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석봉이가 죽던 날, 이른 아침부터 몇 번의 크고 작은 곡소리가 들렸다 끊기기를 반복하였다. 나는 어린 마음에도 분명 석봉이가 잘못 되어 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마당엔 싸래기 같은 눈이 하얗게 쌓여 가고 있었다. 나는 순간 석봉이를 꼭 한 번 더 보고 싶었다. 석봉이는 말수가 적고 착한 아이였다. 동네의 같은 또래 아이들보다 체구가 작아도 오히려 어른스러웠다. 우리는 거의 매일 만나 함께 놀고 숙제도 같이 했다. 벌판에서 메뚜기를 병 속에 잡아 넣고, 개울가 송사리며 가재·새우를 같이 잡고 놀았다. 초여름엔 뒷산에서 빨갛게 익은 산딸기를 한 움큼씩 따 내게 건네주며 배시시 웃곤 하던 아이. 내 바로 밑 까다로운 남동생과도 잘 놀아주던 아이였다. 한번은 타동네 아이들이 나와 현화와 선녀를 길에 세우고 앞에 죽은 뱀 한 마리를 벌쑥 던져 놓았다. 그 앞을 지나려면 그 죽은 뱀을 손으로 한 번씩 만져 윗금까지 옮겨 놓으라는 것이다. 우리는 질겁하여 서로 얼굴만 바라보았다. 죽은 뱀의 모습이 살아 있는 뱀보다 더 징그럽고 끔찍하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힘없이 늘어진 희멀건 배때기에 알록달록한 꽃 색깔 등줄기 오돌톡한 무늬판은 30년이 흐른 아직도 내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죽은 뱀이 산 뱀보다 훨씬 끔찍스럽다. 우리는 그 끔찍하게 널부러진 죽은 뱀 앞에서 오싹거리며 거의 울 듯했다. 바라보는 타동네 아이들은 한결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키득거린다. 그때 가장 용감하고 우직스런 현화가 신발 끝으로 뱀을 살짝 밀었다. 나는 순간 얼굴을 가렸다. 뱀이 슬며시 움직였다. 아직 완전히 죽지 않았던 것이다. “으악~!” 우리는 뒷걸음질 치며 우는 척했다. 그 아이들은 보리걸이 떠나가도록 자지러지게 깔깔거리며 웃어 댔다. 그때 석봉이가 저만치서 뛰어오고 있었다. 석봉이는 성큼 다가오더니, “이런~씨! 니들 지금 무슨 짓덜여?” 하며 맨손으로 뱀을 집어 그 아이들에게 휙 던지는 게 아닌가. 그 중 가장 짓궂은 녀석의 목줄기에 뱀이 처억 걸쳐지자, 모두 기겁하여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줄행랑을 쳐버렸다. 숫기 없는 석봉이가 그날처럼 멋있던 적이 없었다. 그 뒤 나는 석봉이와 더욱 친해져서 나물이나 쑥 캐는 곳까지 같이 다녔다. 서광산 밑에 동진강이 흐르는데, 귀신이 많다고 소문난 깊고 퍼런 강이다. 우리는 그곳에 가서 해 질 무렵까지 돌팔매질을 하거나 둔치에서 삘기 뽑기를 했다. 멀리서 들리는 빨래 다듬이 소리가 뻐꾸기 소리와 같이 어우러져 강물에 잠겼다 퍼져 나가고, 살랑거리는 미풍에 송화 가루가 날아와 코끝을 스치던 기억들…. 석봉이는 가끔 고열로 여러 날 학교에 나오지 못했다. 그래도 ‘설마 죽기까지야’ 했는데, 저 심상찮은 곡소리는 분명 석봉이가 죽은 게다. 철 대문을 살며시 여는데, 엄마가 큰소리로 불렀다. “수인아! 오늘은 나가지 말그라이~!” 나는 못 들은 척 대문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석봉이네 초라한 대문 앞에 서서 발을 동동거렸다. 내 손엔 며칠 전에 석봉이가 놀다 두고 간, 석봉이가 아끼는 딱지 몇 장이 쥐어져 있었다. 꼭 주어야만 할 것 같아서 대문 앞에 쪼그려 앉아 기다려 보지만, 곡소리만 더욱 크게 울려 왔다. 싸락눈이 발밑에 쌀처럼 쌓이고 있었다. 글·이수인 (작가·시낭송가) <유년의 기억>이란 주제로 격주연재 수필을 담는 이수인 시인은 서울예대에서 극작을 전공하고, MBC·KBS 드라마 과정을 수료하였다. <시문학>을 통해 등단한 뒤, CBS TV에서 시낭송을 진행했다. 저서로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