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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최효숙 청주여자교도소 소장

“담장 안의 삶은 제 삶의 소중한 일부가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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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nbnews 제100호 이우인⁄ 2009.01.14 13:37:38

지난해 7월 청주여자교도소 최고책임자로 임명된 최효숙 소장(53). 국내 최초의 여성 교정기관장이다. 최 소장은 지천명을 넘긴 나이에도 불구하고, 170cm의 훤칠한 키에 제복이 잘 어울리는 건장한 체격. 태권도와 각종 운동에 능한 지금과는 달리, 어렸을 적에는 허약한 소녀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몸무게가 겨우 29kg이었던 적도 있다. 다른 아이들처럼 앞에 나가 발표를 하는 일은 상상도 못할 정도로 성격도 내성적이었다. 이러한 자신의 결점을 극복하기 위해 시작한 태권도가 지금의 단단한 체력과 정신력을 줬다. 전남 담양군 수북면에서 2남4녀 중 셋째로 태어난 최 소장은 유년기를 목포에서 유복하게 보냈다. 하지만, 단란했던 최 소장의 가정은 이내 화마와 이어진 부친의 죽음으로 고비를 맞았다. 고등학교 때까지 줄곧 우등생이었지만, 가정형편이 어려워 대학 진학을 포기해야 했다. 그리고 들어선 길이 교정직 공무원의 삶이었다. “처음부터 교정계에 몸담을 구체적인 목표는 없었어요. 같은 성당에 다니는 동네 언니가 권유해서 교정직 공채 시험을 봤는데 한 번에 합격하여 운명이 바뀌었죠. 합격통지서를 받기는 했는데 그때는 그저 교도소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수용자들과 하루 24시간을 함께 하는 담장 안의 삶은 제 인생의 소중한 일부가 됐습니다. 지금은 교정 교화 일이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1977년 서울 성동구치소에서 9급으로 첫 교정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최 소장은 2년 만에 8급, 3년 만에 7급으로 초고속 승진을 거듭했다. 남성 위주의 보수적인 교정행정에서 여성은 9급으로 정년을 맞는 일이 관행처럼 되어 왔다. 하지만, 최 소장은 보란 듯이 시험에 합격해 당당히 남성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으며, 2005년 7월에는 여성 최초의 교정직 서기관(4급)이 됐다. 그것도 남편인 현 김재곤 김천교도소장과 같은 날 서기관으로 승진하여 국내 최초의 ‘교정관 부부’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남편은 성동구치소에서 근무할 때 처음 만났습니다. 그때까지는 안면만 있었죠. 이후 승진해서 수원교도소에 있을 때, 남편도 수원의 법무연수원에서 4개월 간 연수를 받게 됐어요. 수원교도소와 법무연수원은 곁에 있었죠. 저는 법무연수원 통근 버스를 타고 출퇴근했는데, 남편과 우연히 만났습니다. 안면이 있어 무척 반가웠어요. 그리고 자연스럽게 교제하게 된 거죠(웃음).” 최 소장과 김재곤 소장은 교정본부에서도 소문난 잉꼬부부이다. 6급(교감)부터 4급(서기관)까지 같은 날 승진하는 등 손발이 척척 맞는 부부였다. 부부는 방송통신대 법학과에 함께 입학하는 등 학구열까지도 닮았다. 대학원은 김 서기관이 먼저였다. 충북대 행정학과 대학원을 먼저 나온 김 서기관이 아내를 같은 대학교 법무대학원으로 이끌었다. 부부는 이렇게 서로의 인생과 미래를 아낌없이 지원했다. “함께 공부하며 살아가는 부부가 됐으면 좋겠다는 기대가 있었어요. 자기 발전을 위해 공부를 멈추지 않고 서로 좋은 자극이 되었습니다. 아이를 낳고 나서도 함께 도서관에 다니며 공부했기 때문에 늘 연애 기분을 느낄 수 있었어요. 아이들은 친정어머니한테 맡기고 말이죠(웃음).” 최 소장은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떠올린 듯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39세에 남편을 잃고 물려받은 재산과 점포를 지키면서 2남 4녀를 여자 혼자 키우기란 여간 벅찬 일이 아니었다. 최 소장의 두 아들 역시 바쁜 최 소장을 대신해 어머니가 키웠다. 힘든 교정직 공무원 생활을 하는 딸이 공무에 전념할 수 있도록 뒤에서 지원해준 강한 어머니였다. 여든이 넘었지만 아직도 향교에 다닐 만큼 학구열이 높다는 점은 모녀가 똑 닮았다.

■ 때론 엄격한 교도소 소장으로, 때론 자애로운 어머니로 2008년 12월 23일, 최 소장이 근무하는 충청북도 청주의 청주여자교도소를 찾았다. 차가운 회색 시멘트 빛이 삭막함을 느끼게 하는 여느 교도소와 달리, 청주여자교도소의 외관은 동양적인 문양의 그림으로 뒤덮여 따스했다. “예술가가 1년에 걸쳐 특별히 그려준 그림입니다. 종전과 달리, 요즘 교도소는 복지시설화되어 가고 있어요. 수용자들의 복지를 위해 열린 교도행정을 펼치는 곳이 지금의 교도소입니다.” 전날인 12월 22일은 최 소장이 교도관이 된 지 정확히 31년째가 되는 날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첫 일과로 수용자와 직원들을 위해 기도하는 최 소장은 교도소의 책임자로서 때론 엄격한 모습을 보이다가도 때론 자식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이 되어 자애로운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다음은 최 소장과의 일문일답이다. ■ 교정당국에서 여자교도소를 만든 목적은 무엇입니까? 소수인 여자 수용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투자는 남자 수용자에 비해 뒤떨어지는 것이 현실입니다. 일반교도소의 여성 재소자 비율이 10% 정도여서, 교도소 차원에서 여성만을 위한 별도의 교화 프로그램을 시행하기에는 공간·예산·전문인력 확보 등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습니다. 더불어 정서적·신체적·사회적 특성에 따라 특별히 배려하고 보호해야 할 여성 수용자에게 전문적이고 체계적인 교정처우를 시행하기 위한 여성 전담 교도소의 존재는 시대적 요청이었습니다. ■ 여성 최초로 교도소의 소장에 취임한 소감이 궁금합니다. 교정계에 입문한 지 31년째입니다. 31년 만에 기관장에 오른 일은 당연히 제게는 영광스럽고 기쁜 일이죠. 앞으로 ‘최초의 여자교도소장’이라는 수식어가 더욱 빛날 수 있도록 섬김의 리더십을 바탕으로, 직원들의 자발적인 열정과 노력을 이끌어내 지혜로운 리더가 되겠다고 결심했습니다. ■ 말단 공무원 시절부터 누구보다 먼저 출근하고 제일 늦게 퇴근할 정도로 열심이었다고 들었습니다. ‘교정공무원’으로서 지녀온 목표가 있었습니까? 교정계에 입문할 당시 여성 교정인의 비율은 매우 낮았고, 직장 내의 지위 또한 남성에 비해 현저히 낮았습니다. 여성에게는 승진의 기회조차 제대로 주어지지 않던 시절이었죠. 그런 현실 속에서 미력하나마 여성의 지위를 향상시키는데 앞장서야겠다는 신념을 갖게 됐습니다. 또한, 남성위주의 교정환경 속에서 여성 교정인으로서 큰 역할을 담당하고 싶다는 포부도 있었죠. ■ 공무원 사회에서 여성이 갖는 핸디캡 때문에 더 분발하셨다는 말씀이군요. 한편으로는, 오히려 여성이기 때문에 경험한 보람도 있을 텐데요. 그 핸디캡 때문에 남성에게 뒤지지 않으려고 더 열심히 했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돌이켜보면, 여성 교도관의 비율이 낮았기 때문에 오히려 승진 기회가 많아져, 그 덕분에 제가 승진시험에 거듭 합격해서 ‘여성최초’라는 수식어도 달게 됐구요(웃음). ■ 31년 넘게 교정인의 삶을 살아왔는데, 돌아보면 어떤 감회가 듭니까? 정말로 숨가쁘게 살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은 보람 있었지만, 힘들었어요. 지금도 만만치는 않아요. 수용자들은 대개 올바로 생활해야겠다는 생각에 앞서 요구를 많이 합니다. 교도소는 그들의 욕구가 분출되는 곳이죠. 수용자들 중에는 환자도 있고, 정신이상 수용자 등 문제 수용자들이 한데 모여요. 수용자들이 직원에게 난동을 부리거나 폭행을 가하기도 합니다. 직원의 65%가 들어온 지 2년 미만인 젊은 여성들이어서 거친 분위기에 순응하지 못하고 다른 교도소로 전출을 가는 직원들이 많아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 교도소 하면 폭력 등 인권침해가 심각한 곳이라는 인식도 없지 않은데, 요즘의 교도소는 어떻습니까? 과거와는 많이 다릅니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교도소와는 차원이 다른 곳이죠. 종전과 같이 죄를 지은 범죄자들을 제재하고 강압하는 의미의 교도소는 없어졌습니다. 지금의 교도소는 수용자들의 재활과 사회복귀를 위한 학교 같은 역할을 합니다. 예전과는 달리, TV도 볼 수 있고, 목욕도 일주일에 한 번씩 단체 목욕탕에서 합니다. 머리는 일주일에 몇 번씩 감을 수 있구요. 식사는 여성 수용자들이 직접 만드는데, 매일 한 번씩은 고기가 지급됩니다. 점심시간에 노래방도 사용할 수 있어요. 간혹 공연이 있어 문화생활도 즐기죠. 교육을 원하는 수용자에게는 검정고시·학사고시·학과교육 등 다양한 교육의 혜택도 주어집니다. 조리·제빵·봉제·화훼장식·미용 등 5개의 직업훈련 과정도 있어 자격증을 따도록 교육하고 있죠. 아침에 나가 공장에서 일하고 저녁에 들어오기도 합니다. 그 밖에, ‘개방처우’ 제도가 있어 담장 밖의 수용시설에서 생활하는 수용자는 외부 통근도 가능합니다. 서예·분재·종이접기·다도 등 다양한 취미생활도 즐길 수 있죠. 사회에 나갈 때는 창업교육도 하고, 취업도 알선합니다. ■ 수용자를 교화하면서 가장 어려운 점은 무엇입니까? 수용자들 중에는 굉장히 불우한 성장과정을 겪은 사람이 많아요. 기본적인 인성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사람들이죠. 직원들이 애정을 갖고 교육과 작업·직업훈련 등을 통해 수용자들을 교화시키려 애써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부하려는 사람도 많구요. 감사하게 생각하며 생활하는 사람도 물론 있지만, 뭘 해줘도 불만인 사람이 적지 않아 교화에 어려움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스스로 노력하면 재활할 수 있는 환경이 주어짐에도 불구하고 노동의 의사가 없어, 교도소를 나갔다 들어오는 일을 반복하기도 합니다. 정당한 노동의 대가로 살아가는 일을 고마워할 줄 모르는 이들을 볼 때마다 참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죠. ■ 교정직 일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습니까? 왜 없었겠습니까. 지금은 소장직에 있으니 책임감 때문에 정신적으로 힘들지만, 예전에는 몸과 마음이 다 힘들었어요. 지금은 4부제이지만, 우리 때는 2부제였거든요. 25시간을 근무하고 나서 다음날 오후 2시까지 비번 근무를 하던 시절이죠. 집에서 잠시 눈만 붙이고 나와 또다시 24시간을 일하는 식이었어요. 제 삶의 전부가 직장생활일 때도 있었구요. ■ 교정공무원으로서 언제 보람을 느끼십니까? 자신의 노력으로 다른 사람의 인생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일만큼 큰 보람은 없습니다.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들어온 사람이 새 사람이 되어 출소하는 모습을 볼 때의 기쁨은 말로 다할 수 없어요. 진심으로 감격해서 울고 나가는 사람도 있죠(웃음). ■ 공무원 시험 응시자가 수백 대 일이라는 보도가 있습니다. 요즘 교정직 공무원에 대한 관심도는 어느 정도인가요? 우선, 학력이 높아졌어요. 대학교 졸업자들이 대부분입니다. 얼마 전 시험에서는 100점 만점에 103점이 커트라인이라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어요. 만점이 많아서 가산점이 없으면 떨어진다는 얘기죠. 기능직 한 사람 뽑는데 100:1의 응시율이었습니다. ■ 직장생활을 하느라 시간적인 여유가 없었을 텐데, 공부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사람이 하려고만 들면 시간은 문제가 안 되는 것 같아요. 시간 타령은 사치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바빴지만, 공부·취미·운동, 하여튼 할 거 다하고 살았어요. 저는 평소 생활도 치열한 사람이었습니다(웃음). ■ 자녀들이 학구파인 부모님에게 자극을 많이 받았을 텐데요. 어릴 때는 엄마가 옆에 있어주기를 원하여 안쓰러웠는데, 자라면서 아이들도 엄마의 직장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대학교 4학년인 큰아이는 졸업을 6개월 남겨두고 어학연수를 갔어요. 작은애는 중국에 혼자 유학을 보냈는데, 요즘 국내의 대학에 진학하려고 공부하고 있습니다. ■ 모성이 범죄를 예방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소장님은 가정에서 어떤 어머니입니까? 저는 아이들이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회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게끔 강하게 키우려고 노력했습니다. 제 아이들은 엄마 앞에서, 어디에 가든 살아남을 수 있다고 늘 자신만만해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나약해 보여요. 자신감이 있어야 세상을 너그럽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 휴일은 어떻게 보내십니까? 쉬기도 하고, 운동과 취미 활동도 합니다. 교정직 공무원은 긴장감 속에서 정서적으로 각박해지기 쉬운 직업이에요. 그래서 늘 직원들에게 정신건강을 위해 ‘운동보다 좋은 약은 없다’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고상한 취미도 하나씩 가지라고 권합니다. 저는 최근에 유화(油畵)를 시작했어요. ■ 교정직 공무원으로서 여성이 갖추어야 할 자질을 후배들을 위해 조언해 주십시오. 먼저, 적극적으로 도전하는 자세, 즉 ‘일에 대한 열정’을 가져야 합니다. 성공의 문을 여는 가장 확실한 열쇠는 열정이거든요. 철저한 자기관리도 필요하죠. 늘 긴장 속에서 생활해야 하는 교정직의 특성 때문에, 지나치게 경직되기가 쉬워요. 지치지 않는 에너지를 가질 수 있도록, 운동이나 취미생활 등을 통해 스스로 정서적인 안정을 찾아 부드러운 가운데 강한 힘을 기르기 바랍니다. 당초 30분을 예상한 인터뷰는 1시간을 넘겼다. 최 소장의 유쾌한 입담과 시원시원한 웃음소리는 시간의 흐름을 잊게 했다. 끝으로, 최 소장은 교정직 공무원이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이라며, “직원들이 받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상담 프로그램이 절실하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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