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이 지속되는 금융 및 실물 위기에 혹한기를 맞고 있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의 부실 여파로 금융위기의 뇌관으로 지속되던 저축은행이 크게 늘어난 담보부채권으로 몸살을 앓고 있고, 신용카드 업계는 가계소비가 위축돼 실적저하는 물론 자금조달 금리마저 급등세를 보여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캐피탈·리스 업계는 사정이 더 안 좋다. 리스사와 캐피탈 업계는 이 때문에 정부 지원을 요청하고 부실채권을 구입해줄 것을 호소하고 있다. 금융권의 이 같은 위기는 실물경제 악화로 중소기업의 사정이 악화되면서 금융권에서 빌린 채권이나 대출(빚)을 제대로 갚지 못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한국은행의 자료에 의하면, 은행의 중소기업 대출 추이는 2008년 상반기 중 월평균 5조7000원 원 증가했지만, 3분기 중에는 3조1000억 원밖에 증가하지 못했다. 특히, 10월 중 중소기업 대출 증가액은 2조6000억 원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경기침체로 인한 위기에 제2금융권은 더욱 심하게 요동치기 마련이며, 중소기업과 저신용자에 대한 금융지원은 더욱 축소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실물경제의 타격을 가장 크게 받은 곳은 단연 부동산과 리스업계다. 저축은행의 경우, PF 부실이 지속적으로 커지면서 담보부채권 몸살을 앓고 있다. 만약, 담보채권이 부실화할 경우 저축은행은 물론 금융권 전체에 심각한 파장을 몰고 올 전망이다. 또 신용카드 업계 역시 올 3분기 실적은 나름대로 선방을 했지만, 4분기 이후 가계소비 위축과 사용량 저하로 실적저하는 물론 자금조달 금리마저 급등세를 보이는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올해 10월 국내 신용카드 사용액(현금 서비스·카드론 제외)은 25조9430억 원으로 작년 동월 대비 15.23% 증가했고, 올 9월(25조 9630억 원)에 비해 사용금액은 200억 원 줄었다. 이는 올해 들어 가장 낮은 증가율로, 지난 9월까지의 신용카드 결제금액 평균 증가율은 20.63%다. 리스업체인 S캐피탈·C캐피탈·D캐피탈 등은 최근 명예퇴직을 실시해 본사 인력감축에 들어갔다. 기업들의 대대적 긴축경영으로, 법인 및 전문직 종사자들이 주로 이용하던 자동차 리스 영업뿐만 아니라, 자동차 소비 감소로 자동차 생산업체의 감산에 이어 자동차 할부금융 영업도 사실상 ‘개점휴업’상태에 빠졌다. 모 여신업체의 부대표는 “차 구입자가 크게 줄어 자동차 할부금융뿐만 아니라 리스 시장이 반토막 날 지경”이라며 “이대로 가면 인력감축·급여삭감에 이어 자산 매각도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실물경제 침체로 자동차 소비 급감에 직격탄을 맞은 여신업계는 자금차입이 힘들어 최근 영업조차 늘릴 수 없는 입장이다. 금융권 관계자에 따르면, 최근 자동차 리스사와 캐피털사들이 자동차 딜러들에게 신규 고객은 물론이고 승계 고객의 신용등급 기준을 신용등급 3등급 이상으로 하라는 내부 지침을 전달했다. 사실상 은행권 거래 가능 고객만 거래가 가능해진 것이다. 또 현대자동차의 현대캐피탈, GM대우자동차의 우리캐피탈 등도 차량 감산의 영향을 받으며 영업이 대대적 긴축에 들어갔고, 자사 자동차 외에 심사기준을 엄격히 적용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자금악화가 제1금융권과 보험·증권사 등 전 금융권으로 확대된다는 점이다. 부동산 업계가 미분양, 원자재 가격 급등 등으로 자금난이 심화되면서 전 금융권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이다. ■ 캠코, 은행·보험·증권업계에 1조3000억 원 지원 금융시장이 악화되자, 정부는 캠코를 통해 저축은행뿐 아니라 은행·보험사·증권사 등의 부실 PF 대출 채권도 일부 사들이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저축은행의 부실 PF 대출에 대한 처리 방안을 다른 금융권에 적용할 수 있다”며 “캠코가 저축은행 이외의 다른 금융회사와도 부실채권 가격 협상을 벌여 적정 수준에서 합의하면 매입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금융감독원은 지난 11월 말부터 저축은행을 제외한 은행과 보험사·증권사·여신전문사 등 2000여 개 PF 사업장에 대한 실태를 파악하고 있으며, 이 결과를 토대로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다. 그렇다면 금융권의 PF 대출 규모는 얼마나 될까? 지난 6월 말 현재 전체 규모는 약 78조9000억 원으로 예상된다. 이 가운데, 은행이 47조9000억 원, 저축은행 12조2000억 원, 보험사 5조3000억 원, 증권사 3조 원, 여신전문사 4조3000억 원 등이다. 금융위는 부실화됐거나 부실 우려가 있는 저축은행의 PF 대출 1조3000억 원은 캠코를 통해 연내에 매입하기로 이미 결정했다. 매입대금의 일부는 현금으로, 나머지는 캠코가 발행하는 선순위 또는 후순위 채권으로 지급할 예정이다. 금융권역별 PF 대출 연체율은 은행 0.64%, 보험사 2.4%, 증권사 6.6%, 여신전문사 4.2%로 저축은행 14.3%에 비해서는 낮지만, 부동산 경기 침체의 장기화로 부실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시중은행들이 캠코의 주주이고 캠코의 주요 업무가 금융회사의 부실자산 인수와 정리이기 때문에, 저축은행 이외의 부실 PF 채권도 자체 자금으로 사들이는데 문제가 없다”며 “현재 진행 중인 전수 조사 결과를 보고 최종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캠코가 선·후순위 채권을 올 연말까지 보유한 부실채권은 약 1조 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이철휘 캠코 사장은 “시중의 금융기관으로부터 1조 원의 부실채권을 인수할 예정”이라며 “이번 부실채권 매입은 경쟁입찰을 통한 인수가 아닌, 부실채권의 신속한 정리를 위해 금융기관이 인수를 요청하여 이루어지게 됐다”고 말했다. 캠코 관계자는 “올해 금융기관 부실채권 매입 계획치인 8000억 원을 이미 달성했지만, 은행권에서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을 높일 목적으로 매입을 요청해 추가 인수키로 했다”고 말했다. 저축은행의 부실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대출 인수 규모도 늘려 잡았다. 이 사장은 “당초 1조3000억 원 규모로 저축은행 PF 채권을 인수할 것으로 예상했으나, 실사결과 (부실규모가) 1조7000억 원으로 추정된다”며 “매입률이 관건인데 일률적인 매입률을 적용하지 않고 회계법인의 실사에 따른 부실도에 맞춰 개별적 매입률을 적용해 인수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리만브라더스 부실채권 매입도 검토하고 있다. 이 사장은 “현재 리만브라더스와 메릴린치가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부실자산들이 아시아에 다량 존재한다”며 “특히 리만브라더스가 일본에 남기고 간 자산의 경우 투자가치가 높아, 매입할 경우 국익에 매우 도움이 될 것으로 판단되나, 현재 외화를 가지고 직접 투자하는 것은 매우 부담스러워 여러 가지 방안을 물색 중”이라고 밝혔다. ■ 금융권 너도 나도 구조조정…자구책 방안 이처럼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해 금융시장 안정화를 되찾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지만, 여론은 그다지 환영하지 않는 편이다. 펀드나 주식·키코 사태 등 금융권은 그동안 모든 피해를 고스란히 소비자에게만 떠넘기고 수수료 장사에만 몰두하다가 위기 때마다 국민 세금이 투입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은행권에 막대한 정부 자금을 쏟아 부었지만, 10년이 흐른 현 시점에서 소비자를 위한 상품은 전무후무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와 함께, 높은 대출 금리와 수수료는 고스란히 금융 소비자들에게 떠맡기고, ‘신도 들어가기 힘들다’는 조롱을 받을 정도로 은행권 직원들의 복지와 급여는 높았다. 아울러, 공적자금이 투입된 시점에 은행 퇴근도 4시로 줄이면서 소비자들의 불만은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은행들은 이러한 여론을 의식한 듯, 구조조정과 통폐합 등 자구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국민은행은 일정 기준의 직원들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는 준정년퇴직제도를 시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아직 노조와도 협의를 거치지 않은 단계라서 구체적인 대상과 규모는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번 희망퇴직은 강제성 없이 (퇴직을) 희망하는 직원에 한해서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며 “노조와 협의가 된다면 이르면 다음주 내에 구체적인 방안이 나타날 것으로 예상된다”고 덧붙였다. 앞서, 국민은행은 2005년에 대규모 명예퇴직을 통해 2198명을 퇴직시켰으며, 작년 말과 올 상반기에는 일정기간 이상 근무한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는 준정년퇴직제도를 통해 각각 65명과 15명을 퇴직시킨 바 있다. 한국씨티·SC제일·외환은행 등 외국계 은행과 우리·신한은행도 인원감축·조직축소 등 구조조정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한국씨티은행은 직급별 인원을 정해 희망퇴직을 받을 계획이다. 지난달에는 SC제일은행이 지난해보다 80여 명 가량 늘어난 190명에 대해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외환은행은 본점 조직을 축소키로 하고 부서별 중복 업무 등에 대해 점검하고 있고, 신한은행도 국내 100여 개 지점을 통폐합하면서 본부 부서를 슬림화하기로 했다. 우리은행도 소비위축 여파를 반영해 카드사업본부 및 IB본부 조직을 대폭 축소하는 동시에 펀드 판매를 담당하는 PB사업단의 기능도 줄이기로 했다. 저축은행 업계도 자구책으로 1000억 원 규모의 공동기금을 조성해 부실 저축은행 인수에 나선다. 저축은행중앙회는 12월 9일 저축은행 업계 대표자 21명이 모인 가운데 회의를 열고 정부가 발표한 PF 대책 실행방안과 업계 자구노력 방안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저축은행 업계는 이날 회의에서 저축은행 공동기금을 1000억 원 규모로 조성해, 부실 가능성이 높거나 이미 부실화된 저축은행을 인수하기로 했다. 또 저축은행 PF대출 전문가 9명으로 구성된 PF대출채권매각지원단을 중앙회에 설치해 10일부터 실무 작업에 본격 착수할 예정이다. 중앙회와 캠코는 저축은행을 대상으로 공동설명회를 개최해 세부적인 실행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이 밖에, 저축은행들은 고금리에 따른 금융기관 간 경쟁과열을 완화하기 위해 △자금 가수요로 인한 금리인상 요인 억제 △과도한 마케팅 등 영업행위 자제 등을 결의했다. 김석원 저축은행중앙회 회장은 “캠코 자금의 성격에 대해 일부에서 공적자금이라는 오해가 있으나, 이는 캠코가 영업활동을 위해 자체 조달한 고유자금”이라며, “PF대출 채권매각을 통해 BIS 비율 연체율 등 자산건전성을 제고하는 계기로 삼아달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