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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發 후폭풍 이번엔 엔高 쓰나미

對日 중소기업 흑자도산… 원·달러 급등 이어 두 번 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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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96호 성승제⁄ 2008.12.09 14:00:01

10월 경상수지가 사상 최대의 흑자를 기록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10월 경상수지는 전월의 13억5000억 달러 적자에서 49억1000만 달러 흑자로 개선됐다. 이번 흑자는 1980년 이후 최대 폭이다. 이처럼 경상수지 흑자가 늘어난 이유는 우리나라 돈의 가치가 떨어지면서 한국으로 몰리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늘어난 탓이다. 아직 정확한 통계는 발표되지 않았지만, 현재 서울에서 가장 많이 몰리는 외국인은 단연 일본 관광객이다. 최근 서울 을지로 지역에 가보면 ‘며어도(명동-일본식 발음)’의 위치를 묻는 일본인들이 급증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명동에 가면 치이는 게 일본 사람이더라”는 말이 흘러나올 정도다. 이 같은 현상으로 이 지역 도매상이나 유통업계는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롯데백화점 에비뉴엘관 명동지점은 지난달 말 명품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72%나 늘었다. 최근 금융위기로 국내경기가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과는 대조적이다. 현재 이 백화점은 급증하는 일본 고객의 쇼핑 편의를 위해, 일본어 전문 통역사를 지하 1층 안내 데스크에 상주시키고 있다. 롯데백화점의 한 관계자는 “엔고현상이 두드러지면서 주말 식품매장은 일본인 관광객으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명동 주변의 식당가 역시 마찬가지다. 한우 숯불갈비점 ‘노사봉가 아리랑’ 지배인은 “최근 들어 일본인을 포함한 외국인 관광객이 부쩍 늘어 저녁마다 130석 이상 되는 자리가 가득 찬다”고 말했다. 명동 한복판에서 분식 노점상을 하는 이모(31) 씨도 “하루 종일 여기 있다 보면 불황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라며 “요즘은 일본 관광객들 덕분에 매출이 20% 정도 올랐다”고 말했다. 반면, 중소기업은 비상이다. 고달러로 인해 한차례 곤혹을 겪은 기업들이 이번에는 2차 위기에 직면한 셈이다. 원·달러 환율 급등하여, 올해 중순 키코(KIKO)뿐 아니라 환율 관련 파생상품에 가입한 기업들은 매월 수십억 원씩의 손실을 냈으며, 대부분의 수입기업들은 흑자도산에 놓였기 때문이다. ■ 달러高에 이어 엔高 현상까지 대일 중소기업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원·엔 환율이 낮을 때 엔화 대출을 끌어다 쓴 기업은 환율 상승으로 원금이 두 배 가까이 뛰면서 이자 부담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최근 외환시장을 살펴보면, 지난달 말 원·엔 환율은 1991년 고시환율 집계 이후 최고 수준으로, 1년 전과 비교해 두 배 이상 올랐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꾸준히 오르던 원·엔 환율에 불을 댕긴 것은 미국발(發) 금융위기였다. 세계 경제의 엔진으로 불리던 미국은 물론 유럽까지 흔들리면서, 상대적으로 탄탄한 일본 경제가 주목받았고 엔화가 안전자산으로 인식된 것이다. 그래서 달러화가 다른 모든 통화에 강세를 보이는 와중에도 엔화는 유일하게 달러에 강세를 보이고 있다. 여기에, 상대적으로 고금리를 유지하던 유럽마저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인하에 나서면서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이 시작돼 엔화 가치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 저금리 엔화를 빌려 다른 나라의 통화나 채권·주식 등에 투자하는 엔캐리 트레이드가 금리인하로 매력을 상실하면서 이를 되갚겠다며 엔화를 찾는 수요가 늘고 있는 것이다. 미래에셋증권 박희찬 연구원은 “엔화 강세의 원인은 주로 엔케리 트레이드 청산 때문이며, 엔케리 트레이드의 이유는 금리 인하에 따른 금리차 축소로 위험자산에 대한 기대수익률이 하락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엔화가 국제 금융시장에서 과도한 고공 행진을 계속하자, 주요 7개국(G7)도 이례적으로 엔화 폭등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나서기도 했지만,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이다. ■ 對日 무역역조 심화…엔 대출기업 허리 휜다 가장 큰 문제는 대일 무역적자의 악화이다. 통상 엔화 강세(엔고)는 수출시장에서 일본 제품 대비 한국 제품의 가격경쟁력을 키워줘 긍정적 요인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지금 같은 전 세계적 경기 침체 상황에선 수출 증대 효과는 크지 않은 대신 일본산 원자재나 중간재의 수입 비용을 끌어올려 일본과의 무역역조를 심화시킨다. 핵심 부품이나 소재를 일본에서 사들인 뒤 이를 재가공해 내다 파는 한국 경제의 취약한 구조 탓에 생기는 문제다. 최근 관세청이 발표한 ‘10월 수출입 동향 확정치’에 따르면, 올해 들어 10월까지 우리나라의 대(對) 일본 무역적자는 289억8500만 달러를 기록했다. 같은 기간 대일 수출액은 242억2600만달러에 그쳤다. 무역적자 규모가 수출 총액마저 뛰어넘는 수준이 된 것이다. 이를테면, 매출보다 더 큰 규모의 적자를 본 셈이다. 우리나라의 대일 무역적자는 2006년 254억 달러에서 지난해 299억 달러로 늘어났고, 올해엔 300억 달러를 크게 웃돌 전망이다. 상대적으로 금리가 낮은 엔화 대출을 받은 이들도 엔화 초강세로 큰 손실을 입은 상태다. 박 연구원은 “엔화 강세로 인한 문제점은 한국이 엔화 관련 대출이 많다는 점”이라며 “작년 3분기만 해도 100엔당 750원하던 엔·원 환율이 100엔당 1500원을 넘어 엔화 대출을 받은 사람들의 고통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작년 3분기에 100엔을 대출받아 원화로 환전한 기업이나 투자자는 당시 환율 기준으로 보면 200엔을 갚아야 하는 셈이다. 이 같은 현상으로 기업들이 수익성도 급격히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행이 최근 상장·등록법인 등 1624개 업체를 분석해 발표한 ‘3분기 기업경영분석 결과’에 따르면, 3분기 국내 기업의 매출은 증가했지만 수익성이 급감했고 재무구조와 현금흐름도 나빠졌다. 원자재가격 상승 등으로 원가 부담이 커지고 환율 상승에 따른 외화부채 평가손실 등으로 영업 외 비용이 증가하면서 수익성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환율 급등으로 조사대상 기업의 외환손실은 3분기에 8조3000억 원, 올해 1~3분기 14조5000억 원에 달했다. 총자산 기준으로 이들 기업이 국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6.7%인 것을 감안하면, 국내 기업의 3분기 환차손이 총 14조60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3분기 조사대상 기업의 매출액 증가율은 작년 동기 대비 28.6%로 전분기보다 3.8%포인트 높아졌다. 제조업은 29.9%, 비제조업은 26.4%로 전분기보다 각각 3.9%포인트, 3.7%포인트 상승했다. 원재료 가격과 환율이 상승하면서 제품 판매가격이 올랐고 3분기까지 수출도 호조를 보이면서 매출 증가세가 이어졌다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또, 매출은 늘었지만 수익은 악화됐다. 매출 대비 영업이익 비중인 매출액 영업이익률은 3분기 5.9%로 전분기보다 1.7%포인트 하락했다. 이는 분기 기준으로 통계가 집계된 2003년 1분기(9.0%) 이후 최저치다. 비제조업은 전분기 4.7%에서 4.8%로 소폭 상승했지만, 제조업이 9.2%에서 6.6%로 급락하면서 전체 영업이익률을 끌어내렸다. 환차손이나 파생상품 손익 등 영업 외 손익까지 감안한 매출액 세전순이익률은 전분기 6.7%에서 3분기 2.8%로 반토막 났다. 이 역시 2003년 1분기(8.5%)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영업 외 손실은 3분기 8조7400억 원이며, 이 중 외환손실이 8조3000억 원으로 95%를 차지했다. 제조업은 8.7%에서 3.4%로, 비제조업은 3.4%에서 1.9%로 각각 세전순이익률이 떨어졌다. 3분기 제조업 부문에서 외환 손실은 4조3000억 원, 통화 옵션 상품인 ‘키코’ 등 파생상품 손실은 1조1600억 원으로 집계됐다. 영업이익으로 금융비용을 부담하는 능력을 뜻하는 이자보상비율은 제조업 부문의 경우 2분기 941%에서 3분기 622%로 급락했다. 이자보상비율이 0% 미만인 기업, 즉 적자기업의 비중은 전체 제조업 중 30.8%로 전분기(26.3%)보다 늘었다. 한국은행 박진욱 팀장은 “매출이 늘었지만 수익·재무·현금흐름이 모두 악화됐다”며 “(환율로 인해) 수출과 생산 활동이 꺾이는 추세를 고려할 때 4분기에는 기업경영 여건이 더 나빠질 수 있다”고 진단했다. 엔화 가치 급등으로 한국경제의 주름살이 깊어지고 있지만, 정부가 당장 내놓을 수 있는 뚜렷한 대책도 없는 상황이다. ■뚜렷한 대책 없어…환율 당분간 가속화 전망 원·엔 환율은 엔·달러 및 원·달러 환율에 연동돼 움직이는 구조여서 원·달러 환율은 오르고 엔·달러 환율은 내려 원·엔 환율의 상승을 가속화하고 있는 형국이다. 박형중 우리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엔캐리 트레이드가 축소되는 것을 막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글로벌 금융불안의 완화가 전제돼야 한다”고 말했다. 미래에셋증권의 박 연구원은 “지금의 상황이 근본적으로 국제 금융위기로부터 촉발된 것이기 때문에, 미국이 구제금융 처리에 신속성을 기해 글로벌 시장을 안정시키는 것이 우선이며, 한중일 통화 스와프를 통한 시장안정 노력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원화 가치 하락을 막기 위한 정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가 외환시장에 개입해 인위적으로 원화 강세를 유도하는 것은 무리가 있지만, 한국경제의 달러 창출능력을 대외적으로 보여줄 필요는 있다는 것이다. 우리투자증권의 박 연구원은 “한국의 올해 경상수지 적자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1% 수준에 불과한데도 GDP 3~4% 수준의 적자를 내는 나라에 비해 통화가치 하락폭이 더 크다”며 “정부 차원에서 한국경제의 대외 신인도를 제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미래에셋증권 박 연구원도 “원화자산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불식시키기 위해 정부의 강력한 구조조정 노력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한국의 신뢰도를 높여 엔화 자산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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