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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적인 것과 초월성으로 구축된 상징적 우주

박철환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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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87호 편집팀⁄ 2008.10.07 17:28:05

깔끔하게 선이 떨어지는 전통 도자기에 꽂혀 있는 적색, 혹은 백색 목련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담아내는 용기로서의 미술작품의 의미를 음미하게 한다. 아름다움의 결정체인 꽃은 그림과 친근한 관계에 있는 듯하다. 박철환이 주로 그리는 목련들은 맑고 청렴해 보이는 그 자태에 반해서 2006년 무렵부터 시작한 것이다. 목련은 단지 정물화의 한 소재이기보다는 충만한 생명의 느낌을 전달한다. 하나의 나뭇가지에 매달린 여러 송이의 목련이 꽃이 피는 과정을 시연이라도 하듯이, 개화의 여러 단계가 나타나 있어 화면에 동적인 느낌을 부여한다. 목련의 사실적인 면모는 자연의 경외심에 대한 강한 감정이입의 정서를 자아낸다. 입자가 고운 리넨 천에 아크릴릭으로 그려진 목련화는 서양화의 재료와 기법을 보여주지만, 서양화 특유의 두터운 물질감이 없고 바탕과 곱게 밀착되어 있다. 동양화의 분위기는 목련이나 도자기 같은 소재 때문만은 아니다.

박철환은 ‘인물 또는 문인화를 닮은 정물화’를 그리고 싶다고 말한다. 작가에 의하면, 문인화는 획이 강하고 여백이 있으며, 숙달된 기교를 요구한다. 절묘하게 굽은 나뭇가지는 필획의 느낌을 주고, 추상적인 바탕은 여백처럼 보이며, 사실묘사는 숙달된 기교와 연관된다. 전경의 대상은 도자기의 선 안팎을 중심으로 하나의 덩어리로 응집되지만, 배경은 선과 면의 복잡한 중첩에 의해 추상적인 효과를 나타낸다. 많은 시간이 걸리는 밑칠 작업은 긁고, 찍고, 뿌리고, 베껴내는 등 접착 문제로 화면에 이질감을 만들어내는 꼴라주 기법만 빼고, 우연적인 효과를 주는 방법을 최대한 활용한다. 돌가루 등을 젤에 개서 발라 촉감을 강조하기도 한다. 배경화면은 무에서부터 시작하여 무로 회귀할 수 밖에 없는 우연성이 짙지만, 보다 엄밀하고 투명한 방식으로 그려진 전경의 대상과 어우러진다.

요즘은 주로 목련을 그리지만, 내년부터는 종교적 분위기가 나는 인물을 소재로 한 작품을 계획하고 있다. 인체의 부분 하나만을 가지고 그 위에 빛을 주고, 전경의 입체감과 배경의 신비감이라는 기법을 동일하게 적용할 예정이다. 추상적이든 구상적이든 화면을 보는 관습상, 전경의 덩어리는 인물을 연상시키게 된다. 따라서, 정물화에서 인물화로의 상호적 이동은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다음 작품에 대한 계획을 밝히는 작가의 언급에서 그가 독실한 기독교도임을 알게 된다. 작업실 대신 방문한 두 군데 전시장에서 본 작품들과 작가론에 실린 글에서 ‘내 아버지의 세계’를 표현하고자 한다는 대목도 발견된다. 물론, 그의 작품에는 십자가를 비롯한 어떠한 종교적 도상도 발견되지 않는다. 필자가 주목하고 싶은 것은 정밀한 자연 묘사에서 발견될 수 있는 기독교적 세계관이다. 그것은 작품의 내용보다는 형식 그리고 작업에 대한 태도와 관련되는 것으로서 매우 흥미로운 부분이다.

박철환이 그린 풍경화에서 파도치는 바다나 용트림하는 소나무 등에서 보이는 대상에 대한 정교한 사실적 묘사는 대상의 기계적 재현을 넘어 생명의 신성한 기운이 충전되어 있다. 풍경화 역시 정물화처럼 배경이 추상적으로 처리되어 있다. 대상과 무관하게 자체적으로 아름다움을 발하는 배경의 다양한 미적 효과는 자율적인 조형 언어의 힘이다. 그 힘은 그려진 꽃병을 들어 올릴 듯한 목련처럼, 대상이 단지 화폭에 그려진 한 장의 그림에 불과함을 은연중에 강조할 만큼 강력하다. 어떤 작품은 화병의 외곽선이 배경에 녹아 반투명하게 걸쳐 있는 것도 있다. 전경과 더불어 작품의 주요 요소가 되는 배경에서 조형적 언어는 실재와의 연결고리를 잃고 배회한다. 박철환의 작품에서 전경의 완벽한 사실주의와 배경의 불확실성의 공존은 존재의 확신에 생긴 균열이다. 구상과 추상의 공존은 실재와 언어와의 분리에 대한 증거이자, 유기적 통합에 대한 희망을 예시한다. 복귀해야 할 실재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에서, 종교 또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믿는다. 종교는 관념적이지만 객관성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배경을 수없이 덧그리고 지우는 과정에서, 최종적인 효과는 처음부터 계획되는 것이기보다는 관객이 나름대로 엮어갈 수 있는 우연적 조합에 의지한다. 배경은 특별한 형상을 갖추고 있지 않지만, 그렇다고 텅 비어 있거나 꽉 채워져 있는 것은 아니다. 단순한 물질 운동의 배경이 될 뿐인 텅 빈 공간은 근대 과학의 산물이다. 아무런 특징이 없는 공간이라는 사고의 시작을 알린 뉴턴에게, 신이 부여한 자연법칙이 펼쳐지는 중립적인 영역이라는 비유가 남아 있었다면, 그 이후의 과학사는 ‘성스러운 질서’에서 질서만을 남겨 놓으려 했다.

동일한 코드로 가득 채워져 있는 하이퍼 리얼리즘 식의 방법은 방향을 잃은 물질문명의 산물이다. 텅 빔과 꽉 채워져 있음은 반대라기보다는 상호적인 인과관계를 가지고 있다. 르네상스의 화가 알베르티가 강조하듯이, 회화는 자연을 모방해야 하며, 특히 자연의 창조적 역할을 모방해야 한다. 이러한 미학에서 자연 자신이 수행하는 일인 창조와 화가의 작업은 밀접한 관계를 가지게 된다. 자연 모방은 화가의 위상을 단순한 복사자로 머물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중심에 다시 놓는다. 그것은 르네상스에 확립된 원근법이 예시하듯이, 인간 주체가 스스로 정한 형태를 우주에 부여하고 구성한다는 것이다. 뒤프레는 그 주체가 새로운 상징적 세계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한다. 원근법은 바라보는 자의 눈, 즉 새로운 예술세계의 창조적 기원인 사람의 눈에서 시작된다. 인간 자신이 직접 선택한 장소로부터 우주의 중심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여기에서부터 근대적 주체가 탄생했지만, 그 부정적 결과물인 현대의 주관주의는 마음의 능동적인 힘을 일방적으로 강조한다. 그러나 종교는 자신을 보다 높은 실재에게 굴복시킬 것을 요구한다. 박철환의 작품에서 보이는 전경과 배경과 사이에 놓인 균열과 연결에는 예술의 능동적인 역할과 종교의 본질적인 수동성 사이의 긴장이 존재한다. 이러한 긴장 속에서 구축된 상징적 우주는 보이는 것 속에서 스스로를 나타내는 초월적 실재를 예시하고 있다.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졸업 및 미술대학원 회화과 졸업 개인전(28회) 제3갤러리(서울), 관훈갤러리(서울), 현대화랑(대전), 관훈미술관(서울), 예술의전당(서울), 화지갤러리(일본 도쿄), 동아갤러리(인천), 조형갤러리(서울), 파르티타갤러리(광릉), 조흥갤러리(서울), 피카소화랑(부산), 송아당화랑(대구), 현대아트갤러리(서울), 교차로갤러리(대전), 갤러리상(서울), 갤러리아 타임월드(대전), 현대갤러리(울산), 성갤러리(대전), 혜원갤러리(인천), Arts Pool 삼진미술관(마산), 인사아트센터(서울) 단체전 Mull전(2005, 2006)│영혼을 담은 아름다운 그릇전(공평아트센터) 외 국내외 단체전 200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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