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기가 한국 금융시장을 강타하면서 금융업계가 위축된 가운데, 저축은행은 인수·합병(M&A) 활기를 띠고 있다. 1990년대 후반에 이뤄졌던 인수·합병이 부실 저축은행을 털어내기 위한 정부 주도의 혹독한 구조조정 차원이었다면, 최근엔 대형화를 통해 전국적인 영업망을 갖춘 금융회사로 성장하기 위해 시장 자율적으로 인수·합병이 이뤄지고 있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저축은행이 중장기적으로 생존하려면 무리한 자산성장이나 단기수익 추구를 피하고 기존 고객 및 타 금융권의 고객에 대한 공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저축은행 업계에 따르면, 지난달 말 부산저축은행은 케이티비(KTB)투자증권과 공동으로 대전저축은행을 인수한 데 이어, 최근에는 케이티비자산운용과 컨소시엄을 이뤄 전북 소재 고려저축은행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대전저축은행과 고려저축은행은 모두 6월 말 기준으로 비아이에스(BIS) 비율이 5% 미만으로 떨어져 부실에 빠지면서 금융감독원의‘적기시정조치’를 받았다. 총자산이 2조6000억 원인 부산저축은행은 두 저축은행 인수를 마무리하면 총자산이 4조 원을 넘어서게 된다. 현대스위스저축은행도 최근 충북 소재 중부저축은행을 인수하는데 성공해 몸집을 크게 불렸다. 중부저축은행은 지난해 말 부실에 빠지면서 인수·합병시장에 매물로 나온 바 있다. 현재 시장에 매물로 나온 대형 저축은행인 에이치케이(HK)저축은행과 지난해 12월 예금보험공사가 100% 출자해 설립된 예한울저축은행을 누가 인수할지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HK저축은행은 총자산이 2조7000억 원에 이르는 만큼, 인수전 결과에 따라 저축은행 업계 판도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이런 가운데, 금융당국도 인수·합병을 촉진하기 위해 관련 제도를 정비했다. 금융위원회는 지난달 말 자기자본이 일정 수준 이상인 기업이 부실 저축은행을 인수해 정상화할 경우, 영업구역 이외의 지역에도 지점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저축은행법 시행령 개정안을 공포했다. 저축은행 인수·합병 경쟁에는 시중은행과 대기업들도 뛰어들고 있어 금융권 안팎의 관심을 끌고 있다. 현재 매물로 나온 예한울저축은행 인수에 국민은행과 우리·하나은행 등이 인수의향서를 예금보험공사에 낸 것으로 전해졌다. 또, 한화그룹은 올 상반기에 제일화재 인수를 통해 보유하게 된 부실 저축은행 새누리저축은행을 정상화하기 위해 유상증자를 추진하고 있고, 에스티엑스(STX)그룹도 지난해 흥국저축은행을 인수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과도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등으로 부실에 빠진 저축은행들이 인수·합병 등을 통한 시장자율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조기에 경영 정상화를 이룰 수 있기를 기대한다”며, “앞으로 저축은행 인수합병 시장이 보다 활기를 띨 것”이라고 말했다 ■ 몸집 키우기보다 내실 다져야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몸집 키우기보다 내실을 다지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정책대학원 이건호 교수는 “은행 등 대형 금융기관과의 직접경쟁보다는 상호보완적 관계를 추구하고, 개인 및 중소기업을 기반으로 한 ‘관계금융(Relationship Banking)’을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 교수는 저축은행이 자산성장에 비해 손익이 감소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으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등 대규모 대출기회가 축소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저성장기에 저축은행이 서민금융기관으로서 갖춰야 할 생존역량으로 △자산성장 목표 현실화 △고객에 대한 지식 △창의성 △낮은 단위당 수익성 목표 등을 가져야 한다고 제시했다. 이는 성장보다는 질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저축은행의 생존전략으로는 △틈새시장에서 니치플레이어로 포시셔닝 △‘관계금융(Relationship Banking)’의 강화 △역량 결집을 통한 경쟁력 제고 등을 주문했다. 아울러, 서민금융 부문과 관련해서는 △무리한 자산성장 포기 △리스크 관리 강화 △기존 고객의 거래수익성 극대화 △은행시장의 한계고객군 공략 △전략적 제휴기회 모색 등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덩치는 커지는데 예대마진은 줄고 있고, 커진 규모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영업환경은 경기침체에 발목이 잡혀 불안한 상태라 저축은행 업계의 성장이 달갑지만은 않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무엇보다 저축은행 업계의 예대마진은 최고 7.2%에 달하는 고금리 수신경쟁의 영향으로 줄어들고 있다. 2월에 잠시 5.49%까지 상승했지만 6월 말 5.07%로 하락했다. 다만, 7월 대출금리 인상으로 5.56%로 예대마진이 잠시 회복했지만,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이 같은 예대마진 축소는 수익감소로 직결된다. 지난 회계연도(2007년 7월~2008년 6월) 결산에서도 이자부문 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5.9%(1525억 원) 감소한 2조4211억 원에 그쳤다. 수신금리 인상 등에 따라 이자비용 증가율(29.4%)이 이자수익 증가율(10.8%)을 큰 폭으로 상회(18.6%포인트)하면서 나타난 결과다. 여기에 유가증권 관련 이익이 92.3%(2549억 원) 감소한 212억 원, 신규취급 PF 대출 감소에 따른 감소(1488억 원)까지 겹쳐 업계 전체 당기순이익이 30% 줄어든 4794억 원에 그쳤다. 한 대형 저축은행 관계자는 “금융시장 전체적으로 위기감이 돌고 있어 저축은행들이 유동성 확보를 우선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수익 압박은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또 “이전에는 위기라는 지적에도 대형사는 안심했었지만, 앞으로는 그렇지 않을 수 있어 경영 방향을 바꿔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