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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겨울 불심 얻으러 지리산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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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98호 편집팀⁄ 2008.12.23 13:45:27

겨울! 지리산! 이렇게 거창하게 말하면 마치 겨울 지리산 등반을 말하는 것으로 생각하겠지만, 아쉽게도 그건 아니다. 겨울 불심을 가득 얻고자 제2의 석굴암이라는 곳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필자가 간 곳은, 과거에는 지리산에서도 골짜기라고 소문나 사람들이 가길 꺼렸으나, 지금은 지하철 2호선 강변역의 동서울 고속터미널(서울 광진구 구의동)에서 출발하여 3시간이면 도착하는 함양군 함양읍이라는 곳이다. 물론, 목적지는 여기에서 조금 더 가야 한다. 설마 경남이라고 하는데 서울에서 그 정도의 시간밖에 걸리지 않을까 생각하겠지만, 정말 3시간이면 충분하다. 버스 안에서 한숨 자면 도착하는 것이다. 기지개를 켜면서 함양에 도착하니, 필자가 잘 아는 홍 기자가 마중을 나와 있다. 홍 기자는 기자 생활을 평생 하다가 함양에 완전히 머문 사람인데, 나이가 들면서 자연과 더불어 사는 맛을 느끼다 보니 다른 곳으로 가기가 싫어졌단다. 아 참! 이왕 온 김에 함양을 잠시 설명하면, 1개읍 10개 면으로 구성되어 있고, 인구는 4만 600여 명(2008년)이며, 함양 8경으로 유명하다. 오늘은 8경 중의 하나인 6경 서암석불을 보려고 여기까지 왔다. 홍 기자와 함께 함양군의 유명한 암자인 서암으로 향했다. 함양 5경인 칠선계곡(=추성계곡)을 거쳐 전북 남원을 지나 다시 경남 함양으로 영호남을 오가면서 도착한 곳은 바로 벽송사 입구. 바로 옆이 서암정사이다. 이처럼 서암은 영호남을 교차하지 않고서는 갈 수가 없는 특이한 곳이다. 물론, 행정구역은 경남 함양군 마천면 추성리 산18-7로 되어 있다. 근데 벽송사는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사실 벽송사야말로 서암정사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유명한 곳이다. 서암정사의 주인공인 원웅 스님은 벽송사의 주지 스님으로 있다가 임기를 마치고 서암으로 칩거하면서 자신의 꿈을 만들어 나가게 된다. 벽송사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12교구인 해인사의 말사로, 신라말경에 창건된 후 조선 중기 경진년 1520년에 벽송 지엄 대사가 중창하여 벽송사라 하였다고 한다. 일단 벽송사 앞의 넓은 주차장에 주차를 하자. 모두가 좋아하는 ‘무료 파킹’이다. 내려서 30m 정도 가면 두 갈래의 길이 나오는데, 왼쪽은 서암이라는 곳이고, 직진을 하면 벽송사로 가는 길이다. 벽송사는 역사가 깊은 곳으로 매력이 있고, 서암은 ‘제2의 석굴암’이라는 호칭을 얻을 정도로 세련미가 있다. 그런 탓에 일요일에는 관광객이 많다. 자! 들어가볼까! 암자의 입구 양 옆으로 보면 적어도 3m는 족히 될 법한 돌기둥이 있는데, ‘마가대법왕’, ‘조어삼천계’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게다가 오른편의 거대한 바위에는 힘과 위엄이 느껴지는 사천왕상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으음~, 위엄에 눌린다. 중량감으로 위압감을 느낀다. 여길 지나면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대방광문을 통과할 수 있다. 지금은 유명해진 서암정사이지만, 약 20년 전에는 그러지 않았다. 90년대 초만 하더라도 서암은 인근 불자들이나 마을 주민들만 알 수 있는 그런 암자였다. 당시는 지금처럼 불심이 저절로 우러나오는 그런 모습이 아니고, 기초를 닦고 굴을 파서 부처를 조각하는 수준이었으나, 십수 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경남의 대표적인 사찰인 벽송사보다도 더 많은 불자들과 관광객이 찾아드니, 그 이유는 무엇일까? 간단하게 답을 하면 “지리산에 제2의 석굴암이 있다”는 소문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지금까지 어떤 절에서도 보지 못한 색다른 맛의 석상과 조각들을 볼 수 있다. 서암이 제2의 석굴암이라고 불리우는 이유는,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단장된 동굴 입구로 들어가 보면 알게 된다. 입구에는 샘물이 있어 경건한 마음으로 마시도록 되어 있으며, 암자 안마당에는 모과나무와 두충나무를 비롯해 소나무 분재 등이 적절히 배치되어 있는데, 겨울철이라서 그런지 한층 더 분위기를 타는 것 같다. 안양문으로 들어가면 이곳의 백미인 거대한 화강암의 산을 활용하여 만든 석굴법당(극락전)을 볼 수 있다. 실내 면적은 20평 정도로 짐작되는데, 높이는 4m 정도이다. 벽면이 조각으로 가득 차 있으며, 석불로 된 지장보살과 아미타불이 자리 잡고 있다. 법당 중앙에는 2.5m 정도의 아미타불 좌상이 자리 잡고 있으며, 왼쪽으로는 지장보살이 있다. 오른쪽 입구는 안양문, 왼쪽 입구는 평등문이다. 평등문에는 온갖 신들을 모신 신중단이 있다. 초창기에 비해 동굴 안이 몹시 세련되고 깔끔해졌다. 서암을 만들어 불교의 한 획을 그어보고자 한 스님은 원웅 스님이지만, 원웅 스님을 도와 뒤에서 고생한 사람들이 많이 있다. 즉, 약 10여 년 이상 동굴을 만들고 부처를 조각한 ‘홍덕희’라는 사람인데, 그는 1991년 33세에 서암에 들어와 일을 하기 시작하여 44세가 되어서야 지금의 모습을 대충 갖춘 서암으로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전면의 석가여래는 구슬을 손바닥에 두고 있고, 좌우로 각종 여래상들이 조각되어 있다. 즉, 동굴 안이 모두 조각되어 있는 것이다. 초창기에는 어디서 새는지 바위 틈새로 조금씩 흘러내리는 물방울로 습기가 차 있었으나, 지금은 깨끗하게 제거된 것 같다. 아미타불의 손에 있는 구슬은 정말 반짝거린다. 손바닥에 구슬을 갖다 두었을까? 자세히 보면 구슬을 끼운 것이 아니다. 그냥 그 상태에서 구슬을 조각한 것이다. 그리고 마천면의 돌은 옥의 성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계속 닦아주면 옥구슬처럼 변한다. 평등문 쪽으로 있는 신중실에는 10대 보살과 나한·사천왕 등 온갖 신들이 있는데, 지옥을 헤매던 중생들이 아미타불의 넓은 아량으로 구원받아 극락에 이르는 과정이 조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때 생각나는 말, “평상시에 착한 일을 많이 해야지….” 서암의 모든 것을 보고 나왔다면, 서암의 비로전을 한 번 가보도록 하자. 보통 관광객들은 잘 모르고 지나치는데, 식당 근처로 오면 찾을 수가 있다. 그곳에서 보살님의 약탕 한 잔을 하고 나면 추위가 모두 가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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