조사 및 개선 국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 국감 등 4대 국정감사 공동의제를 선정하고 당력을 집중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