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북한 테러지원국 삭제, 북한의 남북관계 전면 차단 가능성 엄포 등으로 남북 소통이 전면적으로 중단돼 있는 상황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16일 “지금 정부는 남북대화를 열지 못해 국제적 흐름에서 소외된 처지에 놓여 있다”면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6.15, 10.4 공동선언 인정 및 남북 정상회담 제안 등 5대 결단을 촉구하고 나서 관심을 끌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오후 서울 종로구 연지동 한국기독교연합회관에서 진행된 ‘평화와 공공성 센터’ 개소식에 참석, ‘남북관계 발전과 동북아시아의 평화’라는 주제로 열린 특별 강연에서 이 대통령에게 이 같이 촉구했다. 김 전 대통령은 연설 서두에 “나는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1994년 미국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연설한 이래 일관되게 미국은 북한과 직접대화하고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으라고 권고해 왔다”며 “공동이익을 실현하는 ‘햇볕정책’이다. 대통령에 취임한 후에도 이러한 정책을 일관해서 추진했고, 대통령 재임 중 전반기에 상대했던 클린턴 미 대통령은 나의 ‘햇볕정책’을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지원해 주었다”고 밝혔다. ■ 북한 테러지원국 해제 “매우 잘된 일” 김 전 대통령은 “그러나 2001년 대통령에 취임한 부시 대통령은 이를 전면적으로 거부하고 북한에 대한 대화와 협상을 반대했으며, ‘악을 행한 자와는 대화할 수 없고, 어떠한 보상도 줄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며 “그렇게 6년이 지나는 동안 부시 대통령의 정책은 너무도 큰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이 판명되었다. 북한은 NPT(핵확산금지조약)를 탈퇴하고 IAEA(국제원자력기구) 감시요원을 추방했다. 또, 미사일 모라토리엄을 깨고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했으며, 마침내 2006년 10월에는 핵실험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나 부시 정권은 전쟁으로 북한을 응징할 능력이 없다. 또, 일본과 함께 추진한 경제제재도 중국이 북한을 지원하는 한 결정적인 효과를 얻지 못했다. 결국 부시 대통령은 클린턴 대통령과 내가 합의한 북한과의 직접대화를 시작하고 주고받는 협상을 하게 된 것이다. 늦게나마 바른 방향으로 정책을 바꾼 것은 잘된 일이다. 그러나 처음부터 부시 대통령이 지금과 같은 정책을 취했더라면 북핵문제는 진작 해결되었을 것이다. 물론 북한이 핵보유 국가라고 주장할 수 없게 되었을 것”이라며 아쉬워 했다. 이어 김 전 대통령은 미국이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해제한 것과 관련해 “만시지탄이 있지만 매우 잘된 일”이라며 “이제 북한은 다음의 제3단계 협상을 통해서 핵에 대해 일호의 의문의 여지없이 모든 것을 공개하고 완전히 포기해야 한다. 그리고 국제사회에 나와서 중국이나 베트남과 같이 평화의 대열에 참여하면서 스스로의 발전에 전력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김 전 대통령은 “정부는 남북대화를 열지 못해 국제적 흐름에서 소외된 처지에 놓여 있으며, 만약 남북대화를 재개하지 않으면 고립과 손실을 면치 못할 것”이라며 “이명박 대통령이 6.15 남북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인정해야 한다. 이 문제의 인정 없이는 남북관계의 정상적인 추진은 기대하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이어 김 전 대통령은 이 대통령에게 ▲인도적 대북 쌀 지원 ▲개성공단 노동자 숙소 건설 ▲금강산 관광 재개 등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5개항을 제안한 뒤 “이 같은 상항들을 실천하면서 북한에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 이후 북한에 문화적 변화 일으켜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첫째, 6.15 남북공동선언과 10.4 선언을 인정해야 한다. 이 문제의 인정 없이는 남북관계의 정상적인 추진을 기대하기 어렵다. 둘째, 지금 굶주림 속에 목숨을 잃어 가고 있는 북한 동포를 위해 쌀의 인도적 지원을 조속히 재개해야 한다. 셋째, 개성공단의 노동자 숙소를 약속대로 지어줘야 한다. 지금 개성공단에 입주한 기업들은 노동력이 부족해서 아우성인데, 개성지구의 노동자는 이미 모두 고용했고 이제는 외지에서 데려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들을 수용할 수 있는 숙소가 필수불가결하다. 넷째, 금강산 관광을 재개해야 한다. 금강산 관광은 남북 교류협력의 시발이고 북한 영토 내에 있는 우리의 기지인 것이다. 또한, 금강산 관광을 통해 193만명의 국민이 북한을 직접 경험해서 북한에 대한 큰 자신을 얻게 되고 통일에 대한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다섯째, 이상과 같은 사항들을 실천하면서 북한에 남북 정상회담을 제안해야 한다. 정상회담만이 새로운 신뢰 속에 한반도 평화와 남북의 화해협력 그리고 동북아의 평화안보체제 구현에 성공적인 합의를 이루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김 전 대통령은 “6.15 정상회담 이후 북한의 민심이 크게 변했다”며 “그들은 우리가 쌀을 주고 비료를 주는 것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남쪽이 우리를 미워한다는데 그것이 아니지 않느냐. 이것이 남쪽의 우리에 대한 동포애가 아니고 무엇이냐. 남쪽은 잘 살고 있다. 우리도 그렇게 살았으면 좋겠다. 통일을 하루 속히 했으면 좋겠다’’는 심리적 변화가 일어난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러한 심리적 변화는 문화적 변화까지 일으켜 지금 북한 내에서 남한의 대중가요, TV 드라마, 영화 등이 비공식적으로 광범위하게 유행하고 있을 정도로, 6.15 이후 8년 간 우리는 북한을 이만큼 변화시켜 놓은 것”이라며 “어찌 이를 ‘퍼주기’라 할 수 있으며, ‘잃어버린 10년’이라 할 수 있겠는가. 나는 그러한 견해를 단호히 반대한다. 북한 진출은 현 경제난국을 타개할 획기적 방법이기도 한 만큼, 국익 입장에서도 남북관계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 전 대통령은 “북한은 세계적인 지하자원의 보고이다. 텅스텐·마그네사이트·금·동·석탄 등이 널려 있고, 세계가 아직 가보지 못한 미개척 관광지들이 많다. 금강산·묘향산·백두산·평양·개성 등은 아주 매력적인 관광자원”이라며 “북한의 노동력은 가장 우수하고 임금은 중국의 절반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김 전 대통령은 “더욱 중요한 것은 한국을 출발한 기차가 북한을 거쳐 시베리아·중앙아시아·유럽까지 갈 수 있기 때문에, 그렇게 되면 시간과 비용이 3할 정도 절감된다”면서 “한국은 일거에 태평양 지역의 물류 거점이 될 것이고, 물류가 일어나면 산업과 금융과 보험업이 일어나 문화 관광산업이 일어난다. 우리에게 엄청난 경제적 발전을 가져오게 될 것이고, 북한도 큰 이득을 보게 될 것이다. 지금 세계 각국이 북한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우리는 국익의 입장에서도 남북관계 개선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 승자, 패자 없는 ‘공동승리 통일’ 이뤄야 그러면서 김 전 대통령은 “한반도의 세력 균형만이 우리가 평화와 안전을 누릴 수 있는 길”이라며 “미국만이 한반도에서 세력균형의 중심이 될 수 있기 때문에 미국과의 동맹을 굳건히 유지하면서 중국·일본·러시아와 밀접한 협력관계를 지키는 ‘1동맹 3협력 체제’를 견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우리는 반드시 통일을 해야 하지만, 무력통일도 반대해야 하고, 흡수통일도 반대해야 한다”며 “무력통일은 민족공멸의 길이고, 흡수통일은 엄청난 경제적 부담을 안게 된다. 또, 수십 년 동안 적대관계에 있었던 결과로 정신적 갈등을 면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계적이고 평화적으로 통일을 지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전 대통령은 “그리하여 승자와 패자로 구별된 통일이 아닌, 공동승리의 통일을 이룩해야 할 것”이라며 “이것만이 우리와 우리의 후손들이 평화롭고 행복하게 사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연설 말미에 “지금 일부에서는 과거로의 역주행이라는 말이 빈번이 나오고 있다. 참으로 우려스러운 현상”이라며 이명박 정부의 햇볕정책 재평가 등 교과서 개정 논란에서 비롯된 사회의 보수화 움직임에 대해 강한 유감을 표하면서 “이승만 독재도, 박정희 독재도, 전두환 독재도 국민의 힘 앞에서는 무너졌으며, 우리 국민의 피와 눈물로 쟁취한 우리의 민주주의를 앞으로도 굳건히 지켜낼 것”이라고 확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