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전 대통령 부인 이희호 여사(86)가 86년의 삶을 기록한 자서전 <동행>(부제: 고난과 영광의 회전무대)을 펴냈다. 3년여 간의 집필 끝에 완성한 이 자서전은 1922년 서울 수송동에서 태어나 유복한 유년기를 보내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만남 이후 계속된 고난과 영광의 반복, 그리고 지금의 평화로운 노년기까지를 담담한 필체로 적어 내려간 회고록이다. 부제인 ‘고난과 영광의 회전무대’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손수 지어준 것으로, 고통과 환희의 양극단을 걸어온 이희호 여사의 인생을 대변하고 있다. 고난의 시기를 묵묵히 함께 헤쳐 온 아내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묻어나는 대목이다. 특히, 이 자서전은 ‘1967년 7대 목포 총선’ ‘1971년 대통령 선거’ ‘김대중 납치 사건’ ‘3·1 민주구국선언문 사건’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등 굴곡 많은, 그래서 더 흥미로운 한국 현대 정치사와 민주화 운동사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또한,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 독재정치와 유신체제, 군사정권 등 격동의 시기를 거쳐 청와대의 안주인이 되어 보낸 약 5년 여 동안 만나 온 수많은 인사들과의 일화도 흥미롭게 그려져 있다. 계훈제 선생, 김활란 박사, 육영수 여사, 전두환 전 대통령,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힐러리 클린턴 미국 뉴욕 주 상원의원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특히, 이 여사와 전 재야 정치인 계훈제(1999년 사망)와의 러브 스토리는 화제가 되기도 했다. 책 속에서 그는 계훈제와의 일화를 소개하며 “나는 그가 추구하는 꿈에 끌렸다. 갓 해방된 조국을 뜨겁게 사랑한 청춘으로서 굳이 남녀 간의 사랑이 아니더라도 동지적 결혼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더불어 오랜 시간 정치가 빼앗아버린 가족에 대한 애틋함, 세 아들들에 대한 애정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도 담겨 있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이 동물을 끔찍이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서는 남편에 대한 평범한 아내의 소박한 질투도 느껴진다. 11월 11일 서울 동교동 김대중도서관 지하 1층 컨벤션홀에서 이뤄진 출판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이희호 여사는 김 전 대통령과의 인생을 “동행 그 자체”라고 표현했다. 자택 앞에 달린 두 사람의 이름이 적힌 문패부터 서로 논의하고 동행하면서 살아왔다고 자부했다. ■ 자서전 낸 계기 한 세기에 달하는 인생을 사형수 정치인의 아내로서, 여성운동가로서, 한 인간으로서 파란만장한 격변의 세월을 보낸 이희호 여사가 기자간담회 단상에 오른 모습은 마치 대작 영화의 엔딩크레딧을 장식하는 배우처럼 느긋해 보였다. 자서전을 쓰게 된 동기에 대해, 이 여사는 같은 날 오후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출판기념회 인사말에서 “우리의 동행은 하나의 회전무대와 같았다. 남편과 함께 살아온 동행의 기록이자 민주주의와 통일을 위해 싸우고 희생한 분들과의 동행을 기록한 책”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이 여사는 “나는 내가 살아온 인생을 귀중하게 생각하고 있다. 의롭게 살다가 고통을 받은 사람들을 위해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세상에 알리고, 또한 역사에 남기고 싶은 생각에서 이 책을 쓰게 됐다”고 밝히며, 자신의 인생에 대한 ‘풀 스토리’를 쓴 책은 이번이 처음임을 강조했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이 80년대 사형선고를 받았던 순간을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으로 꼽으며 “나는 외롭게 감금당해 있었다. 재판정에도 나가지 못하고 라디오와 TV를 통해 겨우 엄청난 사형선고를 들을 수 있다”고 말하는 부분에서는 당시의 고통을 떠올린 듯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이처럼 고통의 순간을 함께한 김 전 대통령과의 인생을 그는 “남편과의 만남은 내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수십 년에 걸쳐 고난과 빈곤, 모험을 헤치고 살아와야 했다”며, “요즘도 가끔 남편과 함께 우리가 어떻게 오늘날까지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그 끔찍했던 과거를 회상하곤 한다”고 회고하며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 민주화 투쟁의 정점에 섰던 여성운동가 1950년 대한여자청년단(YWCA) 총본부 외교국장으로 활동하기 시작한 이희호 여사는 여성문제연구원 간사를 거쳐, 1956년에는 미국 유학길에 올라 미국 램버스대학에서 사회학을 수학하고 미국 스카릿대학 대학원 사회학과를 졸업한다. 귀국 후 에는 이화여대 사회사업과 강사직을 맡는 등 20~30대 청춘을 사회학 공부에 바쳤다. 그리고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이사직을 수행하던 1962년 5월 10일 김대중 전 대통령과 결혼했고, 이후 일생을 민주화 투쟁가인 남편의 뒷바라지와 가족법 개정 운동, 축첩 정치인 반대 운동 등 여성운동 및 사회운동에 일생을 바쳐 일했다. 특히, 여성 문제와 함께 아이들과 노인·장애인 등 소외된 사람들이 겪는 빈곤과 인권 문제는 항상 그의 관심과 활동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해 왔다. 이런 노고를 바탕으로 그는 한국 인권을 위한 북미연합 ‘1984년도 인권상’과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이 해의 탁월한 여성상’을 비롯하여 많은 상을 수상했다. 이 여사는 이날 “우리가 지금처럼 자유를 누리며 살고 세계에 자랑할 만한 민주국가가 된 것은 민주화 투쟁에서 희생하신 분과 그들과 같이 희생한 가족들의 덕”이라며 민주화 투사들에 대한 고마움을 전하면서, “우리는 그분들에게 한없는 은혜를 입었지만 제대로 보답하지 못하고 있음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은혜에 보답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리고, ‘민주주의 위기설’에 대해서는 “우리 국민이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고 희생해 온 과거를 생각할 때 안타까운 심정을 금할 수 없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적셨다. 아울러, 이 여사는 여성운동 선구자의 면모를 어김없이 드러냈다. 그는 “법적으로는 남녀가 동등한 위치에 있다고 본다”면서, “하지만, 사실 남성우월주의는 남성들만이 가진 것이 아니라, 여성부터 남성을 우월하게 대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TV만 보더라도 남녀 차별의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법적인 문제를 떠나) 우선 의식적인 변화가 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각종 공채에 많은 여성들이 진출하고 있고, 시험에서 남성보다 더 높은 점수를 받고 있다. 이렇게 많은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했음에도 불구하고 입법부나 사법부·행정부 등의 요직에 남성보다 여성의 수가 훨씬 적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언급하면서 여성의 위치가 남성처럼 동등하게 오른다면 남녀가 차별 없이 동등하고 균형 잡힌 사회를 이뤄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