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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의 기억

소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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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90호 편집팀⁄ 2008.10.28 17:46:21

소달구지… 호남지방에서는 소구루마라고 불리었다. 초등학교 다닐 무렵, 나는 여러 차례 소구루마를 타본 기억이 있다. 동네에 만경양반이라는 가난한 농부 아저씨가 사셨는데, 논농사 백 마지기가 넘는 우리 집 단골 일꾼이었다. 주인집 딸인 나를 소홀하게 대할 수가 없어서인지 하굣길이나 읍내 장터 등 만나는 곳마다 으레 덥석 안아 구루마에 올려주곤 하셨다. 그러나 동네 또래 아이들이 타려고 할 때마다 회초리를 흔들며 저리 가라고 맵차게 소리를 지르셨다. 그래도 어느 틈에 다시 따라와 주렁주렁 구루마 꽁무니에 배를 턱 걸친 장난꾸러기 남자 아이들은 한참을 모른 척 가다가 또 한 번 소리를 질러대는 아저씨의 따가운 목소리에 일제히 아쉽다는 듯 떨어져 나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야박한 인심의 아저씨였다기보다는 힘든 일에 지친 소가 가엾다는 동정심 때문이었으리라. 가끔 구루마를 타고 가면서 덤으로 국화풀빵이라도 한 봉지 얻어서 먹는 날이면 어린 나이에도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는 나였다. 뒤돌아 그 모습을 바라보며 빙그레 웃으시는 만경양반 아저씨가 내게 물으셨다. “수인이는 커서 모 될 꺼여?” 나는 국화빵이 맛있어서 그만 생각 없이 대답을 했다. “…국화빵 장사….” “허허허, 너그 어메(너희 엄마) 들었다가는 아자씨가 일도 못 댕기고 쫓겨나겄다.” 하시면서 괜스레 잘 가고 있는 소의 엉덩짝을 회초리로 두들겼다 “이럇차차차! ~이눔아… 해 진다. 싸게싸게(빨리빨리) 가더라고….” 누렇게 매끌거리는 몸통과는 달리 소의 엉덩이는 꺼먼 때와 자신의 이물질로 그야말로 쇠 때가 누룽지처럼 끼어서 쇠파리란 놈이 잘 달라붙었다. 그때마다 소는 꼬리를 뒤로 돌려 “찰싹 찰싹~!” 자신의 엉덩이를 잘도 때렸다. 봄 가을 농번기에는 한숨 쉴 틈 없이 논이나 밭으로 끌려 다니는 가엾은 소. 모처럼 비라도 드세게 내리는 날이라야 외양간에서 편안하게 두 눈을 꿈벅거리던 소였다. 내리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입으로 새김질을 하는, 생각에 젖은 듯 우수에 찬 소의 검은 두 눈망울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그 커다란 두 눈망울은 너무나 순진무구하여 어떠한 사심도 없어 보였다. 그런 소에게서 나는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찾고 소통하고자 무척 노력하였다. 그 소가 잉태를 하여 아기 소를 낳았는데, 그토록 사랑스럽고 귀여울 수가 없었다. 내 기억에 아기 소는 태어나 얼마 되지 않아서 아장아장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 달도 채 되지 못한 아기 소가 며칠 엉거주춤거리더니 이유도 모르게 죽어버렸다. 나는 내가 소를 너무 귀여워한 나머지 자주 만져 손독이 올라 죽었다고 하염없이 후회를 하며, 아기 소를 잃고 슬퍼하는 엄마 소에게 용서를 빌고 빌었다. 엄마 소는 가끔 아주 큰 소리로 아기 소를 찾으며 울었다. 그때마다 나도 외양간 뒤에 몰래 숨어 눈물을 흘렸다. 가을걷이가 한창인 이때쯤에는 논이나 밭에 소와 구루마가 인기를 끌었는데, 이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값진 추억이 되었다. 글·이수인 (작가·시낭송가) <유년의 기억>이란 주제로 격주연재 수필을 담는 이수인 시인은 서울예대에서 극작을 전공하고, MBC·KBS 드라마 과정을 수료하였다. <시문학>을 통해 등단한 뒤, CBS TV에서 시낭송을 진행했다. 저서로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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