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금융시장 신용경색의 신호탄이 된 미국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된 지 석 달이 넘어섰다.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주택 담보대출) 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로 투자은행 리먼 브러더스 등 대형 금융기관들이 9월 중순 이후 연쇄 도산하면서 ‘대마불사’(大馬不死)의 신화가 무너진 탓에 전 세계 금융시스템이 마비됐다.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 보호를 신청한 지 3개월이 지나면서 금리인하와 대규모 경기부양 등 글로벌 정책 공조로 금융시장이 다소나마 안정을 찾아가고 있지만, 경기침체의 공포가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어땠을까? 국내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곳은 단연 증권시장이다. 리먼 브러더스 파산신청 소식이 국내 증시에 처음으로 반영된 9월 16일 코스피지수는 6.10%나 급락했고, 변동성이 극대로 확대된 10월 24일에는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던 1,000선이 맥없이 무너져 연중 최저점(종가기준)인 938.75를 기록했다. 이는 리먼 브러더스 파산 직전 거래일인 9월 12일(9월 13∼15일 추석연휴)에 비해서는 36.48%, 리먼 브러더스 파산 직후인 9월16일에 비해서는 32.35% 폭락한 수준이다. 특히, 코스피지수가 1,000선 아래로 떨어진 것은 2005년 6월 29일 기록한 999.08 이후 3년 4개월 만에 처음이었다. 국내외의 각종 정책대응에 코스피지수가 최근 단기 반등하면서 12월 15일에 1,158.19까지 올랐지만, 9월 16일에 비하면 여전히 16.54%나 떨어진 수준이다. 코스닥지수는 이보다 더 큰 폭으로 하락해 9월 16일 대비 21.92%나 내려앉았다. 같은 기간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을 합한 시가총액은 770조5475억 원에서 640조7289억 원으로 줄어 129조8186억 원(16.85%)이 증발했다. 특히, 10월 외국인의 매도세가 강화되면서 시가총액 대비 외국인의 비중은 유가증권시장에서 9월 16일 30.31%에서 12월 12일 기준으로 28.83%까지 줄었다. 원·달러 환율과 원·엔 환율도 요동쳤다. 일각에서는 11월 말 환율이 1500원을 넘어서자 앞으로 1700원, 2000원까지도 갈 수 있다는 극단적인 전망까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10월 말에 체결된 미국 중앙은행과 한국은행의 300억 달러 통화 스왑을 기점으로 원·달러 환율이 2주에 걸쳐 1500원에서 1250원으로 내려갔다. 아울러, 12월 18일 현재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일보다 33.00원 급락한 1292.00원으로 떨어졌다. 전민규 한국투자증권 이코노미스트는 “아직 환율이나 외화자금시장이 정상화된 것은 아니지만, 리먼 브러더스 파산 이후 외환위기 우려까지 불거졌던 상황에서는 일단 벗어났다”고 진단했다. 원·엔 환율 역시 100엔당 1137원이었던 것에 비해 1500∼1600원을 오르내렸다. 그러나 이 역시 한·일 통화 스와프와 국내 기준금리 인하 영향 등으로 연일 급락하고 있는 추세다. 이 때문에 당장 발등의 불은 급히 껐다고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이제부터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실물경기 침체로 이전됐고, 금융위기 대신에 글로벌 경기침체 공포가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이미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이 경기침체 상태에 빠져들었고, 중국 등 글로벌 ‘성장 엔진’의 신장세도 급격히 둔화하고 있어, 내년에도 경기침체 공포가 주식시장을 지속적으로 압박할 것으로 보인다. 세계은행이 최근 우리나라의 내년 성장률을 2%로 전망한 것을 비롯해 성장률 전망치가 잇따라 하향조정되고 있으며, 외국계 증권사 중에는 마이너스 성장까지 점치고 있다. 대신증권 성진경 시장전략팀장은 “리먼 브러더스 파산 이후 유례없는 글로벌 공조로 금융 시스템의 붕괴는 막았지만, 이제는 위기가 실물경제로 전이됐다”며 “실물경제 침체가 언제까지, 어느 정도까지 악화될지가 시장 회복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신영증권 김세중 투자전략팀장은 “리먼 브러더스 파산 이후 3개월이 지났지만 아직 미국 금융시장이 안정됐다고 평가하기에는 이르다”며 “금융기관의 구조조정이 어느 정도 이뤄졌다고 해도 실물 악화에 의한 금융부실 증가의 위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 전문가들, 환율 약세 오래 안 갈 것… 기축통화 유지 전망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부정적인 시각보다는 긍정적인 부문에 표를 던지고 있다. 먼저, 미국이 제로 금리 정책을 실시해 달러를 대규모로 공급하면서 달러화·엔화·위안화·유로화 등 주요국 통화 간 가치전쟁 조짐이 나타나고 있지만 달러 중심의 판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여전히 불확실성이 많아 달러 선호 현상이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특히, 일본은 엔화 초강세가 일본 경제를 더욱 어렵게 할 것이라는 이유에서 엔화의 초강세 현상을 두고만 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유럽이나 중국 역시 경기부양 측면에서 자국 통화의 강세를 보고만 있지 않고 적절한 선에서 관리에 나설 것으로 전망됐다. 이런 주요국의 입장을 종합해 볼 때, 최근 미 달러화가 유로·엔화를 비롯한 전 세계 통화에 대해 약세를 보이며 가치가 급락하고 있으나, 중기적으로는 강세를 유지할 것이라는 게 대세다. 금융연구원 송재은 연구원은 “달러화의 약세가 지속되면 각국 중앙은행이 달러 자산을 팔아 보유 통화를 다변화할 순 있지만 기축통화를 바꾸자는 움직임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최근 달러화가 급작스럽게 약세를 보이는 이유는, 글로벌 신용경색이 심화되면서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매력이 떨어진데다, 그간 미국 만의 문제로 인식됐던 경기침체가 여타 국가들에 전이됐기 때문. 이 상황에서 미 연준의 금리인하와 양적 완화 정책 등도 달러화에 강한 하락 압력 요인으로 작용했다. 게다가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 각국이 공격적인 금리 인하와 경기부양책을 내놓으면서 시장의 투자심리가 소폭 회복된 것도 달러 약세를 부추겼다. 아울러, 향후 글로벌 금융시장에 추가 악재가 터질 위험이 상존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장재철 연구원은 “금융위기 이후 유로·엔·위안화 등 어떤 통화도 위기를 해결하지는 못했다”며 “달러 가치가 훼손되더라도 궁극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나라는 미국이기 때문에 달러화 가치는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송 연구원은 “G20 등에서 이번 금융위기가 진정된 후 글로벌 기축통화에 대한 논의가 있을 수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모든 결제 시스템이 바뀌거나 모든 국제기구가 바뀌지 않는다면 달러가 당분간 기축통화로서 지위를 유지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실제로 금융위기가 터진 이후 지속적으로 달러 수요가 나타난 부분은 각국 중앙은행이었다.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브라질·말레이시아·인도 등은 외환보유액이 급감하면서 해외 통화 스왑 등을 통해 달러 금고가 비는 것을 최대한 경계하고 있다. LG경제연구원 신민영 금융연구실장은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국가의 경기가 전반적으로 좋지 않기 때문에 자국 통화를 약세로 가져가려는 분위기가 팽배하다”며 “앞으로 국가 간 갈등의 소지가 충분히 있기는 하지만, 기축통화가 달러에서 다른 통화로 바뀌는 일은 당분간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