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8호 심원섭⁄ 2008.10.14 14:47:34
7월 3일과 6일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와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전당대회를 통해 각각 여야 대표직에 선출되었다. 원내 제1.2당인 한나라호와 민주호를 출범시키면서 관심을 모았던 두 사람이 10월 10일과 13일로 각각 취임 100일을 맞았다. 두 사람 모두 당내외적으로 대화와 타협을 중시해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향후 여야 협상 과정에서 특유의 리더십을 발휘할지 관심거리로 등장했으며, 특히 두 사람은 과거 당이 위기에 처했을 때 당 수습을 위해 당을 진두지휘한 경험이 있다는 공통점도 갖고 있었다. 박 대표는 한나라당의 2002년 대선 패배 직후 6개월여 동안 대표권한대행을 맡으며 당이 안정궤도에 오르는데 큰 역할을 했으며, 정 대표도 2005년 10.26 재보선 패배 이후 과도체제 사령탑을 맡아 당내 갈등을 수습하고 정국현안을 무난하게 처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두 사람은 정치에 입문하기 전 이력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박 대표는 검찰에서 검사장까지 지낸 율사 출신인 반면, 정 대표는 고려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졸업한 뒤에는 쌍용그룹 상무를 지내는 등 경제이론을 갖춘 정치인으로 통했다. ■ 한나라당 박희태 대표 우선, 박 대표는 ‘박희태’라는 연호 속에 ‘화합과 소통’이라는 좌표를 설정하고 한나라호를 출범시켰지만, 집권여당에다 172석의 거함을 이끌 선장으로서 ‘원외’라는 타이틀은 치명적인 약점이라는 점에서 환호 속에 우려의 목소리도 섞여 나왔었다. 이러한 우려는 현실로 나타나, 불과 취임 한 달 만에 ‘당청 간 소통’이 꽉 막혀 있다는 지적을 받으면서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등 리더십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특히, 당내에서는 홍준표 원내대표가 ‘독단’으로 인사청문특위에 합의했다가 ‘청와대 반대’를 이유로 협상을 무산시켰다며 비판의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결국 여야 간 원구성 협상 결렬 과정에서 불거진 당내 의사소통 부재와 그 책임을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기까지 했다. 여기에다 여권 내 의사결정 과정에 대한 정몽준 최고위원 등 당내 반발이 적지 않았고, 대북특사 문제, 종부세 논란, 종교 편향 논란 등과 관련해 당·정·청 간 불협화음이 끊이질 않았다. 그러나 박 대표는 취임 직후 우선 ‘화합’에 치중하면서 ‘친박(친박근혜)’ 인사들의 복당을 전격 결정, ‘친이(친이명박)’계와 양 계파의 케케묵은 감정싸움을 일단 진정시킨 저력을 되새기면서 악재의 긴 터널을 빠져 나가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그 와중에 궁지에 몰렸던 원내수장 홍 원내대표에 대한 지원사격으로 화합을 깨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다한 것이다. 특히, 홍 원내대표가 원구성 협상 결렬, 추가경정 예산안 처리 무산 등으로 퇴진론을 비롯해 곤경에 처할 때마다 박 대표는 ‘수호천사’를 자처하면서 지원사격을 서슴지 않았다. 홍 원내대표는 당시 여권의 신실세로 발돋움했기 때문에 박 대표로서는 어느 정도 긴장관계에 있을 수밖에 없었으나, 이에 개의치 않고 여러 차례에 걸쳐 손을 들어준 것이다. 박 대표가 “앞으로 한나라당에는 친박, 즉 친박희태만 있을 뿐이다”라고 공언한 데서 당 화합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최고위원·중진 연석회의를 정례화하고, 대표특보단을 구성함으로써 당내 소통창구를 찾아가고 있고, 전국을 순회하는 민생탐방에 매진하여 국민여론 듣기에 여념이 없으며, 특히 이명박 대통령과의 회동도 정례화해서 청와대와의 소통도 원활하게 만들었다. 10월 6일 회동에서는 최근의 경제상황과 관련해 박 대표가 이 대통령에게 “국민이 불안해하고 있다”며 직설적으로 얘기해 정례회동이 ‘형식적인 회동’에 안주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되기도 했다. 당 일각에서는 박 대표의 이러한 결과에 대해 “박 대표 특유의 ‘무욕(無慾)의 힘’이 발휘된 결과”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소통의 고속도로’라는 약속 이행에는 지난 100일간의 수많은 시행착오가 밑천이 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박 대표가 집권여당의 대표로서 틀을 잡아 나가고 있지만, 아직까지 지도자로서의 ‘강력한 힘’이 실리지는 않고 있다는 점에서 박 대표에 대한 평가는 아직 다 끝난 게 아니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특히, 오는 2010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현장정치와 일정 거리를 둔 박근혜 전 대표, 이재오 전 의원 등 유력 정치인들이 전면에 나설 경우 박 대표의 당 장악력은 급속히 약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도 뒤따르고 있어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박희태 대표는 9일 취임 100일을 앞두고 여의도 당사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정쟁을 중단하고 경제 살리기 한 길로 가자. 우리 당부터 정쟁 중단을 선언하겠다”며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여야 당대표 회담을 제의한다”고 밝혀 관심을 끌었다.
■ 민주당 정세균 대표 전당대회 다음날인 7월 7일 현충원 참배로 대표로서 첫 일정을 시작한 정세균 대표는 방명록에 “민생을 챙기는 대안정당으로 거듭 나겠습니다”라는 글을 남기며 2년간의 당 대표직 수행에 대한 결의를 다지면서 정세균을 선장을 한 민주호를 출범시켰다. 이처럼 ‘견제야당과 대안야당의 조화를 통한 수권야당 건설’을 기치로 내건 정세균 대표 체제가 13일로 출범 100일을 맞았다. 특히, 정 대표 체제의 출범은 지난 2003년 11월 본격화된 구여권의 분열에 5년 만에 마침표를 찍게 된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그의 친화력과 화합적인 리더십이 주목되는 대목이었다. 정 대표가 새 체제를 출범시킨 뒤 불과 나흘 만에 여러 이견을 물리치고 등원을 전격적으로 단행하거나 최고의결기구인 당무위원회를 잡음 없이 출범시킨 것도 성공적인 리더십 발휘로 평가받고 있다. 여기에 봉하마을을 찾아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묵은 감정을 털어낸 일이나, 동교동을 방문해 범민주계 전체의 화학적 결합을 시도하여 전통적 지지층 복원에 공을들였다는 점도 눈에 띄는 대목이라 할 수 있다. 다만, 80여석의 소수당으로 제1야당의 역할과 몫을 찾아야 하는 점이 정 대표로서는 무거운 짐이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정치권의 대체적인 평가다. 한나라당이 친박복당으로 150여석에서 170여석으로 거대여당이 됐기 때문에, 소수야당의 한계를 딛고 거대여당을 견제하여 정국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해야 하는 무거운 숙제를 안고 국정 파트너로서 어깨를 나란히 하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 대표는 안으로는 구여권 분열구도에 마침표를 찍고 통합을 이루면서, 밖으로는 먼저 정 대표 특유의 안정과 통합의 리더십을 내세워 과도체제였던 당을 정상궤도로 빠르게 진입시키는데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당 체제 정비를 신속하고 잡음 없이 마무리한데 이어, 최근에는 특보단까지 발족해 공고한 리더십 기반을 다졌다고 할 수 있다. 지난달에는 4년 6개월 만에 여의도 당사 시대를 열며 ‘뉴민주당 비전위’, ‘2010년 인재양성위’를 발족, 집권을 위한 뉴민주당 계획을 가동하며 재창당의 초석을 마련했다. 정 대표는 싸울 것은 단호히 싸우되 협력할 것은 협력하는 새로운 야당과 야당 지도자상(像)을 보여주겠다는 구상 아래 내부 안정을 토대로 새로운 야당 모델을 정립하기 위한 실험을 본격화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곧 정 대표가 차기 대권후보로서의 행보를 디뎠다는 관측이 나온 배경이기도 하다. 정 대표가 ‘9월 경제위기설’이 불거졌을 때 “위기가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던 일이나, 9월 25일 이명박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에서 경제·민생 안건에 대한 초당적 협력을 약속하고 ‘국정 동반자’의 반열에 섰던 일도 그 연장선이라고 할 수 있다. 정 대표가 이달 초 개성공단을 방문하고 ‘연내 평양방문’ 카드를 전격 꺼내들며 국가적 문제인 남북관계 해결사를 자임한 것도 ‘대안야당’과 ‘통 큰 지도자’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려는 구상에서 나왔다는 분석이 유력하다. 그러나 정 대표가 9월 25일 이 대통령과의 여야 영수회담에서 ‘국정 동반자적 관계로서 초당적인 협력을 하겠다’고 한 합의를 놓고, 민주당 내부에서 잇따라 정체성 논란이 제기되는 등 영수회담 후폭풍이 거세게 몰아치고 있어 정 대표의 리더십이 본격적인 시험대에 서게 됐다. 특히, 9월 30일 김근태 전 의원, 천정배 의원 등 개혁진영 인사들이 비주류연합체 성격의 ‘민주연대’를 발족하면서 정 대표와 386그룹으로 대표되는 신(新)주류를 견제하기 시작해, 중도 온건노선 쪽의 신주류와 비주류의 정체성 논쟁이 불붙을 경우 당내 분화가 가속화할 가능성도 있다는 점에서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무엇보다 정 대표로서는 현 정부의 계속된 실책에도 불구하고 정국 주도권을 제대로 잡지 못한 채 10% 후반대에서 정체된 당 지지율을 끌어올려야 하는 큰 과제가 있다. 뿐만 아니라, 2010년 지방선거를 승리로 이끌어야 할 무거운 짐도 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으며, 그 결과에 따라 정 대표와 당의 정치적 미래를 가를 것으로 보여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