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이 어려움에 처해 있다면 우선 보험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보험사마저 위기에 놓인다면, 말 그대로 금융시장은 갈데까지 갔다는 뜻이거든요.” 얼마 전에 점심을 먹으면서 보험업계의 관계자가 한 말이다. 요즘 금융시장이 위기에 놓였다는 말은 아는 사람이라면 식상할 정도다. 증시가 연일 하락세를 보이고 있고, 은행과 카드·캐피털사마저 휘청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껏 보험사만은 잠잠했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실물경제마저 어려워질 때 맨 나중에 해약하는 게 보험이다. 보험가격이 개인마다 차이가 있지만, 해약을 할 경우 큰 손해를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 상반기 들어 보험사들의 수익성과 건전성이 크게 하락했다. 결국, 금융위기가 이제는 보험사에도 불어 닥치고 있는 셈이다. 이는 실물경제 위기가 얼마나 크게 우리 국민을 위협하고 있는지를 반증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서민금융을 떠안고 있는 저축은행도 마찬가지다. 무분별한 PF(프로젝트 파이낸싱)발 사태가 유동성 부족현상을 만들고,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하락세로 전환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금융위기가 말 그대로 갈데까지 갔다는 뜻이다. 먼저, 보험사는 올 상반기에 그간 벌어놓은 돈을 다 까먹어버렸다. 보험사들이 보험에라도 들어야 할 판이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금융감독원이 최근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3월 결산법인인 생명보험사들의 2008회계연도 상반기(3~9월) 순이익은 7474억 원으로 작년 동기 대비 45.7% 급감했고, 손해보험사의 순이익은 1조109억 원으로 0.77% 줄었다. 금감원은 최근 금융시장 불안 등에 따른 자산운용 여건 악화로 보험사들의 순이익이 감소했다고 설명했다. 상반기 생보사들의 총자산이익률(ROA)은 0.5%, 자기자본이익률(ROE)은 7.4%로 작년 동기 대비 각각 0.5%포인트, 6.3%포인트 하락했다. 손보사의 ROA는 3.0%, ROE는 21.6%로 작년 동기 대비 각각 0.4%포인트, 1.2%포인트 떨어졌다. 수입보험료(특별계정 포함)는 36조2826억 원으로 전년 동기(35조595억 원)보다 1조2231억 원 증가(3.5%↑)했다. 신계약 감소 등으로 종신보험·연금보험 등 일반계정 상품 수입보험료의 증가세는 크게 둔화됐지만(일반계정 초회보험료 : 2조 원(FY’07.상반기) → 1조7000억 원(FY’08.상반기), 투자형 상품인 변액보험에 대한 보험료 유입이 지속되면서 특별계정 수입보험료는 증가한데 따른 것이다. 보유보험료는 17조7680억 원으로 전년동기(15조4695억 원)보다 2조2985억 원 증가(14.9%↑)했다. 개인건강보험에 대한 꾸준한 수요로 장기손해보험의 보유보험료가 크게 증가한 것이다. 이에 따라 장기손해보험이 전체 손해보험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4.2%로 꾸준히 증가했다.(장기보험 시장점유율 추이 48.3%(FY’05) → 50.6%(FY’06) → 52.2%(FY’07) → 54.2%(FY'08.상반기) 삼성화재·현대해상·동부화재·LIG손보 등 대형사의 시장점유율은 63.6%로 전년 동기(66.2%)보다 하락한 반면, 메리츠화재 등 중소형사는 장기손해보험 매출 급증(34.5%↑) 등으로 시장점유율이 19.0%에서 20.2%로 1.2%p 증가했다. 지급여력비율은 260.5%로 3월 말보다 28.2%p 하락했다. 장기손해보험 매출 증가 등으로 지급여력기준금액은 증가한 반면, 보유 유가증권(매도가능증권)의 평가이익 감소(△1조원) 등으로 지급여력금액은 감소한데 따른 것이다. 반면, 생보사의 수입보험료는 36조2826억 원으로 3.5% 증가했고, 손보사의 보험료는 17조7680억 원으로 14.9% 급증했다. 생보사는 변액보험에 대한 보험료 유입이 지속되면서 특별계정 수입보험료가 증가했고, 손보사는 장기손해보험의 보유보험료가 크게 증가했다. 보험사의 연체율은 중소기업 대출을 제외하면 대부분 개선된 것으로 조사됐다. 9월 말 현재 보험사의 부실채권비율은 1.8%, 연체율은 3.6%로 3월 말 대비 각각 0.2%포인트, 0.1%포인트 개선됐다. ■ 정부, 저축은행 PF발 위기 지원 나선다 부동산시장이 침체되면서 저축은행은 더 심각하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유동성 부족과 환율 급등으로 인한 해외투자 축소로 연체율마저 급상승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단연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이다. 지난 6월 말 현재 저축은행의 PF 대출 잔액은 12조2000억 원으로 전체 대출의 4분의 1이나 차지한다. 부동산경기가 가라앉으면서 건설사로부터 대출금을 제대로 회수하지 못해 연체율이 14.3%로 은행권 PF 대출 연체율의 21배에 달하고 있다. 내년 부동산경기 전망도 암울해 건설업계의 경영난이 지속되면 저축은행에 충격을 줄 것으로 우려되는 상황이다. 만약 저축은행이 줄도산하면 이에 대한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들이 떠안아야 한다. 또 금융시장과 경제 전반의 불안도 더 확산시킬 수밖에 없다. 따라서 정부와 금융당국은 현재 저축은행의 899개 PF 사업장에 대한 실태 조사 결과를 분석 중이며, 이달 안에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을 예정이다. PF 사업장을 정상·부실우려·부실 등 3~4개로 분류해 맞춤형 처방을 할 계획이다. 현재 검토하고 있는 방안은 자산관리공사(캠코)를 통해 저축은행의 부실 PF 채권을 인수하는 것이다. 이 채권을 싸게 인수해 저축은행의 동반부실을 완충하고, 나중에 부동산경기가 살아나면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정부 관계자는 “부실 PF 채권을 10~20% 이내의 가격으로 사들이는 방법을 대책 가운데 하나로 생각하고 있다”며 “부실채권 회수에 노하우가 있는 캠코를 적합한 인수기관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저축은행업계 역시 당장 손실은 볼 수 있지만 자산 건전화를 위해 이런 방안을 정부에 건의하고 있다. 정부의 또 다른 관계자는 “PF 문제는 저축은행에 국한된 것이 아니어서 금융권 전체적으로 봐야 한다”며 은행과 보험사·증권사가 갖고 있는 부실 PF 채권의 인수 여부를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저축은행이 제일 시급한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 방안은 사실상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것으로, 정부가 초기에 재정 부담을 안아야 한다. 저축은행들이 공동으로 펀드를 조성해 회생 가능성이 큰 PF 사업장에 자금을 지원하는 방안이 있다. 그러나 저축은행들의 자금 여력이 크지 않아 성사 가능성은 불투명하다. 따라서 은행이나 보험사 등 다른 금융권도 펀드 조성에 참여시키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저축은행들이 현재 PF 사업장에 적용하는 자율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 프로그램을 활성화하는 방법도 있다. 이 프로그램은 일시적 자금난에 직면한 건설업체에 대출금 상환 유예나 이자 감면 등을 통해 정상화를 유도하는 것으로, 6월 말 현재 30여 개 사업장에 1조1000억 원을 지원했다. 정부와 금융당국은 저축은행들에 대한 이런 지원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뼈를 깎는 자구 노력이 동반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106개 저축은행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은 평균 9.1%로, 8%를 밑도는 곳은 20여 개다. 정부는 최근 4개 저축은행의 M&A를 승인한데 이어, 다른 4곳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경영개선 계획의 마련을 권고하고 있다. 정부는 저축은행이 쓰러지면 예금자 보호를 위해 공적자금을 넣어야 하는 부담을 줄이기 위해 M&A를 통한 대형화를 적극적으로 유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자기자본이 일정 수준 이상인 기업이 부실 저축은행을 인수해 정상화하면 영업구역을 넓힐 수 있도록 최근 저축은행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예금보험기금의 저축은행 계정 적자가 8월 말 현재 2조2478억 원에 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증자를 하고 배당을 억제해 자기자본을 확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저축은행 스스로 구조조정을 통해 덩치를 키우고 자본 건전성을 확보하도록 지도하고 있다”며 “살아날 수 있는 곳은 지원하되 그렇지 않은 곳은 메스를 들이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금융권이 이처럼 위기를 겪고 있지만, 국민혈세가 투입되는 일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다. ■ 구조조정·혈세지원보다 자구 노력 필요 쉽게 10년 전의 외환위기 때를 돌아보자. 당시 금융사 가운데 절반 이상은 문을 닫았다. 종합금융사는 30개 중 29개가 인가 취소 또는 흡수합병으로 사라졌고, 보험사·상호저축은행 등도 다수가 영업을 중단해야 했다. 살아남은 기관을 위해서는 막대한 돈이 투입됐다. 98년 5월 1차로 64조 원이 조성됐고, 대우그룹 부도사태 이후 추가로 40조 원이 마련됐다. 모두 채권 발행을 통한 자금이었다. 이 외에, 차관과 국유재산 매각 등을 통해 총 168조3000억 원이 금융권에 투입됐다. 이 같은 작업에 따라 금융권은 표면상 급격히 안정되는 모습을 보였다. 은행은 기업대출 등 부실자산이 줄고 양호한 가계대출이 늘면서, 한때 8%를 넘어서던 무수익 여신 비율(전체 대출 가운데 떼일 염려가 커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 여신 비중)이 1% 이하로 떨어졌다. BIS 기준 자기자본비율도 급격히 올라갔다. 하지만 부작용이 많았다. 기업금융에 강한 종금사 등이 대거 사라지고 남은 은행들이 가계금융에 집중하면서 자산 배분에 왜곡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2003년의 카드대란, 2006년 이후 가계부채 급증은 모두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또, 금융사가 대거 정리된 이후 살아남은 기관 사이에서 점유율 확대 경쟁이 벌어지면서 또 다른 부실이 잉태된 문제점도 있었다. 결국, 외환위기 이후 금융권의 구조조정은 큰 출혈을 불러일으켰음에도 큰 성과를 내지 못한 채 결과적으로 구조의 왜곡을 낳았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부작용이 금융권 자구 노력이 전제되지 않은 강압적인 구조조정 때문이었다고 진단한다. 금융권의 관계자는 “자생적인 노력 없이 정부 주도의 조정이 이뤄지면서 결국 살아남은 기관들만 큰 수혜를 입었다”며 “이는 눈에 보이지 않는 부실을 가리면서 지금 또 다른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강제적인 조정보다 일단 자체적인 노력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조언이다. 최근 금융권의 자본 증자와 사업 구조조정 등의 노력이 대표적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정부는 금융권의 자구 노력이 잘 진행될 수 있도록 유동성 공급 역할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 금융권의 자구 노력은 추후 건전성에 미칠 영향을 고려해서 진행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금융권의 한 전문가는 “은행은 자기자본이 충분해야 능동적인 활동을 펼칠 수 있는데 우리나라 은행들은 종잣돈이 너무 부족하다”며 “그렇다고 해서 후순위채 발행 같은 값비싼 자본 확충 방식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