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이 3주간 진행되는데 오늘이 그 꼭지점인 것 같다”고 지난 15일 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가 이야기 했듯이 올해의 국정감사가 내리막으로 치닫고 있는 와중이다. 국회 국정감사 파행을 둘러싼 여야 간의 충돌이 격화되고 있다. 국감장에서 피감증인들을 앉혀놓고 의원들끼리 말 꼬투리 잡기는 예사이고, 국감 파행 책임을 물어 일부 피감기관 증인을 위증죄로 고발하거나, 국감 방해도 서슴지 않고 있다. 국감에 임하는 의원들의 자세는 여전히 ‘함량미달’의 모습이다. 이런 가운데, 서로간에 국감 방해 및 성 비하적 표현의 죄목을 씌워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하는 일은 지켜보는 이들을 씁쓸하게 한다. 국회 윤리위에는 저급한 언행을 비롯해, 의원의 지위를 남용하여 비리를 저지르는 등 국회의원의 품위를 손상시키고 국회의 위상을 떨어뜨리는 행위를 저지른 의원들이 제소된다. 국감 과정에서 발생하는 의원 윤리위 제소 항목은 주로 언행과 관련된 경미한 요건이다. 하지만, 국감 과정에서 윤리위에 피소되는 의원이 많이 발생할수록, 의원 상호간에 품위를 지키지 않고 침범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었다는 증거다. ■ “5분은 너무 짧다”가 성적 발언? 가장 먼저 윤리위에 제소된 이는 한나라당의 정두언 의원과 성윤환 의원. 민주당은 국감 증인의 증언을 제지하고 의원으로서 품위를 훼손한 행동으로 국감을 흐리게 했다며 두 의원을 윤리위원회에 제소했다. 민주당 양승조 의원과 이춘석 의원은 “최근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의원들의 국회와 국감 품위훼손 행위가 지나치다”며 “정두언·성윤환 의원을 윤리위에 제소키로 했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정두언 의원의 윤리위 제소 이유에 대해, 지난 7일 서울특별시교육청에 대한 국감에서 자유선진당 이상민 의원과 민주당 안민석 의원의 공정택 교육감에 대한 질문에 “함부로 답변하지 마세요”라고 부당하게 답변을 제지해 회의장의 질서를 문란케 하고 국감을 방해한 점을 들었다. 성윤환 의원의 경우는 성적 발언으로 국회의 품위를 손상시켰다고 주장했다. 7일 한국관광공사 등에 대한 국감에서 “추가질의시간 5분을 주겠다”는 위원장의 말에 성 의원이 돌연 “야한 얘기 같지만 5분은 너무 짧은 것 아닙니까”라는 음담패설적 발언을 해 국회의원으로서 품위를 스스로 저버리고 국회 및 국감의 권위를 실추시켰다는 게 성 의원에 대한 민주당의 지적이다. 이에 한나라당은 “이유 같지 않은 이유로 국감 파행을 유도하는 것을 좌시하지 않겠다”고 경고하고 나섰다. ■ “불륜” 발언이 성 비유? 한나라당은 국회 행정안전위 국정감사에서 ‘불륜’발언을 한 민주당 김유정 의원을 몰아세우기에 이르렀다. 김정권 원내 대변인은 브리핑을 통해 “김 의원이 서울시와 한나라당을 ‘불륜’이라며 성적 비유한 것을 묵과할 수 없다”면서 윤리위에 제소할 뜻을 밝혔다. 김유정 의원은 앞서 지난 8일 서울시를 상대로 한 국감에서 “불륜의 당사자는 처벌 없이 자유로운데, 시민들만 피해를 봤다”며, ‘뉴타운 허위공약’ 논란을 둘러싼 오세훈 서울시장과 한나라당 의원들에 대한 검찰의 무혐의 처분을 비판했다. 한나라당 후보들과 서울시장 간의 뉴타운 협약을 빗대 ‘불륜’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한나라당은 또 증인채택회의와 관련해 김영선 정무위원장을 비난한 민주당 신학용 의원도 윤리위에 제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지난 6일 민주당 신학용 의원이 증인채택 문제를 제기하며 김 위원장에게 공개사과 요청을 한 것이다. 그는 정족수 미달로 증인채택을 미뤘음에도 “결국 김영선 위원장의 독선과 감정에 의해 증인채택을 하지 못했다”고 김 위원장의 공개 사과를 요구해 여야 의원 사이에 한바탕 설전이 치러진 바 있다. 특히, 신 의원은 주가조작사건 연루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의 사위 조현범 한국타이어 부사장 등에 대한 증인채택 요구가 합의되지 않은 점을 들어 “결국 여당의 국감 무력화 시도가 아니냐”고 비난하기도 했다. 이에, 김영선 위원장은 “자당 소속 위원들의 주장을 중재하는 게 간사의 역할인데, 간사가 국감 진행 전부터 (위원장과 여당을) 공격하는 건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 윤리위 논쟁 속에 멀어지는 정책국감 이에 민주당은 한나라당 의원에 대한 징계안을 제출하는 등 다시 맞불을 놓았다. 김유정 의원이 한나라당의 ‘불륜’ 공세에 휘말리면서, 민주당 조정식 원내 대변인은 14일 논평에서 “김유정 의원의 ‘불륜’ 발언이 성적 비유라며 윤리위원회에 제소한 것은 몰염치와 적반하장의 극치”라고 맹비난했다. 조 대변인은 김 의원에 대한 윤리위 제소가 “한나라당 정두언·성윤환 의원의 국감 방해 행위와 성희롱적 발언이 윤리위원회에 제소된 데 따른 물타기 속셈”이라고 힐난했다. 그는 “‘불륜’이라는 표현이 성적 비유라면, 오늘 한나라당 국감점검회의에서 정진섭 환노위 간사의 “남이 하면 불륜, 자신이 하면 로맨스” 라는 발언 역시 제소해야 한다”고 역공을 폈다. 이에 덧붙여, 서갑원 의원을 비롯한 민주당 의원들은 9일 김유정 의원의 질의를 방해하고 위증을 교사했다며 한나라당 이은재 의원에 대한 징계안을 내기도 했다. 이날 경찰청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 의원이 어청수 경찰청장을 대상으로 질의를 하는 도중 이 의원이 끼어들어 어 청장에게 “동생 얘기인데 왜 해? 이거 국가 업무 아니잖아. 청장님, 청장님, 대답하지 마세요. 뭘 답변을 해?” “이 중요한 시간에, 이게 국감입니까?”라는 등의 발언과 고함을 수차례 반복해 피감기관 증인의 증언을 방해하고 위증을 교사했다는 주장이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윤리위 제소 대상자가 더 있음을 시사하고 앞으로도 이들에 대한 제소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따라서, 앞으로도 여·야 간 윤리위 제소 대상자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양당 모두 이번 국감을 ‘정책국감’으로 이끌겠다고 다짐했지만, 여·야 간 정쟁과 이해관계 속에서 정책국감은 더욱 멀어지는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