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이 일단락되고 기업경영이 정상궤도에 진입한 2003년 이후로도 업계 판도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 불안한 국내외 경제환경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고성장과 고수익을 이어가고 있는 우량기업들. 이들의 성공은 ‘연구개발(R&D)’와 ‘광고’ 등 이른바 ‘내부역량’을 밑거름으로 한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이와 관련, 최근 5년 간 지속적으로 높은 성과를 거둔 기업은 삼성전자와 포스코 등 18개 기업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요동치는 경제환경에서도 꾸준히 고성장과 고수익을 달성하는 이들 우량기업의 성공비결은 무엇일까? 이들 기업은 모두 투자에 적극적이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지난해 4월 글로벌 컨설팅 회사인 액센츄어가 글로벌 컨버전스 포럼을 주최하고 ‘고(高)성과 기업으로 가는 항로탐색’이라는 주제로 전 세계 6,000여개 기업에 대한 4년 간에 걸친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고성과 기업’에 대해 발표했다. 이 자리에서 액센츄어는 고성과 기업으로 분류되기 위해서는 ▲성장성(매출증가율) ▲수익성(자본수익률과 자본비용의 차이) ▲총 주주수익률(주가상승률과 배당수익률을 합친 것) ▲미래가치(주가 중 현재 실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부분) ▲장수성(총 주주수익률이 동종업계 평균을 넘는 기간) ▲일관성(7년 중 몇 년 동안 동종업종의 평균수익성·성장성·미래가치를 넘는가) 등 6가지 성과지표를 충족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액센츄어의 마틴 콜 대표는 “고성과 기업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면서 “시장 집중과 선택, 차별화 능력, 승리하려는 마음자세 등 세 가지 핵심기반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본 경제산업연구소는 우량기업의 조건으로, 자신들이 알고 있는 사업분야에서 그다지 영역을 확장하지 않고 우직하고 성실하게 사업을 추진하며, 자신들의 머리로 생각해 도달한 결론은 정열을 가지고 추진하는 기업이라고 제시했다. 또한, 장기불황에도 최고 업적을 내고 있는 일본의 6개 기업을 선정해 그 비결을 분석한 결과, ▲전략을 수립하고 이를 실행하는 CEO의 경영능력 ▲사업영역 명확 ▲철저한 생산혁신으로 최고경쟁력 확보 ▲사업 리스크직시 및미래투자 지속 실시 등 고성과 기업의 특징을 도출해냈다. ■ 지속적 고성과 내려면 투자와 내부역량 강화 필수 수익을 동반한 지속적 성장은 모든 기업들이 꿈꾸는 최상의 목표다. 국내 기업 역시 수익을 동반한 성장을 지속적으로 이루어 내기가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성장은 둘째 치고 현재의 시장 지위를 유지하는 일조차 쉽지 않다. 삼성경제연구소는 ‘한국 고(高)성과 기업의 특징’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지난 수년간 한국 기업은 ‘수익성 패러독스’ 현상에 직면하고 있다”며 “외환위기 이후에 정착된 수익성 위주의 경영기조에도 불구하고 상장기업의 평균 수익성은 정체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내 기업들은 기업 본연의 경쟁력, 즉 내부역량 강화를 통해 고성과 기업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삼성전자·포스코·LG화학·현대모비스 등 2004년 이후 고성장· 고수익을 실현하고 있는 기업들의 성장 원동력을 보면, ▲유형자산 증가율 ▲연구개발(R&D) 비중 ▲광고비 증가율 등으로 분류되는 ‘내부역량’의 경쟁력이 고성과 기업의 핵심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기업 규모, 대규모 기업집단 소속 여부, 해당 산업의 경기 등은 상대적으로 기업 성과에 미치는 영향이 작았다. 연구소는 1996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계속 상장된 비금융 상장사 420개 가운데 매출액증가율 10%를 기준으로 고성장·저성장, 총자산이익률 5%를 기준으로 고수익·저수익 기업으로 분류했다. 이 가운데 고성장과 고수익을 동시에 달성한 기업은 ‘고성과(HH) 기업’으로 정의했고, 2002년부터 올 상반기에 걸쳐 HH 기업이면서 동시에 매출이 연 3,000억 원 이상인 기업은 ‘스타 HH 기업’으로 규정했다. 보고서는 “지속적으로 고성과를 거둔 스타 HH군은 투자와 무형자산, 재무구조에서 여타 기업들과 명확히 차별화를 이뤘다”면서 “신규 HH군의 경우에도 산업경기효과 이외에 광고비의 확대와 재무구조 정립 등이 성공의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보고서는 “기업 본연의 경쟁력(내부역량)을 지속적으로 강화해야 스타 HH군으로 진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현재의 고성과 유지가 것이 가능하다”면서 “한국기업의 벤치마킹 대상은 HH군이 아니라 스타 HH군”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국내 420개 비금융 상장사를 대상으로 2002~2003년과 2007~2008년 상반기 실적을 비교한 결과, 전체의 73%인 308개사가 큰 부침을 겪었으며, 이 중 매출액증가율 10% 이상의 고성장과 총자산이익율 5% 이상의 고수익을 동시에 달성한 고성과 기업은 55개사에서 97개사로 늘었지만, 기존 고성과 기업 중 67%가 탈락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저성장·고수익군에 포함됐던 108개사 중에서는 30개사가 고성장 기업군으로 발전한 반면, 39개사는 수익성마저 나빠지면서 저성장·저수익군으로 전락했다.
■ 투자가 없으면 수익도 없다 보고서에 따르면, 기업이 속한 산업의 종류가 반드시 성과와 직결되지는 않았다. 기업 규모, 대규모 기업집단 소속 여부도 HH 기업군과 그렇지 않은 기업군 사이에 큰 차이는 없었다. 반면, 유형자산 증가율과 R&D 비중으로 본 투자 규모는 기업의 성과에 현격한 차이를 만들었다. 스타 HH 기업군의 유형자산 증가율은 9.2%인 반면, 저성장·저수익 기업군은 0%였다. 주가순자산비율(PBR), 광고비증가율 등 무형자산에서도 스타 HH 기업군과 나머지 기업군의 차이가 뚜렷했다. 주목할 대목은 지속적으로 고성장·고수익을 달성한 기업들은 산업경기 등 외부 요인에 흔들리지 않고 유형자산 증가나 연구·개발, 재무구조 면에서 여타 기업들과 차별화를 이루며 기업 본연의 경쟁력인 내부역량을 강화시켜 왔다는 분석이다. 설비 투자와 R&D 투자, 시장 개척 등 지속적인 투자를 통한 내부역량 강화가 고성장·고수익의 첩경이라는 것이다. 보고서는 이에 대해 “구조조정이나 보수적 경영을 통해 단기적인 수익 개선을 거둔다 해도 미래성장에 필요한 투자가 수반되지 않을 경우 수익성은 다시 하락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밝혔다. 2007년 이후 HH 기업군에 진입한 기업은 대체로 경기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결과로, 투자를 통한 내부역량 강화에 소홀할 경우 성장세가 꺾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보고서는 “HH 기업군에 신규 진입한 기업들은 산업경기 호조에 의한 착시효과에서 벗어나 내부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진단했다. 보고서에선 한미약품의 꾸준한 고성장과 고수익이 주목받으며 삼성전자보다 높은 평가를 받았다. 조사대상 가운데 1996년부터 올 상반기까지 한 차례도 HH 기업군에서 탈락하지 않은 곳은 한미약품이 유일했다. 또, 한미약품의 2005~2007년 R&D 비중은 9.7%에 달해 매출상위 글로벌 100대 기업의 6.5%보다 높았고, 삼성전자의 9.4%보다 높았다. 삼성전자·포스코·LG화학·현대모비스 등 4개사는 2004년 이후 고성장과 고수익을 동시에 실현한 대표 기업으로 분석됐다. 이들의 평균 매출액증가율은 13.8%, 평균 매출이익률은 14.3%였다. 보고서는 “삼성전자·포스코 등 스타HH군에 속한 대표 기업들의 두드러진 공통점은 불황 속에서도 꾸준한 투자를 했다는 것”이라며 “지속적으로 고성과를 내려면 적극적인 투자를 통한 성장 추구와 주력사업으로 축적한 경영자원의 일부를 신성장사업에 투자하는 전략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삼성경제연구소 김성표 수석연구원은 “구조조정이나 보수적 경영을 통해 단기적인 수익개선을 거둔다 해도 미래성장에 필요한 투자가 수반되지 않을 경우 수익성은 다시 하락할 가능성이 농후하다”며 “전체 기업 가운데 ‘고성과 기업군’이 차지하는 비중은 23.1%로 외환위기 이전의 8.1%보다 3배 가까이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불황기로 접어들더라도 내부역량 강화에 소홀해서는 안된다”며 “특히 최근 고성과 기업군에 새로 진입한 기업들은 산업경기 호조에 의한 착시효과에서 벗어나 내부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한국의 고성과 기업들의 사례는 미래를 위한 철저한 준비와 변신만이 지속적인 성장을 담보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최근 국내외 경제 여건은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안개 속에 갇혀 명성을 떨치던 글로벌 금융기관들의 도산이 줄을 잇는 등 하루하루가 살얼음판이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차분하고 냉정하게 기업의 미래를 다시 한 번 점검해 보는 혜안이 요구된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