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한 해 최고의 경제 이슈를 선택한다면 단연 금융위기를 꼽을 수 있다. 또, 금융위기에서 빠질 수 없는 게 있다면, 인터넷 논객인 ‘미네르바’와 ‘3월 위기설’이다. 먼저, 미네르바를 알아보자. 그는 다음 아고라의 경제 토론방에서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지난 여름부터 200여 편의 글을 올렸으며, 평균 조회 수가 10만 건을 넘기는 등 화제를 모았다. 무엇보다 지난 여름에 예측했던 리먼 브러더스의 부실, 환율 급등, 주가 폭락 등이 맞아 떨어지면서 더욱 유명세를 탔다. 특히, 올해 국내에서는 글로벌 금융 불안이 지속되고 경기침체가 악영향을 미치면서 증시 변동성이 커지는 바람에 증권사의 증시 전망이 틀리는 사례가 비일비재했다. 이 때문에 투자자들 사이에서 증권사에 대한 신뢰가 크게 하락했는데, 이 틈을 파고들어 포털사이트에서 활약한 인물이 미네르바다. 그는 현 정권 고위 관료의 환율정책 실패 등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신랄한 비판 등으로 네티즌들에게 대리만족감을 줬다. 또 앞으로 국내 경제는 원·달러 환율 상승, 건설업체 연쇄 부도, 상호저축은행 위험 등이 겹치면서 코스피지수 1차 저점이 820선, 2차 500선을 예측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치권에서 이슈화되면서 정부의 수사 논란, 일각의 협박 등으로 그는 최근 절필을 선언했었다. 그러나 미네르바는 모 월간지 최신호에 장문의 기고를 하면서 다시 등장했다. 모 월간지 기고에서 최대 화두는 ‘3월 위기설’이다. 내년 상반기 성장률이 마이너스를 찍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건설·조선·자동차업 등의 부실이 현실화되고, 외국 금융기관의 자본회수가 본격화되면서 3월에 우리 경제가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시나리오다. 또 “스태그플레이션 국면을 맞이하는 정부의 대응기조가 현재처럼 이어진다면 내년 3월 이전에 파국이 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미네르바의 주장은 정부 내에서도 내년 상반기에 우리 경제가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강조하면서 위기설에 무게를 실어주고 있다. 정부 관계자들도 일제히 우리 경제가 내년 상반기에 가장 큰 어려움을 맞을 것으로 진단하면서 위기감이 증폭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3월 위기설은 근거가 없다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으며, 전문가들도 그 가능성을 상당히 낮게 보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10월 초 “세계 경제의 동반 침체는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 경제에 큰 걱정거리로, 내년 상반기가 가장 어려울 것으로 예상돼 특별한 비상대책이 요구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 역시 “정부는 최악의 상황을 전제로 정책을 추진 중이지만 언제까지 최악의 상황이 갈지는 예측하기 쉽지 않다”며 “정부는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 최악의 상황이 진행된다는 전제에서 내년도 예산을 짰다”고 설명했다. 11년 전 외환위기 극복을 진두지휘했던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도 최근 서울대학교에서 열린 강연회에서 “현재의 경제위기는 진행형으로, 앞으로 2∼3개월이 굉장히 중요하다. 정책대응에 실패하면 경제파국의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 정부, “3월 위기설 지나친 예단” 이러한 위기설의 근거는 최근 우리 경제의 실물지표가 급속도로 악화되는데 기반한다. 올해까지 20% 안팎의 증가율을 유지했던 수출이 지난 11월 18.3% 감소한데 이어, 내년 상반기 또는 분기별로는 마이너스 증가율을 기록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전분기 대비 경제성장률은 올해 4분기 또는 내년 1분기에 마이너스를 나타낼 가능성이 있다. 경기침체의 여파가 건설사와 조선사에 이어 자동차·반도체 등 다른 업종으로 확산되고, 특히 중소기업이 큰 어려움에 처해 대규모 구조조정이 뒤따를 것이라는 전망도 위기설의 근거로 거론되고 있다. 금융시장 불안도 증폭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12월 말이나 내년 3월 말 전 세계 금융기관들이 회계연도 결산을 앞두고 있어, 국내 채권을 일시에 회수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삼성증권은 최근 발표한 ‘2009년 경제전망’에서 내년 환율 평균치를 1,475원으로 전망하면서도, 올해 12월 외국은행 지점의 국내 운용규모 축소와 내년 3월 일본 은행들의 결산기를 앞둔 자금회수 시기에는 원·달러 환율이 1,500∼1,700원에 달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한성대 교수) 역시 11월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외국금융기관들이 12월 말이나 3월 말에 회계연도 결산을 하게 되는데, 자신들의 재무건전성이 좋지 않다고 판단하면 우리나라에 빌려준 돈을 일시에 회수할 수 있다”면서 “특히 3월 말은 일본 은행들이 결산을 하는 시점이기 때문에 그 가능성이 더 높다”고 말했다. 3월 위기설이 일파만파 확산되면서 정부는 뒤늦게 “지나친 예단”이라며 해명에 나섰다. 김동수 기획재정부 제1차관은 11월 “지금도 금융기관들이 3개월마다 한번 씩 보고서를 내도록 돼 있는데 그런 문제는 없었다”면서 “내년 3월에 일시에 (해외금융기관의 자본이) 다 빠져나간다고 보는 것은 지나친 예단”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제금융 상황이나 국제공조 노력에 따라 영향을 받겠지만, 우리의 정책적 노력들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3월 위기설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 역시 실제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김현욱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경제 상황이 좋지 않으니 전 세계적으로 해외 투자자금을 회수하는 분위기가 있기는 하지만, 한국의 경제 펀더멘털이 3월에 급격히 변하거나 갑작스럽게 특정국가의 투자자금이 회수될 일은 없을 것 같다”고 진단했다. 윤덕룡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선임연구위원은 “비관적으로 볼 경우 위기가 실물 쪽으로 옮아가면서 1분기가 가장 심각한 시점이 될 수 있고, 외화 자금의 만기연장도 어려울 수 있다고 볼 수 있지만 그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면서 “'9월 위기설' 때도 그랬지만 준비를 착실히 한다면 순조롭게 지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핵심 변수는 미국의 실물경기 추락과 이로 인한 상업은행의 부실화”라며 “국내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가 변수로 작용할 수 있지만 쓸데없는 루머를 만들어서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고 강조했다. 이처럼 각종 괴담성 경제위기설들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식으로 등장, 한국 경제를 계속 괴롭히고 있다. 최근의 3월 위기설을 포함, 올 들어 지금까지 금융시장에 영향을 미친 위기설은 대략 8개 정도. 올해 봄부터 시작해 거의 매달 1개꼴로 위기설이 등장했다. 올해 위기설 8개… 이유는? 12월 위기설(수입업체 환차손 등)과 내년 ‘2~3월 위기설’(외국인 배당액의 대거 이탈)까지 나왔다. 그러나 위기설 중 현실로 나타난 것은 한 건도 없었다. 모두 허망한 낭설로 끝났다. 그럼에도 위기설들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내 자금이 일시에 빠져나가 외화 유동성 위기를 초래할 것이라는 '3월 위기설'은 위기설의 탄생·확산 경로를 생생히 보여준다. 원래 3월 위기설은 2000년대 초 일본의 10년 불황이 극에 달했을 때, 일본에서 제기된 일본 경제 위기론에서 비롯됐다. 일본의 은행들이 3월 결산을 맞춰 자국(自國) 금융시장에서 일거에 돈을 회수, 금융경색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이 위기설이 “일본의 위기가 현실화되면 한국도 위험해질 수 있다”는 논리로 확대 재생산돼 한국에 수입됐고, 이후 매년 3월만 되면 똑같이 위기설이 제기됐다. 그러나 대부분 한 달에 한 번꼴로 등장한 위기설은 모두 허망한 결말을 맞았다. 다만, 시장의 불안심리, 무책임한 인터넷 여론, 위기설을 오히려 키우는 정부의 아마추어적 대응이 고쳐지지 않는 한 앞으로도 위기설은 계속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가톨릭대 경제학과 곽만순 교수는 “위기설을 불식시키려면 우선 시장이 불안해하는 요인에 대해 신속한 정보 제공이 이뤄지고 부실기업 정리 등 불안 요소들을 조기에 해소하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