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시작된 국제 금융위기가 한국 경제를 강타하고 있다. 이 때문에 높은 금리와 환율, 물가로 인해 서민들의 삶이 더욱 팍팍해지면서 조만간 제2의 외환위기가 오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래서 1997년 외환위기 시대와 현재의 경제가 어떤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지 따져봤다. 다만 분명한 것은, 서민들이 느끼는 경기체감은 외환위기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또, 중소기업의 잇따른 부도, 유동성 부족, 원·달러 환율 폭등 등 역시 현재 우리 경제의 해결 과제로 남아 있다. IMF 위기 10년 후의 현 경제현상을 조목조목 짚어봤다. 다시는 떠올리 싫은 외환위기 시절. 두 번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냉정한 현실은 자꾸만 그때의 악몽을 떠올리게 만들고 있다. 그러나 아픔을 겪을수록 성숙해진다고 했던가? 굳이 기억하고 싶지 않겠지만, 현 경제 상황이 결코 긍정적이지 않으니 다시 한번 그때 그 시절을 재생해야 할 듯하다. 문제가 있어야 답도 나오는 것이니까. 새마을운동의 전개로 한국 경제가 급성장했던 시기는 단연 1970년대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이 자동차·도로·항만 등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대표적인 시대였기 때문이다. 이후 급성장한 우리 경제에 제동을 건 시기는 1997년 시작된 외환위기라고 할 수 있다. 사실상, 외환위기는 6·25 전쟁 이후 피폐해진 한국 경제가 ‘한강의 기적’을 이루면서 개발도상국의 지위를 막 탈피하려는 순간에 불현듯 닥쳐왔다. 한국 경제는 1977년 소득 1000달러 시대에 진입한 이후 불과 20년이 채 안 되는 1995년에 그 10배인 1만 달러대를 달성했다. 당시 분위기는 한국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하는 이벤트와 맞물려, 한국 경제가 드디어 선진국으로 발돋움한다는 기대감 그 자체였다. 그러나 관치금융과 기업의 과도한 외형경쟁으로 과잉·중복 투자가 만연돼 자원의 비효율적 배분이 극에 달했다. 결국 이는 많은 기업들이 파산하는 결과로 이어졌는데, 1997년 1월 한보철강부터 시작돼 같은 해 3월의 삼미그룹 부도, 4월과 5월에는 진로그룹 및 대농그룹의 워크아웃 등으로 이어졌으며, 결정적으로 10월에 들어 기아자동차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된다. 대외적으로는 동남아로부터 시작된 유동성 위기가 우리를 엄습해 왔다. 1997년 2월 태국의 자산관리회사가 대외채무 약 310만 달러에 대해 디폴트에 빠진 것이 동남아 유동성 위기의 시작이었다. 이후 투기 자본이 일시에 동남아 지역으로부터 빠져나가 태국 바트화 가치가 폭락하고, 이어 필리핀 페소화, 인도네시아 루피화, 말레이시아 링기트화, 대만의 타이완 달러화 가치가 급락했다. 급기야 이러한 통화가치 도미노 현상이 우리나라에도 전염됐으며, 한국은 12월 3일 IMF와 협정을 체결해 550억 달러를 융자받기에 이른다. 이후 명예퇴직자들이 대거 늘어나고, 취업난이 최고점에 달했다. 길거리에는 노숙자들이 늘어나고, 서민들은 높은 물가에다 일자리를 잃은 가정 때문에 아내들이 파출부·음식점·막노동까지 가장의 일을 떠안게 됐다. ■ ‘Again 10년’ 무엇이 닮았나 그렇다면, 10년 전과 지금은 어떤 모습이 닮았을까? 가장 대표적인 부문은 단연 환율이다. 한국 정부가 IMF 구제금융 신청을 발표한 1997년 11월 21일 이후의 환율 움직임과, 지난 9월 15일(한국시간)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신청으로 촉발된 금융위기 때의 환율 상황은 거의 판박이다. 1997년 11월 21일 정부의 IMF 구제금융 신청이 있던 당일, 환율은 전날보다 160원 급등한 달러당 1056원으로 마감했다. 그러나 급격한 장중(場中) 변동성에도 불구하고, 환율은 보름(12월 5일까지)여 동안 1100원대 안팎에서 움직였다. 이번에도 역시 9월 15일 리먼 파산신청 이후 보름이 지난 10월 들어서야 달러 부족으로 인한 환율 급등이 시작됐다. 1997년 12월 5일 이후 원화 환율은 하루 변동폭이 20~291원을 기록할 정도로 폭등·폭락을 거듭하다, 12월 23일 마침내 외환위기 당시 장중 최고가였던 달러당 1995원을 기록했다. 그러나 ‘심리적 정점’인 2000원 수준에 도달하자, 이후엔 정부의 개입 없이도 환율은 급락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12월 26일에는 하루에 무려 338원(18%)이 폭락한 달러당 1498원으로 마감하기도 했다. 같은 달 30일에는 장중 최고가(1715원)와 최저가(1220원)의 차이가 495원에 달할 정도로 변동성이 극에 달했다. 이후 환율은 러시아 외환위기(8월)와 엔화 급락(8월) 등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증권계의 한 애널리스트는 “이번에도 지난 10일 하루 변동폭이 235원에 달할 정도로 컸다”며 “변동폭이 크다는 것은 그만큼 시장이 아래로 꺼지기도 쉽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 외화·실물경제·금융시장 상황 비슷 외화유동성과 실물경제, 금융시장도 97년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특히, 대외여건은 오히려 더 나빠졌다. 먼저, 외화유동성 면에서 일반기업은 물론 금융회사들까지 달러 가뭄에 시달리고, 정부가 외화유동성 공급에 나서고 있다. 97년 외환위기 당시 정부는 은행들의 수출신용장 전액을 매입하는 대신 외환보유액을 풀기로 했었다. 이명박 정부 역시 지난 10월 2일 스와프 시장과 무역금융 재할인을 통해 150억 달러를 공급하기로 했다. 실물경제와 금융시장 상황도 비슷하다. 외환위기 때는 산업생산 등 경기하강 국면이 지속됐고, 반도체 가격 급락으로 경상수지 적자가 급증했다. 지금 우리 경제가 직면한 경기둔화와 물가급등, 경상수지 적자와 닮은 꼴이다. 대외여건은 오히려 더 나빠졌다. 외환위기 당시에는 동아시아에서 외환위기가 발생한 반면, 미국은 장기 호황을 누리고 있었고, 유럽 역시 고성장을 구가하고 있었다. 지금은 신용경색이 전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고, 모든 나라들이 경기침체를 걱정하고 있다. ■ 정부, “외환위기 없다” 큰소리치는 이유 그렇다고 한국 경제가 당장 IMF환란을 초래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 당국 역시 97년도와 지금은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난다며 외환위기 우려를 일축하고 나섰다. 그렇다면, 어떤 부문에서 차이가 날까? 가장 큰 차이는 기업 체력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97년 우리 기업들의 부채비율 평균은 424.6%였지만, 지금은 92%로 확 줄어들었다. 부채비율이 줄고 상장사의 이익규모는 97년에 비해 30배나 높아졌다. 즉, 빚은 적고 이익은 많이 내는 건강한 체질로 바뀐 셈이다. 경제 주체 중 파급력이 가장 큰 기업들이 든든하게 버티고 있어, 금융위기가 실물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전망도 있다. 여기에, 정부에서 보유한 외환보유액도 97년과는 확연히 다르다. 97년 당시 204억 달러에 불과했던 외환보유액은 2008년 9월 말 현재 2397억 달러로 크게 늘어났다. 위기의 전반적 진행 상황도 다르다. 당시 동남아에서 시작된 외환위기는 주로 아시아권의 신흥시장을 강타했다. 구제금융의 주체인 국제통화기금(IMF)이나 미국 등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에 고금리 정책 등 충격요법을 요구했고, 위기에 몰린 한국은 그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미국에서 시작된 이번 위기는 주로 미국·유럽 등 선진 시장에 큰 충격을 주고 있고, 금리인하, 대규모 구제금융 등 충격이 덜한 수단을 써 97년과는 그 양상이 다르다. 한국 자체의 부실보다는 세계적인 과잉 유동성 해소 과정에서 한국 경제도 위기를 겪고 있는 셈이다. ■ 제2의 외환위기 올까 전문가들은 고환율이 유지되는 등 환율 불안은 있지만 97년 같은 외환위기 가능성은 적다고 보고 있다. 지금 상황은 한국에 대한 의심보다는 전세계적인 달러 수요 급증에 의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세계 금융 시스템이 붕괴되거나 극도의 불신이 오지 않는 한 97년과 같은 일이 되풀이될 가능성은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섣부른 위기론이 진짜 위기를 부를 수 있다”면서 성급한 위기론을 경계했다. 그는 “지금은 위기라기보다 위기에 신중하게 대비해야 할 때”라면서 “정부가 신뢰를 받고 기업 등 경제 주체와 팀워크를 이뤄 대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외국계 은행의 한 외환 딜러도 “한국의 경제상황만 보면 97년 같은 외환위기가 올 가능성은 없다”면서도 “문제는 미국의 사태 해결 추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국 시장이 안정되지 못한다면 세계 경제가 동반 붕괴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전직 재경부 고위 관리는 “지금 상황은 외환위기가 온 97년 여름처럼 먹구름이 잔뜩 끼어 있는 상황”이라면서 “이 구름이 폭풍우를 몰고 올지, 그냥 지나갈지는 정부의 대응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그는 “더 이상 펀더멘털 타령은 그만하고 위기를 인정하면서 위기대응 체제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하루 환율 변동폭이 100원을 넘나들고 미국의 금융위기가 어느 방향으로 갈지 모르는 상황인 점을 감안하면, 지금도 국제 금융시장은 교란 상태라고 볼 수밖에 없다. 환율과 주가가 심상치 않다. 다행히 10월 10일 외환시장은 달러당 1309원으로 마감해 이틀 연속 하락했다. 하지만, 하루에도 변동폭이 150원에 이를 정도로 커 환율이 하향안정세로 돌아섰다고 보긴 힘들다. NH선물 이진우 부장은 “이틀 간의 하락 탓에 추세적으로 반전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해외 변수가 워낙 커 한국 시장의 추세를 예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코스피지수는 9일 대비 53.42포인트(4.13%) 내린 1241.47을 기록하면서 여전히 하락장세를 이어갔다. 환율은 상승하고 주가는 떨어지는 상황은 11년 전 이맘때와 비슷하다. 당시에도 환율이 상승했고, 정부는 환율 방어에 나섰다. 결국 환율 방어는 불가능했고, 주가는 속절없이 떨어졌다. 정부 개입으로 잠시 제동을 걸 수는 있지만, 위기가 기술적 반등이나 국내 수급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으로 달러 품귀 현상을 빚으면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미국 시장이 안정되지 않는 한 환율 안정은 불가능할 것이란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특히, 지난 10월 6일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이 시중은행장과의 긴급간담회에서 “은행들은 해외 자산을 매각해서라도 달러를 확보해야 한다”고 말함으로써 외환보유액에 대한 의구심을 더욱 증폭시켰다. 시중은행의 달러 차입이 불가능해진 상태에서 경상수지 적자가 계속돼 외화자산 매각 외에 별다른 달러 마련 방안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